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클럽이 좋아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빨리 판단해야 한다. 상대가 어떤 부류인가. ‘음악’을 물어보는 건가, ‘물’을 물어보는 건가. 하지만 대개는 둘 모두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클럽 가지 말고 파티 가세요” 클럽은 그저 공간일 뿐 그곳의 콘텐츠를 채우는 것은 파티이니, 도대체 무슨 파티가 열리는지 알고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가는 게 제일이란 뜻이다.
좀 더 깊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추천하고 싶다. “파티 말고 디제이 보러 가세요” 파티 브랜드가 독특한 컨셉과 의상 등을 내걸 수는 있지만 결국 음악을 트는 것은 디제이다. 음악의 성향과 완급조절에 따라 그 날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직도 ‘어느 클럽이 핫한지’를 찾고 있으신지? 포스터에 적힌 디제이의 이름을 보면 그 날 밤이 어떤 분위기일지 대번에 감을 잡을 수 있다. 크라잉넛과 김동률의 밤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디제이를 보러 가야할지? 이들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도 거의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선택해야할지? 그래서 준비했다. ‘꼭 알아야 할 한국의 디제이들’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면 그 파티는 꼭 한 번 가볼만하다. 가서 한국 최고의 실력을 맘껏 누려볼 기회다.
디구루(Dguru)
클럽 카고와 앤써 시절의 디구루를 ‘신’이라고 부르던 사람도 있었다. 그는 이미 2006년에 파스텔 뮤직을 통해 프로듀싱 앨범
<Address>를 발표했다. 지금은 이디오테잎(Idiotape)의 리더로 더 유명해졌지만 한 때는 디구루를 모르고 디제이를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문스트럭 시절부터 호기심을 갖고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었다는 디구루는 현재는 이디오테잎의 활동과 함께 볼트 에이지(Volt Age)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디제이들의 공연과 앨범 발매를 이끌고 있다. 한 때는 1세대들의 막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디제이들이 더 인정하는 실력파 선배로 통한다. 이디오테잎의 공연에서 감동을 경험했다면 그의 디제이 셋도 꼭 한 번 들어볼 것을 권한다.
디제이 한민(DJ Hanmin)
클럽에서 한국말로 된 EDM 트랙을 들어봤다면 한민의 곡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한국말로 된 댄스 트랙은 나이트에서나 나오는 것이란 편견을 깨고 자신이 직접 쓴 한글 가사로 음악을 만든다. 그리고 리믹스와 믹셋 작업보다도 더 많은 오리지널 곡들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것들로 클럽 플레이를 채운다. 한국에서 가장 프로듀서 지향적인 디제이가 바로 한민이다. 최근엔 정규 앨범
<My Life>를 발표하고 전국 투어를 돌고 있다. 디제이가 앨범 발표 기념으로 전국 투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한민은 티에스토(Tiesto)의 라이브 DVD를 보고서 디제이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디제이의 공연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열광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고. 한국 대형 클럽의 역사를 다시 썼던 홍대 엠투(M2)의 메인 디제이로 활약하다가 현재는 레지던트를 벗어나 프로듀서, 타임 디제이로 활동 중이다. 위 아 트렌드(We Are Trend) 파티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금까지 수천 번 플레이를 하는 동안 한 번도 춤을 추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 여유, 즐기는 얼굴이 디제이 부스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다.
그의 활동 영역은 디제이를 넘어 다양하다. 내가네트워크와 계약한 작곡가로 가요 쪽에서도 다양한 편곡, 리믹스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디제이 장비 업체인 디제이 코리아의 공식 스폰서 디제이다. 한국 콘서바토리의 일렉트로닉 음악 프로듀싱 교수이기도 하다.
바가지 바이펙스써틴(Bagagee Viphex13)
테크노는 하우스보다 무겁다. 톤 단위의 무게를 싣고 빠른 비트로 달린다. 가볍고 해피한 분위기보다도 깊고 어둡게 몰입하는 강렬한 기운이 있다. 바가지는 한국의 대표적인 테크노 디제이다. 그의 셋은 즐겨 입는 검은 옷만큼이나 남자답고 강렬하다. 세게 달리고 싶다면 바가지의 디제잉을 보러 가길 추천한다.
