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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아름다운 섬, 통영 추도 미조 포구

풀벌레가 달빛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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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 포구의 어떤 집이라도 마당에 서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낮은 언덕의 비탈에는 스무 채가 조금 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주황색 연두색으로 칠해진 색색의 지붕은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다.

통영 미조포구

 

 

천리까지 퍼지는 당신의 향기

추도로 가기 위해 여객선에 올랐다. 이 배는 하루에 두 번, 아침 7시와 오후 2시 30분에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출항했다. 도심에서 바닷길로 1시간 10분만 떠나오면 외따로이 떨어진 섬 하나를 만날 수가 있었다. 추도의 서북쪽에 자리한 미조 포구는 전체인구의 1/3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아파트가 즐비한 도시에서는 옆집의 숟가락 개수를 알 리가 없었다.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가 애당초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50여 명이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 포구에서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문은 필요가 없다. 오로지 통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미조 포구의 어떤 집이라도 마당에 서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낮은 언덕의 비탈에는 스무 채가 조금 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빨간색 파란색 주황색 연두색으로 칠해진 색색의 지붕은 막 피어난 꽃처럼 화사했다. 마을 가운데에는 언뜻 보아도 1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나무 한그루가 진한 초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후박나무였다. 500년도 더 살았다는 이 나무와 가장 근접한 집, 그러니까 한 여름이면 그저 마당에만 나와 있어도 나무가 내어주는 그늘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초가집에서 향긋한 밥 냄새가 퍼져 나왔다. 냄새에 홀려 고개를 들이밀어 보니, 할머니가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고사리를 다듬고 있었다.

할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말을 크게 해야 했다. ‘저 나무는 언제부터 있었어요? 지금 다듬고 있는 게 뭐예요? 추도는 뭐가 제일 유명해요? 혹시 지금 밥하고 계신건가요? 배고파서 여쭤보는 건 절대 아닙니다.’ 할머니는 대답 대신에 물음으로 일관하셨다. ‘어디에서 왔어? 결혼은 했어? 배가 끊길 텐데, 밥은 먹었어? 잠은 어디서 자?’

우리는 동문서답으로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루의 벽에는 가족사진이 담긴 액자가 전시되어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결혼을 했을 때의 사진부터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사진, 딸이 시집을 갔을 때, 손주가 걸음마를 막 떼었을 때 사진까지 모두 걸려 있었다. 그 사진들은 할머니와 이 집을, 추도의 미조포구에 뿌리 내리고 긴 세월 살아냈던 후박나무의, 투명하게 속을 비춰내는 바다의, 잘 자란 고사리의, 아궁이에서 지어지는 흰 쌀밥의 역사였다. 나는 아주 천천히 추도의 역사를 둘러보았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고향을 안 버릴라고.”
“네?”
“고향을 안 버릴라꼬 해서 내내 이서 산 기제.”


할머니는 몇 번이나 섬을 떠나자고 설득을 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을 추도에서 살아왔다. 자식들은 도시로 내보냈지만 자신들은 선조가 남겨준 터를 지키며 살기로 선택한 것이다. 나는 아궁이에서 뜸 들여지는 흰 쌀밥보다도 할아버지를 만나는 게 시급해졌다. 추도가 어떤 섬인지, 더 자세히 물어볼 작정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섬에서 갈 곳에 어디 있겠는가.

통영 미조포구

 

 

외따로이 떠 있는 나룻배

심심하면 낚싯대를 들고 나갔다가, 굶으면 낚아서 고기 먹고.”

김금돌 할아버지가 등처럼 굽은 낚싯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태풍으로 동력 배 두 척을 잃은 이후, 반찬에 쓸 생선을 낚는 게 하루 일과가 되었다. 평생 뱃일을 해온 탓에 두 손은 거칠고 마른 나무 껍질 같았다. 그의 손은 나룻배의 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대신해서 노를 저어보겠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노를 건네주었다. 나는 노를 힘껏 밀고 가슴으로 부드럽게 당겼지만 배는 전혀 나아가지 않았다. 제자리에서 뱅그르르 돌 뿐이었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미소를 내보였다.

“정말 여기에서 평생 사셨어요?”

대답 대신에 할아버지는 낚싯대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느리고 굼뜬 말투에 어울리지 않는 손놀림이었다. 손바닥만 한 생선이 낚싯바늘에 걸려서 펄떡거렸다.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바늘을 빼내고, 물통에 생선을 넣었다. 그리곤 다시 바다를 향해서 낚싯대를 던졌다.

