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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 추석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태릉갈비와 임진왜란의 공통점

역사는 관념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 단일 사건으로써 역사가 아닌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의 역사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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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추석과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한 공간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신라의 추석은 독자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다. 당시 신라의 교역 파트너였던 중국의 강남 지역과 오늘날 오키나와인 유구 지역과 무역 관계를 고려한 결과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역시 마찬가지다.

제8회째를 맞는 숭실대 인문학 축제의 첫 번째 연사는 김경집이었다. 최근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책을 낸 그는 전직 인문학 교수였다. 김경집은 스스로 다짐한 게 있었다.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나머지 25년을 글 쓰고 살겠다는 것. 자신과의 약속대로 지금은 서산시 해미면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12월 26일, ‘숭실대 인문학 축제’에서 연사로 서기 위해 서울로 왔다. 이날 그는 ‘역사와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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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인문학’이라는 주제는 『인문학은 밥이다』를 관통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사상과 역사를 따로 배웠다. 이데아가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그 사상적 맥락을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경집은 사상과 역사를 따로 분리하지 않는다. 플라톤 사상을 예로 들어 보자. 책에서 김경집이 지적한 대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플라톤의 머리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탄생하지는 않았다. 당시 상대주의로 무장한 소피스트가 장악한 그리스에서,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희생되는 걸 본 플라톤은 절대적인 무언가를 상상한다. 그것이 사상으로는 이데아로 귀결되었다는 지적. 분과학문 체계가 익숙한 현대인이 보기에, 상기 분석을 비약으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고대 사상가는 세상을 각각 분리된 틀로 보지 않았다. 가까이는 칸트조차도 인식론과 윤리, 미학을 하나의 관점으로 보고자 했으니,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그리스 정치 상황과 밀접하다는 지적은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우리는 왜 늦여름에 추석을 보내야 하나


김경집이 ‘인문학의 유행’이라는 현상을 말하지 않고, ‘인문학의 유행’ 배후에 존재하는 사회적 변화를 이야기한 것은 『인문학은 밥이다』에서 견지한 관점과 일치한다. 그는 인문학이라는 말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시기를 1997년으로 잡았다. IMF가 대한민국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대한민국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많은 직장인이 반평생을 조직에 충성했는데, 한순간에 직장을 잃었다. 믿을 건 나, 나와 가정이라는 자각이 생겼다. 자기계발, 웰빙, 힐링이라는 말이 범람하는 현상 배후에는 불안이 있고, 이를 야기한 역사적 계기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는 다소 모순적인 상황이다. 구조가 불안해졌는데, 관심이 구조로 향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침잠하기 때문이다. 


김경집 저자는 역사는 나와 분리된 게 아니며, 역사 속의 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든 예는 추석이다. 추석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명절로, 여전히 많은 한국인이 추석 때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추석의 기원을 두고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가을걷이를 끝내고 조상이나 하늘에 감사하는 제천 행사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문제는 2013년 추석도 그랬지만, 양력 9월 추석에는 가을걷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데서 생긴다. 추석이 햇곡식과 햇과일 시장에서 성수기가 되어야 하는데, 추수 전의 추석은 농민은 농민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9월 추석의 부작용을 한반도의 기후 변화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지내는 추석은 신라에서 기원한다. 신라보다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 제천 행사인 동맹은 10월에 열렸다. 추운 북쪽이라 가을걷이가 늦게 끝난 탓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왜 고구려의 동맹이 아니라 신라에서 기원한 추석을 국가적인 명절로 지내고 있을까?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해서다. 추석이 따뜻한 남쪽을 기준으로 했기에, 최근의 기후 변화와 상관없이 중부나 북부에서는 가을걷이를 마치기도 전에 추석을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음력 8월을 가을걷이 명절로 지내온 점, 역사는 이토록 힘이 세다.


“인문학은 합리적 의심에서 시작한다. 따지면 불편하고, 따지기 전에는 불편하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 하지만 명절을 누리는 건 지금 이 시대 나 자신이다. 신라의 경주 사람이 아닌 나 자신.”


