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 “질문하라, 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면”
『고전은 나의 힘』 김경집
지난 9월 20일, 송파글마루도서관에서 『고전은 나의 힘』 출간 기념으로 『인문학이 밥이다』의 저자 김경집 교수가 ‘인문 고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만났다. 이날 김 교수는 고전의 의미와 우리가 고전을 통해 얻어야 할 것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에 대해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칭송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말했다. 진짜 우리는 고전을 읽지 않을까. 김 교수는 독자들에게 『흥부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사실 이 책을 잘 모른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흥부전』은 요약본(다이제스트판)으로 원본이 담고 있는 내용을 잘 모른다는 것. 김 교수는 흥부가 박을 탈 때마다 나오는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했다.
첫째 박에서는 풀뿌리, 산삼, 오가피 등이 나왔다. 즉, 무병장수다. 둘째 박에서는 책이 나온다. 입신양명하라는 얘기로 명예를 뜻한다. 셋째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은보화가 나온다. 부귀영화다. 그 다음 박도 있었다. 흥부의 아내는 이 박은 타지 않기를 바랐다. 넷째 박을 탔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나왔다. 쾌락을 상징한다. 이런 것들은 어떤 의미일까.
“조선 후기 행복의 순서다. 『흥부전』에서 박의 순서로 표상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만 기억하나. 흥부가 부자가 됐다! 지금 우리 행복의 우선순위에 돈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돈만 있으면 네 가지가 다 되니까.”
우리가 고전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함을 드러낸 일화다. 그렇다면 고전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베스트셀러 1000권보다 고전 1권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한다. 나와 세상의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대가적 시선’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베스트셀러는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것이나, 고전은 이것보다 한 단계 더 위라는 것. 그것도 대가적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김 교수는 고전을 높게 평가했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을 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다. 대가의 책을 읽는 것은 대가와 대화하는 것이고, 대가의 시선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한 턱을 넘으면 쉽고 가볍게 털고 나갈 수 있다.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그것이 요즘 인문학 열풍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심하게 말하면 인문학을 강연하는 사람조차 이것을 왜 하는지 모른다. 그러면 오래가지 못한다. 지자체, 교육기관 등도 책임이 있다. 고작해야 프로그램을 쇼핑하는 것에 그친다.”
1997년 체제를 반성하라!
김 교수는 인문학과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1997년 체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도 언급했다. 이 드라마는 40대를 겨냥해 만들었다는 것. 김 교수가 보는 지금 40대는 행복한 세대다. 배고픔을 경험하지 않은 첫 세대이며, 교복자율화 등 자유를 누린 첫 세대이자, 내 즐거움을 누리면 되는 세대였다.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부터다. 이후의 삶은 전쟁 같은 삶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1997년은 중요한 변곡점이다. 1997년을 기점으로 분명하게 나뉠 수 있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나왔다. 회사에서 잘렸다는 슬픔과 함께 창업해서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마음도 상존했다. 그런 마음을 놓치지 않고 자기 계발서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온갖 실용과 성공에 대한 판타지가 판을 쳤다. 김 교수는 묻는다. 자기 계발서를 봐서 살림살이 나아졌나?
“나아질 수가 없다. 그것대로 하면 숨 가빠서 죽는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다 치자. 극소수다. 이 위기가 없었다면 그렇게 악을 안 써도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았다. 뒤로 밀리고 처진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였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이상한 방식이 굳어졌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IMF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3년 후 IMF 졸업시킨 것은 우리였다. 세금을 많이 내고 피땀 흘려 일한 결과였다.”
그러나 공은 다른 쪽에서 따먹었다. 달리기만 했다. 위로가 필요했다. 이때 나온 것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격려하기 위한 책이었음에도, 그렇게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읽어보니 어땠나? 이런 반응도 있었다. 네가 아프면 네가 청춘하세요! 어떤 위로도, 구조적인 위로도 아니었다. 위로를 받아야 함은 아프다는 것이다. 고쳐야 한다. 그러니 힐링으로 갔다. 사회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힐링도 ‘셀프 힐링’이 됐다.”
