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배우자의 죽음이다. 또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인 결혼식 또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편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인 결혼, 이로 인해 우리 삶은 새로운 영역이 생긴다. 결혼 전에는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인정을 받았다면 결혼 후에는 생물학적인 가족이 아니라 법적인 가족으로 인해 누군가의 아내와 남편으로서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된다. 이를 주제로 삼은 것이 바로 <자기야>다.
기존의 <자기야>는 남편과 아내라는 팀을 나눠 개인으로서의 사정뿐만 아니라 역할에 따른 공감대를 형성했다. ‘누구’의 아내로서 겪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의 ‘아내’로서 겪는 것은 결국 공통분모가 있다. 부부의 역할에 따른 공감대를 형성하며 인기를 누리던 프로그램이 김용만의 하차로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스튜디오에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이야기가 생겨난 곳에 직접 들어갔다. 지난해 드라마에서부터 프로그램까지 ‘시월드’라는 하나의 세계를 규정지어 그곳에서 서러울 수밖에 없는 며느리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이번엔 서로 멀기만 했던 처월드에 사위를 입성시켰다. 가족이지만 남보다 더 불편한 사이였던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은 올해 예능 프로그램 중 단연 최고의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며느리들이 시월드에서 느끼는 것만큼이나 사위들도 처월드가 결코 편하지만은 않다. 물론 보편적으로 며느리보다는 사위에 거는 기대치가 낮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치만큼이나 사위가 처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1년 중 명절 때만 한 두 번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또는 바쁘다는 핑계로 남서방(남재현)처럼 10년이 넘도록 찾아가보지 못한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처가에서 1박2일 동안 생활을 해야 한다. 가상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미션 따위도 필요 없다. 그저 사위가 처가에 간다는 것 자체가 미션 아닌 미션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단연 함서방(함익병)이다. 기존 사위의 관념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당연히 어렵고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상인데 그는 아들보다 더한 사위였다. 친어머니보다 더 살갑게 장모를 대했다. 사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가족 중에 의사가 있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의사로서의 본분을 살려 장모의 체중관리를 도와준다. 장모도 이것이 귀찮고 때로는 서럽기도 하지만 남의 자식인 사위가 자신을 위해서 체중관리를 해주는 것이 결코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살림하는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냉장고 청소, 그것도 장모의 냉장고 청소를 해주는 사위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스스럼없음에 우리는 과연 처가에 어떤 사위였는지 돌아보게 한다.
<자기야>에는 함서방처럼 별종 사위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사위를 백년손님이라고 했겠는가. 가족이 아니라 ‘손님’이라는 별칭에는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담겨 있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남서방이다. 400km 떨어진 후포리를 처가로 둔 남서방은 10년이 넘도록 바쁘고 멀다는 핑계로 가본 적이 없다. 가족으로 연을 맺은 지는 오래됐지만 딱 그 시간만큼 처가와 사위의 거리는 떨어져 있었다. 어쩔 수없이 처가에 가는 사위나 그런 사위를 맞는 장모나 어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장모의 빠른 사투리에 남서방은 적응할 수 없었고 도시에서 와 아무것도 모르는 허여멀건 사위가 장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는 첫 방문 후 남서방이 귀가할 때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잘 가라는 인사만 하고 장모도 휙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방문이 계속될수록 남서방이 차에 타는 곳까지 직접 나오고 그 차가 출발해 시야에서 없어질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제는 평생 일밖에 모르던 장모에게 네일아트를 시켜주고 비싼 영양크림을 사줄만한 사이가 되었다. 물론 돈이 썩었다고 말하는 장모지만 마음까지 그렇겠는가.
최근에 입성한 김서방(김보성)은 참 특이한 캐릭터다. 항상 의리를 외치는 마초적인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남성적이다. 그도 역시 10년이 넘도록 처가에 혼자 가본 적이 없다. 막상 처가에 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거나 밥을 달라는 말을 장모에게 할 수 없어 아내에게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달라지는 모습들은 가족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김서방만큼이나 사위를 낯설어하던 장인, 장모가 처음으로 사위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좋다고 표현하고, 결혼 당시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결혼 비용을 사위가 부담해줘서 말은 안 했지만 고마웠다고 말하는 장면은 사실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이를 대하는 김서방의 오열이 더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이처럼 울며 몰라서 미안하다고 이제는 밖에서만 의리 찾지 않고 처가에 더 잘하겠다는 그의 모습이 참 진솔해서 좋았다.
결혼은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두 가족의 만남이라고 하지 않던가. 연애할 때는 몰랐던 실생활에 부딪히며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해 결국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물론 프레임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레임 밖에서도 무수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소통이다. 소통은 결코 어렵지 않다. 얼굴을 보고 말을 하면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 수도 있다. 그러면 두 번 하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세 번 하면 된다.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대할 때 시월드와 처월드 때문에 겪는 문제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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