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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익 연출가 “삶은 끝끝내 ‘버텨주고 참고’하는 이야기”

애환과 정화의 선율들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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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는 상실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질적이면서도 오히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보편성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TV 드라마나 영화가 충실히 해줄 수도 있지만 <봄날이 간다>와 같은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극성으로 관객이 체험하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지는 중요한 지점같아 보였습니다

문화예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김경주가 매월 공연 예술인을 만나 여러분께 소개해드립니다.

매달 12일 연재.

 

제 3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무대미술상, 남자연기상 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연극 <봄날은 간다> 가 세번째 공연으로 찾아왔다. <봄날은 간다> 초연 당시 연출을 맡았던 배우 겸 연출가 김경익 연출가가 다시 한 번 연출을 맡았다. 극단 진일보의 대표이기도 한 김경익 연출은 <맥베스 놀이>,  <아리랑 랩소디> 와 같은 연극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 받으며 작품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연극 <봄날은 간다> 는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복남매의 사랑, 가족간의 갈등, 화해를 그린 서정성 짙은 작품이다. 최창근 연출가의 초연 때와 다른 몇 가지 장치를 추가하여,  더 깊은 메시지와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한편의 시(時)로 다가온 봄날 같은 사랑’이라는 부제아래  6월16일부터 7월20일까지 예술공간 서울에서 공연된다.

 

김경주-김경익


김경주 : <봄날은 간다>가 세 번째 공연을 맞았습니다. 김경익 연출님께서는 초연 때 연출을 맡기도 하셨죠. 그 과정 속에서 달라진 점이나 끝까지 가지고 가고 싶으셨던 지점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김경익 : <봄날은 간다>는 최창근 작가의 작품이 서정성이 잘 드러난 좋은 작품인데요. 엄마 잔소리도 5분 들으면 싫은데, 육화된 배우가 한 바닥 ‘작품한 편’을 끌고 간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번엔 그래서 열일곱 조각으로 쪼개어 다시 조립해 보았어요. 과거는 과거대로 묶고, 과거의 에피소드를 드라마로 만들었지요. 원작은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끝나는 건데. 그게 현실과 섞이도록 열일곱 개로 쪼개서 큐빅 맞추듯이 다시 맞추어 본겁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처럼 벌어졌다가 다시 현재가 되는 구조로 작품을 분할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경주: 초연때와의 연출적 변별력이라고 보면 될까요?

 

김경익: 2001년도 초연 당시에는 서른 살 초반의 배우, 스태프들이 모여서 공연을 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엔 아기라든지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나 체험보다는 10년 이상 연극을 하며 호흡을 맞춰온 앙상블로 연극을 했다면, 중간에 두 번째 작품은 최 작가의 원작 그대로 했었고, 지금은 무대에서 20년 이상 뛰어 온 배우들 두 명이 붙고 정석원이라는 아주 괜찮은 친구가 따라 붙으면서 작품의 심도가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죠. 똑같은 텍스트이지만 배우가 어떻게 단어를 물고 늘어지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게 연극의 묘미이니까요. (웃음)

 

김경주: 물리적인 시간으로서도 10년이 넘도록 흘러온 거군요.
 
김경익: 네. 이 작품이 2001년도에 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무대 미술상, 작품상, 남자 연기상을 받았어요. 그 작은 소극장에서 그러한 성과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거든요(웃음) . 한 달 동안 대학로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 60개잖아요. 그만큼 그 당시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 작품이었어요. 그것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 봄날은 간다를 해오며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볼 때 한가지는 분명했어요. 저는 그걸 액츄얼리티(Actuality)라고 하는데요. 뻔한 사랑이야기라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뻔하지 않게 풀어 관객에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액츄얼리티를 배우들로부터 체화되어서 나올 때 까지 가보는거, 연출은 Acting을 Reality로 바뀌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기인 줄 알면서도 실감이 날 때까지 연기를 몰아붙여 봤다는 게 재미였던 것 같아요.

