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 어떻게 좋아하시나요
그의 부재는 여전히 뼈아프다
그런 의미에서 < Xscape >의 디럭스 판에만 실린 「A place with no name」의 원곡을 개인적인 베스트로 꼽아본다.
마이클 잭슨 [출처 : 위키피디아]
이 사람, 죽은 사람이었구나. 신보 < Xscape >를 맞은 기쁨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을 테다. 생각해보면 꿈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한 때 동일한 시간을 같이 걸었던 탓에 달콤한 꿈을 너무도 당연한 현실처럼 생각했지 않았나싶다.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등진 지 벌써 5년이다. 팝의 황제가 걸은 위대한 행보는 이미 앞서 수차례나 다뤘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그 발자취들에 담긴 필자들의 추억들을 풀어보기로 했다. 기억을 꺼내온 노래들은 총 13곡. 마이클 잭슨을 생각해본다.
글 내의 소제목은 곡 이름, 발표 년도, 수록 음반을 다루고 있다. 배치 순서는 싱글 및 앨범 발표순.
I wanna be where you are, 1972, < Got To Be There >
꽂히는 곡이 생기면 계속 듣곤 한다. 갈증이 해소되고도 질릴 수준에 도달해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글을 쓰는 데에 적잖이 방해가 되는 습관이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하루를 소비해도 아깝지 않을 곡을 인생에서 몇 번이나 만나겠나.(고 생각했다가 지금도 고생 중이다.) 언젠가 모타운 싱글들을 돌이켜보며 쭉 정리한 적이 있었다. 「I wanna be where you are」는 그 때 다시 만난 곡이다. 펑키한 반주와 한없이 앳된 10대 시절의 목소리와 '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곁에 있고 싶다는' 귀여운 가사, 'any-any-any'하고 반복하는 장난스런 보컬까지, 곳곳에 깔린 마음을 잡아둘 함정에 떡하니 걸려버렸다. 들을 곡이 많이 남았는데, 남았는데 하면서 이 곡으로, 이 곡이 수록된 솔로 데뷔작 < Got To Be There >로, 그리고 마이클 잭슨으로 그렇게 넘어가버렸다. 아, 또 당분간 이것만 꽂고 지낼 듯싶다.
이수호(howard19@naver.com)
Ain't No Sunshine, 1972, < Got To Be There >
이 노래를 처음 듣고 어린 아이가 어떻게 이런 슬픈 목소리를 낼까 생각했었다. 십대의 마이클잭슨 목소리는 전성기 미성보다는 거칠고, 조금은 더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소울'이 담겨있다. 약간은 어설픈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휘몰아치는 고음은 그가 얼마나 노래를 잘했는지 명쾌하게 입증한다. 울부짖듯이 절규하는, 나이답지 않은 블루스는 그의 불행한 과거를 떠오르게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마이클 잭슨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아버지의 발길질 아래 신음했을 그의 시퍼런 멍울이 목소리에도 서려 있는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통은 누구보다 아름다운 음색을 그에게 선사했지만 말이다.
이 노래는 원래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곡으로 스팅, 존 메이어 등 정말 많은 뮤지션들이 다시 부르고, 즐겨 부르는 명곡이다. 개인적으로 이 노래의 첫대면이 바로 마이클 잭슨이었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곡을 처음 들었던 그 때 그 순간의 느낌이 살아난다. 이 노래를 들을때면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 어떤 분위기라도, 제일 먼저 마이클 잭슨의 앳된 얼굴이 떠오른다.
김반야(10_ban@naver.com)
Ben, 1972, < Ben >
아마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아닐까. 어린 나를 앉혀놓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길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노래였다 (기억나는 맨 처음은 무려 존 덴버의 「Annie's Song」이었다!). 혹여 아들이 잭슨 파이브의 막내처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길 바라셨는지, 하루 종일 아버지께서는 코드 잡는 법을 가르쳐주시며 '한 소년과 그가 기르던 개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가사'라는 감동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아버지는 더 이상 통기타를 잡지 않으시고, 나도 노래의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개가 아니고 쥐, 심지어 호러 영화라니) 「Ben」은 쉽사리 잊힐 리 만무하다.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과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노미네이트되는 등 성과도 어마어마한 곡이지만 나에게 있어 「Ben」은 어린 날 아버지와의 소박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마어마한 아버지의 학대를 감내해야만 했던 잭슨의 상황과는 정반대라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과연 하늘에서 그는 아버지를 용서했을까?
