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 “죽음을 기억하라”
2014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가 김기창 노인의 고독사가 현재 한국에 던지는 화두
2014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모나코』는 노인의 고독사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노인이 삶을 마쳐가는 과정이 냉소적 유머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독자에게 던지는 주제가 묵직한 소설이다.
이문열, 정미경 등을 배출해온 오늘의 작가상이 2014년에 선택한 작품은 『모나코』이다. 노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1위라는 풍요로운 나라, 모나코. 제목 『모나코』는 반어적 의미를 담았다. 모나코와 달리 노인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노인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복지가 부실한 한국에서 노년을 유복하게 보내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상식이다.
물질적인 빈곤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관계가 단절됐다. 임종 당시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시신이 방치되는 것을 뜻하는 고독사는 사회적 문제다. 특히 노인의 고독사가 심각하다. 『모나코』의 주인공 노인이 그렇다. 노인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살고, 자식도 있지만 그의 고독사를 막지 못했다. 심지어 집안일을 봐주는 덕, 미묘한 이성관계였던 진과 같은 이웃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너도 진이 마음에 들었던 거냐?”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거 하나가 아버지랑 여자 취향이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둘째 며느리 욕을 하게 될 줄은 몰랐네.”
“그만두세요.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그 남자 아들이 둘이에요. 다섯 살, 일곱 살.”
“아들만 둘이라…… 신이 나보단 그 남자를 덜 미워했나 보군.”
“저는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내 덕에 사장 직함도 달고 있잖아. “
-『모나코』p. 170
김기창 소설가와 인터뷰를 준비하며 우려했던 게 있다. 소설 속 노인의 말투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과 소설가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지만, 작가가 혹시 노인과 비슷하면 인터뷰를 어떻게 하지, 하는 우려는 다행히도 그를 만나자마자 사라졌다. 소설 속 노인과 달리 김기창 작가는 차분하고 친절했다.
첫 작품으로 등단
처음 쓴 소설로 등단했다. 당시 소감은 어땠나?
걱정 반 기쁨 반이었다. 우선은 당연히 기뻤다. 멍하니 발길 가는 데로 두어 시간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왜 이런 작품에 상을 주나, 하는 반응이 나올까 봐 걱정도 되었다. 지금은 더 나은 작품으로 보여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담을 좀 덜었다. 소설을 쓸 때도 많이 걸었다. 그 당시 산책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어르신들이 있었는데 ‘저놈은 일 안 하고 뭐하지?’ 하는 시선을 느끼면 마음이 찜찜하기도 했지만 막힐 때마다 걷고 쓰고 다시 걸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 뿌듯함도 있다.
10대 혹은 20대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작가와는 달리 좀 늦게 시작했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있었나.
대학 때 영화를 좋아해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장편 시나리오를 2~3년 정도 썼다. 성과가 없었다. 실망도 없진 않았지만 시나리오 작업 말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로 생각하고 포기했다. 글과 관련된 일을 이것저것 하다 올해 초에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소설을 써 보자고 결심했다. 소설 쓰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어렴풋이 있었으나, 실행에 옮긴 것이다. 결심을 제대로 해서인지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아침에 일어나지더라. 그래서 아침에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쓴 첫 소설이 노인의 고독사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뤘다.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대학교에서의 전공과 관련이 있었을 것 같다.
없지는 않을 거다. 책을 볼 때 소설은 1/10이고 나머지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본다. 소설은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도 별로인 경우가 있어 신중하게 골라서 보거나 예전에 읽고 좋았던 소설을 여러 번 다시 읽지만, 다른 책들은 그런 확률이 소설보다는 적은 편이라 쉽게 쉽게 읽는 것 같다. 또 관심분야가 잡다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을 시나리오로 설명하자면, 메인 플롯이 사회적 문제라면 서브 플롯이 감정이나 관계다. 즉, 한 사람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메인 플롯이라면 노인과 진 그리고 덕의 관계와 그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서브 플롯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소설을 쓸 때 그런 계획을 짜고 한 것은 아니었다.
모나코는 현실의 극단에 있는 이상향
제목인 ‘모나코’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노인의 기대수명이 1위 국가인 곳이다. 노인에게 가장 풍요로운 나라다. 이런 풍요로움이 노인 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에게는 매혹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최근엔 공간이 사고를 좌우한다는 생각까지 한다. 비록 모나코를 잘 모르지만, 따뜻한 나라일 것 같고 여기서는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제목으로 택했다. 또 한 가지는, 소설 속 계절적 배경이 겨울이다. 제목과 내용이 대비되면 독자의 머리에도 강하게 남지 않을까, 하는 의도도 있었다.
주인공 노인의 말투가 상당히 괴팍하다. 직접 이야기를 해 보니 본인의 언어는 아닌 듯한데, 혹시 주변 사람 중에서 모델이 된 사람이 있나.
나랑 진짜 가까운 사람들은 이 소설의 노인과 내가 닮았다고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이런 면이 아예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말투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는 노인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냉소적이지 않다. 오랜 세월 타인과 관계가 단절된 채 산 노인이라면 말투가 까칠하리라는 생각으로 노인의 말투를 만들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노인은 노인이고, 나머지 인물도 진, 덕 이런 식으로 한 글자다.
