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고덕우는 도예를 비롯해 조소를 전공하며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해왔다. 그는 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자기의 다양성, 핸드메이드만이 가질 수 있는 대담함과 자유로움을 자신의 작업에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오랜 도자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정립하며 자신의 이름을 건 작가브랜드 ‘고덕우도자기’를 탄생시켰고, 경상도 양산에 터를 둔 작업장에서 모든 작업을 순수수공으로 하고 있다. 흙을 채취하고 고르는 최초 단계부터 성형과 가마불작업에 이르는 전과정까지 오롯이 혼자 힘으로 일궈간다.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샵’ 개관 입점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부터 해마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여하는 동시에 해외 다양한 페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흙에 대한 도예가의 집착
“어제 구운 그릇을 꺼낼 때가 됐는데, 왜 안 오시나 했습니다.” 손에 묻은 흙을 탁탁 털며 작업실에서 걸어 나오는 그의 첫인상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여느 시골 마을 이장님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정말로 동네 이장님이란다.
작업만으로도 바쁜 그가 마을 일까지 보고 있으니 동네 밖으로 나갈 겨를이 없다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지금의 동네에 들어와 정착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15년이 훌쩍 넘었다. 그를 따라 집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천연 재료로 그릇을 만드는 그가 왜 경남 양산 백록리의 이 마을에 반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덕우도자기’ 그릇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료인 황토가 집 뒷산에 오르니 한가득이며, 집 건너편 농경지는 수분 함량이 낮은 마사토 지대. 이 흙 역시 그릇의 재료가 되는데 흙에 대한 그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인들에게 좋은 흙을 찾았다는 제보를 받으면 지역이 어디든 그길로 달려가 흙을 확인하고 덤프 트럭째 담아 오기도 한다. “같은 성질의 흙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특성이 조금씩 달라 작업을 하면 발색에서 미묘한 차이가 납니다. 어떤 빛깔이 나올지 궁금해 가마에 넣고는 수시로 들여다봅니다. 매번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는 셈이지요.”
이름을 건 브랜드 ‘고덕우도자기’
그는 한때 여러 도예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백자부터 분청까지 저마다 다른 작업 스타일을 통해 흙과 유약의 특성에 대해 폭넓게 배울 수 있었고, 결국 그만의 작업 세계를 정립하는 밑바탕을 마련했다. 그는 도예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며 ‘누가 봐도 내가 만든 그릇인지 알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고덕우도자기’는 다듬지 않은 자유분방한 형태와 색감이 돋보인다. 소박하고 정겨운 느낌을 표현할 재료는 가까운 자연에서 얻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유약 역시 천연 재료를 사용한다. 의도하는 색을 내기 위해 장석유나 진사유도 사용하지만, 그의 작품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참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와 1년간 간수를 뺀 소금이다. 흙도 직접 채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유약도 직접 만들어 쓴다.
작업실 한쪽에 놓인 속이 깊은 드럼통에는 누런 색을 띠는 정체 모를 물이 가득하다. “참나무재 유약을 만들기 위한 밑준비입니다. 참나무재는 양잿물 성분이 있어 그걸 없애야 해요. 독성이 강해 생활 식기로 좋지 않을뿐더러 그릇에 얼룩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일주일 정도 물에 담가두고 수시로 물을 갈아줘야 합니다. 누렇고 미끌미끌하게 떠오르는 양잿물이 없어지면 그때 유약으로 만들어 사용합니다.”
고덕우 작가가 재유 중에서도 특히 참나무재유를 고집하는 이유는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질감 때문이다. 반면 소금은 철도 부식시킬 만큼 성질이 강한데, 황토를 바른 그릇에 소금물을 발라 구우면 최고 온도가 1320℃에 달하는 맹렬한 불 속에서 황토의 철 성분이 녹아 그릇에 용암이 흐른 듯한 흔적과 오톨도톨한 소금 알갱이를 남긴다.
“어떤 날은 종일 물레 작업을 하고, 또 어떤 날은 황토만 바르거나 유약 작업만 하기도 합니다. 열흘에 한 번 정도 가마에 불을 올리니 부지런히 작업하는 편이죠. 아침에 눈뜨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커피 한잔 마시고는 작업실로 들어가요. 그러면 아무리 내 손으로 빚고 유약을 발라도 가마에서 그릇을 꺼낼 때마다 생각지도 않은 작품을 만나게 되니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깨닫거든요. 방심하고 자만할 틈 없이 부지런히 작업에 매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흙이자 불입니다.”
이름을 내건 그릇이니만큼 시작할 때의 결심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 고덕우 씨는 아직도 남의 손이나 기계 공정 없이 홀로 작업실을 지킨다. ‘실용성을 갖춘 세간이자 작품’을 만드는 그의 그릇에는 투박하고 소탈한 멋이 있고, 느림의 미학이 있으며, 그의 가장 좋은 스승인 자연의 오묘한 신비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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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은 <행복이가득한집>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현재 작업실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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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방’이나 ‘작업실’ 은 그 단어만으로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간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동경과 기대의 대상이 된다. 《작업실, 구경》에는 이처럼 엿보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작가들의 공간이 소개돼 있다. 그곳에는 그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잘 반영한 소품과 도구들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충하며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패션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가구 디자이너, 조각가 등 스물다섯 명의 공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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