김도헌(zener1218@gmail.com)
Rock with you, 1979, < Off The Wall >
고등학생 시절,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이클 잭슨 특집을 했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의 삶을 40분 만에 훑어주는 그런 방송이었다. DJ가 「The way you make me feel」과 「Rock with you」를 선곡했다. 마이클 잭슨에 흥미를 붙여준 두 곡이다. 놀라웠다. 옛날 노래가 촌스럽기는커녕 세련되었다는 인상이 진했다. 「The way you make me feel」 다음으로 들려준 「Rock with you」도 마찬가지, 드럼이 말리는 순간부터 마법 같다. 모르긴 몰라도 마이클 잭슨은 다정하고 아이 같은 사람일 것 이라는 생각을 했다. 「We are the world」, 「You are not alone」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 들은 「Rock with you」는 달랐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섹시하다. 그것들을 알아달라는 듯 들이밀지 않는다. 곡 자체에 묻어난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좋아 헛웃음이 났다.
전민석(lego93@naver.com)
Billie Jean, 1983, < Ben >
1983년 봄, 국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그해 3월 2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모타운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이 「Billie Jean」을 부르는 모습을 방송했다. 그는 립싱크를 했지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왼손의 흰 장갑과 발목까지 올라오는 짧은 검정 바지 그리고 재기차기 동작과 비슷한 발놀림까지, 지금까지 기억되는 마이클 잭슨 이미지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Billie Jean」의 중간 기타 간주와 후반부에서 보여준 문워크는 대중음악의, 아니 대중문화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 글을 쓰는 사람 역시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나 학교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문워크를 따라했고, 어느 정도 흉내내자 마이클 잭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마이클 잭슨은 여전히 신(神)이었다.
소승근 (gicsucks@hanmail.net)
Beat it, 1983, < Thriller >
누구나 '허세의 시절'은 있다. 하드록과 메탈만을 편식하며 팝을 경시하던 어린 시절, 마이클 잭슨의 존재는 당시 즐겨 듣던 마니악한 장르의 어떤 밴드들보다도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랬다. 그런 내가 이 곡을 만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기타 리프부터 머리가 쭈뼛 섰다. '이거 완전 하드 록 아니야!'
그 날 이후 팝에 대한 나의 철벽이 당장 100% 무장해제되었다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상당부분의 편견을 해소할 수 있던 계기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또 모른다. 이 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마초냄새 풀풀나는 음악만을 경배하고 있었을지도. 생각하니 소름이 다 돋는다. 그를 일찍 만난 것이 다행이다.
여인협(lunarianih@naver.com)
Thriller, 1983, < Thriller >
내게 마이클 잭슨은 「Thriller」가 선사한 강렬함으로 기억된다. 비교적 최근, 마이클 잭슨이 보고 싶던 밤이 있었다. 금방 잠에 들 요령으로 침대에 편하게 기대 앉아 아직 보지 못한 마이클의 영상을 쭈욱 훑었다. 「Thriller」의 뮤직비디오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붉게 물든 타이틀이 등장했을 때 얼른 알았어야 했는지 모른다. 공포물이라면 극구 사양하는 내가 볼만한 무엇은 아니라는 걸. 보름달이 뜨고 마이클의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는 순간 호되게 놀라버렸다.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성인이 현재에 비하면 조악한 CG기술과 티 나는 분장에도 식겁하고 말다니. 사실 이는 마이클 잭슨의 위대함의 한 단면이다. 작품이 만들어진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니. 새로운 「Thriller」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절반쯤은 안도하고 있지만, 그의 부재는 여전히 뼈아프다.
The way you make me feel, 1987, < Bad >
첫 눈에 반한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한 마이클 잭슨의 작업 송. 9시부터 5시까지 일하는데 널 사서라도 내 옆에 두고 싶다는 달달한 가사에 설레고, 코러스, 군무에 완전히 넘어간다. 길을 가다 만난 이상형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다면 실루엣 키스신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라도 보자.
Smooth Criminal, 1988, < Bad >
나에겐 음악 이전에 게임이 있었고, 덕분에 MJ는 가수이기 이전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종횡무진 활약하는 히어로였다. 콘솔 중에서도 닌텐도의 패밀리가 아닌 세가의 마스터시스템(국내 출시명은 겜보이)부터 패드를 잡기 시작한 이들이라면, 아마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 Michael Jackson's Moonwalker >이라는 게임 타이틀이 친숙하게 들릴 것이다. 하얀색으로 깔맞춤한 중절모와 수트를 입고 악당에 맞서 아이들을 구출해 내던 화면 속 초능력자. 그것이 마이클 잭슨과 나의 첫 조우였다.