작품 속 노인이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으로 다가가게 하고 싶었다. 죽음을 코 앞에 두거나, 자신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이름 없는 노인’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 글자 이름은 실제로 내가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을 부를 때 보통 한 글자만 사용해서 그렇게 한 면도 있고, 또 다른 소설들에 등장하는 특이한 이름들에 약간은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을 피하고자 했다. 등장인물 중 진과 덕에게만 이름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노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죽음을 장황하게 묘사하고 싶진 않아
어떻게 보면 가장 극적일 수 있는 노인의 죽음을 짧고 건조하게 묘사했다.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이다. 캐리어 할머니, 학생들, 인부, 신문 보급소 사장. 이렇게 했던 이유는 애초의 의도가 노인의 죽음을 중간 부분에 넣고 노인이 죽은 뒤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죽음이 주변인물들에 어떠 식으로든 영향을 끼침을 보여주고 했다. 쓰다 보니, 노인을 죽이지 않은 채로 끝까지 갔는데, 계획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음... 죽음을 장황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다 죽는 것이고, 한번 오는 순간이다. 짧게 하는 게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두고 블랙 코미디라는 평도 있던데.
얼마 전에 리마터링된 <올드보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냉소적인 유머를 잘 담고 있었다. 의식한 것은 아닌데 지금 생각하면 『모나코』도 여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닐 때 영화를 많이 봤고, 그중에서 박찬욱 감독을 좋아했다. 퍼슨웹에서 일할 때도 인터뷰를 두 번이나 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소설을 쓰는 당시에는 블랙 코미디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블랙 코미디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죽음에 관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2~3년 전부터 죽음을 의식했다. 내 죽음이 임박했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철학적, 학문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 궁금했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후지와라 신야의 『메멘토 모리』가 인상 깊었다. 후지와라 신야는 “진정한 죽음이 보이지 않으면 진정한 삶이 보이지 않고 죽음은 삶의 저울, 죽음은 삶의 알리바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말하는데, 옳은 말 같다. 죽음을 인식하고 사는 게 좋은 삶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죽음을 고민하는 사람 중에서는 유언장을 미리 쓰기도 하던데, 혹시 유언장 써 봤나.
유언장은 생각 안 해 봤다. 비명으로 뭘 남길까는 고민해봤다.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알았지”는 굉장히 유명하지 않나. 아직 구체적으로는 떠오르는 게 없는데, 쇼처럼 죽음을 웃음으로 승화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좋아하는 유언은 있다. 전기 의자에 사형당하는 사람의 유언이었는데 “지금 이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였다. 야수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 명백하고, 또 야수다운 유언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삶을 한 문장으로 드러낼 수 있는, 그런 유언을 남겼으면 싶다.
낚시와 NC 다이노스를 좋아하는 소설가
낚시 TV 보기를 즐긴다고 하던데.
아버지 따라 어릴 때 낚시하러 많이 다닌 영향도 있다. 낚시 TV가 여행 TV와 비슷하다. 물이 흐르고 산이 있고 바다가 있는 곳에서 낚시를 한다. 경치가 좋고 조용하다. 화면이 굉장히 정적이다. TV를 보면서도 사색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전에 낚시 TV를 즐겨 본다.
기존에 했던 인터뷰에서 아내를 향한 애정이 느껴지더라. 경상도 남자라면 이런 쪽으로 약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경상남도 마산 출신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좋은 남편은 아니다. 로맨틱하지 못하다. 되게 미안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작품 쓰는 데 아내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쓰는 게 소설 맞냐?” “이거 재미 있냐?” 등 이런 식으로 쓰면서 도움 많이 받았다. 그래서 아내 이야기는 계속 하게 되더라.
프로야구는 좋아하나. NC, 롯데 중 어디를 응원하나.
원래는 롯데 팬이었다. 마음에 안 들면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사는 세상인데 나는 왜 롯데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 NC가 생기면서 게임에서 포탈 이동하듯, 그대로 가버렸다. 초기까지만 해도 롯데와 NC가 게임하면 흔들렸다. 올해 NC가 잘하기 시작하면서 완전 넘어왔다. 롯데가 요즘 시끄럽던데,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수습을 잘하면 반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첫 작품이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보다 이런 장면이 나왔다. 산골마을에 모여사는 작은 마을 공동체가 있는데, 그곳의 시인 한 분이 “삶이 먼저고 시는 다음”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나도 일단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게 우선일 것 같다. 소설은 그 다음 결과물로 필요하다 생각이 든다. 내용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희극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 주성치 영화를 좋아한다. 주성치 발차기가 보기에는 성의 없고 어설프지만, 그게 주성치가 의도한 바다. 엄청난 노력으로 탄생한 발차기이고. 마찬가지로 노력과 의도와 연습의 결과로써 가벼움, 이런 작품을 써 보고 싶다.
모나코김기창 저 | 민음사
『모나코』는 좋은 집에 돈도 많고 취향도 고급인 할아버지, 즉 남들 눈에는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골드 실버’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풍요로운 삶의 조건을 전부 누리고 있지만 정작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은 가사도우미‘덕’과 아내 같고 친구 같고 딸 같은 사이로 지내던 중 이웃의 젊은 미혼모 ‘진’을 좋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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