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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곡

멘델스존, 무언가(Lieder ohne Wo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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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의 ‘봄’은 그야말로 따스한 봄날입니다.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러오는 창가에서 봄 향기에 혼곤히 취해보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설렘과 동경, 그리고 약간의 몽롱함까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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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멘델스존(Jo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년~1847년

 

지난 회에 슈만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교향곡 ‘봄’이었지요. 그러니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멘델스존이 떠오릅니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이 두 명의 음악가는 동료이자 친구였지요. 아주 절친했습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합니다. 멘델스존이 1809년생, 슈만이 1810년생이지요. 제가 이미 설명했듯이 슈만은 작곡가뿐 아니라 음악비평가로도 활약이 대단했는데요, 그는 ‘다비드동맹’이라는 가상의 단체를 설정해놓고 그 단체의 회원들이 토론을 펼치는 방식으로 음악비평을 쓰곤 했습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지요. 그런데 슈만이 그 비평 속에서 ‘음악적 동지’로 묘사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멘델스존입니다. 자신의 아내였던 클라라 슈만과 함께요. 그러니 슈만이 멘델스존을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지난 회에 설명했던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을 초연했던 지휘자도 바로 멘델스존이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멘델스존은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였을 뿐 아니라 당대의 지휘자이기도 했지요. 지휘봉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지휘자 가운데 한 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지휘자의 역할이 단지 음악의 박자를 지시하는 것에서 음악을 해석하는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멘델스존은 그렇게 ‘음악 해석자로서의 지휘자’라는 변화를 이끌어낸 선구자였습니다. 말하자면 멘델스존의 시기에 이르러 지휘자의 위상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지요.

 

두 사람의 우정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슈만은 1839년에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C장조 ‘그레이트’의 악보를 슈베르트의 형인 페르디난트의 집에서 발견했는데요, 그 악보를 곧바로 친구인 멘델스존에게로 보냅니다. 그래서 이 곡은 1839년 3월 21일에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됩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이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슈만과 멘델스존에 의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깊었습니다. 멘델스존은 1843년에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하고는 슈만을 교수로 초빙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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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멘델스존의 음악 중에서도 ‘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곡이 있습니다. 슈만의 ‘봄’은 규모가 큰 교향곡이지만, 멘델스존은 아주 소담한 규모의 피아노곡으로 ‘봄’을 노래해 남겼지요. 음악의 분위기도 슈만의 ‘봄’과 많이 다릅니다. 저는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을 설명하는 지난 회 칼럼에서 ‘봄은 봄이로되, 아직은 춥고 불길한 바람이 불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했지요. 하지만 이와 달리 멘델스존의 ‘봄’은 그야말로 따스한 봄날입니다.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불러오는 창가에서 봄 향기에 혼곤히 취해보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설렘과 동경, 그리고 약간의 몽롱함까지 담겨 있습니다.

 

바로 ‘봄의 노래’라는 피아노곡입니다. 멘델스존은 스무 살이 되던 1829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었던 1845년까지 모두 8권(집) 48곡으로 이뤄진 피아노 소품집을 썼습니다. 마지막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이 하나 더 포함돼 있어서 49곡으로 셈하기도 하지요. 어쨌든 1권부터 6권까지는 그의 생전에, 또 7?8권은 세상을 떠난 뒤에 출판됐는데, 전곡을 통틀어 <무언가>(Lieder ohne Worte)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무언가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무언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또 요즘 같은 봄날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인 ‘봄의 노래’는 5권(집)의 여섯 번째 곡으로 수록돼 있습니다. <무언가>는 말 그대로 ‘가사(말) 없는 노래’라는 뜻이지요. 말하자면 연주시간 5분 미만의 짤막한 피아노곡들을 모아놓은 소품집인데,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이뤄진 가곡풍의 음악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멘델스존이 이런 음악을 자그마치 16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작곡한 이면에도 당연히 시대적 필연이 존재하겠지요. 지금까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을 관심 갖고 읽어온 분들은 대부분 감지하시겠지만, 슈베르트에서 슈만과 멘델스존으로 이어진 독일 낭만주의에서 ‘가곡’(리트)은 매우 중요한 장르였습니다. 낭만주의의 본령은 당연하게도 ‘문학과 음악의 만남’이었고, 가곡이야말로 그런 음악적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멘델스존도 ‘가사 없는 노래(리트, 가곡)’에 오랜 세월 마음을 쏟았을 겁니다.

