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슬픈 일, 『보통의 존재』에서 위로를 받았다”
『보통의 존재』 출간기념 5주년 파티
낮은 조명, 빨갛게 달아오른 전기난로, 단출한 탁자, 아담한 레스토랑은 작은 파티를 하기엔 제격이다. 그리고 보통의 존재들이 음식을 앞에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보통의 식탁’이다.
너에게 닿기를.
『보통의 존재』의 작가이자 뮤지션 이석원을 만난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밤, 이 말이 떠올랐다. 그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서 글을 쓰고 책을 낸다고 했다. 그 글, 독자들의 마음에 닿았나 보다. 『보통의 존재』가 그랬다. 출간 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독자들이 책을 찾고 이석원을 찾았다. 지난 11월 28일, 서울 상수동의 작은 스페인 타파스바 CARINO에서 열린 출간 5주년 축하 파티가 그것을 증명했다.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위로해준 『보통의 존재』 5주년을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이석원과 8명의 독자들이 만났다.
낮은 조명, 빨갛게 달아오른 전기난로, 단출한 탁자, 아담한 레스토랑은 작은 파티를 하기엔 제격이다. 그리고 보통의 존재들이 음식을 앞에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보통의 식탁’이다. 이석원과 『보통의 존재』를 만나기 위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찾아온 독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5주년 기념파티답게 이석원과 독자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나눴다. 샹그리아가 그 대화를 촉촉하게 적셨다.
이석원을 향한 독자들의 애정은 애틋했다. 『보통의 존재』가 준 위안과 위무, 그리고 사랑에 추억 한 자락씩 품은 독자들이다. 그만큼 사연이 절절한 독자들이었다. 이별의 사연이 가장 많았다는 것이 출판사 관계자의 설명. 『보통의 존재』가 그 각자의 이별을 다독인 셈이다.
용인에서 온 독자는 어디선가 책을 읽는, 뮤지션 이석원을 좋아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그리고 7명의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났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었는데 『보통의 존재』에 위로를 받았기에 꼭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는 독자도 있다. 또 다른 독자는 연인과 헤어지고 일본 여행을 갔다가 이 책을 읽었단다.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켜준 고마운 『보통의 존재』였다. 그런 독자들과 이석원이 보통의 이야기를 나눴다.
책을 낸다는 기분을 알고 싶다. 가량 책을 읽은 독자들은 작가에 대해 일방적인 생각을 갖게 될 텐데, 어떤 기분인가?
아무 생각이 없다(웃음). 독자들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내 얘기를 쓴다고 생각하는 편이 아니어서. 실제로 글과 나는 다르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자와의 만남을 하면 좋기도 하겠지만 혹시 두려움은 없나?
나는 독자와의 만남을 좋아한다. 평소에 사람들을 별로 안 만나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이석원처럼 음악을 하는 독자도 이 자리에 나왔다. 드라마와 영화 음악 작곡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도 케이블 드라마 방송의 음악작업을 하고 있는 독자는 이석원의 팬임을 고백했다. 짝사랑했던 첫사랑이 이석원의 팬이었기에 무조건 이석원이 좋다며 책을 읽었다는 독자도 함께했다. 3년 전 처음 만난 『보통의 존재』는 스무 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사랑과 헤어졌지만 이미 그는 이석원의 팬이 됐다. 그러면서 알고 싶다고 했다. 연애를 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상처를 받고 매번 낯선 이별이 온다며, 이석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리고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보통의 존재들을 가장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디자인 수업을 들었는데,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시각화하라는 과제였다. 언니네이발관 음악을 듣고 인터뷰한 것을 찾아보면서 책도 읽었다. 책 표지를 새롭게 디자인해서 과제를 제출했다. 책 표지를 왜 의자 세 개를 그렸는지 궁금하더라.
디자인에 대해서는 출판사에게 아웃라인만 줬다. 당시 나온 책들은 팬시한 디자인이 많았는데, 나는 책 안에 사진을 넣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사진은 아주 조금만 들어가고, 멋 부리지 않는 옛날 문학책 디자인이면 좋겠다고만 말했다. 예상치 못하게 마음에 쏙 들게 나왔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가벼운 읽을거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 소설의 문장으로 쓰려다보니 책이 나온 뒤 회의가 많이 들더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1~2년이지, 소설을 4년이나 쓰다 보니 그것도 못하겠더라. 내키는 대로 쓰다 보니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그런 글을 쓰고 있다.
뮤지션이자 작가인데, 어떤 창작이 더 고통스럽나?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 문단에 등단하지 않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나는 멀티가 안 되기 때문에 힘들었다. 먹고살려니까 병행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음악과 글은 고통의 종류가 다른 것 같다. 음악은 몇 달 동안 준비해서 콘서트를 한다고 치면, 몇 달 동안의 노력보다는 운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이 많다. 그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되게 힘들었다. 아직도 그렇고. 성격상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 그런데 무대에서 듣는 내 소리가 어떤지 알 수 없음에도 통제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힘들다. 글 자체를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있다. 내게 등단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단에서도 나를 의식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가령 이런 거지. 유명 소설가가 밴드를 한다며 앨범을 냈다면 자기 음악을 하면 된다. 기존 뮤지션에 어필하는 음악을 하겠다고 한다면 웃기지 않겠나.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
음식에 대한 집착이 많았는데, 작업을 하면 그런 것이 더 심해진다. 담배를 안 피워서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푼다. 그런데 자꾸 손이 가는 음식들 대부분은 몸에 안 좋은데, 미친 듯이 먹는다. 병이 날 수밖에 없는 게, 글을 쓰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백화점 푸드코트 같은 곳에 가서 3~4인분을 시킨다. 그렇게 먹고도 후식으로 빵을 먹고 배가 채워지면 그 힘으로 글을 쓴다. 술도 좋아한다. 지금 그런 것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아쉽다.
