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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초록을 발견하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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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무성한 초여름이다. 다른 걸 몰라도, 책을 읽고 나서 꼭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초록의 이름을 불러보자.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더 없는 책이다.

초록들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어느 해인가 옷장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카키 색 자켓, 연두 빛 바람막이 점퍼, 짙은 초록빛 후드, 연한 연두 빛 가디건 까지 저마다 조금씩 빛깔이 다르다 뿐이지 모두 초록색 계열의 옷들이 사이좋게 여러 벌 걸려있는 게 아닌가. “아, 내가 초록색을 좋아했지!” 하고 탄성을 질렀다. 가끔 이런 때가 있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고르고 나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색을 지닌 옷이나 물건을 산다.


누구나 좋아하는 색이 있기 마련이다. 시어머니는 보라색을 좋아해서 선풍기를 살 때도 보라색 날개를 지닌 걸 골랐다. 검은색을 좋아한 선배는 사시사철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녀 키 작고 통통한 동양인에게는 절대 안 어울리는 게 검은색이라고 지청구를 준 일도 했다. 하지만 어른만 좋아하는 색이 있을까? 아니다. 노란 색을 좋아하는 막내가 꾸물거리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난 노란 옷이 좋아』가 잘 그려냈듯 아이들도 좋아하는 물건과 색에 집착한다. 보통 만3세 정도면 색에 관심을 갖고 그 차이를 안다고 한다. 예컨대 하늘색을 알 뿐 아니라 맑은 하늘과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색이 다르다는 걸 아는 식이다.


로라 바카로 시거의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은 초록을 좋아한다면, 아니 좋아하는 색이 있는 아이들이 읽으면 좋아할 책이다. 나아가 우리 주변의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보도록 이끄는 그림책이기도 하다. 제목이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이니, 초록색에 관한 책이라는 건 짐작이 갈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초록이 있을까? 나뭇잎만 해도 이른 봄 돋아낸 새 순의 초록과 한 여름 숲 속의 무성한 초록은 색깔의 깊이가 다르다. 그렇다. 세상에는 수많은 빛깔의 초록이 있다. 작가인 로라 바카로 시거는 같은 초록색일지라도 저마다 다른 빛깔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풀어냈다.


책장을 펼치면 따라 읽기 좋은, 리듬감 있는 글로 세상에 어떤 초록들이 있는지를 하나하나 노래하듯 부른다. 이렇게 불려 나온 초록에는 늦 봄 숲 속의 울창한 초록도 있고, 반으로 자른 라임 열매의 싱그런 초록도 있다. 눈부시게 밝은 초록으로 반짝이는 반딧불이. 무성한 나무 밑 초록 그늘까지, 눈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초록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작가의 손에 이끌려 저마다 빛깔이 조금씩 다른 초록을 하나씩 만날 때마다 경탄스럽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하겠지만, 그림책을 읽고 난 후에는 존재했으나 인식하지 못했던 세상의 초록들이 자꾸 자꾸 보인다. 가로수 은행나무의 초록, 주스 병의 짙은 초록 뚜껑, 햇빛을 만난 감자의 서늘한 초록빛까지.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는 부모라면, 집에서 혹은 자연 속에서 초록 이름 부르기 놀이를 해도 좋을 만큼 세상의 모든 초록이 눈에 밟힌다.

 

초록들


이 그림책을 즐기는 재미가 여러 가지인데, 하나가 지금까지 말한 수많은 초록을 발견하는 재미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린 연령의 유아들이 보는 색깔 그림책 정도로 여기지만, 보면 볼 수록 작가가 감추어둔 메시지와 재미가 드러난다. 책에서 다양한 초록빛을 보여주던 작가는 “가을 오면 초록은 그만 멈춰!”라며 가을과 겨울이 오면 생명과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을 만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말 초록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걸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겨울이라고 해도 초록은 흰 눈 속에 덮여있을 뿐이다. 봄이 오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어리고 연한 초록 잎이 난다. 초록은 영원하다.


작가는 초록의 한 살이를 통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찾아오며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개체로서 한 인간의 삶이나 초록 잎사귀 하나의 생명은 유한하다. 하지만 인류라는 종은 자손을 통해, 나무의 초록 잎은 새 순으로 그 유한함을 극복한다. 개체로서는 유한하지만 종으로서는 영원한 것, 이것이 생명의 경이로움이자 아름다움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이 컷 기법이다. 로라 바카로 시거는 『무엇이 무엇이 먼저일까』로 칼데콧 영예 상을 수상했고,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로 다시 한 번 칼데콧 상을 수상했다. 두 권 모두 다이컷 기법을 활용했다. 다이 컷 기법이란 그림 중 일부를 오려서 구멍을 만들고, 페이지를 넘기면 그 구멍이 뜻하지 않은 효과를 내도록 이끄는 방식으로 그녀의 장기 중 하나다.

 

 특히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에서 구현된 다이 컷 기법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했던 작업보다 한결 세련되고 정교해져 작가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다. 철저하게 계산되어 뚫린 구멍은 책 속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나뭇잎 모양으로 뚫린 구멍은 페이지를 넘기면 물고기로 변한다. 녹두 한 알이었던 구멍은 다음 장에서 호랑이의 눈이 된다. 달밤에 날아다니던 나비는 어느새 보라 빛 꽃이 되어 있고, 반짝이는 초록이었던 반딧불이의 빛은 어느새 붉은 열매로 변해있는 식이다. 구멍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는 앞장과 뒷장의 연속성이 필요하니,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는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덕분에 독자는 대체 페이지를 넘기면 이 구멍이 무엇이 될까를 상상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나무가 말하였네



고규홍 저 | 마음산책

시인들이 노래한 나무는 어떤 모습일까? 정지웅에서 문태준 까지 시인들이 나무를 노래한 시들을 모으고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이 글을 곁들였다. 초록을 생각하며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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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미화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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