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야만성, 후대에 물려줄까봐 두렵다” - 김훈 『흑산』
200년간 이어져 온 종교적 편견에 일침을 가하다!
1801년에 한국의 수많은 천주교도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목숨 대신 명예를 잃었다. 그 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그늘이 남았다. 그렇게 종교가 200년간 끌어안지 못했던 그늘을 한 명의 작가가 끌어안았다.
비판 없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가. 그렇다면 신은 왜 인간에게 고귀한 이성의 빛을 나눠주었는가. 신이 아닌 인간이 정한 가치에 의해서 규정되어버린 교리는 없는가.
1801년에 한국의 수많은 천주교도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목숨 대신 명예를 잃었다. 그 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그늘이 남았다. 그렇게 종교가 200년간 끌어안지 못했던 그늘을 한 명의 작가가 끌어안았다. 그 작가에겐 빛이나 그늘이나 다르지 않았다. 그늘은 빛에 의해 생긴 어둠이기에.
면도날 같은 바람에 살이 에이는 추운 날씨였다. 평일 저녁. 집에 빨리 가서 따듯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련만, 강연장은 김훈 작가를 만나기 위한 독자들로 가득 찼다.
이날의 강연을 위해 김훈 작가는 서울의 한 성당에 들러 신부님과 2시간 30분가량의 긴 담화를 나눴다 한다. 김훈 작가는 『흑산』에 담지 못했던 깊은 고민과 간절한 소망을 털어놓았다.
“야만성을 일상성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두렵다”
김훈 작가는 『흑산』을 다섯 달 반 동안 ‘선감도’라는 섬에 갇혀서 썼다. 그곳에서 김훈 작가는 19세기 초의 야만성을 기록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훈 작가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비극과 파행에 억누를 수 없는 침통함을 느꼈다 한다. 그리고 야만성을 일상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등줄기에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한다.
“인간은 당대의 야만성을 들여다보는 안목이 매우 부족하거나 거의 없는 거 같다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제가 19세기 초의 야만성을 기록했듯이, 현대의 야만성을 우리의 후대가 기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당대의 야만성은 당대에 기록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오늘의 일들이 지나간 풍문으로 떠돌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김훈 작가는 야만성을 일상성으로 받아들이는 예로 지난 청문회에서 나타난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 문제를 꼽았다. 위장전입은 엄연히 주민등록법이란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들은 이를 위반하고도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
“위장전입의 목적은 두 가지더군요. 하나는 자기 자식을 일류학교에 보내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산의 차액을 노리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범죄입니다. 그리고 제도권에 들어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는 행위이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범법행위를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생각하고 처벌하지 않더군요. 이런 것이 바로 야만성이 일상화되어가는 풍경입니다.”
고위 공직자가 스스로 위장 전입을 세 번 했노라 자백하고 동사무소에 가면 전입 기록이 있는데도 처벌하지 않는 세상. 또는 “아내가 한 일이라 자신은 모르겠다”며 발뺌하는 공직자와 위장전입을 애끓는 모성에서 발생한 맹모삼천지교라 받아들이는 국민. 이러한 소소한 일상성이 사회의 정의를 흐리는 야만성을 낳는다. 그리고 김훈 작가는 현대의 야만성을 대표하는 말로 약육강식을 꼽는다.
“저는 1948년생입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죠. 한국 현대사와 같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고조선 이후로 우리나라는 해마다 아사자가 나오고, 많은 이들이 밥을 굶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가 최초로 밥을 먹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요.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차별과 비리, 모순이 저질러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초위에 거대한 먹이피라미드가 세워졌어요.”
김훈 작가는 현대의 야만성을 후대에 물려줄 것이 두렵다고 한다. 현대의 야만성을 무를 뽑듯이 한 번에 뽑아버릴 수는 없겠지만 작은 부분부터라도 차근차근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믿습니다”
김훈 작가는 천주교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복사(服事) 일을 하며 신부님을 도왔다. 김훈 작가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로 묘하게도 『흑산』에 등장하는 정약종과 같은 세례명이다.
