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왕이 백성을 돌봐준 적이 없다
『스님, 계십니까』 권중서 저자와의 만남
『스님, 계십니까』의 권중서 작가와 함께 사찰기행이었다. 지난 6월 14일 여름날의 주말, 독자들이 한데 모였다. 일곱 도적을 감화시킨 안성 칠장사,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서린 화성 용주사를 작가와 함께 걷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칠장사로 향하는 길, ‘매산리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호)’을 먼저 들렀다. 미륵당이라고도 부르는 누각에 모셔진 높이 5.6m의 고려시대 미륵불상이다.
권 작가는 궁예 이야기를 꺼냈다. 궁예는 ‘미륵’을 표방했다. 백성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풀어주기 위함에서 스스로 미륵임을 자처했으나, 그는 권력이 커지면서 초심을 잃었다. ‘관심법’은 스스로 권력이 된 자의 주문이었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미륵은 보살과 부처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미륵은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되기로 정해져 있었다. 석가는 인내를 한 덕에 부처가 됐으나 미륵은 그러지 못했다. 인내가 얕은 까닭이었다.
“사바란 ‘능히 참고 살아야만 하는 세상’을 말한다. 그러니 우리가 사바에 살면 능히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점점 참으려 하지 않는다.” (『스님, 계십니까』239쪽)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왕들의 역사를 생각하다
“살면서 참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 사바세계에선 참고 인내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불교는 얻어먹는 종교다. 걸식이라고 한다. 소유를 하면 안 된다. 그러나 하인을 두고 소유에 집착하면서 불교는 조선 500년 동안 탄압을 받았다. 승려는 8대 천민에도 못 드는 지위였다.”
고려시대 불상은 얼굴과 손이 컸다. 손이 컸던 것은 무엇이든지 많이 주려는, 즉 나눠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칠장사에 얽힌 궁예의 이야기를 이었다. 경주에서 신라의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칠장사까지 흘러들어왔다. 이곳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며 스스로 미륵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미륵은 백성의 마음을 끝까지 얻는 데는 실패했다.
“견훤도 미륵을 표방했다. 신라의 화랑도도 미륵이다. 김유신은 ‘살아있는 미륵’이라고 했다. 백제가 신라보다 문화적으로나 모든 게 앞섰으나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해 신라에게 망했다. 지금도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세계 곳곳에 있다. 성전(聖戰)을 내걸기도 하잖나. 인간의 추악한 전쟁일 뿐이다. 인간이 종교를 이용해 힘을 키우려고 했던 것이다.”
아무렴. 그 역사는 유구하다. 최근까지도 그러했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역사적으로 1000여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요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권 작가는 ‘각각’에 그 요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개별성을 통해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깨달았다는 것. 그의 이어지는 지적은 뼈아프다. 우리의 역사에는 왕이 백성을 돌봐준 적이 없다. 백성이 늘 왕을 걱정하고 돌봐줬다. 유일하게 백성을 돌본 예외라면 세종, 영조, 정조 정도? 최근까지도 우리는 그것을 확인했다. 지방선거기간 곳곳에 나부낀 현수막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주세요”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어쩜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국가나 통치자를 지켜주고 걱정해야 하는 것이 인민이어야 한다는 점은 슬프고 서글프다.
“우리는 전쟁이 나면 스스로 도망가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인은 해학에 능했다. 전쟁을 통해서 이런 해학이 나왔다. 전쟁을 괴로움을 잊기 위함이었다. 한국인의 특징 중에 냄비근성이 있다지만, 잊을 건 잊고 잊어선 안 되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가 온갖 침략에도 살아남은 건 개인적인 힘 때문이었다.”
일곱 도적을 감화시킨 안성 칠장사
매산리석불입상을 떠나 칠장사에 발을 디뎠다. 권 작가는 참고 견디는 인내심의 표상으로 칠장사를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칠장사의 첫 관문, 소조 사천왕상이 나타났다. 불교에서 신은 인간을 위한 조력자였다. 서양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다. 서양에서 인간은 신에게 의존하고 복종해야 하나 동양에서 신은 인간을 도와줘야 했다는 것. 사천왕도 그런 의미에서 존재한다. 흙으로 빚은 소조상으로 영조 2년(1726)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손에는 각각 비파(동방지국천왕), 보검(남방증장천왕), 용과 여의주(서방광목천왕), 창(북방파문천왕)을 들고 있다.