 

김경익

 

시간이 충돌하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든다

 

김경주 : 저도 최창근작가가 연출할 때 한번 보고 이번에 <봄날은 간다> 두 번째 공연을 봤는데요. 감각이 무기로 통하는 시대?에 서정성을 공격적인 포인트로 내세우기에 올드하다는 평이랄지 어떤 위험 수위를 의식할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서정성이 좋았지만요. 그런 부분에서 현대의 관객과 어떻게 만나고 싶었는지, 혹은 그런 서정적인 부분을 통해서 특별히 소통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경익 : 저는 최창근 작가의 김소월을 연상하는 듯한 서정성 있는 언어들이 드라마에서 살아나려고 하면, 거기에 상응하는 피눈물이 흘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상처와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아픔을 만들어주어야 이 말이 살아있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몇 가지 장치를 더 만들었죠.

 

예를 들어서 최 작가의 원작은 두 명이 계속 가면서 얘기를 하고 드라마를 마무리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극중에서 과정 중에 아내가 죽는 걸로 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를 더 확실하게 했어요. 엄마의 남편 역시도 이복 남남이었는데, 엄마의 남편이 친엄마를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와서 그냥 집에서 죽은 걸로요. 그리고 딸 역시도 엄마의 딸이 아닌 걸로 설정했어요. 각자 다 다른 사람이 만나서 지지고 볶고 반대하고 싸우다가 끝내는 가족임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만든 거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부모님도 50년 전에는 남남이었잖아요. 다른 시간들이 충돌하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든 거죠.

 

김경주 : “시간의 충돌 속에서 가정의 울타리가 생겨난다” 는 말씀은 의미심장하고 상당히 중요한 메타포를 던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대중들이 선호하는 드라마들의 동력을 보면 공동의 적을 만나면서 친해지는 방식, 즉 적을 공유하고 그 적을 파괴시키며 친화력이 형성되는 긴장성, 그러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나 잔인성을 건드리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항목처럼 여기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와는 반대로 <봄날은 간다>는 상실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본질적이면서도 오히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보편성의 어딘가를 건드리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TV 드라마나 영화가 충실히 해줄 수도 있지만 <봄날이 간다>와 같은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극성으로 관객이 체험하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지는 중요한 지점같아 보였습니다.


김경익 : 편집되지 않은 생인간과 인간이 부딪힐 때의 진짜 정서를 볼 때 느낌들, 그걸 아까 Actuality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작품 뒷부분에 보면, 눙쳐놓고 얘기 안 하다가 훅 눌려 나오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것을 라이브로 보여줄 수 있는 힘, ‘내 눈 앞에 있는 인간이 정말 속상해하는구나’ 라고 전할 수 있는 게 드라마나 영화를 넘어서는 연극의 극성인 것 같아요.
 
김경주 : 네. 사실 연극은 상당히 관객이 능동적인 참여를 해야 체험할 수 있는 공연 예술이잖아요. 영화는 보다 마음에 안 들면 나갈 수도 있고 놓친 부분은 돌려서 볼 수도 있지만, 연극은 올 때마다 다르고 체험할 때마다 다르잖아요. 상당히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만 연출과 배우들이 주려는 걸 다 가져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연극은 관객과 배우 양방이 만들어가는 측면이 있죠. 그런 지점들이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매력이고, 우리가 연극을 봐야하는 중요한 가치인데요. 그런 리얼리티적인 체험의 부분에서도 <봄날은 간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익 : 그렇죠. 그래서 객석도 일부러 줄였어요. 110석 이상 나올 수 있는 공간인데, 편안하게 보실 수 있도록 60석으로 줄였고요. 무대 앞에 조그맣게 잔디석도 만들어놨어요. 무대 앞까지 객석을 확장시켜서 잔디를 깔아놓은 거예요. 제일 좋은 자리죠(웃음). 현장성이 제일 좋은 자리니까, 제가 관객이라도 그 자리에 앉을 것 같아요(웃음). 관객이 많이 들도록 하는 것보다 찾아 온 관객이 굉장히 친밀한 거리에서 움찔거리는 인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김경주 : 네. 앞 자리에 계신 관객들이 가장 많이 글썽거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웃음) 배우 분들이 작품을 대하는 느낌은 어땠을지도 궁금합니다.

