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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완서의 미발표 소설이 수록된 『노란집』

박완서, 그의 노란집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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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은 소설가 박완서의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책에 실린 짧은 소설과 수필들은 지금까지 출간된 적 없는 작품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작가 박완서가 가장 애착을 가지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머물렀던 공간, 아치울의 노란집에서 태어났다. 그곳에 가면 시간을 거슬러 작가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예스24와 『노란집』 의 독자들이 아치울마을로 향했다.



아치울 노란집에는 어머니의 모든 역사가 들어있어요

박완서 작가가 우리 곁을 떠난 2011년 1월. ‘나는 책으로 남는다’던 그녀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를 사랑했던 많은 독자들은 짙고 깊은 그리움 속에 빠져버렸다. 작가와 함께 영원한 침묵 속에 잠든 숱한 이야기들에 대한 미련, 그것이 곧 상실감으로 가슴 한 곳에 저릿하게 남은 까닭이다. 무엇으로 이 헛헛함을 채울 수 있을까, 그리움도 병이 되어갈 무렵 아치울 노란집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박완서 작가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의 유작들을 모아 책 『노란집』 을 출간한 것이다. 그렇게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박완서의 이야기’는 독자들 곁으로 제 자리를 찾아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어머니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쓰신 글이다. 돌아가신 지 이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어머니의 뜰에는 살아 계실 때와 거의 똑같은 속도와 빛깔로 꽃이 피고 지고 있다. (중략) 나는 아직도 엄마를 부른다. 꽃이 피면 감탄사를 가장 먼저 전하고 싶어 엄마를 찾는다. 내 마음속 어린애는 아직도 엄마를 부르는데 나는 어느 틈에 할머니가 되어 있다. 손녀를 부르는 내 음성에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어머니의 소리가 배어있다. 엄마가 그랬듯이. (서문 중에서)
『노란집』 의 출간을 맞아 예스24와 출판사 열림원은 호원숙 작가와 함께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박완서 작가가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공간이자 『노란집』 의 이야기가 탄생한 곳, 아치울 노란집으로 독자들을 초대한 것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차를 달려 아치울 마을 어귀에 이르자,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볼 법한 노란색 외벽의 단정한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호원숙 작가는 수줍고 맑던 어머니의 미소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대문 밖까지 나와 독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집은 어머니께서 1998년에 지으셨어요. 그 전 해부터 짓기 시작하셨고요. 원래 이 터에는 벽돌로 된 양옥이 있었는데요, 그 집을 헐고 지으신 거예요. 어머니께서 최초로 지은 집이에요. 새 집을 지은 건 처음이셨어요. 그 때 (어머니 연세가) 60대 후반이셨는데, 집을 지으시면서 굉장히 기뻐하셨어요. 자그마하고 소박해 보이는 모습을 굉장히 사랑하셨습니다. 『노란집』 의 제목은 제가 지었어요. 책에 실린 글들을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이 집에서 쓰셨거든요. 소설도 있고 산문도 있고, 형식은 다양하지만 전부 이 노란집에서 쓰셨습니다.”

호원숙 작가를 따라 들어선 노란집의 앞마당에는 아직도 박완서 작가의 손길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박완서 작가가 직접 심고 유난히 예뻐했다는 만추국은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고, 그 곁으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호원숙 작가가 심은 국화들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밖에도 살구나무와 은방울꽃, 복수초와 봉숭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꽃과 나무들이 모두 박완서 작가가 떠나기 전의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제 주인의 손길을 기억한 채로.

“소나무는 박경리 선생님과 얽힌 사연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노란집에 처음 오시면서 어머니한테 봉투를 주시더라고요. 그 당시로서는 꽤 많은 돈이 들어있었대요. 나무를 심으라고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 때 소나무를 심으신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아마 집 짓는 해에 오셨던 것 같은데요. 그 때 어머니한테 금일봉을 주셔서(웃음) 심게 됐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목백일홍(배롱나무)은 어머니께서 마당 한 켠에 있던 걸 옮겨 심으셨어요. 지금은 꽃이 거의 다 지고 조금만 남아있는데, 아주 빨간 게 너무 예쁜 꽃을 피우고요. 저쪽에 있는 나무 수국은 겨울에 눈이 올 때도 꽃이 그대로 매달려 있어요. 어머니하고 저하고 같이 꽃을 많이 가꿨어요. 은방울꽃도 한 뿌리 사다가 심은 건데 지금은 나무 밑에 많이 퍼져있죠.”