“생명은 일대일이다. 까치의 삶이나 인간의 삶이나 다름이 없다. 우열이 없다. 동쪽의 지국천왕은 비파를 타면서 노래한다. 백성을 안락하게 해 준다는 개념에서 나온 상이다. 인간사에서 무엇을 늘려주면 좋을까? 돈, 집 등이 아닌 지혜다. 남쪽의 증장천왕은 지혜를 늘려주는 상이다. 치오금이라는 칼로 우리의 번뇌를 잘라준다. 서쪽의 광목천왕은 눈을 가장 부릅뜨고 있는데, 인간사를 살핀다.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은 효도 여부다. 효도를 하면 왼손의 여의주를 주나 안 하면 용을 보내 기상의 조화를 부린다. 북쪽의 파문천왕은 좋은 얘기를 쌍에 전한다. 그래서 가장 인자한 모습을 하고 있다.”
“칠장사에 머물다간 역사적 인물들 중 참고 견디는 인내를 통하여 마침내 중생을 위한 삶을 살게 된 이들도 있고, 역경을 딛고 성공하였으나 자만으로 스스로 파멸의 길을 간 사람들도 있다. ‘궁예’가 그렇고, ‘일곱 도적’이 그러하며, ‘임꺽정’이 그러하다. ‘인목대비’가 그러하고, 어사 ‘박문수’가 그러하다.”(『스님, 계십니까』239~240쪽)
이어 만난 곳은 나한전. 작고 아담한 건물이었다. 부처의 제자로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존재를 아라한 혹은 나한이라고 한다. 이를 모신 곳이 나한전이다. 어사 박문수가 칠장사를 찾은 뒤 장원급제를 하게 된 연유도 아라한의 귀띔 덕분이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나한전과 소나무가 바래서 아쉽다는 권 작가의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에 어울리는 사찰과 정각을 원하는 것은 그만의 바람이 아닌 모두의 것일 테다.
혜소국사비(지정문화재 보물 제488호)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혜소국사는 고승으로 추앙받은 승려로 말년을 칠장사에서 수도하면서 절을 크게 중창(重創)했다. 비는 칠장사에서 입적한 혜소국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비신의 높이는 241cm, 폭은 181cm에 달한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동물은 얼굴은 용이고 등은 거북이다. 잘 만들어졌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혜소국사비의 측면에서 그 예술성은 크게 빛난다. 용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 용이 여의주를 채가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권 작가는 이 작품이 고려 초기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근거로 용의 발톱이 5개라는 점을 들었다. 고려 후기로 가면서 용의 발톱은 3개 이상을 쓸 수 없었다. 원나라 눈치를 보고 그랬다. 용의 발톱 5개는 원나라의 황제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길을 내려 명부전에 도달하니, 임꺽정과 칠장미, 병해대사와 칠인의적도, 궁예의 활연습도, 혜소국사와 7인의 도적 그림 등이 벽화로 둘러싸고 있다. 명부전은 지옥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란다. 염라대왕도 있고, 저상사자도 있다.
“불교에서는 삼심제가 아닌 십심제다. 10명의 왕이 심판을 한다. 저승사자는 4명이 동시에 온다. 1명이 왔다가 잘못 데려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래서 연월일시 각각을 본다. 저승사자는 현명해야 한다. 낮에는 백마, 밤에는 흑마를 타고 와서 사람을 잡아챈다. 죽음은 갑자기 온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누구라도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태어나면 죽는다. 명부전에 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깨우침을 얻자는 것이다.”
슬슬 배가 고플 시간, 사찰음식을 만났다. 담백하고 깔끔했다. 이어 목불인 꺽정불이 모셔진 극락전에서 칠장사의 주지스님인 지강큰스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지강스님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야 하고, 죽어 천국에 가려고 하지 말고 살아 있는 이곳에서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건넸다. 큰스님의 얘기를 듣고 쉽게 보기 힘든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를 만났다. 인목대비, 선조의 계비로 광해군에 의해 아들 영창대군도 잃고 폐위됐다가 인조반정으로 복위됐다. 아들과 아버지 김제남의 극락왕생을 빌고자 칠장사로 왔다. 곧 여든이 넘었다는 역사문화해설사의 쩌렁쩌렁한 설명이 인상 깊다.
