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황현산,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황현산. 난해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현대시도 그가 읽어주면 달랐다.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모른 채 골방 속에서 시와 함께 그늘져 있던 우리 시인들 가운데 그가 끄집어내어 볕 보게 한 자 몇이나 되는지 모른다. 더불어 그는 굴곡진 우리 현대사에 정의의 이름으로 바로 서지 못하는 순간순간을, 그 안타까움과 분노와 그럼에도 희망을, 펜 끝에 적셔 우리들 피에 돌게 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을까. 우리는 문학을 읽음으로써 세상과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밤이 선생이다』 의 저자이자 문학평론가 황현산이 이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지난 2월 14일, 서울 서교동 상상마당에서 열린 ‘5인의 명사에게 듣는다! 201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 번째 시간을 통해서였다. 황현산은 이날 ‘이 시대,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독자들과 만났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p.32) | ||
『밤이 선생이다』 의 표지 그림은 독일의 작가 팀 아이텔(Tim Eitel)의 ‘무제(관찰자)’라는 작품이다. 그림은 출판사에서 결정했다. 그림의 무거움과 책의 중량감이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 팀 아이텔은 얼굴의 정면을 그리지 않는 작가로 표지 그림 역시 뒷모습만 나와 있다. ‘얼굴 없음’은 또한 황 선생의 책과 관련을 맺고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제일 먼저 나온 책의 제목이 『얼굴 없는 희망』 이었다.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에 대한 연구였다. 그 뒤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알코올』 에는 르네 마그리트 그림인데, 중절모를 쓰고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을 표지로 썼다. 그리고 이번 역시 등을 보이는 남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데, 얼굴 없는 사람의 그림을 수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하더라(웃음). 내용도 그런 종류의 글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이목구비가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가 완전히 다르다. 자고 있을 때와 깨어 있을 때도 다르다. 사람들 만났을 때도, 면접 볼 때와 친구를 볼 때 얼굴이 다르다.”
황현산 저자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얼굴로 주체를 표현한다.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얼굴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 그렇다고 모든 얼굴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마네킹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가진 특별함이 없다. 그러나 얼굴과 달리 뒷모습은 그렇지 않다. 재밌게도 누구도 자신의 뒷모습을 응시하지 못한다. 사진의 뒷모습을 본다면 자신임을 알 수도 있겠지만, 평소 뒷모습에 대해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뒷모습은 다른 사람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뒷모습에서 때론 내가 아닌 타자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면 여기서 ‘주체’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황현산 저자는 주체를 폭넓게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라는 주체도 있고, 가족, 교회, 민족, 국가 등의 주체도 있다. 따라서 주체라는 말 속에는 온갖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러나 뒷모습은 또 다르다. 주체를 표현하지 않는다. 자기의 모습이면서도 동시에 타인의 모습이 뒷모습이다. 황현산은 여기서 문학의 중요한 특징을 길어낸다.
“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주체의 글쓰기이면서 타자를 그려내는 글쓰기라는 점이다. 주체가 자기를 드러내려고 쓰면서 결과적으로 타자를 불러내는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쓰면 소설 백 권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소설을 쓴 예는 거의 없다. 온갖 이야기가 다 소설이 되는 것 아니다. 소설은 자기 이야기이면서 자기 아닌 것의 이야기다.”
타자에게서 길어 올리는 것
여기서 자기 아닌 것에도 여러 체계가 있다고, 황현산 저자는 설명한다. 가령 내가 옆집 아저씨 이야기를 쓴다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이 아니라는 것. 서울에 사는 내가 강원도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쓴다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 또한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이야기는 쓰기 쉽지만 자기 아닌 이야기를 쓰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 자기 이야기에 머물면 아무것도 안 쓴 것과 다름없을 수도 있다. 의미가 있기 위해선 자기 아닌 것에 대해 쓸 수 있어야 한다.
황현산은 “타자라고 다 같은 타자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타자이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타자의 층위가 우리가 쓰고 있는 글의 깊이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글을 보면서 놀라거나 감동하는 것은 자기 모습이면서 동시에 자기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할 때라고 한다.
“실은 자기인데, 한 번도 자기라고 내세우고 싶지 않았던, 혹은 사회가 자기라고 내세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 등이 있다. 우리 안에 그런 게 있다. 그걸 밖으로 드러내면 창피한 그런 것들. 이런 타자가 우리 안에서 제일 먼저 발견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무의식 혹은 원죄, 무념상태라고 붙이기도 한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군가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한데, 그 사람이 나와 같은 겨레고 국민임을 내세우기 싫은 사람도 많다.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고, 동네에도 있다. 부끄럽고 끔찍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타자라고 하는 것,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분명 다른 측면도 있다. 우리 안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 황현산의 표현에 의하면, 문학은 악마들과 협약하는, 악마와 협약해서 하는 어떤 활동이다. 즉, 우리 안에 있는 이상한 것,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 그러면서 동시에 그것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을 뜻하는 것이 문학일 수 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우리를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 우리 밑바닥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책 제목을 『밤은 선생이다』 라고 할 때 밤도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밤은 낮과 다르다. 나는 주로 밤에 작업한다. 밤에 작업하는 이유는 천성이 게을러서다(웃음). 낮에 할 일을 미뤄뒀다가 밤에 하는 거지. 밤이 되면 해방감 같은 게 있다. 혼자 있으면 해방감을 느끼는데, 다른 사람이 밤에 자잖나. 그러니 억압이 풀리는 거지. 억압이 풀리면 사람이 나쁜 짓을 하기도 하잖나. 마찬가지다. 혼자 있을 때는 남들이 안 하는 생각, 이상한 생각도 한다.”
