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오래도록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의 쓰치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그는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작은 방을 나와 직장으로 출근할 것이다. 그의 인생에 남 보기에 엄청나게 흥미롭고 화려한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일을 반복하는 행위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경력 10년의 서점 직원 쓰치다(남, 32세). 어릴 때부터 별다른 별명이 없었다. 즉 존재감이 없는 존재였다는 뜻이다. 7년 동안 방 한 칸짜리 작은 집에서 혼자 산다. 매일 저녁마다 그 집으로 혼자 돌아오고 있다는 뜻이다. 퇴근길에는 반값 도시락을 사기 위해 슈퍼마켓에 들른다. 운 좋게 맘에 드는 싼 도시락을 ‘득템’해 비싼 맥주와 함께 먹을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그가 일하는 서점엔 책 바코드에 대고 찍으면 판매순위가 나타나는 기계가 있다. 그걸 자기 몸에 갖다 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도 있다. 어제, 오늘, 내일의 나는 각각 몇 점일까? 옆 사람의 점수는 몇 점일까 슬쩍 궁금해하다가 그런 스스로가 한심해 픽 웃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점수가 ‘연봉’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심 믿는 남자.   

 

정이현

나의우주는아직멀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의 주인공 쓰치다 이야기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는 마스다 미리의 수짱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수짱을 설레게 하고 짧은 데이트도 나누는 남자 쓰치다의 일인칭 주인공시점으로, 수짱으로 대표되는 30대 평범녀의 삶 맞은편에 있는 30대 평범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만화이다. 뭐랄까, 그는 멍하니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일까(이럴 리가 없어!) 하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이 뭐 이정도면 됐지 하고 생각하며 마냥 안분지족에 빠지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의 생각은 매일 그 둘 사이의 어딘가를 오간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대개는 크지 않은 어떤 일상의 선택들 앞에서(이를테면, 편찮으신 큰아버지의 문병을 가서 마지막으로 뵙고 올 것인가, 아니면 가슴 아프니까 회피하고 가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들) 그는 계속 어떤 쪽이 더 나을까를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왜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는가를 또 다시 고민한다. 인생에 해답이 없듯 그의 끝없는 고민과 고민과 고민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정이현


 고민남 쓰치다가 자신의 삶을 따라다니는 ‘고민’에 대해 문득 스르륵 결론을 내리는 건 여느 때처럼 혼자 밥을 먹는 순간이다. 돈가스카레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그는 이제 ‘인생의 의미는 뭘까’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어떤 인생으로 완성해 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왜냐하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실은 인생 쪽에서 오히려 매번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 물음에 또박또박 대답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인생이 만들어져왔다. 여기서 열쇠가 되는 말은 ‘또박또박’일 것이다.


 그는 내일 아침에도 변함없이 작은 방을 나와 직장으로 출근할 것이다. 그의 인생에 남 보기에 엄청나게 흥미롭고 화려한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일상의 일을 반복하는 행위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싶은 남자, 쓰치다이다. 

 


 





[관련 기사]

- 안산(安山)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본 <괴물>
- 만 번을 흔들려도 견뎌야 하는 시간, 어쨌든 그게 중년(中年)
- 솔직하지 않았던, 비겁한 <색계>의 그 남자
- 인간의 본성을 닮은 존재, 뱀파이어
-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보며 떠올린 영화, 그리고 남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오늘의 책

트럼프의 귀환, 위기인가? 기회인가?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거머쥔 트럼프. 글로벌 무역 질서를 뒤흔들 트럼프 2기 정부의 명암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설명하는 박종훈 저자의 신간이다. 강경한 슈퍼 트럼프의 시대에 직면한 대한민국이 어떠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지 그 전략을 제시한다.

이래도 안 읽으실 건가요

텍스트 힙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독서가 우리 삶에 필요해서다. 일본 뇌과학계 권위자가 뇌과학으로 입증하는 독서 예찬론. 책을 읽으면 뇌가 깨어난다.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이 상승하며 즐겁기까지 하다. 책의 장르는 상관 없다. 어떤 책이든 일단 읽으면 삶이 윤택해진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소설

출간 즉시 “새로운 대표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 관련 영상을 제작하려 하면 재앙을 몰고 다니는, 저주받은 소설 『밤이 끝나는 곳』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이 함께 떠난 크루즈 여행 중 숨겨진 진실과 사라진 작가의 그림자가 서서히 밝혀진다.

우리 아이 영어 공부, 이렇게만 하세요!

영어교육 전문가이자 유튜브 <교집합 스튜디오> 멘토 권태형 소장의 첫 영어 자녀 교육서. 다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 영어 교육의 현실과 아이들의 다양한 학습 성향에 맞는 영어 학습법을 제시한다. 학부모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실천 방안을 담았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