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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연애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것

인간의 고귀함과 야만성은 공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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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흑산』 출간 2주년을 기념하며 독자들과 만났다. ‘가고가리의 꿈’이라는 주제로 그들이 함께 나눈 대화는, 나아가기 위한 몸짓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꿈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곧 김훈 작가가 걸어온,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김훈이라는 이름의 ‘가고가리’

한국 문학계에서 역사 소설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 작가 김훈. 그가 『흑산』의 출간 2주년을 기념해 독자들과 만났다. 지난 11월 28일, 연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예스24와 연세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이 날의 북 콘서트에는 ‘가고가리의 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흑산』의 속표지에 실린 김훈 작가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가고가리’는 말과 배, 새의 모습을 한 상상 속의 괴수다. 그가 처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흑산』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였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에 대해 다룬 『흑산』의 이야기를 마친 후, 작가 김훈이 ‘가고가리’를 떠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괴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다윈의 책을 읽다가 상상 속의 괴수가 하나 떠오르더군요.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 거예요. 신념이나 신앙, 사회적 관습처럼 이미 주입된 생각들에서 해방되어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줬죠. 『흑산』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도 억압되고 야만적인 시대를 뚫고 어디론가 진화하려고 몸부림치다가 좌절되잖아요. 갈 수 없는 먼 곳을 향해서 가는 괴수, 그런 이미지를 종합해서 그린 것이 ‘가고가리’죠.”

결코 닿을 수 없는 땅을 향해 가고 또 가기를 멈추지 않는 ‘가고가리’. 그칠 줄 모르는 그의 몸짓은 『흑산』 속 인물들의 삶과 닮아있다. 그리고 작가로서 김훈이 남긴 궤적과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가고가리의 꿈’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가 김훈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훈이라는 이름의 ‘가고가리’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김형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두 명의 대학생(이경진(행정학과) 정진성(독어독문학과))이 동행했다. 이야기는 『흑산』 속 또 다른 ‘가고가리’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약전은 유배지의 현실을 긍정하는 사람이에요. 자기의 꿈과 이상을 유배지에서 이루려고 서당을 만들고, 그 섬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어요. 그리고 흑산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글 「자산어보」를 썼죠. 서울을 그리워하지 않고 자기가 처한 유배지의 현실을 인정한 거예요. 그런 과정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됐어요. 황사영은 생활의 토대가 전혀 없는 지식인이죠. 자기 이념에 의해서 이념적 정당성을 위해서 인간의 현실은 다 때려 부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몽상적 혁명가가 아니고 혁명적 몽상가라고 해야 맞겠죠. 그러나 정말로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죠. 나는 정약전의 편이에요. ‘인간이 시대에 의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건설하는 것이 정약전의 꿈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고귀함과 야만성은 공존하는 것

시대의 현실에 목숨 바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 꿈을 이야기하는 작가 김훈의 방식은 낭만적 이상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작품 속에서 환상이 아닌 현실을, 밝은 빛이 아닌 어두운 그림자를 가리켜왔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고 말하며 먼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이들과는 분명 다른 행보였다.

“거의 대부분의 제 소설에는 악이나 인간의 야만성이 등장하죠. 저는 이 세상의 밑바탕에 인간의 악과 폭력, 야만성과 약육강식, 억압과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그리고 인간의 아름다움, 인간의 이성, 자유나 평등을 향한 인류의 열망 또한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것은 악과 야만과 같이 존재하는 것이죠. 인간의 아름다움과 고귀함만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인간의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악의 구조를 한꺼번에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현실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김훈 작가의 목소리는 냉철하다. 관념적인 수사를 거부하고 체험을 통해 검증한 언어로만 말해왔기 때문이다.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도 직접적인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아직까지도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는 방식을 고집한다고.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작가는 ‘어깨에서부터 손가락 끝까지 작동되는 육체의 힘, 내가 살아있는 나의 몸으로 내 글을 밀고 나간다는 육체감. 그것이 없으면 글을 쓰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온 힘이 실린 손끝에서 김훈 작가 특유의 절제되고 간결한 문체가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긴 문장을 쓰다가 『칼의 노래』를 쓸 때는 짧은 문장으로 썼죠. 그때 나는 주어와 동사만으로 문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건 난중일기를 보고 배운 것이죠. 군인다운 글쓰기, 무인다운 글쓰기죠. 조선시대의 검법 책도 많이 봤어요. 칼을 들어서 적을 칠 때, 적의 몸을 베지 못하면 칼끝이 땅을 치게 될 거예요. 그 순간에 나의 전 방위는 적에게 노출되는 것이죠. 한 번에 베지 못하면 죽는 거예요. 칼을 내려칠 때 그 안에서 나의 생과 사가 명멸하는 것이죠. 그걸 보고 ‘문장이라는 것도 한 칼로 베고 나가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애란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것