 

게다가 낭만시대를 대변하는 악기는 피아노라고 할 수 있지요. 19세기는 그야말로 피아노의 시대였습니다. 악기의 개량과 진보가 눈부시게 이뤄지면서 수많은 피아노 걸작들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모차르트 후기 이후, 또 베토벤 중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겠지요. 피아노의 표현력이 놀라울 만치 확장된 시대였습니다. 슈만, 멘델스존과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쇼팽의 피아노 음악, 또 리스트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연주도 다 이 시기에 등장했습니다. 그런 지점들이야말로 멘델스존이 ‘피아노 한 대로 노래하는 가곡집’인 <무언가>를 작곡한 배경이었던 셈이지요.

 


 

멘델스존의 <무언가>는 요즘 말로 치자면 대단한 ‘히트곡’이었습니다. 개량된 피아노가 한창 보급되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부르주아들이 너도 나도 거실 한가운데에 피아노를 들여놓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의 좀 산다 하는 집의 거실 피아노 위에는 <무언가> 악보가 놓여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전해집니다. 아름다운 가곡풍의 선율, 게다가 테크닉적으로도 연주하기 어렵지 않은 곡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1847년에 멘델스존이 세상을 떠난 뒤에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멘델스존의 모든 음악에 대해 극렬한 폄훼가 시작된 것은 1850년에 바그너가 <음악에서의 유대정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멘델스존은 유대인이었습니다. 멘델스존의 가문에 대해서는 제가 지난해 10월 28일자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했던 적이 있지요. 어쨌든 바그너가 그 악의적인 논문으로 멘델스존을 공격했던 시기부터 거의 100년간에 걸쳐 이른바 ‘멘델스존 죽이기’가 진행됩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았던 시기에는 독일 음악사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치부되기까지 했던 것이지요.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천재였던 멘델스존, 하지만 악보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창작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는 모차르트보다 고작 3년을 더 지상에 머물다 떠났습니다. 서른여덟 살의 젊은 나이였지요. 그가 음악 인생 거의 전부를 바쳐 작곡한 <무언가>는 혼자 있는 시간에 듣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앞서 언급한 ‘봄의 노래’ 외에도 ‘사냥의 노래’(1권 3곡), ‘베네치아의 뱃노래’ 3곡(1권, 2권, 5권에 각각 한 곡씩), ‘이중창’(Duetto, 3권 6곡), ‘실 잣는 노래’(6권 4곡) 등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1956년/EMI

오래도록 1순위로 꼽혀온 명연이다. 전곡 중에서 17곡을 발췌해 연주하고 있다. 전곡 연주가 아니라는 점이 어떤 이에게는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장점일 가능성이 많다. 48곡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곡들을 중심으로 연주하고 있어서다. 후대의 연주들, 예컨대 다니엘 바렌보임 등의 연주와 비교하자면 확연하게 느린 템포로 건반을 짚어나간다. 멘델스존의 의도가 ‘노래’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선율을 강조하는 연주라고 할 수 있다. 순수하게 빛나는 서정미라는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 음반이다.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1973년/DG

<무언가> 전곡을 수록한 음반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현재 약 5종이 발매돼 있다. 그중에서도 다니엘 바렌보임의 연주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해온 음반이다. 기제킹의 발췌 녹음과 더불어 <무언가>를 대표하는 레코딩으로 자리해 있다. 바렌보임은 이 음악의 ‘노래’로서의 특성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피아니스틱한 해석에 좀더 주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제킹이 약간 느릿한 템포로 담담하고 유려하게 17곡을 노래하는 것에 비해, 바렌보임은 전곡을 연주하면서 곡마다 개성 있는 해석을 시도한다. 전체적 일관성보다는 곡마다의 다채로움이 두드러지는 연주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어떤 곡에서는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1986년/De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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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 중에서 22곡을 발췌해 연주했다. 국내 애호가들이 주목하는 쉬프의 연주는 대개 바흐와 베토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쉬프는 슈만과 멘델스존 등의 낭만 레퍼토리에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보여왔다. 1986년 이뤄진 이 녹음에서도 정갈하고 섬세한, 동시에 유연한 터치가 돋보인다. 작곡한 연대순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에 따라 곡의 순서를 배치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충분히 절제하면서도 노래의 느낌을 맛깔나게 살려내고 있는 고급스러운 연주다. 다만 음반 가격이 앞서 추천한 두 종에 비해 비싸다는 것이 아쉽다. 쉬프는 3월 25일 내한해 슈만과 멘델스존의 음악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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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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