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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수도원 옆 미술관

압타이베르크 미술관, 묀헨글라트바흐,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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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타이베르크라는 이름은 수도원을 의미하는 독일어 ‘압타이Abtei’와 산을 의미하는 ‘베르크berg’가 합쳐진 말로 미술관이 들어선 곳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수도원 언덕에 있는 미술관’인 셈이다.

빌바오 성공 신화의 원조, 묀헨글라트바흐

 

 

압타이베르크 미술관 전경

압타이베르크 미술관 전경

 


독일 북서쪽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뒤셀도르프,쾰른,에센,뒤스부르크 등 독일의 대표적인 공업도시가 밀집한 곳으로 흔히 이들 도시를 한데 묶어 루르 지역이라 부른다. 루르 지역은 전후 독일 재건의 성공을 상징하는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곳으로 한때 유럽 최대의 석탄 생산기지이자 철강 산업 중심지로 독일 경제의 심장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해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가 열리는 쾰른과, 요제프 보이스를 비롯한 수많은 유명 예술가들을 배출한 뒤셀도르프는 유럽에서도 문화예술 도시로 손꼽힌다.

 

반면, 이들 도시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 묀헨글라트바흐는 루르 지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예술 도시인데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또한 미술이나 건축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이곳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 건축 거장 한스 홀라인(Hans Hollein, 1934~)이 설계한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구 25만의 작은 공업 도시 묀헨글라트바흐에 ‘포스트모던 건축의 아이콘’이라 불리며 현대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자 무척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아방가르드 건축의 아이콘이 되었던 천재 건축가 프랑크 게리도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이 없었다면 빌바오 구겐하임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미술관인지, 또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이 아닌 예술품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은 도시의 중심부이긴 하나 주변보다 지대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도보로 가려면 오르막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한다. 압타이베르크라는 이름은 수도원을 의미하는 독일어 ‘압타이Abtei’와 산을 의미하는 ‘베르크berg’가 합쳐진 말로 미술관이 들어선 곳의 지명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니까 ‘수도원 언덕에 있는 미술관’인 셈이다. 10세기에 설립된 묀헨글라트바흐 대수도원은 미술관과 정원을 공유하며 이웃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이 도시 역사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압타이베르크 미술관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에서는 서로 다른 재질의 건축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소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를 직접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기쁘고 설렜다. 그런데 미술관 앞에 서자 그렇게 기대했던 건물의 멋진 외관을 한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오피스 빌딩처럼 수직으로 높게 솟은 타워가 시야를 먼저 사로잡더니 이어 톱니 모양의 뾰족뾰족한 지붕을 단 회색 공장 건물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건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외관상으로는 도저히 몇 층짜리 건물인지 헤아릴 길이 없었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 건물의 1층이 2층이 되기도 하고, 또 미술관 옥상인 줄 알고 올라가보면 보행자들이 다니는 광장이 되는 등 직접 와서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절대 이해하기 힘든 구조였다.

 

건축물의 재료도 제각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수직의 타워 건물은 사암과 무광 대리석 등 전체적으로 질박해 보이는 재료로 지어졌는데, 파사드 전체에 반사유리가 여러 번 접히면서 굽이치는 곡선으로 처리돼 역동성을 강조했다. 거울 역할을 하는 이 반사유리들은 미술관 주변의 고풍스런 교회나 마을 풍경을 비춘다. 반면 톱니 모양 지붕의 회색 건물들은 은 색 알루미늄과 티타늄 아연판 등 금속성 재료로 마감되어 도시적이면서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은 마치 재료와 질감이 다른 여러 개의 오브제를 붙여 만든 하나의 콜라주 작품처럼 보였다.

 

내부는 예측불허와 놀라움의 연속


중앙 홀을 중심으로 양끝에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대리석 계단이 있었고 또 다른 편에는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다. 아래층으로 먼저 내려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계단 입구의 한쪽 벽면에 아까는 못 봤던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대형 거울 회화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피스톨레토는 캔버스 대신 거울을 작업 매체로 선택한 작가다. 거울 위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다양한 국적의 인간상들이 그의 거울 그림 속 주인공이 되고 있다. 피스톨레토 작품의 특징은 거울이라는 매체의 속성상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 모두를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그의 작품의 일부로 만든다는 것이다. 반가운 작가라 작품 사진을 한 컷 찍는데 카메라 뷰파인더에 자꾸 내가 나온다. 거울의 반사되는 표면 탓에 포커스 잡기도 쉽지 않다.

