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쌍용차 사태에서 우리가 체험해야 할 것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김탁환 작가와의 만남
지난 4월 29일, 서울 합정동 후마니타스책방에서 ‘H-20000’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의 슬픔과 기쁨』의 정혜윤과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김탁환이 만나 혁명과 노동, 그리고 체험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13년 6월, 뜨거운 여름이었다. 서울광장에서 ‘H-20000’모터쇼가 열렸다. 커피노동자인 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날 공정무역 커피를 들고 서울광장을 찾았다. 동료 노동자들과 커피를 내렸고,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의 풍경은 내가 본 가장 탁월한 ‘모터쇼’였다. 자동차를 만든다는 것의 기쁨이 있음을 알았고, 자동차 이전에 사람과 노동이 있음을 확인했다.
“2013년 6월 7일 저녁 7시, 나는 모터쇼에 참석했다. 그 모터쇼의 이름은 H-2000이었다. ‘20000’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개수를 가리키고 ‘H’는 HEART 혹은 HOPE 혹은 사다리를 뜻한다고 들었다. 그 모터쇼에 나온 차는 달랑 한 대였다. 그 차를 만든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었다.”(『그의 슬픔과 기쁨 』9쪽)
그렇게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를 만들고 보는 시간, 정혜윤 PD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이 자동차와 관련된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슬픔과 기쁨』은 그렇게 나왔다. 그리고 지난 4월 29일, 서울 합정동 후마니타스책방에서 ‘H-20000’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의 슬픔과 기쁨』의 정혜윤과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김탁환이 만나 혁명과 노동, 그리고 체험의 중요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말문을 연 정혜윤 PD는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에 취소될 뻔한 이날 행사를 언급하며, 전날 밤 생각했던 한 남자 이야기부터 꺼냈다. 러시아 남자였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카라마조프가문의 둘째 아들 이반. 부잣집 가문의 남부러울 것 없는 이반은 무신론자로서 이렇게 말했었다. “아이들의 고통이 진리를 구입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고통들의 총액을 메워주는 데 쓰였다면, 진리라는 것 자체가 그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 만일 그렇다면 난 분노를 간직할 거야. 신에게 그 입장권을 반납할 거야.” 세월호 침몰을 보면서 그는 죽은 아이들이 흘렸을 눈물을 떠올렸다. 그 아이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겠지만,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아이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천국이라면 나도 거절하겠다!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이 송전탑에 올라갔었을 당시를 꺼냈다. 정PD는 그때 방송 중 한 지부장과 전화연결을 했다. 오전 11시였다. 한 지부장에게 물었다. 뭐가 보이세요? 청춘을 바친 공장이 어머니의 치마폭처럼 펼쳐져 있고, 마지막 잎새들이 보인다고 답변했다. 떨어지는 낙엽이 쫓겨나는 노동자 같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정PD는 마지막 잎새가 된 심정이라고 잘못 들었다. 그리고 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 인간이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날 밤 그를 지배한 생각이었다.
정혜윤과 김탁환,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말하다
그렇다면 두 명의 작가들의 책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김탁환 작가가 말문을 열었다.