사회는 모든 것을 외면하기만 했다. 김 교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잘 보자고 강조했다. 말년 병장이 총을 쏘고 사고를 치고, 상병이 휴가를 나와서 목숨을 끊는다. 한두 건이 아니다. 김 교수의 진단은 절망이다. 앞선 선배들이 누린 것을 누리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얼마나 쓰리고 힘든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대학=낭만’이라는 방정식은 전혀 생뚱맞은 것이었다. 토익, 성적, 스펙이 전부다. 연애할 희망도 없고, 결혼도 언감생심이다. 체념을 학습했을 뿐이다. 절망은 나락으로 더 깊어진다.
“과거 군대는 지금보다 더 폭력이 난무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왜? 제대만 하면 되니까. 지금 청년들은 아니다. 군대를 제대한들 다음 희망이 없으니 포기한다. 단순하게 군대 문제가 아니다. 진단을 군대 문제로 하니 처방도 엉뚱하게 한다. 우리나라 직장은 가정파괴범이다. 다 버리고 직장에만 충실했다. 금전적 보상으로 이를 때웠다. 무엇을 상실하고 사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다. 지금 아이들은 태어나면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지만 나이 들면서 가난해진다. 내 차 아닌 아버지 차, 내 집 아닌 어머니 집이다. 내 집, 내 차를 가지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만 내 아이의 삶을 재단한다.”
김 교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진단을 내놨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많다. 그럼에도 노동 효율은 대단히 낮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저녁이 있는 삶’은 여전히 없다고 지적했다. 시스템을 바꿔야 함에도 아직도 그 방식은 전근대적이다. 노동자만 쥐어짤 뿐이다.
새로운 인문학을 정의하라
산업화 시대, 인문학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다. 주어진 지시에 맞춰 살고, 거기에 맞는 먹이도 주어졌다. 수직적 사고와 탑다운 방식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됐다. 창의력, 창조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더 이상 그래선 안 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예전과 같은 벼락출세와 벼락부자도 없고,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고성장은 과거일 뿐. 나는 누군가, 여긴 또 어딘가. 속도와 효율, 고성장의 시대엔 내가 누군지 인생이 무엇인지 따질 게재가 없었다. 물질적 보상이 채워졌다. 그러나 달라졌다. 고민이 본격화됐다. 생의 다운사이징을 시작하면서 질과 의미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 인식이 인문학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 교수가 보기에 여전히 허송세월하고 있는 중이다. 인문학을 한다곤 하지만, 프로그램 쇼핑에 불과하고, 그것에 일조한 것이 인문학자다.
“지금의 인문학은 ‘문사철’이 아니다. 그것은 19세기의 정의였다. 사람에 관련된 모든 것이 인문학이다. 다시 초등학교로 돌아가면 어떤 과목을 제일 열심히 하겠나. 국영수? 나는 체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세를 넘긴 것은 20세기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80~100세 시대를 말한다. 평균적으로 20년가량 병치레를 하게 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체육이다. 직업도 네댓 번 바뀔 텐데, 여전히 초기 20년만 보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걸도록 한다. 복지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재교육 시스템이다. 공적인 재교육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게 없으니 첫 번째 20년이 끝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김 교수에 의하면, 인문학의 최종 주제는 인간이다. 주체도 인간이고, 목적도 인간이고, 대상도 인간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것이 없는 채로 살았다. 이것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내 삶의 주체성, 그것이 인문 정신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천재가 끌고 갔던 시대가 산업화 시대였다. 지금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시 제대로 된 진단을 해야 한다. 1997년 이후 지금까지 비어 있는 곳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이 고전이다. 대가적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살아온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 그 간격을 메우는 것은 그만한 깊이와 넓이를 갖춘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고전이다.”
그렇다면 고전을 볼 때 어떻게 봐야할까. 김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두 가지 시선이다. 하나는, 지금 내 입장에서 고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왜 그 말을 했는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고전의 매력이다. 시공간을 넘는다. 나머지 하나는 질문이다. 고전을 읽을 때 반드시 질문을 해야 한다. 질문을 하는 행위 자체가 주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것.
“대가의 시선으로 삶의 보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에 갇히지 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우리의 삶, 아이들의 삶이 바뀔 수 있다. 열 살 무렵의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혀라. 부모가 먼저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오는 것이 ‘언어 사춘기’다. 열 살 무렵에 언어를 놓치면 개념 형성이 안 된다. 언어를 형성하도록 가장 돕는 것이 책이다. 책을 많이 읽도록 하면 학습효과가 확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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