바가지는 프로듀서로서도 한국을 대표한다. 최근에 세계적인 테크노 레이블 1605에서 트랙을 발표하면서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는 그는 파티 포스터는 물론이고 자신의 로고와 각종 의상 등을 손수 디자인한다. 한 때 그는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으로도 디제이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북방노스페이스(BNS), 베이스 어택(Bass Attack)의 멤버이기도 하다. 요즘은 디제이들이 크루를 만들어 ‘음악적인’ 파티를 많이 연다. 한국의 클럽 파티들은 양적으론 성장했지만 다양성 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확실한 개성과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디제이들도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것을 감안한다면 바가지는 더 대단한 디제이다.
사이온즈(Sionz)
최근에 EDM 계열에서 가장 떠오르는 디제이 중 하나다. 사람들이 계속 ‘시온즈’라고 부르자, 얼마 전엔 직접 ‘사이온즈’라고 이름을 정정했다. 한 때 힙합 믹싱과 스크래치에 열정을 가졌던 그는 최근엔 일렉트로닉으로 전향해 EDM 계열의 프로듀싱과 디제잉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에이트랙(A-Trak)과 유사한 턴테이블리즘-일렉트로닉 퓨전의 셋으로 2009년 PKDC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예전에 그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음악과 씬 전체에 대해 할 말과 문제의식이 많은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한국에도 데이비드 게타(David Guetta) 같은 세계적인 디제이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국내 최초로 비트포트(Beatport)에 음원을 유통할 판로를 개척한 사람 중 하나다. 한 때 비트포트에 유통하려면 그를 거쳐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사이온즈 이전에 디제이 메크로(MechRo)로 활동할 당시엔 웻쉐이크(Wetshake)라는 레이블을 만들어 인디 댄스(Indie Dance) 파티를 벌이고 다양한 음악을 한국 클럽 씬에 소개했다.
스케줄 원(Schedule 1)
원래 힙합 디제이로 유명했던 스케줄 원은 최근에 일렉트로닉으로 장르를 바꿨다. 힙합의 스킬과 일렉트로의 대중성이 더해지면서 그의 주가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라디오에 나가 믹스한 경험이 많은 그는 한국에 ‘디제이’란 직업을 대중화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최근엔 엔트랩(Entrap)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팀 단위의 파티와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
매니아들의 클럽을 벗어나 가요, 방송, 디제잉 세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부 영역으로 가장 많이 뻗어나간 디제이가 바로 스케줄 원일 것이다. 최근에는 하우스 계열의 프로듀싱으로도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올해 5월에 발표한 「Baile」은 앱솔루트 그루버스(Absolut Groovers)의 리믹스 버전으로 비트포트의 하우스 차트에서 21위를 기록했다.
엉클(Unkle)
엉클은 한국 디제이의 역사 그 자체다. 어렸을 때 미군 부대의 클럽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시작해 영등포의 돌체 음악 다방, 서교호텔 나이트클럽 ZZQ, 시티비트 레코즈의 사장님, 한국의 1세대 일렉트로닉 클럽인 M.I, 홍대 클럽데이를 주도했던 대형클럽 M2까지, 그가 밟아온 디제이의 인생만 들어도 한국 디제이들의 역사가 한 눈에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M2에 가면 앞 시간대에 플레이하고 있는 그를 볼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하고 세련된 선곡과 믹싱이 탁월하다. 한 때는 트랜스 디제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일렉트로 하우스, 테크노 등의 M2 색깔에 맞춘 음악을 틀고 있다. 이름이 엉클인 이유는 과거에 “디제이 아저씨!”라는 칭호로 많이 불렸기 때문이라고. ‘Uncle’이 아닌 ‘Unkle’인 이유는 한국(Korea)의 ‘K’를 따왔기 때문이다.
디제이 짱가
한국에서 스크래치를 가장 잘하는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디제이가 꿈꾸는 지망생들이 턴테이블리즘이란 장벽에 부딪힐 때 소문을 듣고 찾아가는 1순위의 선생님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스크래치는 뉴 스쿨의 현란한 곡예보다도, 올드 스쿨의 쥐락펴락 하는 평키한 리듬감에서 탁월하다. 디제이 주스(DJ Juice)와 함께 만들었던 버스트 디스(Bust This)의
<Hello! Bust This>는 대중적인 턴테이블리즘의 좋은 예로 손꼽힌다.
