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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나쁜 인간인가에 대한 지옥도 <사이비>

인간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탈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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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은 <사이비>를 통해 믿음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죽을병마저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믿음,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저 기도만 하는 믿음, 믿기만 하면 모든 불행이 사라지리란 믿음, 그리고 그 사이 믿음을 이용해 돈을 챙기려는 사람과 믿음에 현혹된 방관자들까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은 서로 배신하고 충돌하지만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변질되면서도 끝까지 달려간다.

‘가끔’ 종교란 것이 그렇다. 아니, 강제된 종교란 것이 그렇다. 종교의 본질이 ‘절대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생과 구원’이라는 사후적 요구, 즉 믿음으로 얻어지는 소득, 보상의 측면에 있다는 사후적 요구가 강조되면서, 종교적 믿음을 통해 나에게 복이 오길 간절히 바라는 기복(祈福)의 욕망이 앞설 때 종교는 일종의 대의명분과 충돌하는 광기가 된다. 광기에 사로잡힌 개인을 모으거나 혹은 각각을 현혹해 광기에 사로잡힌 집단을 만들어 내면 그 순간 종교는 흔한 말로 ‘사이비’로 변질 된다. 그 과정에서 믿음이라 불리는 환상을 통해 개인이 얻게 되는 온전한 대가, 흔히 말하는 기도의 선물 혹은 믿음의 답을 얻기 위해 원인과 과정을 조작 혹은 왜곡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광기에 사로잡히면, 믿음을 방해하는 타인은 제거되어야 하고 나의 믿음을 위협하는 것들도 엄밀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야하는 이유는, 개인의 믿음과 늘 손을 맞잡고 동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신’이기 때문이다.


<악마의 씨>


<불신지옥>

사이비 종교, 특히 기독교 교리와 관련한 사이비 종교 혹은 광신도의 광기에 대한 영화는 이제까지 꽤 많이 만들어졌다. 오컬트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68년작 <악마의 씨>는 일상의 껍질 속에 도사린 평범한 이웃이 하나의 광기에 사로잡혔을 때의 공포를 그려낸 작품이다. 가장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을 통해 전파되는 종교적 광신의 공포는 지금 봐도 서늘하고 차갑다. 김태곤 감독의 2008년 영화 <독>은 정제되지 않은 종교적 믿음이 삶이 ‘독’이 되는 과정을 그려낸 심리 스릴러 영화로 기복신앙으로 변질된 종교의 폐해를 그려낸다. 2009년 개봉한 이용주 감독의 영화 <불신지옥>은 광신에 이르는 욕망의 이면에, 극악하게 자리한 개인의 욕망을 헤집는 영화였다. 일례로 이 영화에는 신의 존재 혹은 광신의 힘을 끝까지 부인해 온 형사 태환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픈 딸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는 자신이 세운 체계와 가치관을 일거에 거부하고 가장 극악한 광신의 세계로 빠져든다. <불신지옥>에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속이건, 정통 기독교건 혹은 광신이라 불리는 사이비 종교건 사실은 그 형태만 다를 뿐, 개인의 욕망을 위한 기복이라는 동일한 본질에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맹목적 믿음의 강요, 그 잔인한 폭력


<돼지의 왕>

앞서 언급한 영화들처럼, 맹목적인 믿음에의 강요가 현실의 공포가 되어 드러나는 은유는 어쩌면 지극히 사실적인 현실의 투영이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사이비> 역시 그 제목처럼 사이비 종교가 강제하는 믿음의 폭력성과 결코 수정될 수 없는 오류에 빠진 집단 광기가 자아내는 공포를 그려낸다. ‘잔혹 스릴러’라는 표제처럼 수위 높은 폭력장면과 어른들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강도 높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2011년 <돼지의 왕> 이후 2년 만이다. <돼지의 왕>은 1억 5천만 원이라는 제작비와 1년이라는 짧은 제작기간에 탄생했지만, 현실에 대한 극단적 절망이라는 명확한 지점을 향해 쭉쭉 뻗어가는 탄탄한 이야기와 실사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준 출연배우의 살아있는 목소리 연기 덕분에 생생하게 빛나는 영화가 되었다. 신작 <사이비> 역시 강제된 믿음이 내포하고 있는 깊고 질긴 폭력을 말하는데, 그 메지시는 <돼지의 왕> 만큼이나 적나라하고 지독하다.


<사이비>의 배경은 수몰 지역으로 지정된 한 시골 마을이다. 마침 두 부류의 나쁜 인간이 마을에 공존하게 되면서 충돌이 일어난다. 한쪽은 젊은 목사를 앞세워 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 최경석 일당이고, 다른 부류는 노름과 싸움을 일삼는 폭력배 김민철이다. 각자 따로 나쁜 짓을 하던 최경석과 김민철이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시비가 붙으면서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시작된다. 최경석 일당이 벌이는 사기 행각에 마을 사람들 모두 속아 넘어가지만, 마을에서 가장 흉악한 인간인 김민철은 그들이 사기꾼임을 처음부터 감지한다. 하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은 김민철의 말은 누구도 믿으려 들지 않는다. 즉 마을에서 가장 악한 자만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이 모순은 하나의 지옥도를 그리며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긴장감의 기저가 된다. 연상호 감독은 출구가 없는 믿음이 구원이 아니라 출구 없는 폭력이 되어 하나의 거대한 지옥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그려내는데, 어두우면서도 간결한 그림체와 탁월한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어우러져 사회적 병폐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극화한다. 이미 <돼지의 왕>에서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 양익준 감독과 배우 오정세가 다시 한 번 <사이비>에서 배역을 맡아, 애니메이션의 세상을 생생하고 적나라한 실사의 세계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애니메이션 <사이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악인이다. 물론 선량한 목사는 늘 기도하지만, 때론 쉽게 속아 현혹되는 그 유약함 자체도, 선악을 구별 못하는 무지함도 모두 악의적인 방치라고 <사이비>는 말한다. 목사는 늘 기도하지만, 악행에 무지해서 결국 폭력적 악인과 다름없이 사람들을 현혹한다. 결국 <사이비>에서 던지는 질문은 누가 선인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쁜 이 인간들 중에 누가 가장 나쁜 인간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쾌한 질문은 폐쇄된 마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속한 현실, 내가 사는 한국이라는 땅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 감각을 일깨운다. 수몰지역으로 지정된 외진 시골마을은 공포의 공간이 되고, 이 지옥도는 우리가 사는 현실로 툭 튀어나와 재현된다.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를 통해 믿음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죽을병마저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믿음,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저 기도만 하는 믿음, 믿기만 하면 모든 불행이 사라지리란 믿음, 그리고 그 사이 믿음을 이용해 돈을 챙기려는 사람과 믿음에 현혹된 방관자들까지. 이런 사람들의 믿음은 서로 배신하고 충돌하지만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변질되면서도 끝까지 달려간다. 거짓된 믿음을 깨부수려는 자의 말은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거짓된 악과 맞서는 사람은 그 악인 못지않게 악하다. 악에 맞서는 악의 대결, <사이비>의 충돌이 하드보일드가 되는 이유이다. 영화의 제목 사이비(似而非)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사이비>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제목과 달리 영화 속 충돌하는 대상과 그 주체가 알고 보면 본질적으로 ‘악’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구원받기에 이미 너무 썩었고, 인간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탈출구가 없다는 감독의 근원적인 세계관은 폭력적인 믿음이 야기하는 지옥도라는 폐쇄적인 이야기 <사이비>에서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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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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