추석에 이어 김경집 저자가 소개한 또 하나 재미있는 사례는 미국의 추수 감사절이다. 한국의 추석이 그러하듯, 농경 사회에서는 추석과 같은 가을걷이 행사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명절을 겨울에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11월 4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기억한다.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농작물을 뒤늦게 수확했고 이것이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전통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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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은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진 단일 사건이 아니다


한국의 추석과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국제 역학 관계에서 생긴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신라의 추석은 독자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다. 당시 신라의 교역 파트너였던 중국의 강남 지역과 오늘날 오키나와인 유구 지역과 무역 관계를 고려한 결과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역시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의 청교도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을 거쳐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데에는 종교 상황의 변화와 함께, 대항해시대라는 유럽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예나 지금이나 세계사적 시각은 중요하다.


“세계화, 세계화를 외치지만 우리가 외신을 보는가? 세계사를 읽나? 신문을 봐도 스포츠나 연예 면만 본다. 추신수가 얼마나 받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국제 역학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역사를 심각하게도 생각해야 하지만, 재미있게 볼 수도 있다. 저자는 능이나 박물관에 갈 것을 주문했다. 최고 권력자인 왕의 무덤은 당대의 정치 구조를 반영한다. 봉분 옆에 있는 소나무는 왕을, 소나무 주위를 둘러싼 참나무는 신하를 상징한다. ‘태릉갈비’, ‘삼릉갈비’ 등 갈빗집 앞에 ‘릉’이 붙는 게 우연이 아니다. 왕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라간 상궁이 왕릉으로 파견되는데, 이때 궁중 요리법이 민간으로 전래한다. 태릉갈비의 이면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국제 역학 관계를 강조하면서 예로 든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은 명칭에서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 문자 그대로 풀면, 임진년에 왜구가 일으킨 난, 정도인데 이렇게 사건을 본다면, 전쟁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볼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책임을 물어야 하겠지만, 전쟁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한 조선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임진왜란도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조총을 든다. 이 조총이 어쩌다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을까. 명나라와 유럽 사이에 벌어진 교역에 답이 있다. 16세기, 혹은 17세기까지만 해도 중국의 기술이나 문화 수준이 유럽을 압도했다. 유럽은 중국의 차, 도자기를 사려고 혈안이 돼 있었고 이에 비해 중국이 탐낼 만한 게 유럽에는 없었다. 유럽은 신대륙에서 발견한 막대한 양의 은을 중국에 지급하며 교역을 이어갔다. 포르투갈의 한 상인들이 중국의 경덕전에 도자기를 구하러 갔는데, 마침 경덕전은 폐쇄된 상황이었다. 이들 상인은 새로운 제조지를 찾다 일본의 나가사키까지 간다. 처음에는 은으로 지급하던 포루투갈 상인이었지만 일본 무사들은 머스킷총, 즉 조총으로 대금을 받았다. 결국, 임진왜란 발발 원인은 당시 국제 무역 질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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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당신이라면 독립운동을 하겠는가


동서고금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전개한 강의의 마지막은 역사 의식을 강조함으로써 끝났다. 김경집은 청중에게 자유로운 개인으로써 깨어 있도록 당부했다. 1968년 선포한 <국민교육헌장>에서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밝힌다. 표현은 좋으나, ‘우리’ 이전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김경집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자유로운 개인이 없었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존재하려면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해 역사의식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역사의식이란 “내가 누린 것보다 다음 세대가 더 많이 누리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며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저자가 강의 중간에 청중에게 질문을 던진 순간이었다. 그는 만약 일제시대라면 독립운동을 하겠느냐고 질문했다. 무거운 질문이었는지 청중석은 조용했다. 이때 저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만약 자신이라면 절대로 독립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이유는 간단하다. 독립운동 하고 망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 한국은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해방 후 제대로 대접받기는커녕 빈곤한 삶을 살아야 했다. 반면 친일했던 사람은 광복을 맞고도 대부분 별 무리 없이 살았다. 오히려 더 잘 산 경우도 존재한다.


프랑스는 사정이 달랐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일부 지역은 독일이 세운 괴뢰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괴뢰정부의 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영웅 페탕이었다. 나치가 패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프랑스는 나치의 괴뢰정부에 복역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무려 7,037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프랑스와 한국의 역사 청산을 비교하며 김경집은 역사가 비단 관념의 문제가 아니며 사실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는 이 시기, 김경집의 물음은 모두가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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