 

김경익 : 길해연 선배님은 수상경력이 반 페이지가 넘어가는 분이시니까요, 이미 연극계에서는 베테랑이죠. 저하고는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죠. 작업은 같이 안 했어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본 보내드리는 순간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김지성 배우도 극단 ‘여행자’에서 10여 년 동안 있었고, 저도 연희단 거리패에서 10여 년 동안 있었는데요. 한국 땅에서 10년 이상씩 한 분야를 지킨 사람들은 고통에 대한 내성이 있잖아요. 정석원 배우와 저는 <사물의 비밀>이라는 영화를 같이 찍었어요. 그때 ‘연기에 대해서 갈증이 있는 배우구나’ 싶었죠. 형 동생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전화를 해서 연기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일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작년에 <아리랑 랩소디>라는 공연을 보고 ‘저도 연극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대본을 보내줬는데 2시간 만에 울면서 전화가 하면서 ‘하겠습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김경익

 

배우는 ‘Actor’,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

 

김경주 : 일단 캐스팅 조합은 최고입니다(웃음).

 

김경익 : ‘이런 배우들로도 못 만들면 난 바보다’ 생각했죠(웃음). 그런데 막상 작업을 시작하면 힘든 부분이 생겨납니다. 걸어왔던 시간들이 다르니까요. 정석원 배우는 <봄날은 간다>가 연극 데뷔작인데, 상대 배우인 김지성 배우가 데뷔한 지 20년이나 되었고, 길해연 선배는 33년 되었잖아요. 그래서 한 일주일 동안은 서로 걱정했어요. 그런데 정석원 배우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그 날 그날, 자신이 했던 걸 다시 피드백 하는 거예요. 이런 배우는 처음 봤어요. 그래서 다음날 바뀐 모습으로 돌아 오는 거죠. 배우의 노력이 어디든 존재하지만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고, 구체적으로 노력한다는 게 무서운 차이거든요. 연기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걸 풀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지금도 매일 자기 동선을 다시 밟고 체크할 부분은 다시 확인해요. 감동했어요.(웃음)


아마도 정석원 배우의 그 미련스러움이 이 작품과 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을 원하고 자신을 더 빛나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자신과 거리가 있는 캐릭터를 선택한 거거든요. 연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라는 원칙을 선택한 거죠. 자신을 빛나게 해줄 작품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배우로서 빛이 나는 거죠. 그 우직한 ‘참음’이나 ‘견딤’이 아픈 아내를 데리고 엄마의 묘소에 가는 남편의 캐릭터의 진정성과 맞는 거예요. 봄날은 간다는 ‘버텨주고, 참고.’를 반복하는 이야기니까요.

 

김경주: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삶을 ‘버텨주고 참고’, 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깊은 공감이 갑니다. 그런점에서 연출 입장에서 배우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셨을 거 같아요.

 

김경익 : 배우는 Speaker 도 아니고 Feeler 도 아닌 Actor 잖아요. ‘나는 그렇게 느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가 아니라 ‘난 그래서 어떤 행동을 취해요’라는 사람이거든요. 무서운 한 끝 차이인데요. 행동을 한다는 건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거거든요. 그냥 움직인다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해야 될지를 알고, 그것이 쉽지 않음에도 기꺼이 그리로 가거든요. 자신은(그것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기꺼이 그 세계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는 떨림이 있는 사람이 중요해요. 활자로 되어 있는 세계를 체화시킨다는 건, 아무리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라도 낯선 시간이거든요. 메소드 같은 방법들은 해보면 다 아는 테크닉이니까.

 
김경주 ; 연극적 작업이란 말씀하신것처럼 배우가 행동(Acting)을 위해서는 (태도)Why가 필요하잖아요. 만드는 입장에선 태도가 성립되어야 행동하니까 ‘연극적 자연’이 성립하려면 당연한 순리구요. 김경익 연출님께서는 배우들에게 어떤 태도를 만들어주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태도를 만들도록 하시나요?

