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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누군가를 변하게 만드는 신념, <밀크>

<밀크>의 하비 밀크(숀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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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굳이 선출직 공무원이 되겠다며 모르는 사람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도 이젠 끝이다. 기어이 나머지 하나를 더 갖겠다는 알량한 명예욕이나 권력욕이 아니라, ‘내 안’의 절실함으로 한발 앞으로 나선 바로 그 사람들을 간절히 기다린다.

소설가로서 내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순간은 한 인간이 ‘회까닥’ 돌변하는 순간이다. 아니, 돌변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이를테면 평안하고 안정된 길을 착실히 밟아온 한 남자가 어떤 일을 계기 삼아 갑자기 투사로 변신했는가, 하는 것이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에서는 다분히 속물적이던 세무전문 변호사 송우석이 국밥집 아들이라는 의뢰인을 만나 결정적인 개안의 순간을 맞는다.

 

하비 밀크 역시 타고난 정치가가 아니었다. 그는 뉴욕에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뉴욕주립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수학이었다. 그리고 해군으로 복무했으며 학교 교사와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했으며 월스트리트의 증권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고 칭하던 그의 목소리에는 냉소가 묻어난다. 20~30대의 하비 밀크는 평범해 보이는 젊은 남자였을 뿐, 정치나 어떤 인권운동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외부에 드러내지도 않았다. 

 

밀크


<밀크Milk>(구스 반 산트 감독, 2008)는 실존 인물인 미국 정치인 하비 밀크(숀 펜)의 삶을 다룬 영화이다. 마흔 살을 맞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할 때만 해도 그의 꿈은 조직 생활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가게를 열어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는 미국 각지의 동성애자들이 자유를 찾아 몰려들던 지역임에도 밀크가 동성애자여서 가게가 망할 거라는 등의 악담을 퍼붓는 이들이 존재했고, 이런 환경은 밀크의 내부에 가만히 들끓던 어떤 용기와 열정을 밖으로 끌어내게 만들었다. 밀크는 자신이 받는 편견과 폭력이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때문임을 인지했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게이 인권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 발을 디디게 된 이상, 자신의 뜻을 더 넓게 펼치려면 ‘선거’를 통해 선출직 의원이 되어야겠다고 그는 결심한다. 


인종, 나이, 성, 그리고 그 외에 어떤 조건에도 관계없이 모든 인류가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란,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영원히 이 모양으로 살 수 없다면 변화를 위해 누군가는 앞으로 나서야 한다. 영화는 밀크가 샌프란시스코 시의회 의원직에 세 번 도전했다 낙선하고 결국 네 번 만에 당선되는 긴 여정을 따라간다. 선거운동 내내 그는 ‘동성애자 차별 금지 법안’ 폐지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여러 가지 위협도 받는다. 그가 집으로 도착한 살해 협박 편지를 태연히 냉장고에 붙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는 두려움은 피하면 더 커진다고 말한다. 하비 밀크가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재직한 기간은 11개월이었다. 그동안 그는 동성애자 권리 조례를 제정하는 등 동성애자의 권리 옹호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동료 의원에 의해 정말로 살해당한다. 

 

밀크

 

이 영화 <밀크>에는 동성애자로서의 하비 밀크의 생활과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미국 최초로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정치인이라는 수식보다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열정적인, 좋은 정치인’이라는 말이었다. 하비 밀크의 소박한 바람은 낯선 행인으로부터 무차별 구타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 없이 거리를 걷는 거였고,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인식 전환이 그로 하여금 정치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상대 정치인이 "당신은 (동성애라는) 이슈가 있어서 좋겠다."고 하자 밀크는 "나에게 이것은 이슈가 아니라 생존 문제."라고 대답한다. 그는 사적인 영역에서 겪은 차별의 경험을 어떻게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해 가는가를 보여주는 존재이다. 또한 그 뜨거운 절박함만이 정치 성향의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적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2014년 6월 4일은 지방선거일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굳이 선출직 공무원이 되겠다며 모르는 사람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도 이젠 끝이다. 기어이 나머지 하나를 더 갖겠다는 알량한 명예욕이나 권력욕이 아니라, ‘내 안’의 절실함으로 한발 앞으로 나선 바로 그 사람들을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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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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