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백은 90년대 초반부터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2011년) 한국관 단독 작가로 참가해 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동안 출품작이 모두 예매된 것으로, 세계적 작가 팡리준, 세계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인물 마이클 제이콥스가 이미 비엔날레 전 그의 작품을 구매한 것으로 호사가들의 입을 즐겁게 했다. <르 몽드>에서 미술평론가 필리프 디장Philippe Djian이 ‘주목해야 할 두 개의 전시관’으로 스위스관과 한국관을 꼽기도 하며 자랑할 만큼 후광을 얻었다.
‘예술 하지 않는 이용백’이란 없다
오랜 벗인 공간 디자이너 김백선 씨(백선 디자인스튜디오 대표)가 설계한 이 집은 ‘보호’ ‘온기’ 대신 ‘전시展示’ ‘예민함’ 같은 단어로 채워진 듯하다. 지진계보다 예민한 예술가의 울타리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집에서 예술과의 혈투 같은 열애를 택해 사는 그. 이 남자의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그 삶의 지향점인 예술을 이야기해야 한다. 애당초 ‘예술 하지 않는 이용백’은 그의 삶에 없는 거니까.
“예술을 하게 된 이유요? 제가 감동을 받아봤기 때문이에요. 나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를 다 하는 제겐 ‘무엇으로 그릴까’보다 ‘무엇을 그릴까’가 더 중요하죠. 독재 정권 시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선생님들이 대부분 미니멀리스트였어요. 예술이란 영역은 무척 넓은데 왜 이 좁은 영역에 날 가둬야 하나 고민했죠. 그러고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가 백남준,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이렇게 세 분인데, 요셉 보이스에게 배우려고 독일로 간 거죠. 이미 돌아가신 뒤여서 직접 배우진 못했지만 작업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존경하는 세 예술가의 행로처럼 예술이라는 건 스스로를 해방하고, 다른 사람의 선입견과 편견을 깨부수는 거라고 봐요. 전 그게 감동을 주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 말라’의 세상이 아니라 ‘해봐라, 해보다가 후지면 안 하면 된다’의 세상을 그들에게서 본 거죠.” 그는 그렇게 모험과 실험, 도발을 자신의 무기이자 닻으로 삼았다. 그렇게 뭐든 ‘해보다’ 보니 미디어아트, 회화, 조각, 설치 등을 모두 하는 ‘종합반’ 작가도 됐다.
잘 노는 남자, 잘 치유하는 남자
이용백 씨의 인생에서 그의 삶을 밀고 당기고 있는 것은 바로 솔직함과 단순함이다. “어릴때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한 짓을 지금 다 하고 살아요.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기도 하니까. ‘낚시질’ ‘오디오질’ ‘자동차질’…. 잘 노는 건 결국 자기를 치유하는 것이니 최대한 잘 놀려고 해요. 내 행복은 역시 남들 하지 말라는 짓 하고 사는 거!” 그는 낚시 채널의 패널로 참여할 정도로 바다낚시광이다. 욕실 벽에 작품처럼 낚싯대를 ‘모셔두기도’ 했다. 스쿠버 다이빙에도 열광하는 그는 지금까지 수백 번을 물속에 들어갔다. 또 빈티지 오디오 마니아인 그의 집에는 1950년대생부터 1970년대생까지 빈티지 오디오와 스피커가 곳곳에 놓여 있다. “홍대 앞에 있는 ‘블루스 하우스’란 오래된 카페에서 혼자 술 마시며 에스키스(작품 구상을 위한 밑그림 작업)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김포로 이사 오니까 갈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그곳에 준하는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면 되겠다 싶어 하나씩 사 모은 거예요. 작업실의 6m짜리 문을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 놓으면 참 행복하죠.” 그렇게 그에겐 안식이 있다. 하긴 예술이 매일 그렇게 덮어 누르기만 한다면 얼마나 버겁고 지겨운 인생일까.
이용백의 심플 라이프
홍대 동기동창생인 김백선 씨가 설계한 이 집은 단순하고 간소하다. “최대한 단순하게, ‘쎄게’ 지어달라”는 그의 요구에 친구는 “이용백은 우직하고, 헛기교가 없고, 선이 굵다. 그러니 그렇게 짓겠다”라고 화답했다. 김백선 씨는 집을 세 덩어리로 나누어 천장고가 높은 작업실, 이용백 씨의 살림집, 2층 구조의 미디어 작업실로 만들었다. 외관이나 실내나 너무 간소해 양념이 부족한 음식 같지만, 고명을 얹지 않은 음식의 담백함 같은 맛이 나는 집이다.
“어릴 때 ㅁ자 한옥에 살았는데, 마루 뒤에 네모난 창이 있었어요. 그 뒤란에 할머니가 꽃을 심으셨는데, 바람 타고 향기가 들어오던 그 기억이 생생해요. 이 집에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멋이 스며 나오길 바랐어요. 백선이는 이 집에 ‘움직임’이라는 에너지를 심어줬죠. 긴 담벼락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채와 채를 넘나드는 동안 움직이는 이의 시점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에너지. 저는 모든 통로에서 소나무가 보이게끔 건물 사이사이에 소나무를 심었어요.” 그 소나무 중 특히 두 채의 집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가 아름답다. 비가 오면 브론즈처럼, 달이 뜨면 고승처럼 보이는 나무. 해가 뜨면 그림자로 벽에 수묵화를 그리는 소나무다.
디자이너인 친구가 집의 틀을 만들었다면 아티스트인 집주인이 집 안을 다듬었다. 집을 짓고 난 폐목재로 직접 침대, 식탁, 콘솔까지 만들었다. 조립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는 모형 배 여러 척도 들여놨다. 이렇게 그의 살림집에는 알아봐달라고 말 걸지 않지만 슬몃슬몃 눈이 가는 것들이 있다.
“늦게까지 작업하다 점심때쯤 일어나서 밥하고, 저녁은 사 먹고, 아버지가 가꾸는 텃밭에도 갔다 오고, 강화시장에도 가고. 백선이가 집에는 책을 두지 말라길래 살림집에선 책도 안 봐요. 작업실과 집이 같이 있다 보니 일상이 엉키기 쉽잖아요. 그냥 뭐 그래요. 단순하죠.”
이야기가 끝날 무렵, 산허리로 석양이 내려와 있었다. 예술가의 삶의 목록을 고작 원고지 몇 장으로 섭렵하는 건 무모한 짓이다. 게다가 그는 심플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서랍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그걸 이해하기에 하루해는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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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글은 <행복이가득한집>에 연재되었던 기사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으로, 현재 작업실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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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방’이나 ‘작업실’ 은 그 단어만으로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간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동경과 기대의 대상이 된다. 《작업실, 구경》에는 이처럼 엿보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작가들의 공간이 소개돼 있다. 그곳에는 그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을 잘 반영한 소품과 도구들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상충하며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책을 통해 화가, 사진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패션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가구 디자이너, 조각가 등 스물다섯 명의 공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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