호원숙 작가는 노란집과 그 안의 생활 속에 어머니의 역사가 모두 들어있다고 말했다. 『노란집』 에 실린 짧은 소설과 수필들뿐만 아니라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그리고 수많은 단편소설들이 바로 이 곳 노란집에서 탄생했다. 유니세프 활동이나 문학상 심사 등 사회적 활동들이 이루어졌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애착을 가졌던 곳이기에 박완서 선생은 호원숙 작가에게 노란집에 남아줄 것을 당부했고, 지금도 그곳은 문학의 숨결로 채워지고 있다.




노란집은 박완서 작가를 꼭 빼닮은 공간

호원숙 작가가 들려주는 노란집과 박완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집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계속 이어졌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자 지하 서재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이 정면으로 보인다. 그리고 양 옆으로 거실과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두 공간은 모두 노란집의 앞마당을 마주보고 있다. 거실과 서재의 통유리를 통해 마당을 내다보며, 고즈넉한 시간 속에서 생각에 잠겼을 선생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 풍경이 낯설지 않은 까닭에 가슴 한 곳이 시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역설적이게도 작가의 부재가 오히려 작가의 존재를 더 강하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만큼 노란집은 박완서 작가와 그 작품을 꼭 빼닮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고, 느릿한 듯 편안함이 깃들어 있으며, 작은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은 다정함이 곳곳에 스며있다.

“서재의 삼면을 채우고 있는 이 책꽂이들은 족히 30년은 넘은 것들이에요. 항상 어머니께서 가까이에 두고 보시던 책들이 꽂아져 있는데요. 시집도 있고, 가장 위 칸에 있는 책들은 60년~80년 정도 된 것들도 있어요. 그리고 여기 있는 책상은 어머니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지신 책상이에요. 85년도쯤에 마련하셔서 계속 쓰셨고요. 그 전에는 서재도 없이 소반에 앉아서 작품을 쓰셨어요. 중간에 의자만 바꾸셨을 뿐이고, 최초의 책상을 최후까지 쓰셨어요.”

주인을 잃은 책상은 아직도 예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받아 적던 펜과 컴퓨터 자판도 지난날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달라진 것이라면 선생의 영전에 바쳐진 금관문화훈장과 호원숙 작가가 어머니께 전하는 『노란집』 한 권이 새롭게 자리했다는 것뿐이다. 박완서 작가는 마치 한 번도 자리를 떠난 적 없는 것처럼, 변함없는 미소로 그곳에 있었다. 서재를 지나면 선생의 마지막 숨결이 서려 있는 침실로 이어진다. 그곳에서도 선생은 남편과 함께 사진 속에서나마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넸다. 작은 크기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눈길을 끄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와 지하 서재로 들어서면, 박완서 작가의 책들로만 채워진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다양한 판본과 번역본으로 출간된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현재는 호원숙 작가의 작업실로도 사용되고 있다.




노란집 내부를 둘러보는 시간이 끝난 후 호원숙 작가와 독자들은 다시 마당에 모여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 날의 행사에 특별히 함께한 연극배우 강애심은 『노란집』 에 실린 박완서 작가의 수필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녀는 선생의 작품 낭독 공연에 캐스팅된 인연으로 독자들과 함께 노란집을 방문했다.