 

몇 차례 시도 끝에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서구의 한 소년과 멀리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아시아의 한 여성이 함께 있는 생뚱맞은 사진 하나를 겨우 건졌다. 계단을 반 층 정도 내려오니 길게 이어진 상설 전시실들이 나왔고 방향을 틀어 반 층을 또 내려오면 다른 전시실들이 나오는 등 전시실들은 높고 낮은 계단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시실의 생김새들도 독특했다. 네모난 방, 길쭉한 방, 둥근 방, 휘어진 벽이 있는 방, 다락방처럼 좁은 방, 상대적으로 큰 방, 작은 방 등 외관 못지않게 미술관 내부도 예측불허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소위 ‘화이트 큐브’ 공간처럼 획일적이지 않고 개성 넘치는 각각의 전시실은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과 묘하게 어울리면서 동시에 작품의 새로운 감상과 해석이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확장된 듯했다.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거울 회화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거울 회화

 

 

전시실 내부에 계단이 많고 전시장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이유는 미술관이 들어선 부지가 비탈진 언덕인데다가 그것을 인공적으로 깎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지형 그대로 건물을 지어 올려서라고 한다. 그래서 중앙 홀은 경사가 높은 압타이 거리에서 보면 1층이 되고, 지대가 낮은 정원 쪽에서 바라보면 2층이 되는 것이었다. 홀라인이 만든 건축물의 매력은 이렇게 내부까지 세심히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알 수 있다.


물론 건축에 대한 감탄 이상으로 상설 전시실에서 만난 이곳 소장품의 퀄리티도 놀라움 이상이었다. 잘 알려진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부터 이브 클랭의 「레디메이드 블루」 조각들,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여행 가방 속 상자 등 현대미술의 인기 있는 핫 아이템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이브 클랭의 조각 「레디메이드 블루」

이브 클랭의 조각 「레디메이드 블루」

 

또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


미술관 관람이 끝난 후 조각공원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2002년 조각공원으로 재정비된 이곳은 원래는 이웃해 있는 중세 수도원의 과수원이었다고 한다. 경사진 공원의 윗부분은 계단식 논을 형상화한 모양으로 ‘쌀 테라스’라 불리는데, 굽이굽이 돌아가는 유기적 곡선으로 된 돌길과 계단을 통해 미술관의 옥상광장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공원 아랫부분은 ‘가짜 바로크’라 불리는데 중앙의 분수를 중심으로 산책로와 잔디가 잘 정돈된 단아하고 소박한 정원이다. 중세 수도원과 공유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조각공원 안에 설치된 작품들도 너무 튀거나 도드라진 것은 없고 초록의 자연과 고풍스러운 마을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조각공원 안에 설치된 마우로 스타키올리의 조각과 래리 벨의 설치작품
조각공원 안에 설치된 마우로 스타키올리의 조각과 래리 벨의 설치작품

 

 

프란츠 베스트의 조각 「망상」과 그 뒤로 보이는 중세의 대수도원 건물

프란츠 베스트의 조각 「망상」과 그 뒤로 보이는 중세의 대수도원 건물

 

미술관 외부와 내부는 물론 야외 조각공원까지 다 둘러보고 나서야 홀라인의 건축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대가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홀라인은 미술관 건축을 통해 이 도시의 지역적 정체성을 새롭게 창조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10세기 중세 수도원 마을에서 출발해 탄광산업과 방직산업의 중심지였고 이제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을 갖춘 문화예술의 도시가 된 묀헨글라트바흐의 역사가 또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것이 바로 이 압타이베르크 미술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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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술관을 걷다 이은화 저 | 아트북스
이 책은 대도시 유명 미술관 코스에 싫증난 이들, 한가로운 미술관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독일과 네덜란드의 국경에 자리한, 라인강 주변 자연미술관으로 안내한다. 현대미술과 관계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은화가 지난 10년간 직접 다닌 미술관 여행을 바탕으로, 여느 여행서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 루트를 공개했다. 미술관의 탄생 배경뿐 아니라 건축 콘셉트, 전시 프로그램, 작가와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충실히 담아 여행을 계획하는 독자를 위한 내실있는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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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은화

이은화는 현대미술가,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 대학 강사 등 미술과 관계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며, 이후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여 캐빈디시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윔블던 스쿨오브 아트에서 순수미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세계 최대의 미술 경매회사인 소더비 옥션하우스에서 최고의 예술 전문 인력을 키우기 위해 세운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학(이론 및 행정)’ 석사를 취득했고 맨체스터대학과 소더비 인스티튜트가 함께 운영하는 아트비즈니스 전공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런던에서는 다수의 그룹전에 기획자와 작가로 참여했으며, 윔블던 드로잉 센터 갤러리에서 근무했고, HDT 기업 컬렉션의 아트 컨설턴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2년 겨울 귀국한 이후 작가 및 평론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며 현재 중앙대학교와 성신여자대학교, 삼성문화 아카데미 등에서 ‘유럽 미술관과 컬렉션’‘현대미술’ 등의 주제로 강의를 맡았다. 미국 온라인 예술잡지 『아트크러시(Artkrush)』를 비롯 『월간 미술세계』 『퍼블릭 아트』 등 국내 미술 매체에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2004년 아트스페이스 미음 기획으로 “웰컴-감정의 에스페란토”라는 주제의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성곡미술관을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 선화랑, 세줄 갤러리, 한전프라자 갤러리 등의 테마 기획전에 초대작가로 참여하여 활약한 바 있다. 현재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더 많은 이들을 현대미술의 매력 속에 빠져들게 하기 위해 강연과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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