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핫한 프로그램을 뽑자면 단연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 속에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숨어 있다. 언뜻 보기에 <라디오스타>의 포맷과 비슷하면서 <안녕하세요>의 시청자 고민을 들어주는 형식과도 유사하다. 또 무엇보다 케이블에서만 가능한 <SNL>의 19금이 더해진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신동엽’이다. <썰전>에서 이윤석은 신동엽의 개그를 ‘사후합리화’ 개그라고 평했다. “너 섰지?”라고 말해 모두가 은밀한 상상을 하게끔 만들어놓고 “아니, 머리카락이 쭈뼛 섰냐고,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라며 슬쩍 꼬리를 내리고 야한 상상을 한 상대방을 머쓱하게 만든다. 이것이 신동엽의 매력이고 <마녀사냥>에서 그의 역할이다. 단순히 야한 농담을 잘 하는 진행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개인 인터넷 방송이 보편화되어 있는 시대에 대중들을 충족시킬만한 야한 농담은 천지에 깔려있다. 단순히 야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
10년이 넘게 예능을 장악하고 있는 유재석과 강호동, 이 양대 산맥이 저물고 있다. 유재석은 지금도 배려의 아이콘으로 그의 됨됨이는 인터넷 곳곳을 누비고 있지만 그에게서 또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역사로 기억될 <무한도전>을 지금도 이끌어가고 있는 성실성과 집념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만에 복귀한 강호동도 여러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둘의 상승세가 주춤한 가운데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이 바로 신동엽과 김구라다.
한 때 사업에 빠졌던 신동엽이 다시 방송에 전념한 뒤로 단언컨대 지금이 최고의 전성기라는 생각이 든다. 신동엽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소화할 사람이 대한민국에는 없다. 물론 야한 이야기라면 김구라도 빠지지 않는다. 단 김구라가 야한 이야기를 하면 반감이 드는 반면에 신동엽은 야한 이야기도 너무 야하지 않게 슬쩍 빠져나가고 재미없는 이야기도 야한 쪽으로 끌고 들어가면서 프로그램의 수위를 조절하는 데 천재다.
아무리 여성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19금 토크라고는 하나 방송인 이상 어느 정도의 수위조절은 필요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입담은 좋지만 방송을 통해 나갈 때 그것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는 성시경과 허지웅, 샘 헤밍턴을 잘 지휘하면서 숨겨진 매력까지 끌어내고 있다. 시청자의 사연을 읽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연기력이 관건이지만 성시경을 제외하면 그리 매끄럽지 않다. 이것을 결코 단점으로 여기지 않고 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이용한다. 이런 솔직함이 또 다른 매력인 것이다.
<마녀사냥>이 신동엽의 매력을 십분 활용했다면 반대로 <마녀사냥>의 가장 큰 수혜자는 성시경이다. ‘내게 오는 길’을 통해 발라드의 왕자로 등극한 성시경은 그 달달한 목소리 때문에 한순간에 남자들의 적이 됐다. 또 연예인은 공부와는 멀다는 편견을 깨고 지적이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성의 이미지는 그를 한순간에 비호감으로 만들어버렸다.
노래는 잘하지만 낯간지럽고 잘난 체하는 줄 알았던 그가 <마녀사냥> 속에서는 달랐다. 자신의 그런 이미지를 인정하고 스스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벗어나는 방식이다. 조성모의 경우 매실음료 광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신해서 결국 하락세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면 성시경은 자신의 그런 이미지를 이용하고 있다. 특유의 달달한 목소리로 이성적으로 남성들의 허점을 꼬집는 발언을 하자 샘은 그런 것 때문에 남성들이 성시경을 싫어한다고 공격한다. 이에 성시경은 당황하지 않고 라디오의 유행어인 ‘잘자요’로 응수한다. 자신이 공격받는 이미지를 역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면서 그 이미지가 내포하던 의미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이미지이되 그 이미지의 의미를 바꿈으로써 쉽게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돌아선 것이다.
댓글을 보니 자신도 술자리에서는 신동엽 저리가라의 말솜씨를 선보일 수 있다는 네티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방송은 술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술자리에서는 어느 정도의 실수가 용납된다. 일단 술이 들어가면 완전히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하기도 쉽고 그것이 술자리라는 이유에서 용인된다. 하지만 방송은 술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술 없이도 평소에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것이 바로 진행자의 역할이다. 앞으로 흔한 술자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편안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깊이 있는 남녀 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더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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