 

김경익 : 저는 후자예요. 그리고 상대에 따라 달라져요. 제가 배웠던 건 전자의 방식인데, 저는 그걸로는 완성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 후자를 택할 경우에는 굉장히 공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끝내 완성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움직였던 건 어떤 순간이라도 스스로 찾아 들어갈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동선을 잡는데 그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찾아냈으니까 그 사람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 그건 연출의 선택이거든요. 그걸 드러내지 않으면 배우는 자기가 찾은 행동이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라도 해내요. 그래서 살아있는 약속이 돼요. 그런데 급하다고 미리 줘버리면 그것이 수행해야 되는 일이 되어버려서, 아무리 수행을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대부분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지만, 그것만 고집하지는 않아요. 처음 한 달까지는 무엇을 준비해 와도 괜찮지만 마지막에 판단할 때는 그들의 선택 이상의 것을 준비해 놓고 있어야죠. 대책 없이 그냥 보여 달라고 하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봐요. 그래서 양면을 다 가지고 접근합니다.

 

김경익

 

아파하는 건 곧 사랑한다는 것

 

김경주 : <봄날은 간다>가 구성적인 측면에서 퍼즐화되어 보이는것도 사건을 숨겨서 나중에 드러내겠다는 인과적 접근이라기 보다는 ‘드러나는 방식과 희미해지는 방식’을 위한 구성적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건 이 작품이 가지는 ‘숨겨진 시간’에 대한 비밀들을 고백으로 풀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겐 그 결이 시적으로 다가왔거든요. 이야기 되어지는 관람평에서도 ‘굉장히 시적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시적이라는 느낌이 어떻게 이 작품과 닿았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김경익 : 시적이라는 건 압축이겠죠. 압축이라는 건 하나의 말 속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는 거고요.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슬퍼도 또 다른 희망이 보이는 중의성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중의적이 되려고 하면 배우의 소리나 움직임도 결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렇게 공유하기가 어려웠어요. 소리 자체도 이중적인 소리가 나야 해요. 그런 걸 복성음이라고 하는데요. ‘좋아’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관객이 ‘정말 좋은 건가? 아니면 반어적으로 말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거죠. 실제로 그런 감정에서는 복성음이 나니까요. 그 정서까지 끌고 들어가는 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서정성이 살려면 피눈물을 흘려줘야 ‘이 아름다운 말이 얼마나 고통 속에서 나온 정제된 말인지’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피눈물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 어떻게 상처를 낼 것인가를 고민했죠.


김경주: 슬픔은 늘 아이러니를 품고 있으니까. 그 밑바닥에 깔린 슬픔을 드러내기 위해선 더욱 직설화법보다는 중의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을 의도하신 거군요.

 

김경익: 네.

 

김경주 : <봄날은 간다>를 보고 관객들이 꼭 하나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걸까요?

 

김경익 : 영어 성경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성경에 보면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 부분이 Long suffering 이라고 적혀있는 거예요. suffer 라는 동사는 위궤양처럼 구체적인 질병으로 오랫동안 아파하는 걸 의미해요. 그러니까 나 때문에 우리 엄마가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아파하고 속상해했다면, 날 사랑한 거예요.

 

마찬가지로 내가 연극을 위해서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고통 받았다면, 연극을 사랑한 거예요. 연기에 있어서 내가 이루고 싶은 모습을 위해서 오랫동안 아팠다면, 연기를 사랑한 거죠. 내가 좋아하는 걸 품에 안고 있는 게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관객들에게 던져주고 싶은 메시지는 ‘당신 지금 무엇 때문에 아파하고 있냐’는 거예요. 당신이 무엇 때문에 속상한지 생각해 보라는 거죠. 그게 당신이 사랑하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본질적인 싸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고통 받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오랫동안 아파하고 있는지, 그걸 남의 아픈 속살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랑하는 걸 끌어안고 아파하며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말이기도 해요.

 
<봄날은 간다>에는 음악을 두 결로 사용했는데요. 삶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의 아련함은 ‘봄날은 간다’의 변주로. 그리고 아픈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불려지는 노래와 엄마가 꼬마아이를 안고 병원도 못 가고 혼자 울 때 아픔을 달래주는 노래로는 ‘자장가’를 썼어요. 전자가 삶의 애환을 노래한다면 후자는 정화의 기능을 하는 거죠.