북 콘서트 ‘가고가리의 꿈’을 통해 김훈 작가는 현재 청춘들이 겪고 있는 고민, 조언을 구하는 목소리들에 응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과 함께 ‘소설가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많은 학생들이 진로 선택을 앞두고 고민할 텐데요. 자신이 심취한 대상이 밥벌이가 되지 않는 일일 때는 고민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었어요. 왜냐하면 다들 밥벌이가 지겨우니까요. 그런데 밥벌이는 피할 수가 없어요. 그건 인간의 운명이죠. 낚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물고기가 먹이를 먹으려다가 자신이 먹이가 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낚싯바늘은 먹지 않고 낚싯밥만 먹을 수 있겠어요? 그건 어렵죠. 밥을 삼키는 순간에 목구멍이 낚싯줄에 걸려서 끌려가잖아요. 밥벌이를 해야만 한 인간이 완성될 수가 있는 것이죠. 제 밥을 벌어먹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인격이나 인간성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밥벌이라는 것은 자기 인간성이 훼손되어 가면서 또 인간성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밥벌이를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거기에 끌려가지 말고, 그것을 끌고 가는 수밖에 없어요. 피할 수가 없으니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죠. 그것이 밥벌이에 대한 정당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자존감과 삶의 태도에 관해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젊은이들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편이 많은 것을 아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나의 편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틀린 게 아니에요. 그리고 내 편이 많다고 해서 내가 옳은 것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작당을 해 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정의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에요. 반대로 고립됐다고 해서 정의로운 것도 아니겠지만요. 오직 세상과 치열하게 맞서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런 것이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삶의 태도는 아닙니다. 나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자기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요즘 나는 서해안에 있는 선감도라는 작은 섬에서 지내는데요. 혼자 있을 때도 내가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나는 혼자 있을 때 가득 찬 충만감을 느껴요. 나에게 혼자 있는 것은 고독이 아니라 단독이에요. 그것이 쓸쓸하거나 고독하지는 않아요. 여러분도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소통이라는 것도,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인간들끼리 소통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성적으로 떨어져 있는 존재 사이에 소통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앞으로 꼭 쓰고 싶은 주제나 인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버지와 나의 세대의 문제를 글로 써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그것이 나의 뜻대로 잘 될는지는 몰라요. 『흑산』이나 『남한산성』 같은 소설에서 그 시대의 인간의 악과 야만성을 치열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죠. 그에 못지않게 우리 아버지와 나의 시대의 야만성을 묘사해 놓아야 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세계의 거대한 악을 향해서 생명을 던져서 죽은 청년들이 많아요. 안중근 의사, 윤동주 시인, 김대건 신부, 나석주 의사 같은 청춘들이요. 그런 젊은이들에 대해서 후세의 글쟁이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고민하고 있죠.

작가님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제 방 벽에 ‘필일오(必日五)’라고 써 있어요. 하루에 다섯 장은 반드시 쓰자는 이야기죠. 좌우명이 그렇게 실무적입니다(웃음). 그 전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써 있었어요. 제가 군 생활할 때 총을 항상 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라고 분대장이 내무반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고 써 놨었거든요. 저는 그걸 방에다 써놓고 있었어요. ‘나의 언어를 항상 사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자’고 써놓은 건데, 근데 너무 공업적이어서 ‘필일오(必日五)’로 바꿨습니다(웃음). 저는 그렇게 실무적이고 노동적인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좌우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3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어떠십니까?

3인칭은 정말로 어려운 것이죠.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서 쓰겠다는 말이잖아요. (세상에는) ‘나’하고 ‘너’하고 ‘그’가 있는 것이죠. ‘그’라는 것은 제일 어려운 겁니다. 3인칭을 2인칭으로 만드는 게 연애예요. ‘그’를 ‘너’로 만드는 거예요. ‘그’라는 것은 나하고 관련이 없는 사람이에요. 객관적 사물인 것이죠. 그런데 ‘너’는 나의 앞에 있는 나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3인칭을 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3인칭 문장을 쓴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는 두려운 일입니다.




저녁이 되면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가 눈처럼 쌓이는 곳. 그 작업실을 김훈 작가는 ‘막장’이라고 불렀다. 광산 갱도의 가장 끝을 의미하는 그 ‘막장’ 말이다. 갱도의 막장은 가로막힌 벽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곳은 석탄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신성한 공간이다. 광부가 곡괭이로 벽을 찍어 석탄을 한 움큼씩 꺼내는 것처럼, 김훈 작가는 작업실에서 의미의 벽을 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렇게 ‘막장’에서 한 움큼씩 얻어낸 귀한 이야기들이다. ‘막장의 의미는 글로 쓰기 보다는 내 생애를 통해서 실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작가 김훈. 그의 작품이 언제나 기대되는 것은 그 안에 ‘막장’의 의미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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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黑山 김훈 저 | 학고재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흑산』 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 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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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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