그런 김훈 작가는 평소 여러 종교의 경전을 두루 읽어 해박한 종교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김훈 작가를 매료시키는 것은 난해하고 복잡한 종교적 이론들이 아니다. 김훈 작가가 종교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단순성이다. 단순명료한 말들 중에서도 김훈 작가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 안에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초기 천주교인들이 천주교에 매혹된 것은 삼위일체나 부활이나 창조론이 아니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같은 단순명제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흑산』에는 그 단순성에 의지해서 억압받는 현실을 개혁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김훈 작가는 종교가 가지는 내세관이나 기적보다는 현실을 보듬는 단순한 명제들을 더 신뢰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흑산』은 현실을 벗어난 초월적인 종교의 모습은 다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순교자의 죽음을 묘사할 때도 종교인의 내면보다는 죽는 모습 자체를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지옥에도 희망을 설정해야 합니다”
김훈 작가는 하나의 종교에 심취하지 않는다. 2천 년을 넘게 이어져 온 교리의 마침표에 다시 물음표를 붙이는 김훈 작가의 사고는 종교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맹목적인 종교인들에게 있어 김훈은 냉담한 이단자다. 그럼에도 김훈은 자신의 신념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다. 김훈 작가는 종교가 말하는 ‘지옥’을 믿지 않는다 한다.
“천주교가 말하는 지옥은 형벌이 영원한 곳입니다. 즉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곳에도 희망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종교가 성립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생각을 신부님께 이야기해봤지만,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더불어 김훈 작가는 권력화된 종교가 가지는 야만성을 염려한다. 1801년의 천주교 박해를 전근대적인 조선사회의 야만성으로 규정짓기 마련이지만, 이 역시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다.
1801년(신유년) 천주교 박해가 일어난 가장 큰 동기는 로마교회가 북경 천주교를 통해서 한국의 제사를 금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한국의 많은 교인이 제사를 거부했다. 조선왕조는 충효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던 정치권력이었기에 제사의 거부는 반체제적인 행위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로마교회와 북경교회는 한국의 제사를 미신이고 우상숭배라 규정했다.
“한국인에게 제사란 근본적으로 조상을 경배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미풍양속이었습니다. 미신이라는 잣대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것이죠. 로마교회나 북경교회는 한국의 문화적 현실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몽매했던 것입니다.”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가치를 강요하는 것 역시 권력화된 종교가 보여주는 또 다른 야만성일 수 있다. 김훈 작가는 그런 권력화 된 종교의 야만성을 개개인의 삶으로 옮겨놓는다. 『흑산』에는 그런 야만성에 짓밟히고 투항하고 또다시 저항하는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배교자란 말은 틀렸습니다. 폭력으로 강요된 배교는 배교가 아닙니다”
『흑산』에는 많은 순교자와 배교자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인물들이 나온다. 김훈 작가는 한 사람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을 두루 다루고 있다. 그 다양한 인물 중에 김훈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배교한 하급 무관 ‘박차돌’과 ‘마노리’라는 마부다. 순교를 통해 이름을 남기고 우러름을 받는 사람이 아닌 신분적으로 비천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인 것이다.
특히 박차돌은 폭력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김훈 작가는 박차돌과 같은 인물을 배교자로 낙인찍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실제 1801년 천주교 박해에서도 많은 이들이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배교를 택했다. 그중에는 배교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숨이 끊긴 사람도 있다. 그런 이들을 모두 배교자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김훈 작가는 신부님을 만나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저는 당시에 저질러진 일들은 배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형법에서도 고문에 의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폭력과 죽음 앞에서 신념을 꺾어야 했던 사람들은 다 구원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1874년 ‘달레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를 통해 폭력 앞에 굴복한 이들도 배교자라 칭하고 지옥에 갔노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옥이란 영원히 희망이 없는 고통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일생을 고통 받고 자신이 믿는 종교마저도 ‘믿는다’ 말하지 못한 존재들. 삶의 희망을 오로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단순한 명제 하나에 기대야 했던 비루한 삶을 산 사람들. 배교자의 대부분이 그런 힘없는 이들이었을진대, 천주교는 이들을 불구덩이 속에 넣고 외면해버릴 수 있는 것인가.
끝까지 신념을 지키고 죽음을 선택한 이들은 물론 성인이다. 하지만 누구나 성인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성인이고 존경받는 것이다. 종교는 일상의 종교여야 한다. 죽음과 폭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끌어안아야 진정 종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훈 작가는 세속인으로서 보편타당한 바람을 말한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쩔 수 없이 배반한 자들을 모두 품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게 속인으로서 살아가는 저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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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이후 우리는 이 소설을 기다려왔다 성(城)을 나온 김훈 섬(島)으로 가다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15년 전 일산으로 이사온 뒤에 자유로를 타고 한강을 따라서 서울에 드나들었다. 귀가하는 저녁이면 하구 쪽으로 노을이 넓고 깊었다. 옛 양화진(楊花津) 자리에 강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