 

김경주 : 네. 정화와 애환의 기능으로서 음악성, 그 음악적 흐름안에서 <봄날은 간다>가 가지고 있는 여행의 중요한 메타포는 무엇일까요?

 

김경익 : <봄날은 간다>에서의 여정은 사실 제자리를 맴돌아요. 우리가 사는 하루도 그렇잖아요. 다른 하루 같지만 지나고 나면 거의 비슷한 하루였다는 걸 알 수 있죠.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여정이라는 건 스펙터클한 시야가 바뀌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느껴지는 내 생각, 감정의 깊이가 바뀌는 게 진짜 궤적이죠. 연출적으로는, 그것을 가시적으로 재연하지는 않더라도, 관객이 따라갈 수 있도록 해줘야죠. 결국은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죽거든요. 그것과 똑같은 것 같아요. 사실은 그래서 삶은 늘 부조리죠.

 

김경주 : 네 사실은 그 아이러니가 우리 삶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김경주 : <봄날은 간다>가 아니더라도 김경익 연출가께서 갖고 계신 공간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경익 : 저는 공간과 시간을 따로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급할 때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와 그 안에서의 시간, 나올 때의 시간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공간마다 다른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첫 키스를 할 때 1초라도 10분처럼 느껴지는 건, 다른 감정과 정서로써 그 시간에 온 몸이 반응했기 때문에 확장된 거거든요. 연극은 제한된 공간을 나누어 써야 하는 건데, 꼭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저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떨림이 왔다 갔느냐로 해석을 하고자 하는 거죠.

 

김경익

 

관객참여, 연극의 고유성을 더한다

 

김경주 : 현대의 대중들은 기능적이고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자신이 갖고 있는 예술관을 옹호받기 위해서 작품을 대하고, 그것과 맞지 않고 낯설어 보이면 배반이라고 생각하고 나쁜 텍스트로 취급하는 측면이 만연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에 계속해서 살을 붙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경익 : 지금은 적당한 하나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상업 영화라면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만, 소수의 자발적인 참여도를 가지고 있는 연극 관객들에게는 더 낯설고 더 진짜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죠.

 

김경주 : 그렇죠. 관객들에게 연극만의 고유성을 더 제공해주는 것이 연극인들이 가져야 될 자부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익 : 네, 그게 현장성이고 인간이거든요.

 

김경주 : 연극만의 고유성을 찾는 김경익 연출가님만의 방식이 있다면 관객이나 이 시대 연극인들에게 공유해 주세요.

 

김경익 : 특히 제가 잘 쓰는 방법은 관객 참여예요. 전 가능하면 직접 참여하게 해요.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은 참여를 정말 좋아해요. 우리는 마당극의 개념이 있잖아요. 배우들을 혼자 무대 위에 내버려두지 않아요. 그런 전통 외에도 이제는 자신이 주인공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 참여시키는 거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요, 틈나는 대로 시도합니다. (웃음)

 

김경주 : 저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배우 혹은 연출이 관객과의 체감, 관객의 참여를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신뢰가 확보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신뢰를 만들어나가는 연출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김경익 : 제가 극본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관객의 참여를 언제 집어넣지?’를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80년대에 무너진 운동권에 대한 얘기를 할 때라면 ‘당신도 살인 현장에 같이 있었잖아. 현장범이야’라고 하면서 객석에 있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려서 동아줄로 묶어서 무대에 앉혀요. 그러면 그 사람들도 같이 죄인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 제가 <바보 햄릿>을 동시에 연출하고 있는데요. 작품에서 햄릿의 극중극을 촛불시위로 바꿨는데, 정신병원 원장이라는 지배세력한테 촛불을 들고 달려들어요. 그때 촛불을 같이 드는 배우들의 일원으로 햄릿이 극중극을 얘기해요. 관객들에게 어떻게 하라고요. 그러면서 ‘관객들이 어느 위치에 있어야 이 작품을 가장 공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거죠. 관객의 눈을 어디에 두게 하느냐가 관객 개입의 시점인 거예요.

