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도망치던 긴팔원숭이가 항복했을 때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 『비숲』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 박사의 밀림 모험기 『비숲』이 출간됐다. 『비숲』은 어린 시절부터 야생에서의 삶을 꿈꾸었던 저자가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 안에서 숨 쉬고 생활한 2년여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 『정글북』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야생에서의 삶을 꿈꾸었던 저자는 생태학자가 된다. 이후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공원 내에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 연구지를 개척한다.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인간을 조롱하듯 나무 위를 자유자재로 뛰어 달아나는 긴팔원숭이들과의 기나긴 줄다리기를 끝에 마침내 긴팔원숭이들의 묵인과 암묵적 협조를 얻어낸 저자. 덕분에 우리는 『비숲』이라는 특별한 책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비숲』은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 김산하 박사가 밀림에서 좌충우돌하며 겪은 갖가지 사연과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담긴 책이다. ‘비숲’은 저자와 그의 동생이 자라난 공간의 이름이자 긴팔원숭이들의 서식지다. 제목만큼이나 독특한 책 『비숲』. 동물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퍽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저자의 지도교수였던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은 “무모한 지도교수의 권유와 그보다 조금 더 무모한 저자의 선택이 자바긴팔원숭이를 대한민국의 ‘연구 부동산’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어린 시절,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던 저자의 당돌한 인생철학 덕택에 오늘 우리가 이런 책을 다 읽는다”고 추천사를 썼다.
저자 김산하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지역 사회에서 동물과 환경을 위한 보전 운동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제인 구달 연구소의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프로그램 한국 지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동생이자 일러스트레이션 작가인 김한민과 함께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 자연 생태계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그림 동화 『S.TOP!』 시리즈를 출간했다.
자연, 그리고 자연과 맞닿은 삶의 의미와 가치
『비숲』을 출간한 소감
지금은 도시 속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문명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자연의 왕국인 밀림에서 살았던 그 시간을 드디어 이렇게 책의 형태로 기록하고 또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개무량합니다. 한국인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열대 우림’이라는 서식지와 그곳의 많은 생물들이 『비숲』의 출간과 함께 이제는 우리에게 보다 가깝고 소중한 존재로 다가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 시절 스리랑카, 덴마크, 페루 등 다양한 환경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영장류 학자가 되고 『비숲』이라는 책을 쓰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 읽은 미국 소설 『붉은 여우 불페스 (Vulpes, the Red Fox)』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어떤 똑똑한 여우 한 마리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동물이 주인공이다보니 말로 된 대화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책이었습니다. 사냥꾼이 등장할 때 빼고 말이죠. 동물의 관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하는 책이 있다는 데에 적잖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관점을 마치 옆에서 관찰하듯 계속 쫓아가니 그 어떤 인간의 이야기보다 아름답고, 자연스럽고, 고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책과 더불어 제가 어렸을 적부터 운 좋게 접했던 각종 생태계, 그리고 그 생태계에 흠뻑 빠져 들게 해 주었던 부모님 덕분에 『비숲』과 같은 책을 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이신데, 많은 동물 중에서 영장류, 특히나 긴팔원숭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우리가 영장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런 일들이 늘 그렇듯, 우연과 필연이 섞여서 일어났죠. 석사를 끝나고 지도교수인 최재천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시더니, 저는 작은 벌레 같은 걸 계속 들여다보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좀 더 ‘화려한’ 종이 어울리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영장류를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루 생각해 보고 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졸업 후 일본의 교토대학 영장류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며 침팬지 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영장류학 자체에 대한 흥미를 한껏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연구실 내에서 영장류를 가지고 하는 실험보다는 직접 야외로 나가서 야생 영장류를 하고 싶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그래서 최재천 교수님 밑으로 박사로 입학을 하였는데 선생님도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2년간 군복무로 봉사활동을 했던 경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경험을 살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예전에 일했던 곳의 교수님들께 무작위로 메일을 돌렸고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그 인근 숲에 사는 긴팔원숭이가 한 종 있었습니다. 평소에 밀림과 가장 어울리는 동물이라 생각한 동물 중 하나가 바로 긴팔원숭이어서, 저는 좋다 싶어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다른 것을 다 제치고 영장류에 유독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다만, 인간사에 대해 집중된 세간의 이목이 오늘날과 같은 환경 위기의 시대에는 이제 동물과 자연으로 그 무게 중심이 이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장류는 사람이 속해 있는 생물학적 분류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독보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는, 열대 우림이라고 하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를 대표하는 종으로서, 문명과 대척점에 있는 야생의 왕국을 안내해 줄 동물로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글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땠나요?