세상의 변화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황현산은 사소한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그는 진실성, 핍진한 사실 등을 가리켜서도 ‘사소한 것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1980년대 말 그가 한 시인의 詩를 해석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항의를 받았다. 거대한 희망을 갖고 거대한 전망을 갖고 해야 하는데, 사소한 것을 다룬다는 것이었다. 당시 잡지 편집인이었던 황현산은 편집자의 말을 통해 이런 취지의 글을 썼다고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거대한 이론을 갖고 깃발을 꽂고 하는 것이 아니다. 조그맣고 사소한 것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뭉치게 한다.”
그는 세상의 변화는 사소한 문제부터 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사소한 사정 때문에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권력자들은 사소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고, 거대한 문제를 들먹이며 사소한 문제를 덮으려고 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막는다. 실은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의 변화를 갈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타자라고 하는 것은 사소한 것과 관련돼 있다. 사소한 것이 악마도 되고, 메피스토펠레스가 되기도 한다. 철학과 사상, 의식은 보는 것을 그대로 보게 하는 것이 주체 사상이다. 나는 이렇게 본다, 우리는 이렇게 본다, 이렇게 보는 방식과 결과가 결정돼 있다. 그것에 포획되지 않는 방법, 거기에 붙잡히지 않는 태도가 우리에게 글을 쓰게 하고 새롭게 사물을 보게 만든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게서 특별한 것을 봤다고 하면, 억압하는 낱말을 생각해 놨다고 하면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황현산은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끄집어냈다. 어떤 사물을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관찰하고 적립해놨다고 한다면 앞사람의 정의 앞에서만 그 사물을 본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물을 보고 생각하면 그것과 다른 어떤 말이 떠오른다는 것. 그 말을 하는 순간, 그 사물 자체가 다른 것이 돼 버린다. 이제까지의 것을 뒤집어버릴 수 있는 말, 그 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나무였던 것에서 나무의 주체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이런 순간이 우리의 의식과 태도, 세계관을 뒤엎는 순간이다. 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가 아니고 새롭게 태어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내 생각이 혹은 어떤 감정이 날카롭게 꽂힐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갔는데, 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는 플라타너스가 반짝이고 바람이 뭔가 말하는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약간 깊어지고 문화적 습관까지 변하게 만드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내 존재 자체의 바탕을 변화시키고 삶의 목적까지 다른 것이 되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속될 수도 지속되지 않을 수 있으나 그런 순간을 시적 순간 혹은 시적 상태라고 한다.”
그런 시적 순간 혹은 시적 상태,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와 알지 못하는 세계, 나였던 것과 다른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단다. 이런 순간은 술을 마시다가도 오고, 대마초를 피다가도 올 수 있다. 신기하게 생각할 것은 없다는 것. 재밌는 것은 세상에 대한 여러 고뇌가 있고, 자신이나 주변, 세상에 대해 고뇌도 있는데, 이런 고뇌와 순간이 합쳐질 때 미학적인 생산성을 띠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사상 체계가 될 수도 있다.
황현산에 의하면, 문학이 사상체계를 만들지는 못한다. 대신 사상체계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을 자극한다. 詩나 소설이 없으면 새로운 사상도 없다! 詩나 소설이 없으면 세상에 대한 진지한 희망도 없어진다. 그는 강의를 요약하면서 첫째는 주체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문학에서 주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와의 대화라는 점도 상기시켰다. 타자를 발견하고, 내 안의 이상한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늘 눈앞에 있는데 안 만난 타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 타자를 많이 만나고 연결시키는 방법은 내 삶을 구성하는 사소한 것임을 명심할 것을 권했다.
“우리는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비교하는 체계가 있는데, 이 체계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시각의 확보가 있어야 타자를 만날 수 있다. 보이는 것인데, 안 보인다고 눈을 감고 지나가는 경우가 있다. 안 보이는 것, 사소한 것이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이다. 『밤은 선생이다』 는 일관된 주제를 찾기는 어려우나 한 가지 신념은 있었다. 타자를 만나고 사소한 것을 통해 세상과 교섭하고 작은 변혁을 일으키고, 변화를 일으키려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의지를 표현했다. 내가 가진 문학적 소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밤에 묻고 밤에 답하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어른이란 존재는 무엇이며, 꽉 막힌 노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어른이다. 늙었다는 말이잖나(웃음). 사람이 나이 든다고 해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혜로운 말을 할 준비도 돼 있지 않다. 내 경험을 젊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 이 시대의 어른은 부담스럽고. 내가 1960년대 대학교에 다닐 때는 민맥, 한맥과 같은 동아리가 있었다. 나는 그 동아리에 들어가진 않았는데, 친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과 지금도 만나는데, 정치에 입문하거나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에 어떤 사람들이 나를 씹었다는 거라. 내가 쓰는 글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진보 계열의 사상가들인데, 그게 모르겠다고 한 건 졸업하고 책을 안 읽었다는 증거다. 그게 바로 꼰대다. 나이 들어도 활기차게,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살려면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시대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안녕들 하십니까’를 연상하게 하는데, 제자들이나 자식들에게 하는 이야긴데, 항상 명랑하라고 말한다. 명랑한 것이 가장 큰 유희다.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평화를 만들고, 좋은 세상에 대한 이미지도 만들어준다. 우리가 가진 약점, 결점을 자각하면서도 그 안에서도 명랑할 수 있는 힘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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