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개 인생을 책임지라는 경고 <화이트 갓>
<화이트갓>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개를 버리고, 차별하는 인간들에 대한 개들의 반란이랄까. 인간이란 울타리를 벗어난 동물에게 세상은 정글보다 더 가혹하다. 버림받는 순간,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된다. 흔히 <화이트 갓>을 <혹성탈출>의 개 버전이라 부르지만, <화이트 갓>의 시작과 태생은 할리우드식의 상업영화와 꽤 먼 거리에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특히 정 많고 사랑이 넘치는 개들이 반려동물 중 특히 인기가 있다. 반려견을 위한 케이블 TV도 있고, 반려견 행동전문가가 교육방법을 알려주는 TV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삼시 세끼 어촌편>을 통해 한 뼘도 되지 않는 강아지 ‘산체’ 덕분에 장모 치와와는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품종이 되었다. 대형 마트에는 반려동물 전용샵과 병원이 갖춰진지 오래다. 하지만 반려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과 비례해 버려지는 개의 수와 학대도 급증하고 있다. 몇 해 전 TV 예능 <1박 2일>을 통해 인기를 누렸던 ‘상근이’ 덕분에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은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딱 1년 뒤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주 발견되는 품종은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이었다 한다.
귀여운 모습에 충동적으로 입양하지만, 강아지가 문제없이 가족이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배변을 못 가릴 수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인간의 음식을 탐하거나, 인간의 물건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도 있다. 사랑으로 감당할 수 없다면, 이 모든 과정은 서로에게 고통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여전히 온갖 나쁜 욕설에는 ‘개’를 집어넣고, ‘개보다 못한’이란 표현을 쓰면서 개를 하찮고 천박한 동물로 인식하는 등 여전히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 ‘애완동물’이란 용어를 ‘반려동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이유는 동물이 인간의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상생해야한다는 자각과 변화가 필요해서 인데, 막상 다른 생명체에 대한 존엄과 책임감을 지니기에 인간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충동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헝가리 영화 <화이트 갓>은 그런 인간의 이기심과 차별에 대한 잔인한 우화이자 경고이다. 헝가리 순종견이 아닌 잡종견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 이후, 부다페스트 거리는 버려진 개들의 세상이 된다. 잡종견에 벌금을 무는 정부나 돈 때문에 키우던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나 몰인정하고 잔인하긴 마찬가지다. 버려진 개들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개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인식은 없다. 마치 모든 생명의 통치자처럼 구는 인간들을 향해 <화이트 갓>은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한다. 수백 마리 개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을 습격하고 텅 빈 부다페스트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애잔하다. 하지만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개를 의인화하지도, 마냥 인간들에게 복종하는 선량한 마음을 가진 존재로 그리지도 않는다. <화이트 갓> 속 유기견들은 개를 개 같이 대하는 개 같은 인간들에게 처참하게 복수한다. 코르넬 감독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꽤 상세하게 ‘개 같은 인간’ 들의 작태를 그려내기에, 개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인간이 겪는 비극이 아니라 자업자득처럼 보이게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쉽게 개를 버리고, 차별하는 인간들에 대한 개들의 반란이랄까. 인간이란 울타리를 벗어난 동물에게 세상은 정글보다 더 가혹하다. 버림받는 순간,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개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사람들의 폭력에 맞서야 한다는 것과,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강한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화이트 갓>을 <혹성탈출>의 개 버전이라 부르지만, <화이트 갓>의 시작과 태생은 할리우드식의 상업영화와 꽤 먼 거리에 있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개들의 반란이라는 소재만 놓고 보면 컴퓨터 그래픽부터 떠올리겠지만, <화이트 갓>은 예측 가능한 것들에서 벗어나 낯선 얼굴로 가다온다. 개들의 동작과 표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디지털 기술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화면에 들어오는 것은 버려진 개들이 가진, 날 것 그대로의 움직임과 표정이다. 그래서 내가 걸어가는 길, 골목에서 불쑥 분노한 개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현실감을 품어낸다. 한 마디로 개들의 야성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인간과 개가 행복하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마음이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까지 담아낸다.
당연하게도 <화이트 갓>의 가장 중요한 배역은 ‘개’이다. 특히 연기가 뛰어난 개에게 수여하는 ‘팜도그 대상’에 빛나는 개 ‘하겐’은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 코르넬 감독은 하겐을 통해서 버려진 개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스크린에 녹여낸다. 주인공 소녀 릴리는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지만 헝가리의 정책과 아버지의 반대로 하겐을 길에 버리고 돌아온다. 그 순간부터 영화의 끝까지 하겐이 변하는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시작, 소녀와 함께 뛰어놀면서 장난스럽던 표정은 사라지고, 날선 경계와 분노가 더해져 공격성은 더욱 강해진다. 영화에 참여한 250여 마리의 개들이 모두 유기견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그래서 그들이 겪었을 분노와 고독, 슬픔과 절망의 감정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났는지도 모르겠다.
<화이트 갓>은 세상의 모든 애견인들이 봐야 하는 영화라는 홍보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정말 개를 사랑하는 ‘애견인’이라면 굳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약자들을 괴롭히고,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생명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아끼고 보살피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배려와 희생이 필요하다. 스스로의 삶을 나눌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강아지를 데려오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화이트 갓>의 제작진들은 유기견들의 안전을 최대한 고려하여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의 개봉 이후 250여 마리의 유기견들이 새로운 가족을 찾아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문제는 영화 속 유기견에 대한 차별과 잔인한 태도가 먼 헝가리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략 하루 평균 300 마리의 개들이 버려진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아! 우리 주위의 개들의 인생을 ‘개 같은 인생’으로 만들지 말자는 날선 교훈만은 잊지 말자.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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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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