김탁환 : 두 책의 공통점을 찾자면, 우정에 관한 시간이 아닐까.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에서 등장인물 사이의 우정, 정혜윤씨가 인터뷰한 노동자들 사이의 정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작년에 라디오 DJ를 한 달 동안 했었다. 듣는다는 것이 뭔가 생각을 하게 됐다. 정혜윤은 듣는데 뛰어나다. 통화하면 늘 쌍용차 노동자들과 술을 마시며 녹취를 하고 있더라(웃음). 그러다가 한 번 만났는데, 화가 나 있더라.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방송에 못 나가게 됐다며. 얼마쯤 지나고 그걸 책으로 쓰겠다고 하더라. 추천사를 써달라고 해서 봤더니, 목차가 쇼킹했다. 연도순으로 돼 있었다. 읽으며 충격 받았다. 소설가도 아니면서 인물들 인터뷰를 횡으로 엮다니. 이 정도로 짜려면 몇 달 동안 밤새워 해야 할 일이거든. 굉장히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정혜윤 : 혁명, 말하기 힘든 단어다.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보면 세 사람의 대화가 계속 나온다. 굶주린 사람들이 말하는 책이라고 봤다. 왕이 무엇이며, 신하가 무엇인지. 지금 전에 없이 직업윤리가 중요해졌는데, 그것과도 연결이 되겠지. 김탁환 작가의 말 중에 사실관계가 틀린 말이 있다(웃음). 『그의 슬픔과 기쁨』은 애초 책으로 기획됐다. 작년 여름 ‘H-20000’이라는 모터쇼를 했었다. 이 쇼를 한다고 해고노동자들이 복직이 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차 한 대를 만드는데 그렇게 좋아하더라. 그냥 이벤트가 아니라고 느꼈다. 당시 해고노동자 김대용 씨가 내 앞에 있었다. 또 (차를 만드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고 통증을 느꼈다. 그것이 책의 시작이었다. 김씨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가 자꾸 창밖을 통해 차를 보더라. 그는 도장반에서 일한 노동자였다. 맑은 날의 차와 흐린 날의 차, 여름날의 차와 겨울날의 차를 구분했다. 놀랐다. 그에게 해고는 회사의 실수였고, 바로 잡을지 알았단다. 차를 좋아하니 차와 함께 죽어야겠다고 말하더라. 해고 이후 그는 택시기사가 됐는데, 오래 못했다. 거울을 통해 쌍용차가 계속 보이고, 몸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언제 칠한 건데, 몇 년도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날 저녁 나는 허름한 맥줏집에서 열린 모터쇼 뒤풀이에 참석했다.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중략)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가는 촉촉했다. 눈동자엔 동경의 빛이 아른거렸다. 그에게 말을 걸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몽롱한 행복감 속에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자꾸만 이렇게 말했다. “또 하고 싶다.” 나는 그 말에 통증을 느꼈다. 그를 좀 더 알고 싶어졌다.”(『그의 슬픔과 기쁨』11쪽)
체험이 왜 중요한가
정 PD는 사람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의 이야기에는 놀라운 세계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특히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주 좋아했다. 그에게 사람의 가슴은 화학공장이다. 그리고 물질이 영혼으로 변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 이 놀라움의 도가니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었다. 그는 자동차공장의 노동자라고 했을 때의 고정관념을 넘어 전부 다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령 윤충렬 씨는 해고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해고노동자와 같이 올라왔다. 이 사람들을 움직인 것, 대단한 이데올로기도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쌍용차 노동자들을 만났다. 한 사람당 천매씩 글을 썼다. 그런데 이들을 책속에서 하나씩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연대기 순으로 엮은 이유였다.
“정비사였던 이현준 씨가 그랬다. 좋은 인생을 살아왔다며 정비공장에서 인생을 배웠다고. 정비는 무거워서 같이 차를 들어야 하는데, 형님들이 같이 들어준다고 말하더라. 그랬던 사람이 파업에 들어가자, 너무 무서웠었다. 그런데도 무거우면 같이 들어야한다고 배웠으니 배운 대로 하겠다며 파업에 동참한 거지. 과연 우리는 배운 대로 살고 있을까. 이현준씨는 인생을 통해 정말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있다며 ‘고진감래’라고 하더라. 그런 가슴의 말을 하더라.”
“정비는 절대 혼자 못 해요. 굉장한 협업입니다.”(『 그의 슬픔과 기쁨』32쪽)
김탁환 : 책을 읽으며 왜 이렇게 썼을까 생각해봤다. 어깨동무를 해주고 싶었던 거지. 혼자 있으면 죽으니까. 이들을 어깨동무를 시켜놓으면 힘을 내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정혜윤은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렇게 엮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은 혼자서 하는 체험도 있지만 특정 시기에 누군가와 함께 체험을 한다. 책에 나온 이들이 내 또래여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동의 역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체험에서도 납득이 가능한 체험이 있고, 이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면서 깨닫는 것도 있다. 또 평생 생각을 던지게 하는 체험도 있다.
다른 세상,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김 작가는 가장 큰 체험을 전쟁이라고 들었다.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쓰면서 생각한 것 중의 하나가 홍건적의 난이었다. 10만 명의 홍건적이 고려를 쳤다. 고려의 정규군은 약했다. 그들을 막지 못하고 계속 밀렸다. 결국 왕이 개성을 버리고 안동으로 도망갔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누가 책임을 질까. 정치권에서는 책임공방이 벌어질 것임을 알고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공을 세운 세 명의 장수가 역모를 꾸민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죽인다. 그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김덕배라는 장수가 조정 차원에서 정리가 됐다. 정몽주가 김덕배의 시체를 묻고 통곡한다. 왜 당신이 죽어야 합니까. 김덕배의 잘못이 아니고 왕이 문제가 있어서다. 그것이 정도전, 정몽주 등 이십대 청년들의 정서였다. 그래서 왕을 없애고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혁명을 해야 한다는 얘기였지. 이들이 『맹자』를 보니, 백성이 가장 중요하고, 백성을 불행하게 만들면 왕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다. 이 책을 기반으로 그 그룹이 크기 시작한다.”