 

김경주 : 앞으로의 근황 혹은 준비하고 계신 작품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김경익 : 6월 25일부터 7월 20일까지 ‘아름다운 극장’에서 <바보 햄릿>을 공연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선왕이 노무현이라고 생각하는 햄릿이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데, 계속 복수를 주장하죠. 그런데 ‘나를 잊지 말아다오’가 햄릿 선왕의 유언이라면, 이 사람은 그래서 복수를 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뚜껑을 열어봤더니 ‘나를 버리셔야 합니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유언이었고. ‘이제 감상적 좌파에서 떠나서 작은 삶의 실천이 있어야 된다’는 게 유언이었다고 밝혀지는 이야기입니다.

 

상반기까지는 <바보 햄릿>을 공연하고 가을에는 <아리랑 랩소디>를 다시 무대에 올리는데요. 아리랑은 한민족을 엮을 수 있는 중요한 리듬이고, 떠나보낸 님을 가슴 아파하며 우는 것 뿐만아니라 슬픔과 기쁨과도 항상 같이 있었던 멜로디거든요. 일상을 넘어선 해방의 공간에서 늘 한민족이 선택을 했던 선율이고요. ‘그걸 어떻게 동시대의 자산으로 끌어와서 형상화해 내느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김경주: 긴 시간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늘 좋은 작품 만드시길 바라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김경익: 고맙습니다. 

 

기획: 엄지혜 기자
정리: 임나리

 

 


봄날은간다*극장뎐 줌 인(zoom in) - <봄날은 간다>


극단 진일보 대표, 김경익 연출가의 신작 <봄날이 간다>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고,극장 전체를 고향 뒷산 봄 언덕으로 만든다. 관객들은 햇살 따사로운 봄 언덕에 앉아객석과 무대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연기를 보게 된다. 봄 언덕의 생생한 재연을 통해 5.1 채널의 스피커를 무대 곳곳에 설치하고,실제 솔향과 생화 등을 사용하여 오감이 행복한 공연을 선보인다. 어머니 역은 배우 길해연, 아내는 김지성, 남편은 정석원이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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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경주

시인이자 극작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이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기사와 관련된 공연

  • 연극 [바보햄릿]
    • 부제:
    • 장르: 연극
    • 장소: 대학로 아름다운극장
    • 등급: 만 15세 이상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 연극 [봄날은간다]
    • 부제: 한편의 시(詩)로 다가온 봄날 같은 사랑
    • 장르: 연극
    • 장소: 대학로 예술공간 서울
    • 등급: 만 15세 이상 관람가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오늘의 책

역사계 어벤져스, 어셈블!

책으로 탄생한 지식 유튜브 보다(BODA)의 인기 시리즈 <역사를 보다>. 중동의 박현도, 이집트의 곽민수, 유라시아의 강인욱, 그리고 진행을 맡은 허준은 여러 궁금증을 역사적 통찰과 스토리텔링으로 해결해준다. 역사에 대해 관심 없는 사람도 이 책을 읽는다면 역사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2022 배첼더 상 수상, 판타지 걸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세계관에 영향을 준 일본 아동문학계 거장 가시와바 사치코의 대표작.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소원이 이뤄지는 곳, 귀명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판타지 동화.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모험 속에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손안에서 여름을 시작하는 책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황인찬 시인의 책. 7월의 매일을 여름 냄새 가득한 시와 에세이로 채웠다. 시를 쓰고, 생각하고, 말하며 언제나 '시'라는 여정 중에 있는 그의 글은 여름의 무성함과 닮아있다. 다신 돌아오진 않을 오늘의 여름, 지나치는 시절 사이에서 탄생한 시와 이야기들을 마주해보자.

여름엔 역시 '꽁꽁꽁' 시리즈!

휴대폰을 냉장고에 두고 출근한 엄마에게 걸려온 민지 담임 선생님의 전화! 학교에서 다친 민지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셀러리 누나와 소시지 삼총사는 강아지 꽁지와 함께 엄마의 회사로 달려가는데... 과연 꽁지와 냉장고 친구들은 엄마에게 무사히 휴대폰을 잘 전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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