최근엔 프로듀서 TKO와 함께 더블덱(Double Deck)을 결성해 활동하는 중이다. 비트박스, 스크래치, 다양한 디제잉 장비를 활동해 연주하는 라이브 퍼포먼스 팀이다. 일렉트로닉과 록의 조합이 이디오테잎이라면, 조금 더 힙합과 턴테이블리즘으로 기울은 것이 더블덱이랄까? 인터넷에 올린 싱글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미국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팔로알토가 소속된 하이라이트 레코즈의 메인 디제이이기도 하다.
디제이 코난(DJ Conan)
힙합 클럽들이 장르적 정체성을 잃고 점점 어린 애들의 나이트클럽처럼 변해갈 때, 사람들은 좋은 선곡을 찾아 그의 클럽 유니온(Union)으로 향하곤 했다.
그의 믹스는 대중적이면서도 디제이스런 멋을 안다. 하우스, 힙합, 브레이크, 팝에 이르는 올카인드를 선보이면서도 너무 싸지 않게 댄스플로어에 최적화된 보석들을 잘 골라낸다. 턴테이블리즘과 일렉트로닉을 고루 경험한 그는 스크래치와 이펙터를 섞어가면서 때로 화려한 손놀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난처럼 다이나믹하고 신나게 믹스하는 사람이 드물다.
스무드, 앤도우, 킹맥과 함께 만든 데드엔드(Deadend) 크루도 주목해야 한다. 클럽이 많아지면서 너도나도 파티들을 하는데, 실력 좋은 디제이들이 모여 음악적인 파티를 벌이는 건 손에 꼽을 정도다. 평범한 비트포트 차트 믹스가 아닌 자기만의 개성이 확실한 음악을 듣고 싶다면 데드엔드 파티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pae)
요즘 클럽에서 사라진 풍경이 있다. 바로 CD를 갈아 끼우는 모습이다. 디제잉 장비가 발전하면서 무거운 CD, LP 가방은 선사시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젠 USB만 갖고 다니면 된다. WAV 파일로 틀면 음질도 좋다.
하지만 소울스케이프는 LP를 튼다. 평론가들도 구하기 힘든 희귀한 LP들을 갖고 다니며 아날로그 질감 그대로를 선사한다. 그는 디제이들의 가장 고전적인 진정성을 쫓아간다. 음악 지식도 방대하다. 본래의 주 장르였던 힙합은 물론이고, 록에서부터 옛날 가요들까지 모르는 음악이 없다. 디깅, 믹싱, 프로듀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디제이들의 역사를 새로 쓴 360의 리더이기도 하다.
디제이 손(DJ Son)
디제잉의 기본은 믹싱이다. 2곡을 1곡처럼 섞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연주다. 장비의 특성을 이용해 곡에 없는 소리를 만들고 개입하는 것이다. 스크래치가 대표적이다. 믹싱은 빠른 사람은 1달이면 한다. 하지만 스크래치는 기본기에만 1년은 걸린다. 이것은 거의 기계체조다. 쉽게 따라하기 힘든 넘사벽의 연주다. 그리고 디제이 손은 한국에서 스크래치를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났다.
그는 이미 한국 무대를 뛰어 넘은지 오래다. 아시아권에서 가장 잘하는 테크니션 중 하나다. 2002 시드니 DMC 솔로 챔피언, 2005년 호주 노스코스트 ITF 챔피언이다. 특히 그의 장기는 저글링이다. 턴테이블리즘에서도 고급의 기술에 속하는 이 트릭 믹싱을 디제이 손은 컴퓨터 자판 두드리듯 편하고 능숙하게 한다. 그의 저글링 셋을 보고 있으면 입이 쩍 벌어진다. 누가 디제잉을 ‘재생 버튼 누르는 거’라고 말하는가. 이것은 아트다.
글/ 이대화(dae-hwa82@hanmail.net)
[관련 기사]
-디제이는 래퍼의 백업이 아니다! - DJ Shadow
-프라이머리 “트렌드를 좇는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아요”
-화나(FANA) “평생 완벽하지 않은 뮤지션으로 남고 싶어”
-역대 한국 최고의 라디오 DJ는 누구였나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