“바늘에 미끼는 안 끼우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나무배의 홈에 낚싯대를 고정시키더니 선측에 걸터앉았다. 셔츠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미조의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드는 참이었다. 할아버지는 라이터를 켜서 담뱃불을 붙였다. 할아버지의 양쪽 볼이 깊게 파였다. 담배 끝이 붉게 타올랐다. 뭍으로 나가는 배는 이미 끊겼다. 나는 추도에서의 하룻밤이 느리게 흘러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코를 킁킁거리며, 낚싯대를 거두었다. 후박나무의 향은 천리를 간다고 했던가. 아궁이의 밥 냄새는 그보다 더 멀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닭살 부부, 춘우 씨와 정순 씨

사실 미조 포구를 찾게 된 이유는 신춘우 이장님 부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2012년 KBS 인간극장에서는 ‘이장 춘우 씨와 부녀회장 정순 씨’라는 제목으로 추도에 사는 한 부부의 삶을 조명한 적이 있었다. 부산사나이와 산청 산골아가씨가 미조 포구에서 함께 뱃일을 나가는 모습이 방영되자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추도를 찾는 여행객이 늘어났다. 빼어난 경치와 조용한 환경과 너그러운 인심이 추도의 자랑이라는 부녀회장 정순 씨는 하루에도 두세 번이나 남편을 따라나섰다.

부부는 작업복을 입는 것을 서로 도와주었다. 배에 오르면서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밧줄을 풀고 묶는 일을, 그물을 넣고 올리는 일을 하나의 호흡으로 이끌었다. 아무래도 혼자보다야 둘이 낫겠지만 그렇다고 여자가 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뭍의 여자들처럼 예쁜 옷도 입고 다니고, 좋은 화장품도 쓰고, 엉덩이도 흔들면서 다녀야 하는데, 굳은 일을 시키는 거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는 춘우 씨의 말에 정순 씨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15년 전, 도시생활에서의 실패와 회의로 힘들어하던 부산사나이 춘우 씨에게 산청 산골처녀 정순 씨가 나타났다. 이 부부가 섬에서 살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금술을 추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지 않았겠는가. 낯선 타지인에게 이장과 부녀회장을 맡긴다는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추도의 자랑은 단연 물메기였지만, 피부에 달이 그려져 있어 달고기라 불리는 생선부터, 보리 날 무렵에서 익을 때까지가 가장 맛있는 장갱이(정갱이), 딱딱한 갑옷 속에 야들야들한 속살을 가진 갑오징어, 춘우 씨를 닮았다는 가오리까지, 싱싱한 생선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춘우 씨는 선상에서 직접 회를 썰어서 정순 씨의 입에 넣어주었다. 정순 씨는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신랑이 줘서 그런가 더 맛있다.”


 

통영 미조포구

 

 


저녁이 아름다운 섬

이장님 댁으로 할머니 한 분이 급히 찾아왔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얼굴은 창백하게 식어있었다. 평소에도 몸이 좋지 않아 누워있던 할아버지가 복통을 일으키며 먹은 걸 다 토해낸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병원에 가야 했는데, 배편이 이미 끊겨버렸다. 나는 섬사람의 고초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가로막힌 장벽이 너무나 높은 것이다. 이장님은 곧장 산 너머에 있는 대항마을로 연락을 취했다. 그곳에는 추도보건소가 있었다. 다행히 직원들이 교대로 섬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이십 여분이 지나지 않아서 직원이 도착했다. 할아버지가 주사를 맞고 누워있는 동안에 이웃들이 하나둘씩 다녀갔다. 할아버지는 옅은 신음을 오래도록 뱉었지만 다행히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회복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제야 안심하며, 할아버지에게 욕을 해댔다. 나는 담장 너머로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고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몇몇 단어로 짐작컨대, 음식을 꼭꼭 씹어 먹으라는 내용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복통이 빚은 소동에 더 이상 섬을 둘러보지 못하고 밤을 맞이했지만, 평상에 걸터앉아서 노을에 물든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젊은 부부와 오랜 부부의 삶을 엿볼 수도 있었잖은가.

할머니의 고함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대신 풀벌레가 달빛을 노래한다. 낡은 담장 사이로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숨소리는 깊은 저녁으로 흘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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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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