음악은 앨범이 나온 이후 음악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했는데, 글은 책이 나온 다음날에도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했던 인터뷰를 봤다.
옛날 인터뷰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드라마 <미생>을 즐겨본다. 나도 회사생활을 몇 년 했었는데,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창작의 고통이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와 닿지 않는다. 회사를 다녀보지도 않고 저런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가 안 된다. 나는 2000년대 초반 IT벤처 회사에 다녔었고, 유명 포털에서 커뮤니티 관리도 했었는데, 정말 직장생활이 힘들더라.
아무렴, 보통의 존재들에게 ‘연애’만큼 흥미로운 주제가 있을까. 도란도란 조곤조곤 나누던 대화의 장에 어느덧 연애가 개입하면서 좀 더 활기를 띠었다. 연애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존재에게 가장 어렵고 그럼에도 가장 잘 하고 싶은 무엇. 연애, 그 시시콜콜함이 삶의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한다. 각자 가진 연애의 추억과 기억을 꺼내고 고민거리를 나눈다. 그러면서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는 질문이 있다. 한 독자가 이석원에게 물었다. (사랑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질문, 이석원은 그건 정작 자신이 묻고 싶은 질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손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각자의 생에서는 처음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에게 삶은 서툰 무엇이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 하는, 처음 살아보는 것이어서. 연애라고 다르지 않다. 그 서툶을 극복하고 싶은 것은 보통의 존재에게 당연한 것이리라.
“더 이상 서로를 봐도 가슴이 뛰지 않고 키스는 짜릿하지 않을 때, 잡은 손은 무디어 별 느낌이 없을 때 그것이 왜 절망이 되지 않는지, 어떻게 그럼에도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다. 그럴 때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은 무엇인지.”(17쪽)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결혼도 어쩔 수 없이 했다. 결혼 생활이 힘들 거라고 알고 했는데, 정작 결혼 생활하면서는 오히려 괜찮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는 것도 있었다. 주변에서 결혼을 해야 할 지 말아야할지 고민한다면 나는 하라고 말한다. 사람이 100살까지 사는데, 한 사람과 ‘백년해로’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본다. 결혼은 제도일 뿐이고, 한 사람과 그렇게 사는 것은 인간 본성에 위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기 싫고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는 거지. 결혼이든 이혼이든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나는 여태껏 몇 명의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왔나. 그 말을 해주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며 지금은 또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왜 어른들은 일생에 여러 번의 사랑이 있을 거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나.”(144쪽)
지금 연애는 하고 있나?
하고 싶다(웃음).
방송활동은 안 하나?
방송은 고민이다. 원래 방송을 싫어한다. 방송국 가는 것도 싫고, 카메라도 싫은데, 항상 고민되는 것이 대중에게 알려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고민에 시달린다. 멤버들과 방송에 못 나가는 건 나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해서 참 어렵다. 요즘은 특히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TV 영향력이 더 커졌다. 음악 하는 사람들도 TV에 안 나오면 안 되는 상황이고. 방송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지만, 항상 고민이다.
5주년 파티가 그렇게 무르익는 가운데 이석원은 다음 책이 내년 1월이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연애 이야기라고 했다. 어떤 연애 이야기든, 이석원의 필터를 거치고 나온 연애라면 기대해봄직하다. 그것이 아프거나 슬프거나 힘들지라도, 그것 또한 사랑의 필수 요소이기에.
“그러나 종말과 상처에 대한 이 모든 확실하고 불안하며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아랑곳없이 피어납니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어디라도 날아가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암벽 틈이나 낭떠러지 위에서까지 얼마든지 꽃을 피우듯, 사랑은 그렇게 어디서든 피어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일단 시작되고 나면 누구든 바로 모든 사랑의 단계 중에서 가장 황홀하고 아름다운 ‘처음’의 순간을 피할 수는 없게 되죠.”(82쪽)
선물 같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보통의 존재』 5주년 파티에 참석한 독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한 가득 번졌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작가를 만난 기쁨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5년 동안 『보통의 존재』를 통해 받았던 삶의 위로를 떠올릴 수 있었기에, 그 위로를 건네준 작가를 직접 만났기에 독자들의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을 것이다. 보통의 존재들에게 좋은 추억이 된 『보통의 존재』 5주년 파티는 그렇게 접혔다.
보통의 존재이석원 저 | 달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일상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적은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들 자연과 우주 속에서, 신 앞에서는 미약하고 보통의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보통의 존재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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