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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예체능>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농구
리바운드의 제왕, 불꽃 남자, 에어 조던, 그리고 우리들
농구가 우리 세대의 마음을 뺏었던 이유, ‘바스켓맨’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졌던 이유,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이면 NBA를 시청했던 이유는 바로 농구 그 자체에 있지 않았을까? 농구는 다섯 명이 팀을 이루어서 공격과 수비를 한다. 언뜻 스타플레이어의 개인 실력이 중요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 역시 동료의 희생과 도움이 없다면 해낼 수 없다.
농구의 시대
단언컨대, 1990년대는 농구의 시대였다. 마이클 조던이 공중에 떠서 이쪽으로 몸을 비틀까, 저쪽으로 몸을 비틀까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며 그냥 덩크를 꽂아 넣던 때도 1990년대였으며, 연세대가 실업팀을 누르고 농구대잔치에서 우승을 하던 때도 역시나 1990년대였고, 장동건과 손지창이 긴 패딩 점퍼를 입고 나와 마지막 승부를 펼쳤던 때도 아무렴 1990년대였다. 어디 그뿐이랴, 빨간 머리 강백호와 꽃미남 서태웅, 그리고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이 등장해 남자들의 우심실과 좌심실을 벌렁거리게 만들었던 때도 무려 1990년대였다. 동네 구석구석에 농구 골대가 세워졌으며 길거리 농구 대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심지어 9시 뉴스에도 신세대 장병들은 축구 대신 농구를 즐긴다는 뉴스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때의 농구는 젊음의 상징이었고, 스포츠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였다.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큼지막한 농구화까지 신고 주황색 농구공을 튕기며 거리를 걷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농구 코트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서로가 서로의 기술을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경기에서 승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 있으면 덜거덕거리는 젊음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하루 종일 농구 코트에서 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슛 연습을 계속했으며 ‘최인선의 농구 교실’ 같은 교본을 읽고 또 읽었다. 실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뛰는 것 말고는 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드리블도 별로였고 슛도 시원찮았으며 키도 보통이라 골밑을 지배하지도 못했다. 내 농구 실력은 전반적으로 내 인생과 비슷했다. 특출 날 것 없이 그저 그런 실력, 그리고 인생. 나는 단지 열심히 살아갈 뿐이었다. 바야흐로 1990년대였고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2013년에 농구라고?
<우리 동네 예체능>은 즐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좀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스포츠에는 젬병인 연예인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감동을 선사하는 예능도 아니었고 깨알 같은 몸개그와 말장난으로 재미를 주는 예능도 아니었다. 설렁설렁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경기가 펼쳐질 때는 다들 너무 진지해져서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탁구며 배드민턴, 그리고 볼링 같은 스포츠는 내 관심 밖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농구를 다룬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웬걸, 농구라니. 나는 쯧쯧 혀를 찼다. 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었다. 1990년대였다면 농구의 ‘농’자만 나와도 시청률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겠으나 지금은 무려 21세기, 그것도 2013년 아닌가!
농구의 시대는 저물었다. 2000년대가 되면서부터 거짓말처럼 사그라졌다. 마치 어떤 마법의 유효기간이 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젊은이들은 더 이상 농구공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고 NBA는 물론이고 프로 농구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오랫동안 기다려야 겨우 한 게임을 할 수 있었던 농구 코트도 이제는 텅텅 비었다. 아예 농구 코트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풋살 경기장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이 나도 착실하게 아저씨가 되었다. 어느새 배가 나와 조금이라도 뛸라치면 숨이 가빠온다. 점프를 하면 무릎이 아프다. 발에도 살이 쪘는지 농구화가 작아졌다. 농구공은 바람이 빠져 마치 내 뱃살처럼 주글주글 접혀버렸다.
그런데 농구라니! 나는 허, 그것 참, PD가 누군지 쯧쯧, 다시 한 번 혀를 차며 화요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동네 예체능>을 제 시간에 챙겨봤다. 농구라니, 뭐 어쩔 수가 없잖아. 대충 이런 마음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건만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농구를 다루는 방식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 동네 예체능>은 2013년의 농구가 아니라 1990년대, 그러니까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하자면 농구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 시절의 농구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출연진들이 프로필을 찍으면서 했던 말들은 모두 NBA 선수나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들이 던진 명언들이었다. NBA의 단신 가드 앨런 아이버슨이 “농구는 신장(身長)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이 땅의 수많은 루저(?)들은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가! ‘슬램덩크’속의 정대만이 지친 몸으로 사력을 다해 3점 슛을 던지면서 “내 이름은 정대만.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라고 중얼거릴 때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얼마나 울었던가!
