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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번지점프를 하다>, 김지현

어쩌면 당신의 첫사랑 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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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속의 그녀 태희, 그리고 배우 김지현. 다음 무대에서 다시 상큼발랄해지더라도 이제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게 될 것이다.

아티스트

어쩌면 당신의 첫사랑, 태희

일반적으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아름답게 남아있지만 미화된 만큼의 아련함도 함께 가져가는 법. 하지만 인우에게 첫사랑은 아련한 기억보다는 현재를 지배하는 아픈 상처로 남아 보인다. 태희가 자신의 우산 속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그의 떨림은 그녀가 사라진 후 17년 동안 그에게 깊은 파장으로 남아있었다. 인우의 아픈 상처 태희, 2막 후반부, 관객들은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눈물지었다.
“태희는 서인우의 첫사랑이고요. 평생 인우에게서 떠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영화 속 태희라는 명확한 이미지보다는 태희로서의 매력이 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미지, 저와 잘 맞는 부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종욱 찾기>에서 밝음의 대명사였던 그녀, 김지현은 꼭 딴사람 같았다. 물론 여전히 맑은 에너지로 인터뷰 내내 유쾌한 수다를 이어갔지만 인우와 태희의 사랑을 이야기할 땐 슬픈 꿈에서 막 깨어난 표정이 되곤 했으니까.

정말 그런 사랑, 가능할까?

2000년 한국 멜로영화의 정점을 찍었던 <번지점프를 하다>의 임팩트를 그대로 간직하고 뮤지컬을 봐도 좋다. 기자는 그랬다. 그리고 다음 장면을 알면서도 눈물을 삼키던 관객들도 있었다. 아니 다음 장면을 아니까 더 슬퍼지는 거라고 리뷰를 쓴 블로거들은 말했다. 배우 김지현 역시 영화로 이 작품을 먼저 봤다. 영화가 개봉된 지 8, 9년이 지나서였지만. 하지만 그때도 배우 아니랄까 내용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었단다. 그리고 이젠 주체할 수 없는 의문이 그녀 머리를 맴돌고 있다.
“지금은 공연하면서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커튼콜 전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가사를 듣고 있으면 과연 저런 사랑이 가능할까, 저런 사랑이 나에게 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대에 선 배우들과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물어보고도 싶고요.”

그녀가 깊은 의문을 가질수록 점점 더 태희에게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시금 슬픈 꿈에서 막 깨어난 표정으로 인우를 걱정하고 있는 걸 보면.
“저에게 막상 닥치면 믿어지지 않겠죠. 상상도 잘 안 되는 일이니까요. 요즘 들어 극 중 운동회 장면에서 현빈을 보며 태희를 떠올리는 인우를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저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나, 그가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슬퍼요. 하지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서로를 알아본다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사랑에 어떤 기준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이라 정말 제가 사랑하던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다시 온다고 해도 다시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번엔 독자 여러분이 대답할 차례, 당신은 17년 전 죽었다고 생각한 그녀, 혹은 그가 다른 사람으로 다시 당신 앞에 나타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부르기 어렵지만 듣기에 좋은 그 곡

제 18회 한국뮤지컬대상 음악상 수상, 제 7회 더뮤지컬어워즈 작곡작사상 수상, 2013 다시 보고 싶은 창작뮤지컬 1위로 꼽힌 <번지점프를 하다>, 특히 <마이 스케어리 걸>로 한국 뮤지컬계에 데뷔하며 ‘이 바닥’에선 천재작곡가로 손꼽히는 윌 애런슨의 음악이 돋보인다. 김지현은 듣기엔 참 좋지만 플랫(♭)과 샵(#)으로 가득해 부르기엔 참 어려운 곡들이라고 말한다.
“특히 인우의 노래는 듣고 있어도 어렵더라고요. 연습할 때도 ‘음이 어떻게 이렇게 떨어지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작사가 천휴 씨도 얘기하더라고요. ‘윌은 플랫이 몇 개고, 샵이 몇 개가 붙었는지 못 느끼나보다’라고요.(웃음)”

하지만 그녀 역시 처음 이 작품을 관객으로 만났을 때, 그 선율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 공연을 봤을 때 나오는 왈츠가 계속 생각나서 공연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이미 그 노래를 따라 불렀어요. 며칠은 그 왈츠 선율에 빠졌었죠.”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OST로 사용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대신 기억을 모티브로 <번지점프를 하다>의 음악을 완성한 윌 애런슨이 새롭게 작곡한 왈츠는 며칠간 배우 김지현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작품 전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그리고 그 음악은 장면, 장면 인물의 감정선마다 다르게 그어지는 하얀 분필선 만큼이나 기억에 오래 남는다. “뮤지컬을 감동적으로 이끄는 힘, 감정을 확장시키는 힘이 음악이니까요. 영화에서 카메라로 클로즈업하는 부분을 음악으로 하는 거니까요. 특히 이 작품은 음악이 그 장면에 훅 빠지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장면전환과 변화무쌍한 배우들이 잘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앙상블의 매력도 큰 볼거리거든요.”

