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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있어요>, 흥미로운 역지사지의 반전
드라마 <애인있어요>
뺏기는 사람도 잘못이라 당당하게 말하던 강설리는 해강처럼 자존심도 버리고 모든 걸 내던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현실에서 뭔가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우리는 종종 이런 소릴 하곤 한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혹은 똑같이 당해 봐야 안 저러지. 남의 자리에 서 봐야 그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충고이기도 하고, 혹은 언젠가 너도 같은 일을 겪어보라는 앙심이기도 하다.
SBS <애인있어요>는 농담처럼 툭 날아든 이런 상상을 구체화한다. 한 남자와 두 여자, 한 부부와 새로운 여자가 있다. 남자는 새로운 여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남자의 곁을 지키던 부인은 자신의 자리를 잃고 추락한다. 하지만 현재, 세 남녀는 완벽히 반대의 위치에 선다. 빼앗으려던 사람은 지키는 사람이 되고, 지키던 사람은 빼앗으려 한다. 말 그대로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그대로 치르는 셈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눈길을 끄는 행보를 시작한다.
<애인있어요>가 가정하는 구도는 흥미롭다. 8회에 걸쳐 과거를 회상하며 드라마는 진언과 해강, 설리의 관계를 공들여 묘사한다. 얼핏 냉철하고 비정한 것처럼 보이는 해강은 언제나 진언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더없이 친절하고 자상한 진언은 해강에게는 모질고 가혹하다. 진언의 열렬한 구애는 이미 꿈처럼 사라진 지 오래라 이미 그들 사이에는 애정도 신뢰도 남아있지 않고, 진언은 부와 욕망을 좇는 데 열심인 아내에게 노골적으로 경멸을 드러낸다. 그런 그들 앞에 맑고 순수한 설리(박한별)가 등장한다. 진언에 대한 연정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그녀는 존재만으로 둘 사이에 불안한 울림을 불러일으키고, 당연한 결과로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얼핏 흔하디흔한 불륜 이야기처럼 보인다. 특히 설리의 뻔뻔한 태도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다. 설리는 불륜은 죄악이 아니라는 듯, 자신의 욕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순수하고 아이 같은 얼굴로 원하는 것을 좇는 모습은 일견 놀라울 정도다. “불륜이 뭔데요? 사랑해선 안 되는 사랑? 사랑을 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더 불륜 아니에요?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할래요 전. 후회 없이. 세상의 시선보단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이 저한텐 더 중요해요.” 설리의 대사는 타인보다는 자신의 필요에 솔직한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출처_ SBS
눈여겨볼만한 것은 진언의 감정이다. 진언은 시종일관 해강에 대한 경멸과 증오를 드러낸다. 오래 전 해강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목소리가 마치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로 결혼 말미의 진언은 해강에게 잔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사정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진언은 오직 해강에게만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는데, 이는 둘 사이에 아직 청산되지 못한 감정의 잔재가 있다는 반증이다. 강한 증오와 실망은 진언이 본디 자신이 사랑했던 해강의 모습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죽은 아이 이야기를 하며 주정하는 장면, 진언은 어떻게 아이를 벌써 잊을 수 있느냐고, 연기하는 거면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며 서럽게 오열한다. 죽은 아이뿐만 아니라 아내 해강조차 잃은 것처럼 느낄 그의 상실감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설리와의 관계는 연애 감정보다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진언의 욕구를 바탕에 둔다. 마치 구도자와 성물처럼 한 쪽의 일방적인 구애로 이뤄진 관계다. 진실한 감정을 바탕에 두지 않은 진언과 설리의 관계는 불안한 모래성과 같다. 실제로 진언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설리에 비해 진언의 태도는 미적지근하기 그지없다. 때때로 진언이 설리에게 드러내는 호감은 그녀에게 젊은 시절의 해강을 투영하며 얻는 것이고, 그 이외의 감정은 충동적이거나 미약하다. 진언이 해강에게 드러내는 분노도, 설리에게 느끼는 호감도 결국 해강에 대한 오랜 기대와 애정으로 귀결된다.
물론 오해와 애증, 피로와 분노가 겹친 탓에 진언은 해강과의 관계를 제대로 돌아볼 수 없다. 지난한 갈등과 파란 끝에 해강과 진언은 이혼을 결심한다. 어떤 수모와 멸시에도 포기하지 않던 해강은 진언의 냉담한 일별에 결국 도장을 찍는다. 하지만 이대로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관계의 전복을 준비한다. 기억상실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해강은 기억을 잃고 진언이 사랑했던 예전의 모습이 되어 돌아올 터다. 돈과 권력을 만나기 전, 아이를 잃기 전의 순수하고 해맑은 해강으로. 죽은 아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죽은 아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웃는 그녀의 모습은 진언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길 것이다. 해강에게서 보았던 모든 죄악이 단순히 그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는 더더욱. 강설리는 이미 그 청아함을 잃고 진언이 그토록 싫어하던 해강의 악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테니까.
이제 형세는 완전히 반전될 것이다. 역지사지라고, 강설리는 자신이 무시하고 비웃었던 도해강의 자리에 서서 자신을 덮칠 역지사지의 반전에 맞서 싸워야 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울고, 읍소하고, 무릎 꿇어 애원하던 해강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뺏기는 사람도 잘못이라 당당하게 말하던 강설리는 해강처럼 자존심도 버리고 모든 걸 내던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다. 과연 그들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과거의 해강이 그랬고 설리가 그랬던 것처럼, 기억을 잃은 해강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다시금 진언에게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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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