일주일에 6일 정도 숲에 들어갔습니다. 날씨나 건강 상태 때문에 하루 이틀 거를 때는 있었지만, 보통 새벽 5시쯤 일어나 아침밥 먹고, 씻고, 준비하고 6시에 떠났습니다. 숲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언제나 긴팔원숭이를 찾는 일입니다. 무슨 수신기를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라서 매일 맨눈으로 새롭게 찾아야 하는 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일단 찾고 나면 하루 종일 쫓아다닙니다. 긴팔원숭이들이 오후 늦게 잠자러 나무 높이 들어갈 때까지 말이죠. 그러면 그 나무에 표시를 해두고 다음 날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와서는 거의 곯아 떨어졌죠.
정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에 도시에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소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습니다. 지하철과 버스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휴대폰 소리와 카톡 소리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이 어떤 때는 괴로울 지경이지요. 또한 도시 곳곳에서 자연이 마구잡이로 제거되고, 그 자리에 인공물 또는 인공적인 손길로 조성된 조경이 자리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횡행하는 에너지 낭비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구요. 정글에서의 소박한 생활과는 너무 다른 세계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정글에서 긴팔원숭이를 관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우리로부터 늘 도망 다니던 그룹 B가 항복을 하던 순간입니다. 실제로 어느 특정 날, 어느 특정 나무 위에서 항복의 울부짖음을 터뜨렸습니다. 불행히도 정확히 그때에는 제가 휴가차 한국에 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나는 순간입니다. 전혀 꺾일 것 같지 않았던 그들의 고집이 꺾이는 순간이었거든요. 벌써 8개월이 넘게 그 그룹을 쫓아다니며 대체 언제쯤 우리가 관찰하게끔 놔둘 것인지 애가 타고 있던 차라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러면서도 믿기지 않았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실제로 눈앞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도 이 그룹에 대한 기억입니다. 가시덩굴과 울퉁불퉁한 지형, 질척거리는 바닥을 마구 달리면서도 다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동시에 초 단위로 멀어져 가는 긴팔원숭이를 죽어라고 쫓아가던 일은 제 생애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무 위에서 가장 빨리 움직이는 동물이 목숨을 걸고 도망가는 것에 견줄 정도로 추적을 해야 했으니까요. 특히 경사가 거의 45도 이상이 되는 곳에서의 추적은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밧줄까지 매고 잡아 올라가며 그들과 뛰어다니던 일은 거의 저희 한계를 시험했습니다.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이자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 박사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제인 구달 박사의 신작인 『희망의 씨앗』 출간을 기념한 박사님과 구달 박사님의 대담이 <채널예스>에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두 분의 오랜 인연과 생명다양성재단이 하는 활동들이 궁금합니다.
제인 구달 박사님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박사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그때가 두 번째로 한국에 온 것이었는데, 첫 번째 방문 때 최재천 교수님과 인터뷰에서 만나 두 분이 가까워지셨죠. 그 이후로는 쭉 저희 연구실을 통해서 방한하셨고, 생명다양성재단이 설립된 이후로는 명예이사로 계시며 재단을 통해 한국을 찾으셨습니다. 첫 방문 때 저는 석사과정 학생으로서 제인 구달 방한의 실무를 책임졌지요. 그 이후로는 방한 때마다 총괄을 맡아 스케줄을 잡고 직접 모시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기억 못하실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손으로 주신 편지에서 얼마나 저를 잘 기억하고, 심지어는 저희 어머니까지 알고 계시다는 걸 알고 무척 놀랐습니다. 지금은 제인 구달의 세계적인 환경운동 네트워크인 ‘뿌리와 새싹’ 한국 프로그램을 생명다양성재단에서 맡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인 구달 박사님과는 가끔 이메일도 주고받을 정도로 이제는 잘 압니다. 생명다양성재단에서는 뿌리와 새싹 운동과 더불어 야생 동식물 연구, 서식지 및 종 보전 활동, 환경 교육 및 운동, 기업 협력 프로젝트, 생태 예술 융합 창작 활동 등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제인 구달 박사님의 한국 방문도 재단의 가장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비숲』은 여러분과 같은 한국 사람이 궁극의 생명 발전소,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열대 우림에서 살고 연구하며 경험한 것을 적은 책입니다. 개인적인 기록이긴 하지만, 거기에 담긴 어떤 보편성을 여러분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책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보편성은 자연, 그리고 자연과 맞닿은 삶의 의미와 가치입니다. 그래서 재미있었던 기억이나 이야깃거리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연과 야생에 대한 태도와 성찰을 담아 보려 하였습니다. 녹색의 생물 낙원인 ‘비숲’ 속을 여행하듯이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숲 :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김산하 저 | 사이언스북스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 『정글북』을 읽으며 어린 시절부터 야생에서의 삶을 꿈꾸었던 저자가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 안에서 숨 쉬고 생활한 2년 여의 기록을 담은 이 책 『비숲』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한 생명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인 ‘비숲’과, ‘비숲’과 더불어 탄생하고 때로는 ‘비숲’과 더불어 스러지는 다종다양한 생명체들을 지금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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