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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녀석들> 일종의 매력으로써의 악
정의와 불의 그리고 처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죄를 저지른 것은 인간이다. 아무리 나쁜 녀석들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들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나쁜 녀석인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이 드라마는 그 나쁜 녀석들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 것 같다. 하지만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사회에서만 그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마음 한 켠으로 씁쓸해지는 건 부정할 수는 없다.
빠짐없이 챙겨보긴 하지만 배트맨을 제외하고 미국식 히어로물을 그다지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드라마도 로맨틱하거나 위트가 넘치는 작품보다 범죄수사물을 좋아한다. <크리미널 마인드>, <덱스터>처럼 영상이 좀 잔인한 감이 있어도 연쇄살인마를 소재로 다루거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대놓고 주인공인 드라마에 열광한다.
수사물이 특화되어 있는 일본의 경우, 분기별로 몇 개씩 수사물이 나올 정도이므로 꼼꼼하게 어떤 작품들이 있나 살펴보고 취향에 맞는 작품들을 골라보는 편이다. 코믹한 터치의 수사물이나 탐정물도 많지만 제법 하드보일드하고 파격적인 소재의 작품을 고르는 편이다. 이를테면 범죄와 악을 맞서 싸우는 경찰 조직 내에 ‘정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악을 처단하는 소재들.
실정법으로는 제대로 벌할 수 없는 악인을 처단하는 것은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기 앞서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주는 요소가 분명하다. 특히 명백하게 드러난 것이라곤 ‘의혹’뿐인 검찰 측의 세월호 진상규명 발표를 보고 있노라면 정의를 실행하는 집단 자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의를 이야기하기보단 납득하기 힘든 ‘악’을 제대로 제거하는 일에 대리만족과 쾌감을 느끼고 싶어진다.
OCN의 <나쁜녀석들>은 정직 중인 형사 오구탁(김상중 분)이 조직폭력배 행동대장 박웅철(마동석 분)과 빈틈없는 청부살인업자 정태수(조동혁 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이정문(박해진 분)과 함께 악질 범죄자를 소탕하기 위해 뭉친 이야기이다.
기존의 한국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방식의 정의 구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인 덱스터가 법망을 피해간 범죄자들을 골라 연쇄살인한다는 설정은 이미 2006년에 선보였고, 경찰조직 내에 은밀한 조직이 죄를 짓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은 범죄자를 따로 수감한다는 <조커, 용서받지 못할 수사관> 역시 2010년 작이다.
<나쁜녀석들>의 시작이 경찰조직 내의 무력감, 악인을 잡았으나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에서 출발하는 것도 아니다. 경찰청장의 아들이 잠복수사 중 범인에게 살해되고 여전히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를 붙잡기 위해 소위 미친 개라고 불리는 오구탁을 풀어놓은 것이다.
악을 더 큰 악으로 잡아낸다는 건 흥미롭지만 애초에 ‘정의’의 문제에 있어서 고민하게 만들기보다는 충분한 수단을 가진 권력이 복수를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 설정인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오구탁이 복귀를 결정한 것도 과거의 사건, 딸로 추정되는 인물을 살해한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이 내제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쁜녀석들>이 방송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 것은 모치쓰키 미키야의 원작 만화를 영화로 만든 <와일드 세븐>이었다. 와일드 세븐은 체포나 재판 없이 흉악범을 즉각 처형하는 권한을 부여 받은 전과자로 구성된 오토바이를 탄 7인의 초법규 경찰조직이다. 물론 와일브 세븐의 경우 맞서 싸우던 각종 흉악 범죄가 사회불안을 조장하여 막대한 돈을 챙기려는 국가정보기관의 음모였으며 정의를 수호해야 할 집단의 비리와 맞서 싸우는 범죄자라는 딜레마적인 설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이 드라마와 스케일이나 방향이 다르다. 아마도 <나쁜녀석들>은 회를 거듭하며 오구탁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던 범죄자들의 사연을 녹여내며 다크히어로에 걸맞은 매력을 부여하는 식으로 진행될 거라 예상된다.
출연 배우들을 누구 하나 흠잡을 것 없이 캐릭터에 동화된 듯 멋진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건 박해진이 연기하는 이정문이었다. (박해진이 해사하게 잘생겨서인 이유가 맞다.) 첫 방송 이후 박해진의 섬뜩한 연기는 호평일색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한없이 다정다감하고 맹하게 보일 정도로 헌신적인 모습을 연기했던 <별에서 온 그대> 휘경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얼굴이지만 <내 딸 서영이>이나 <닥터 이방인>에서 보여준 싸늘하고 냉철한 표정 연기는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는데 충분할 거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어 주었다.
박해진의 연기에 비해 아쉬운 건 캐릭터의 전형성이었다. 다른 캐릭터들 역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진 능력, 힘이나 기술은 웬만한 슈퍼히어로 급인지라 최연소 멘사 회원, 최연소 박사 이러는 게 이상할 건 없지만 그 설정 자체가 사이코패스라는 캐릭터에 엄청난 매력을 부여한다는 느낌이었다. 사이코패스의 이상화라고 해야 할까나.
사이코패스라고 놀랍도록 지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일반 우발적인 범죄자들에 비해 계획성이나 치밀성이 조금 낫다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알려진 이후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냉철하게 광적이면 무조건 사이코패스라고 가져다 붙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정문은 그렇게 대단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프로파일러도 아닌 형사에게 행동패턴이 다 읽히고 붙잡힌다. 자신에게 총이 겨누어졌을 때 자신이 살해하려던 여자를 보호하려고 감싸 안다가 총에 맞은 지점도 사이코패스라고 하기엔 의문가는 지점이 있었다. 살인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점에서 어떤 살인 사건을 계기로 해리성 인격장애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그쪽이 좀더 신빙성 있는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악의 악을 처단한다는 설정은 정의가 바로 서 있는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악을 행했을 때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그게 누구든 그에 맞는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면, 비단 범죄의 소탕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에서 정의라는 것이 구현된다면 이런 설정의 드라마는 뜨악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며 대리만족과 쾌감을 얻을 수밖에 없다. 악이 행하는 악의 처벌에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일본드라마 <HERO 2>애서 “우리는 검사잖아요. 정의를 지키는”이라는 당연한 대사에 감동받아 눈물이 뜨겁게 흘려 내렸을 때와 비슷한 감정으로 이 사회에 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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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며 제법 깊은 내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현명해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걸 수줍어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재생능력으로 사랑할 때마다 소녀의 마음이 되곤 한다. 누군가의 장점을 잘 발견해내고 쉽게 두근거린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으며,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