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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사슴의 의미

<선녀와 나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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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투메드>는 씨족 기원에 관련된 신화였다. 이번에는 <선녀와 나무꾼>의 개괄적인 줄거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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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사슴의 의미

 

<호리 투메드>는 씨족 기원에 관련된 신화였다. 이번에는 <선녀와 나무꾼>의 개괄적인 줄거리를 살펴보자.

 

어느 날, 나무꾼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주었다. 사슴은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을 일러주며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슴이 일러준 대로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자 목욕이 끝난 다른 선녀들은 모두 날아 하늘로 돌아갔으나 한 선녀만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무꾼은 그 선녀를 데려다 아내로 삼았다.


아이를 둘까지 낳고 살던 어느 날 나무꾼은 선녀의 간절한 부탁에 그만 날개옷을 내어주고 만다. 선녀는 날개옷을 입어보는 체하다가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승천한다. 아내와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나무꾼에게 다시 사슴이 나타나 하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릴 터이니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처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일러준다.


사슴이 알려준 대로 하늘에 올라간 나무꾼은 한동안 처자와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나무꾼은 지상에 혼자 계신 어머니가 못내 그리워져 아내의 주선으로 용마를 타고 내려온다. 이때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로 용마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가 평소 나무꾼이 좋아하는 호박죽또는 팥죽 을 쑤어준다. 나무꾼은 어머니의 정성에 죽을 먹다가 말등에 흘리고 만다. 용마는 놀라서 나무꾼을 땅에 떨어뜨린 채 승천한다. 지상에 떨어져 홀로 남은 나무꾼은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슬퍼하다가 죽었다.


그러고는 수탉이 되어 지금도 지붕 위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운다. _《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갔다는 점에서 이미 씨족 기원 신화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초반에 등장하는 ‘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사슴의 금기이다.


이 내용은 <호리 투메드> 설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금기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을 형성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금기를 통해 <호리 투메드> 설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이야기로 변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녀와 나무꾼>에서 금기가 등장한 것은 씨족 기원 신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씨족 기원 신화는 예를 들면 박혁거세나 김수로 신화와 같은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김수로는 가야의 왕이 되고, 김해 김씨의 조상이 되었으며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낳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는 박씨의 조상이 되고 신라의 초대 왕이 되었다.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한반도에 전래되었을 때에 이미 이러한 씨족 기원에 대한 신화들이 있었다.


따라서 몽골신화 <호리 투메드>가 지닌 원래의 성격을 살릴 수 없게 되었고 한반도의 상황에 맞게 새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그러려면 이야기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일반 생활 속에서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그 때문에 사슴을 구해주고 그에 대한 보은으로 선녀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로 바뀐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선녀와 나무꾼이 결혼한다는 것은 막장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무꾼>에서의 선녀는 특정한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라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곳에 사는 아름다운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무꾼 또한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땅에 살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남자, 즉 보통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선녀와 나무꾼의 신분은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난다. 그래서 애초에 이 두 사람이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 움직이는 동선이 다르기 때문에 부딪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신분이 다른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줄 주선자가 필요하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그 만남을 주선하는 것은 사슴이다.


그런데 선녀와 나무꾼의 결혼은 누가 보아도 공평하지 않다. 따라서 그것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금기이다. 별 볼 일 없는 나무꾼이 신분 높은 선녀와 결혼하는 데 까다로운 조건이 하나 달려 있는 셈이다. 그래야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납득을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나라를 구하거나 큰 업적을 세우지도 않았는데 전혀 다른 차원의 생활을 하던 나무꾼이 선녀와 결혼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공상에 불과하다. 그래서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또한 이 금기를 이야기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설정하기 위해 쫓기는 사슴을 등장시킨다. 즉 제한적인 옵션이 하나 붙는 것이다.

 

 

날개옷의 상징


선녀에게 옷을 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금기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눈길을 선녀의 날개옷으로 향하게 만든다. 다르게 표현하면 금기는 손가락을 들어 옷을 가리키며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즉 금기라는 서치라이트가 옷을 향해 비추는 것이다.


<호리 투메드>의 이야기에서 옷은 단순히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지만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금기와 결합하면서 매우 중요한 상징이 된다. 선녀의 날개옷은 <선녀와 나무꾼>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몽골신화에서 옷은 입으면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것에서 그쳤지만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금기를 통해 새로운 매개를 만들어낸다. 즉 옷을 입으면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옷을 벗으면 나무꾼의 아내가 되어 땅에 살아야 한다.


이와 반대로 나무꾼의 입장에서는 옷을 숨기면 선녀와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고, 옷을 드러내면 홀아비가 된다. 정리하면 하나가 드러나면 다른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드러난 나무꾼은 호리 투메드보다 좀더 가족에 가까이 다가간다. 호리 투메드는 열한 명의 아이들을 얻고 그 아이들이 씨족의 조상이 되지만 나무꾼은 옷을 드러내는 순간 아이를 포함한 가족을 잃게 된다. 그 때문에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첨가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족인 어머니 때문에, 즉 어머니를 따르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었지만 어머니를 선택했기에 수탉이 되고 만다. 하나를 드러내면 하나가 사라진다는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또한 몽골신화에서는 옷을 벗고 입는 것에서 머물렀지만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숨김과 드러냄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가진 요소가 놀이터의 시소처럼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간다. 이 숨김과 드러냄으로 인해 뒤에서 전개되는 올라감과 내려감이라는 요소가 맥락적으로 납득이 되고 의미를 갖게 된다.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고 말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선녀의 날개옷이 지닌 의미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날개옷 또한 입고 벗는 것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오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그렇다.


한편 몽골의 <호리 투메드> 이야기가 씨족 기원에 대한 신화였는데 그영향력은 그대로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 남아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호리 투메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씨족 기원에 대한 신화는 한반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따라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그 이후, 즉 사회가 형성되고 그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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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덕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화 읽어주는 남자》,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신화》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고민하는 힘》, 《주술의 사상》,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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