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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묻어둔 진실을 위해 모든 것을 건 남자, 그리고… 『64』
쇼와 64년(1989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64』 는 경찰조직 내부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그러나 가슴 아프게 풀어낸다. 과연 청장 시철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형사부가 감춘 고다 메모의 실체는 무엇일까? 경무부와 형사부의 대립이 극한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64』 는 거대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유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지방 신문 기자 출신인 요코야마 히데오는 경찰과 언론사에 소속된 ‘조직의 인간’을 기막히게 그려낸다. 시민을 보호하고 범죄자를 사냥해야 하는 경찰이라는 조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의감과 헌신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찰조직 안에도 지저분한 이전투구와 정치싸움이 있고, 노골적인 시기와 질투도 있다. 『클라이머즈 하이』 에서는 특종을 둘러싼 기자들의 모습을 통해 ‘보도’의 맨얼굴을 치밀하게 파고 들어간다. 냉정한 시선이지만 요코야마 히데오는 너그럽다. 어떤 종류의 인간을 그릴 때에도 연민이 들어가 있다. 조직에서 망가지는 사람도 있고, 철면피가 되어 모든 이들을 물어뜯으며 살아가는 인간도 있고, 그럼에도 자신의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 모두를 요코야마는 ‘조직’이라는 틀을 통해서 바라본다.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를, 왜 그렇게 망가져 가야 하는지를.
『64』 는 한때 투병 중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요코야마 히데오가 10여년 만에 발표한 2,400매에 달하는 대작이다. 일선 형사로 뼈가 굵은 미카미는 지금 D 현경의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결코 원치 않은, 아니 형사라면 누구나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경찰조직의 노른자위는 경무부에서 차지하고 있다. 그들이 인사권도 가지고 있고, 상층과 가까워지는 출세 길도 열려 있다. 경무부에서 승진하다 보면 반드시 형사부장도 언젠가는 맡게 된다. 하지만 경찰 조직에서 중심은 형사다. 오로지 범인을 잡는 것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형사들. 그들만의 룰이 있고, 그들만의 프라이드가 있다. 어디까지나 경찰은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조직이다.
지금 미카미는 구석에 몰려 있다. 딸인 아유미가 가출하여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딸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며 집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처음 홍보담당관이 되었을 때는 형사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소신대로 일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유미의 실종을 알리고 상사의 도움을 받았을 때부터 미카미는 자신이 ‘경무부의 개’가 되었음을 알았다.
복종을 거부해온 지방 총경이 함락되는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금테 안경 너머의 눈이 미카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몸속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었다. 약점을 잡혔음을 깨달았다.
상부에서는 곧 경찰청장의 현지시찰이 있으니 기자단과의 회견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회견 장소는 경찰 내부에서 ‘64’라고 부르는 미해결 유괴사건의 현장이다. 쇼와 64년(1989년)에 아마미야 쇼코라는 소녀가 유괴 살해되었고 대규모 수사를 벌였지만, 유괴범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D현경만이 아니라 전체 경찰에게도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시효만료를 1년 앞둔 지금 경찰청장이 찾아와 쇼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카미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경무부는 물론 형사부까지 쫓아다니며 고군분투한다. 겨우 알아낸 것은 당시 아마미야의 집에서 범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고다 형사의 메모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경무부의 핵심인 후타와타리가 쑤시고 다니는 중이고, 형사부에서는 ‘고다 메모’를 숨기려 안간힘을 쓴다는 것.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