그때만 해도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좋던 BGM들이 그의 곡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리듬에 맞춰 게임을 즐기다 갑자기 적이 몰려들면, B버튼을 꾸욱 눌러 문워커의 춤을 시전해 나쁜 놈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 연출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 이 노래를 접한 것은 그 후로 몇년 뒤. '둥둥 두두둥둥 두두둥둥~' 특히나 좋아했던, 버릇처럼 게임기의 전원을 넣고 듣던 첫 스테이지의 미디 음원이 이렇게 생생히 살아 움직이다는 사실 자체가 감동이고 전율이었다. 그 시점부터 내 어릴 적 도트 영웅은, 생명을 얻어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전자 롬팩 속의 영웅이 아닌, 내 인생을 구원할 뮤직 히어로로서.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Remember the time, 1992, < Dangerous >
가장 아름다웠다. 나풀거리는 랩 스커트도 황금빛 액세서리도 마이클 잭슨이 아니면 감히 소화해낼 수 없었을 거다. 칼 같은 군무와 왕비를 바라보는 의미심장한 눈빛에 심장이 덜컹거렸다. 뮤직비디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 모습에, 매번 새로이 반한다. 멜로디와 가사, 다이애나 로스에게 바치는 곡이라는 은근한 소문들까지 무엇 하나 애틋하지 않은 게 없다. 내게 마이클 잭슨은 「Remember the time」의 위트와 박력과 절규와 유혹이다.
조아름(curtzzo@naver.com)
Heal the world, 1992 < Dangerous >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받은 학대의 트라우마를 아동에 대한 애정으로 승화시켰다. 곡의 내용 자체가 희망적이고 전지구적이다. 실제로 그는 'Heal The World'라는 재단을 설립하는 등 아동인권보호에 앞장섰다. 다만, 행복한 어린 시절에 대한 동경으로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놀곤 했는데 그런 호의가 그를 아동성범죄자로 의심받게 했다. 무죄는 확실히 밝혀졌지만 명예로운 이력에 유일한 흠으로 남았다.
여행을 갈 때마다 아버지의 차에서 들려오던 「Heal the world」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내게도 분명 따스하게 들려왔다. 가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뒤였지만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어우러진 노래들도 좋지만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는 곡이라 이 노래가 좋아지게 되었다. 그 스스로도 「Heal the world」를 제작하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Gone too soon, 1993, < Dangerous >
2009년 7월 7일, LA에 위치한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에 어셔(Usher)가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착잡한 심정으로 「Gone too soon」을 노래했다. 이 작품은 < Dangerous >(1991)의 9번째 싱글로 어린 나이에 에이즈로 사망한 라이언 화이트에게 바친 곡이다. 이날의 자리에서 추모의 대상은 물론 마이클 잭슨이었고 마이클의 가족과 그가 따르고, 또 그를 따랐던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현장에서 그리고 화면으로 지켜본 모두가 감정에 복받쳐 쓰러질 듯한 어셔의 마지막 깊은 한숨에 목이 메었다. 나 역시 “Gone too soon...”라는 이 한 문장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음악을 통한 기쁨과 동요, 그리고 이를 통한 즐거움 모두가 노랫말처럼 사라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제 동생은 그곳에서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어요. 지금 이 순간처럼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이클 잭슨을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겁니다.”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
뻔하디 뻔한 말로 들렸지만, 사실 더 이상의 멋진 추모사도 없었다. 2014년의 지금에 와서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5년이 지난 지금 미공개 트랙으로 발매된 < Xscape >은 그가 살아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앨범을 듣는 순간 나는 이날 단상에 섰던 스모키 로빈슨의 판에 박힌 추모 연설이 현실처럼 상기되었다. 이래서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고 하나. 영원히 죽지 못하는 사람, 그가 마이클 잭슨이라 다행이다.
신현태(rockershin@gmail.com)
A place with no name, 2014, < Xscape >
전설은 역시 리메이크도 남다르다. 최근 발표된 < Xscape >의 수록곡 「A place with no name」을 처음 듣자마자 아메리카(America)의 「A horse with no name」을 떠올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곡 나름의 화성진행이나 후반부의 코러스를 제외하면 이 곡은 원작에 대한 특별한 암시를 남기지 않는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역사가 컨템포라이징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에 포장되고 판매되는 광경을 목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 Xscape >의 디럭스 판에만 실린 「A place with no name」의 원곡을 개인적인 베스트로 꼽아본다. 마이클 잭슨이 1980년대를 수놓았던 사운드를 급히 현대식으로 이식한 앨범 버전에 비해 원곡은 투박한 기타 사운드에 아메리카 특유의 풍취까지 가미하여 훨씬 겸손하고 소박하다. 물론 이 노래 역시 디럭스라는 상업적 명칭 아래에 유통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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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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