“늙고 힘없는 인목대비는 어떤 정치적인 위치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조용히 숨어 살고픈 마음뿐이다. 전란 후 나라도 안정되어 치세를 이어갈 수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국왕은 자신을 괴롭히는지 알 수 없다는 원망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스님, 계십니까』249쪽)
정조의 효심으로 세워진 용주사
칠장사의 약수를 먹고 화성 용주사로 떠났다. 이곳은 효심으로 만든 곳이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 싶었다. 아버지의 묘를 양주에서 화산(지금의 화성)으로 옮겼다. 화산은 고산 윤선도가 전국 최고의 명당자리로 칭한 곳이다. 이름도 영우원에서 현륭원으로 바꾸면서 왕릉에 버금가는 묘역으로 만들었다. 묘를 관리하고 명복을 빌어줄 사찰로 용주사를 지었다. 정조가 지은 이름으로 추정되는 용주사는 ‘용이 여의주를 물고 희롱하는 절’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용주사는 거의 왕궁이나 다름없었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금천교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소중한 인연을 가슴에 담고 창건한 사찰이 바로 화산 용주사이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뒤주 속에서 비명횡사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극락왕생과, 모진 고통을 감수하며 자식을 지켜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용주사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스님, 계십니까』253~254쪽)
온전하게 정조의 효심으로만 세워진 사찰이다 보니 ‘효행박물관’도 자리 잡고 있다. 하서능행도와 효문자도 등이 입장객을 반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부처라는 유포양육상도 볼 수 있다. 권 작가에 의하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부처라는 의미를 품고 형상화한 불상이다. ‘부모은중경’ 또한 볼 수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제자 아난에게 부모의 은혜를 설파한 내용의 경전으로 정조의 효심과 관련돼 판각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용주사에 있는 부모은중경 목판, 도안, 석판은 부처가 말한 부모의 은혜를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정조가 제작하게 한 것이다. 사대부들을 위해 한자로, 한자를 잘 모르는 아녀자들을 위해 한글로, 까막눈 백성을 위해서는 단원 김홍도로 하여금 ‘부모님의 열 가지 은혜’를 그림으로 그리도록 명하여 <부모은중경 변상도>를 완성하였다.”(『스님, 계십니까』263쪽)
다른 사찰과 달리 용주사에는 ‘홍살문’이 있다. 홍살문은 왕실의 능(陵), 원(園), 묘(墓), 궁전(宮殿), 관아(官衙) 등의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쭉 박은 형태로 세워졌다. 누구라도 삼가고 경의를 표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문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효를 일깨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찰과 달리 홍살문이 있는 이유는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주문을 3문의 형태로 사각기둥으로 세운 것은 왕궁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문을 닫아도 어긋나게 한 것도 이유가 있다. 잘못 지어진 것이 아니라 닫혀 있지 않음을 뜻한다. 신과의 소통을 항상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용주사에는 왕실이 후원한 사찰의 특징을 품고 있었다. 큰 돌을 사용할 수 있었다. 대웅보전은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웅장하다. 위용도 예사롭지 않다. 대웅보전 앞 계단은 현륭원에 오를 때의 계단을 만든 석수장이가 만들었다고 했다. 대웅보전의 현판도 정조가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 대웅보전 안의 불화는 입체적인 불화로 용주사 외에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기둥의 주줏돌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형으로 다듬었다.
“대웅보전은 왕실의 궁궐 건축답게 그 위용이 사뭇 장엄하다. 정성과 효심이 어우러진 건축물이라 무엇 하나 그냥 만들지 않았다. 조선조에 있어 왕이 직접 절을 짓고 이름을 지어준 사찰은 오직 화산 용주사가 ‘유일’하다.”(『스님, 계십니까』260쪽)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호성전’이 이날 사찰기행의 마지막 행선지였다. 정조는 사도세자에 대한 제사를 6번이나 지냈을 정도로 효심이 남달랐다. 호성전 앞에 있는 부모은중경탑은 부모의 열가지 은혜를 적어 놓고 있었다. 오로지 효심, 그것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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