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나의 인턴 시절 이야기 <인턴>
다름과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
이 둘은 모든 것이 반대이다. 사장과 인턴이고, 여성과 남성이고, 젊은이와 노인이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70세의 인턴이다. 그가 모시는 상사는 30세의 쇼핑몰 여사장(앤 해서웨이 분)이다. 이른바 ‘닷컴’ 사장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닷컴’ 기업은 우리의 생활을 바꿨고, 이로 인해 많은 제조업체가 사라졌다. 로버트 드 니로가 평생을 바친 ‘전화번호부 회사’ 역시 이 닷컴 기업의 등장으로 사라진 제조업체다.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는 말한다. “전화 번호부요? 요즘엔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오잖아요?” 그렇다. 그녀로 대변되는 세력 혹은 세대의 등장으로, 과거로 대변되는 로버트 드 니로는 물러나게 된 것이다. 더한 것은, 과거 자신이 부사장으로 근무했던 그 전화번호부 회사 건물은, 현재 앤 해서웨이가 쓰고 있는 건물이다. 드 니로의 회사와 젊음과 직위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앤 해서웨이의 회사와 젊음과 (더 높은) 직위가 대체되어 있다. 이토록, 이 둘은 모든 것이 반대이다. 사장과 인턴이고, 여성과 남성이고, 젊은이와 노인이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어쩐지 오늘은 너무 진지하게 시작했다. 본격 삼천포 지향 영화 칼럼인 <영사기>가 이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각해, 잠시 나의 ‘인턴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최대한 길게 버티며,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진출했다. 그렇기에 당장 정규직이 되어 평생 직장을 다닐만한 확신이 없었다. 아울러 IMF를 탈출한 시기이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에 나라전체를 떨게 했던 생생한 기억은 얼어붙은 채용 시장을 해동시키지 않았다. 경직된 상황의 고용 시스템과 나이 탓에 등 떠밀려 사회로 진출한 나는 ‘인턴 체제’라는 교집합에서 만났다.
영화처럼 회사에 가보니 앤 해서웨이 같은 미모의 상사가 나를 기다렸을 리 만무하고, 무슨 상황인지 남자가 안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한 명의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그는 ‘투명인간이 돼야 생존할 수 있다’는 듯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이미 생에 필요한 모든 양기를 뺏긴 듯, 마흔 명이 넘는 부서 여직원들 사이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생의 의지를 상실한 듯, 앉아 있었다(실제로 그는 다음 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자, 잃었던 모든 웃음을 단번에 되찾아 양손을 크게 흔들며 떠났다).
다른 이야기지만, 학부시절엔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전기 공학과에 십 몇년 만에 여자 신입생이 한 명 들어오자, 전 학년이 만 원씩 거둬서 티코를 한 대 사주자는 운동이 잠시 펼쳐졌다. 그만큼 성비 구성은 중요한 것이다. 그곳은 말하자면, 현재 아마존에서도 찾기 어렵다는 여의도의 ‘여인국’이었다. 팀장, 과장, 대리, 정규직, 계약직, 인턴, 아르바이트, 심지어 간혹 창가에 날아와 앉는 참새까지 모두 여성이었다. 수컷이라고는 오로지 생의 의지를 상실하여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타박 받고, 또 그 때문에 직무를 더 수행하지 못해 더 타박받아, 더욱 생의 의지를 급속도로 상실해가고 있는 직원 뿐이었다. 하여, 당시 나는 팀장부터 과장, 대리, 직원, 아르바이트 생까지, 즉 사십대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즉, 의정부, 안산 등의 경기도민부터 강남, 여의도 등의 서울시민까지, 즉, 두 아이의 엄마부터 남자친구 하나 없는 모태 솔로까지의 부탁을 모조리 들어주며 지내야 했다.
생수통을 가는 것은 기본, 우편 박스는 두말하면 입 아프고, 육안으로 무게 3kg이 넘게 나가 보이는 것이면 당장 업무를 중단하고 달려가 “예!”하며 적당한 함성(너무 우렁차면 욕을 먹는다)을 지르며, 적당한 속도(너무 빠르면 이 역시 험담의 대상이다)로 달려가(느릿하게 걸으면 이 역시 비호감의 대상이다) 책상 위의 물건을 책상 아래로 내려놓고 제 자리로 돌아와 일을 하곤 했다. 물론, 적당한 보폭의 걸음걸이와 적당한 톤과 속도의 목소리를 유지하며 말이다(감사합니다. 또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그 때 일을 시시콜콜하게 쓰자면, 좀스러워 보이고, 당시에 쌓았던 무수한 즐거웠던 기억도 훼손되므로 이 정도로만 하자. 다만, 나는 당시 꽤 많은 것에 신경 써야 했고, 그 때부터 앓기 시작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이제 생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그러나, 실은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당시의 상사와 동료들 역시 나로 인해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는 것이다. 그 후, 남자 직원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버렸고, 남자라고는 오로지 나 한명 밖에 남지 않았다(그 탓인지 나는 정규직이 되었고, 나 역시 그처럼 말을 잃어갔다). 그 때, 마흔 명이 넘는 동료들은 나 때문에 자기들끼리 있을 때 하고픈 말과 행동을 맘껏 하지 못했다. 내가 나타나면 달라지는 공기, 간혹 ‘흠흠’ 하며 나는 기침 소리, 그리고 갑자기 메신저 창이 사라진다는 걸 나는 실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당시에 내게 했던 모든 부탁들이 실은 동료들이 나로 인해 느끼고 있는 불편에 대한 투정이자, 다른 식으로 치러야할 일종의 대가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2년을 지냈고, 다른 부서로 발령받았다. 그렇게 나의 여인국 생활은 끝이 났(던 걸로 보였)다.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자신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사장과 동료들의 부탁을 듣는다. 때로 운전 기사 노릇을 하고, 때로 어린 동료의 연애 상담자가 되고, 때로 여사장의 여행 동반자가 된다. 젊은 세대의 등장으로 일터에서 떠밀린 늙은 부사장이, 같은 공간에 인턴이 되어 다름을 인정하며 어울린다. 영화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때 내가 제대로 못 했던 것을 영화 속 드 니로처럼 해냈더라면, 지금보다 장이 건강할텐데. 저건 그저 영화일 뿐일까? 나는 혼자서 웃었다. 비록 나는 잘 해내지 못했지만, 영화가 생이라는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면 그것대로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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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발령 받은 다른 부서는 어땠냐고? 거기에도 외로이 버티는 남자 직원이 한 명 있었다. 다만 그는 몹시 뻔뻔하여 주변 사람들을 크게 개의치 않는 타입이었다. 어찌됐든, 그곳 역시 제2의 여인국이었다. 단지 규모가 작았을 뿐. 물론, 시간이 지나 그곳도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만의 나라에서 원고를 쓰며 지내고 있다. 지금 <영사기>에 이렇게 헛소리를 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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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