강애심 : “저는 박완서 선생님을 생전에 뵙지는 못했어요. 공연 보러 오시라고 연락드렸는데 안 오셔서 속으로는 굉장히 섭섭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 생각이 짧았더라고요. 『여덟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이라는 소설을 낭독했으니, 어떻게 오셔서 들으실 수 있으셨겠어요. 남편 분을 폐암으로 먼저 보내시고, 그 투병기에 남편과 나누신 애틋한 시간을 수필 형식으로 쓰신 소설이잖아요. 당연히 오시지 못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니가 10년 동안 쓰신 일기, 출간 계획은…

『노란집』 에 실린 수필 중 「현실과 비현실」 을 낭독하는 것으로 배우 강애심은 박완서 작가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 전했다. 그리고 독자들은 호원숙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가시지 않는 그리움을 달랬다.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 다시는 책으로 만나 뵐 수 없을 것 같아서 걱정했습니다. 그만큼 『노란집』 의 출간이 반가운데요. 앞으로도 새로운 책을 출간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노란집』 에 실린 글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쓰신 거예요. 작년에 나온 『세상에 예쁜 것』 이라는 산문집은 2000년대 후반에 주로 쓰신 거고요. 어머니께서 ‘책에 실리지 않은 괜찮은 원고’라고 모아놓으신 것이 있어요. 그걸 제가 정리해서 출간한 건데, 전부 싣지는 않았죠. 그런데 앞으로 출간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아직 정리가 다 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10년 동안 쓰신 일기가 있어요. 10년 동안 거의 매일,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쓰셨는데요. 그것을 과연 책으로 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 정리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희 가족과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단편전집 중에서 선집을 해서 엮은 단편선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오늘처럼 노란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지, 아니면 기념 문학관 건립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노란집은 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이지만 현재는 저의 사적인 집이고요. 지금 구리시 도서관에 어머니 자료관이 있어요. 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구리시 도서관 측에서 자료관을 만들기를 원했어요. 그 때 어머니께서 저한테 ‘만들어줘라’ 하셨죠. 사실 저는 그 때 조금 불만이었어요. 조그마한 도서관보다 더 좋은 곳에서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그런 게 아니다, 가장 가까운 동네 도서관이 잘 되어 있어야 된다’ 말씀하시면서 도와서 같이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도서관 직원들과 같이 ‘자료관을 어떻게 꾸밀까’ 고민하면서 제가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자문을 하면서 만들었죠.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 박완서라는 작가가 조그만 도서관에 자료관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 기념 문학관 건립을 추진되기 시작해서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노란집 안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작년에 영인문학관에서 1차로 전시를 했었는데요. 그런 것이 기초가 될 거예요. 어머니에 관한 자료는 저만의 것이 아니고 문학적인 유산이니까요.

얼마 전에 최인호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박완서 선생님과 주고받으신 편지가 공개됐는데요. 평소에도 많은 분들과 편지를 주고받으셨나요?

아마 어머니가 편지를 쓰신 것, 누군가가 받으신 것도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어떤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위로의 편지를 많이 쓰시더라고요. 카드 같은 것도 많이 쓰셨고요. 어머니와 최인호 선생님은 굉장히 오랫동안 알고 지내셨고 또 좋아하셨어요. 문학 행사 때문에 미국을 같이 여행하셨던 인연도 있었고, 선생님의 부인과도 알고 지내셨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최인호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못 오시고 편지를 공개하셨었죠.




독자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호원숙 작가는 말했다.

“저희 어머니 작품은 많은 것이 숨어있어요. 단어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시적인 분위기, 그런 것들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 작품을 쓰신 거거든요. 그래서 더 많이 읽어주시고, 보물을 찾듯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 속에 숨어 있는 보물. 아마도 그것은 호원숙 작가가 『노란집』 안에 담아낸 이야기인 동시에, 독자들이 이 책을 반가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선생의 체온과 숨결을 느낄 수 없지만 『노란집』 에 실려 온 그의 시선은 여전히 따스하다. 때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친 등을 토닥여주고, 때로는 서늘한 목소리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그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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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저 | 열림원
박완서의 『노란집』 은 수수하지만 인생의 깊이와 멋과 맛이 절로 느껴지는 노부부 이야기가 담긴 짧은 소설들을 포함하고 있다. 노년의 느긋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그 따스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1장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2001~2002년 계간지 《디새집》에 소개했던 글들이다. 이 밖에,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말하며 삶에 대해 저버리지 않은 기대와 희망과 추억을 써내려간 작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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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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