이처럼 출사표부터 향수를 자극했던 <우리 동네 예체능>은 ‘마지막 승부’의 주제곡을 김민교가 직접 부르는 이벤트를 시작으로 대학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우지원, 김훈, 석주일, 신기성, 전희철이 등장하면서 거의 완벽하게 1990년대를 재현했다. 물론 은퇴한 선수들의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볼 수 있었던 건 덤이었다. 박진형과 존박의 의외의 농구 실력도, 석주일의 반짝이는 예능감도 재미를 더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구 그 자체가 나를 설레게 만들었고 그 속에 깃든 1990년대의 정서 덕분에 오랜만에 추억에 젖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 농구는 왜 그토록 인기가 있었을까?
나는, 그리고 우리들은 왜 모두가 불꽃남자였으며 리바운드의 제왕이었고 에어 조던이었을까?
나는 아저씨가 된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단념하는 순간 시합은 끝난다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의 농구 열풍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그 의견들은 다음과 같다.
케이블 TV의 해외 스포츠 채널을 통해 NBA를 접할 수 있었다. 묘기에 가까운 그들의 경기가 농구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대학 농구에 출중한 외모와 실력을 갖춘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오빠 부대를 위시하여 젊은이들이 농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맞는 말이다. 난 연세대의 광팬이었으므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마지막 승부’와 ‘슬램덩크’ 등의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농구가 문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이것도 맞는 말. 슬램덩크의 대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나이기에 이 역시 동의할 수밖에.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농구가 우리 세대의 마음을 뺏었던 이유, ‘바스켓맨’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졌던 이유, 마이클 조던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이면 NBA를 시청했던 이유는 바로 농구 그 자체에 있지 않았을까?
농구는 다섯 명이 팀을 이루어서 공격과 수비를 한다. 언뜻 스타플레이어의 개인 실력이 중요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 역시 동료의 희생과 도움이 없다면 해낼 수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마이클 조던이 번개 같은 동작으로 상대편 수비진을 뚫고 공중으로 솟아올라 ‘걷다가’ 덩크를 꽂아 넣는 화려한 플레이의 이면에는 로드맨의 수비 리바운드와 피펜의 원 패스, 그리고 토니 쿠코치의 스크린이 있었다. 모든 팀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가로 28미터 세로 15미터의 작은 공간에서 열 명의 선수가 부딪치는 농구는 유독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시합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실력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각자의 자리와 맡은 바 역할이 있으며 그것을 수행할 때 승리에 일조할 수 있다. 나는 실력 없는 선수였지만 단 하나, 수비에 있어서만은 발군이었다.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석주일이 고백했던 것처럼 상대방의 에이스를 악착 같이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게 내 임무였다. 키도 작고 발도 느리고 점프력도 없고 슛 능력도 그저 그랬던 내가 계속해서 농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농구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반전이 많은 스포츠다. 종료 시간 30여 초를 남겨놓고 10점 차로 이기고 있더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농구다. 빠른 속공과 3점 슛은 역전의 발판이 된다. 지고 있더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 ‘슬램덩크’의 수많은 명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안 선생님이 정대만에게 했던 말이다.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어쩌면 1990년대의 청춘들은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농구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단념하지 않으면 일발역전을 노릴 수 있다는 사실에 그토록 농구에 열광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농구를 통해 별 볼일 없었던 내 인생을 보상받으려 했던 나처럼.
기사를 찾아보니 1990년대의 농구를 다루는 것이 <우리 동네 예체능>만은 아니었다. <응답하라 1994>도 농구가 나오고, 시대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빠스켓볼>이라는 드라마도 농구를 주요 소재로 쓰고 있었다.
유행이 한참 지나버린 농구가 2013년에 다시 회자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아닌 농구가 가진 그 원초적인 매력이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2013년이.
<우리 동네 예체능> 다음 회에는 최인선 감독의 등장이 예고되었다. 한때 책으로나마 내 농구 인생의 스승이었던 그 명장을 보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음 화요일 밤 텔레비전 앞에 붙어 있어야겠다. 어찌 아는가? 그러다 보면 바람 빠진 농구공에 다시 바람을 불어넣을지, 새로운 농구화를 사게 될지, 그리고 농구 코트에서 묵묵히 슛 연습을 하게 될지…….
내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단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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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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