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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행오버,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을까?
이런 접착이야말로 K-Pop의 근본
그런데 그게 어때서. 분명한 건 싸이가 무시무시한 속도가 지배하는 미국, 세계 시장에서 꽤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6월 9일 공개된 싸이의 「행오버」는 듣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스눕독이 쉬지 않고 ‘hang over, hang over, hang over’를 반복하면 곧이어 싸이의 랩이 등장하는데 그러다가 부부젤라처럼 삑삑삑 귀를 긁어대는 노이즈가 피치를 올리며 그걸 따른다. 싸이의 랩이 한 번 더 등장하고 마침내 “안 예쁘면 예뻐 보일 때까지 빠라삐리뽀~”가 등장하면 문득 스눕독의 중얼대는 플로우와 감미롭게 상승하는 유려한 신스가 뭔가 몽롱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자, 이제 다시 ‘hang over, hang over, hang over’가 반복된다. 이번에는 꽹과리 소리가 더해진다. 아유 진짜 아이고, 머리야.
음악과 영상의 밀착을 살펴라
이 곡을 감상하(거나 견디)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정신없음을 장르적, 미학적 특징으로 이해하는 것. 다른 하나는 뮤직비디오의 영상을 뒤쫓는 것. (중간에 꺼버리면 이 두통을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물론 이 둘은 매우 밀접하게 붙어 있으므로 그 둘을 분리하는 게 별 의미가 없긴 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둘, 음악과 영상의 밀착을 살피는 것이다. 사실 국내든 해외든 요즘 뮤직비디오의 경향이 음악과 영상이 별개로 작동하거나 음악의 부연설명 정도에 머문다는 걸 생각하면 「행오버」에서 보여주는 ‘뮤직’과 ‘비디오’의 쫀쫀한 조합은 꽤 놀라울 정도다.
일단 이 곡은 구조적으로 몇 개의 다른 스타일을 접착시킨다. 무겁고 강렬한 베이스와 쪼개지는 비트를 반복하는 트랩(trap)에 일렉트로 하우스(electro house)의 발랄한 신스와 꽹과리나 부부젤라 같은 높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끼어든다. 신나게 흔들어대다가 무겁게 가라앉다가 중얼중얼 대다가 ‘빠라삐리뽀’나 ‘받으시오~’ 같은 우스꽝스러운 구절이 등장한다. 이런 구조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데, 맥락 없이 어쩌면 단절적으로 접착된 소리는 듣는 사람을 그야말로 정신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런데 이것은 영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디오는 앞뒤로 되감기를 반복하다가 애니메이션이 나오다가 갑자기 폭탄주와 편의점과 사우나와 할리데이비슨과 중국집과 노래방과 월미도와 당구장과 조개구이 집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 모든 맥락 없음이 일제히 겨누는 것은 결국 ‘밤새 술을 마시는 점입가경의 여정’인데, 이 여정은 조개구이 집에서의 다툼이 서울 시내(의 일부)를 마비시키는 재앙으로 번질 때에야 끝난다. 심지어 싸이와 스눕독은 자신들이 야기한 저 엉망진창을 뒤로 하고 유유자적 길을 떠난다.
‘한국적인 무엇’은 온갖 것을 짜깁기한 것
여기서 흥미로운 건 바로 저 ‘맥락 없음’이다. 다시 말해 그때그때 여타 이유로 여기저기서 갖다 붙인 것들의 정서가 음악과 영상을 관통한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서울 혹은 한국의 문화를 직관적으로 가리킨다. 다시 보면, 「행오버」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한국적인 무엇’은 온갖 것들을 짜깁기한 것들이다. 폭탄주부터가 그렇고 사우나와 중국집, 노래방(=가라오케), 월미도 유원지가 그렇다.
그런데 정작 이 ‘비디오’는 이것들을 ‘한국적인 것’으로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소룡을 흉내 내고 중국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한자가 쓰인 병풍 앞에서 씨엘은 춤을 추고, 비디오의 클라이막스인 조개구이 집에서의 난장판에서는 무술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만드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아시아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흥미로운 건 한국의 일상, 대중문화가 사실은 서양적인 것과 일본적인 것이 뒤섞인 결과이며 그것이 나름의 독특하고 고유한 지점을 생산해낸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런 접착이야말로 K-Pop의 근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K-Pop은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이제까지 존재했던 그 모든 ‘좋은’ 것들을 이어붙인 무엇이다. 오리지널리티는 없지만 오리지널리티를 능가하는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점이 바로 K-Pop이 의미심장한 맥락을 얻는 지점이라면, 싸이의 「행오버」는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을 거치며 자신이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걸로 보인다. 이건 음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다시 말해 미학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로 시장에서 승부를 겨루겠다는 기존 K-Pop 기획사들의 전력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가차 없고 뻔뻔하고 단호하다. 이것은 문화도 아니고 예술은 더더욱 아니라는 얄짤 없는 태도. 그래서 이 음악이 좋으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이 비디오가 어떠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군데군데 의미심장한 부분이 나오지만, 의도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선택에 가깝다. 이것은 그저 상당히 재미있는, 또한 피곤하게 만들어서 듣는 사람의 뇌를 마비시켜버리는 엔터테인먼트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분명한 건 싸이가 무시무시한 속도가 지배하는 미국, 세계 시장에서 꽤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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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싸이, 행오버, 스눕독, 강남스타일,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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