김 작가에 의하면, 스무 살 체험을 토대로 정도전은 왕을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스무 살 때 자신이 체험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백성들이 죽고 불행을 막는 사회 시스템을 연구하고 조선을 만들었다. 체험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데, 김 작가는 쌍용차 노동자들에게서도 그런 것을 봤다고 말했다. 물론 그 체험은 자신들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해고는 갑작스러웠고, 자신이 왜 그런 일을 당하는지 분노하고 억울한 감정도 컸다. 그렇게 4~5년을 지나면서 누군가는 나름의 답을 찾고, 사람을 만나고 연대했다.
“정도전 그룹이 뭉치는 것이나 이 노동자들이 만나고 뭉치는 것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정혜윤 : 이분들에게 중요한 체험이 있다면 하나는 죽음의 체험이요, 또 하나는 내 옆에 누군가가 나타나는 체험이다. 복기성씨는 열아홉부터 용접공 비정규직이었다. 열아홉에 누가 꿈을 물었을 때 ‘노동자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세월이 흘러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고향이 충남 예산인데 풍물을 배웠다. 이 사람이 버틴 것은 뜻밖에 자기 옆에 누군가가 온 덕분이었다고 했다. 서맹섭씨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는 구례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구미에서 삐끼를 했다. 이후 군대에 갔다가 아버지가 그리웠다고 하더라. 이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우는지 모르게 많이 울었다.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게 나를 울렸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떤 일을 겪은 거지. 일을 무척 잘하고 상까지 탔는데도 해고를 당했다. 한상균 지부장이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게 노동인문학이라고 하더라. 이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자기 말에 책임을 지고 싶다는 거다. 내 말에 책임지지 않고서는 다른 일을 못하는 거지. 그런 말을 들으면서 너라면, 넌 어떻게 할 건데, 내게 질문을 계속 던졌다. 한윤수씨는 쌍용차 직장생활이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하더라. 내가 따르고 싶은 사람, 저렇게 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았던 거다.
김탁환 : 디지털 시대, 체험이 안 되고 숫자로만 말한다. 숫자로만 말하면 체험이 안 된다. 옛날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고통 속에 들어가서 함께 아파하고 슬픔을 나눴다. 그러나 지금은 단절이 된다. 그게 큰 문제다. 국가나 사회가 고생하도록 만들거나 숫자로 치환해 체험을 못하게 만든다. 쌍용차 사태도 숫자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의 슬픔과 기쁨』은 육성이 있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 있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일을 함께 도모하면 좋겠다.
정혜윤 : 우리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쉽게 규정하거나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희망버스 때 우리는 한진중공업을 보러간 것이 아니다. 크레인위에 사람이 있으니 그게 궁금해서 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시 김진숙 위원은 나를 보지 말고 옆사람, 곁에 있는 사람을 보라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했다. 나는 책을 읽고 사람이 더 좋아졌다고 말한다.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한 사람이 자신이 생각해보지 못한 일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특히 밤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그것을 잊고 일상을 산다. 이 책은 어느 해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고민한 것이며 그들의 체험에 대한 이런 질문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지?
김탁환 : 소설가들은 시간에 예민하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얼버무려진다. 소설가는 누구나 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다르게 배치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구조와 관련해서 정부는 최선, 유가족들은 최악이라고 했었다. 지나고 나면 대부분에게 이런 것은 묻히겠지만, 르포 작가 등이 이를 계속 모아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재구성해 체험시킬 수 있다. 체험의 재체험화 같은 거지. 우리 모두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끼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다들 느낀다. 사적인 이익만 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대인데, 정도전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저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봤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본 다른 세상이란 것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기업가가 아니고 다른 무엇도 아니고 노동자라고 선언한 순간, 어쨌든 이제부터는 잘 배워서 사람들과 뭔가를 좀 만들어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슬픔과 기쁨』4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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