관객과 배우의 이유 있는 눈물

기자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품을 보러 오는 많은 관객들 역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 대한 낱낱의 기억은 잃었어도 줄거리는 꿰고 있거나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인물의 슬픔에 쉽게 녹아드는 힘은 뭘까?
“배우로서 정말 열심히 사랑만 해도 되는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인우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랑이긴 하지만. 보시는 분들도 그런 부분에 흠뻑 빠지고, 후반부에서 그래서 같이 가슴 아파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이 많으신 분들은 ‘첫사랑이 13년 만에 생각났어’, ‘내 아내를 처음 사랑했던 감각들이 떠올랐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아마 이 작품의 힘이 아닐까? 알고는 있지만 가슴 속 깊이 들어와서 뭉클해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건드려주는 게 이 작품의 큰 힘이 아닐까 싶어요.”

관객들만 훌쩍거리는 건 아니다. 인우와 태희, 그리고 현빈 역을 맡은 배우들 역시 감내해야 하는 자신들의 슬픈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렸고, 공연 내내 웃음을 안겨줬던 빛나는 감초연기의 달인, 임기홍 배우도 엔딩만큼은 비장한 표정으로 눈물을 참는 모습이었다.
“저는 작년에 공연을 봤을 때 태희와 현빈이 바뀌는 순간에 눈물이 많이 났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여관 씬부터 관객석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요. 커튼콜 할 때도 많이들 우시는 것 같고요. 저도 연기를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뭉클거려요. 마지막 공연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고요. 노래가 주는 힘도, 상황에서 나오는 슬픔도 진하거든요. 여러 번 보신 분들은 다 알면서도 알기 때문에 더 슬프게 보시는 분들도 있고요. 인우와 태희의 예뻤던 순간들을 보면서 뒷부분을 떠올리면 슬픔이 더 커지는 거죠.”

두 명의 인우와 두 명의 태희

만일의 경우나 티켓 파워 등을 위해 확장된 더블, 트리플 캐스트는 이제 관객에겐 즐거운 고민이 된지 오래다. 각각의 조합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배우들 간의 ‘케미’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 태희 김지현 역시 동의한다.
“5년 전에도 필석 오빠는 참 서인우 같았어요. 서인우라는 캐릭터가 남자배우가 하기에 참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우의 깊은 슬픔, 순한 쓸쓸함이라고 해야 하나, 밝고 깨끗하면서 무척 쓸쓸한 감정을 참 잘 표현하시거든요. 반면에 두섭이는 참 해맑아요. 바보 같아 보일 만큼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여관 씬에서 인우가 태희에게 얼굴 좀 보자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두섭이가 멍하게 바라볼 때 어떤 날은 너무 슬프더라고요. 두 사람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면서 굉장히 감동적이죠.”

같으면서 다른 두 인우만큼이나 다른 매력의 소유자 김지현과 전미도.
“미도와 저는 참 잘 맞아요. 같은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쟁심을 느끼거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미도의 사랑스럽고 발랄한 느낌은 흉내 낼 수 없거든요. 막상 공연을 올릴 땐 이제 둘이 서로 잘 못 보니까 아쉬워했거든요. 다음엔 같은 무대에 서는 공연을 하자고 했을 정도였어요. 저희가 태희를 표현하는 건 다를 수 있지만 작품에서 가져가야하는 롤에 대한 생각은 명확하게 같아요. 미도의 첫 공연을 보면서 진짜 많이 울었거든요. 그 친구가 너무도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어서 저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희 두 사람이 분위기나 생김새가 참 다른 태희로 보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의 태희를 아마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기자가 해소치 못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다시 한 번 보려던 이 작품,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자연스러운 리얼리티가 좋아 창작 뮤지컬 무대를 더 선호해왔다는 김지현, 소박하고 겸손한 배우라는 여타 기자들의 말이 금세 떠올랐다. 앞으로 그녀가 바라는 건 나이 들어서도 매력 있고, 존재감 있는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것, 예쁘고 사랑스러운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정해져 있으므로 세월의 흐름에 맞게 연기를 하고 싶은 게 가장 큰 소망이다. 소박하지만 강단 있는 소신을 가진 그녀, 다음 무대에서 다시 상큼발랄해지더라도 당신은 이제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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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예진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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