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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의 쓰치다
그는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작은 방을 나와 직장으로 출근할 것이다. 그의 인생에 남 보기에 엄청나게 흥미롭고 화려한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일을 반복하는 행위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경력 10년의 서점 직원 쓰치다(남, 32세). 어릴 때부터 별다른 별명이 없었다. 즉 존재감이 없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7년 동안 방 한 칸짜리 작은 집에서 혼자 산다. 매일 저녁마다 그 집으로 혼자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퇴근길에는 반값 도시락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른다. 운 좋게 맘에 드는 싼 도시락을 ‘득템’해 비싼 맥주와 함께 먹을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그가 일하는 서점엔 책 바코드에 대고 찍으면 판매순위가 나타나는 기계가 있다. 그걸 자기 몸에 갖다 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도 있다. 어제, 오늘, 내일의 나는 각각 몇 점일까? 옆 사람의 점수는 몇 점일까 슬쩍 궁금해하다가 그런 스스로가 한심해 픽 웃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점수가 ‘연봉’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심 믿는 남자.
마스다 미리의 만화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의 주인공 쓰치다 이야기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는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수짱을 설레게 하고 짧은 데이트도 나누는 남자 쓰치다의 일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수짱으로 대표되는 30대 평범녀의 삶 맞은편에 있는 30대 평범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만화이다. 뭐랄까, 그는 멍하니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일까(이럴 리가 없어!) 하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이 뭐 이정도면 됐지 하고 생각하며 마냥 안분지족에 빠지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매일 그 둘 사이의 어딘가를 오간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대개는 크지 않은 어떤 일상의 선택들 앞에서(이를테면, 편찮으신 큰아버지의 문병을 가서 마지막으로 뵙고 올 것인가, 아니면 가슴 아프니까 회피하고 가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들) 그는 계속 어떤 쪽이 더 나을까를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왜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가를 또 다시 고민한다. 인생에 해답이 없듯 그의 끝없는 고민과 고민과 고민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고민남 쓰치다가 자신의 삶을 따라다니는 ‘고민’에 대해 문득 스르륵 결론을 내리는 건 여느 때처럼 혼자 밥을 먹는 순간이다. 돈가스카레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그는 이제 ‘인생의 의미는 뭘까’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떤 인생으로 완성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왜냐하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실은 인생 쪽에서 오히려 매번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인생이 만들어져왔다. 여기서 열쇠가 되는 말은 ‘또박또박’일 것이다.
그는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작은 방을 나와 직장으로 출근할 것이다. 그의 인생에 남 보기에 엄청나게 흥미롭고 화려한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일을 반복하는 행위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 쓰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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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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