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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독서가 인간의 조건일까?
어느 독서광의 독백
<인간의 조건>에서 독서를 다룬다고 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대신 여섯 개그맨들의 체험과 실천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착한 예능은 금요일 밤의 편안한 동반자였다. 박장대소하는 순간은 적지만 그동안 보여준 전기 절약과 물 절약, 그리고 쓰레기 줄이기 등의 과제는 그 제목처럼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에 충분했다.
독서광의 탄생
시작은 포와로였다. 회색 뇌세포 운운하는 콧수염 멋들어진 그 탐정.
우리 집은 늘, 꾸준히, 지속적으로, 참으로 성실하게 가난했다. 한 번도 풍족했던 시절이 없었다. 하지만 책만은 차고 넘쳤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속은 세우고 눕히고 쑤셔 넣은 각가지 책들로 늘 만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다른 쪽 벽면에는 책장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각자가 독서광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수 대신 가지고 온 것이 바로 자신들의 책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증거이자 두 사람의 지난 삶을 엿볼 수 있는 흔적으로서의 책이, 그야말로 한 가득 자리 잡게 되었다. 단칸방이라 다리 뻗을 자리도 없는데 말이다.
아버지가 소설가를 꿈꾸던 문학청년 쪽이었다면 어머니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을 좋아하는 독서광이었다. 따라서 우리 집에는 동서양의 각종 고전과 엘러리 퀸, 코넌 도일, 시드니 셀던 등의 대중 문학 작가들이 쓴 책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글을 완벽하게 깨우쳤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그렇다. 난 또래에 비해 좀 멍청했다.) 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 쪽의 책들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애거사 크리스티’였다.
누런 종이에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게다가 세로로 편집된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들을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포와로 경감과 미스 마플은 그 낡은 책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물론 적당히 야한 묘사가 곁들여졌던 시드니 셀던과 어린 나이에도 이해하기 쉬웠던 코넌 도일의 홈즈 시리즈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내 키가 닿지 않을 정도로 높고 웅장하고 한편으로는 낡았던 책장은 보물 창고나 다름없었다. 지식과 재미가 가득 들어 찬 신밧드의 동굴, 혹은 캡틴 키드의 보물섬.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유년 시절의 내 인생을 지배했던 것은 이사할 때마다 골칫거리였던 그 수많은 책들이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던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또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어린 독서광의 탄생이었다.
독서가 삶을 구원하리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좋게 말하면 사춘기, 솔직히 말하면 반항기 내지는 암흑기. 나는 중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틀어박혔다. 이렇다 할 꿈은커녕 당장 내일 무얼 할지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자고, 음악을 듣고, 가끔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책장을 넘길 만큼의 힘도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동도서관 버스를 발견했다. 당시만 해도 동사무소라 불렸던 주민 센터 앞에 매 주 화요일 오전이면 책을 가득 실은 버스가 몇 시간 동안 머물렀다. 그곳은 또 다른 보물섬이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처음 그 버스에 올랐던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애서가의 본능이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쿰쿰하면서도 정겨운 냄새, 책장을 넘길 때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 오랫동안 품고 있었으나 차마 인정하지 않았던 책에 대한 그리움이 울컥, 그 옛날의 책장처럼 낡고 커다란 버스 안에서 밀려 올라왔다. 나는 도서카드를 작성하고 책을 빌렸다. ‘직업’이라고 적힌 곳에 무얼 써넣어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생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직장인도 아니었고. 결국 나는 어느 책에선가 주워 읽은, 겉멋 잔뜩 든 그 단어를 적어 넣고 말았다.
‘독서광.’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지금은 유명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던 ‘호비트’(호빗)와 ‘반지 전쟁’(반지의 제왕)도 그때 읽었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나니아 연대기)이나 딘 쿤츠, 스티븐 킹의 소설들도 읽었다. 김성종이 쓴 한국 추리 소설도 읽었고 삼국지, 초한지, 태백산맥 등도 섭렵했다.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이동도서관에서였다. 그때는 아주 야한 책을 쓰는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카오스 이론을 다룬 물리학 책이나 무슨 말인지 당최 알 수 없었던 인문학 서적 등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문열의 소설을 파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황석영, 최인호, 김한길도 내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유리알 유희, 노인과 바다 등의 작품은 내 영혼을 뒤흔들었다. 그 외에도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는 정말로 많은 책을 읽었다. 소설, 수필, 시, 인문, 과학, 철학, 종교 등을 가리지 않고 책의 형태로 나온 것이면 무엇이든 읽었다. 내 불완전하고 말랑말랑했던 영혼은 조금씩 튼튼해졌다.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독서 때문이었느냐고? 물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중학교 중퇴에다가 얼굴까지 못생긴 별 볼일 없는 말라깽이 소년이 대학에 들어가고 어엿한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한 후 떡하니 애 아빠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독서가 큰 몫을 했다.
그리고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에서 독서를 다룬다고 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웃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대신 여섯 개그맨들의 체험과 실천을 통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이 착한 예능은 금요일 밤의 편안한 동반자였다. 박장대소하는 순간은 적지만 그동안 보여준 전기 절약과 물 절약, 그리고 쓰레기 줄이기 등의 과제는 그 제목처럼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는 독서다. <인간의 조건>에 출연하는 여섯 남자들은 ‘책 읽으며 살기’라는 과제를 수행하며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도대체 왜 독서가 인간의 조건인가?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여섯 명의 개그맨과 한 명의 아이돌(광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마음 편하게 책을 펼쳐놓고 읽어본 적이 언제인지, 삶과 일에 치이다 보면 가물가물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다 독서광이자 애서가였지만 입시를 거치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 던져지면서 서서히 책을 멀리하게 된다. 누구나 다 비슷하다. <인간의 조건> 출연진들이 만난 사람들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달고 다닌다. 그리하여, 하루 3시간씩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인간의 조건>의 과제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타이머를 켜고 독서 시간을 쌓아가는 동안 출연진들이 보여 준 변화의 모습들도 흥미로웠다. 책 읽기가 과제라는 말에 그 어느 때보다 거부 반응을 일으켰던 그들이지만 이틀째가 되면서부터는 꽤 집중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색들.
나는 독서의 진정한 미덕은 책을 읽은 후에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장을 덮은 후 밀려오는 감동과 재미를 갈무리하며 생각에 빠지는 순간이야말로 독서의 백미. 마치 크나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올라오는 그 순간의 느낌이 좋아서 나는 아마도 책을 놓지 못하는가 보다. 지난 주 <인간의 조건> 마지막 부분에 출연진들이 책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는 독서가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고양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렇다면, 왜 독서가 인간의 조건일까?
고백하건데, 나는 독서광이기는 하나 독서가는 아니다. 내 독서 목록의 많은 부분은 이른바 대중 소설이 차지하고 있고 또 일부분은 만화책들이 지분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나는 깨달음으로서의 독서보다는 재미로서의 독서를 더 즐긴다. 그럼에도 독서는 내 인생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어엿한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독서 때문이었다. 책이 인생을 바꾸는 신비한 마법을 지녔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책을 읽는 동안만은 불행할 틈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어떤 책이든,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어떤 책도 내 삶의 뿌리를 흔들지는 못했지만 모든 책이 그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무언가를 읽는다는 행위,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사색과 사유야 말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책 읽기는 <인간의 조건>에 딱 맞는 과제이리라. <인간의 조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독서력이 조금 더 세지면 좋겠다. 그렇다. 독서도 근육처럼 단련하면 할수록 그 힘을 키울 수 있다. 힘센 독서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다만 읽는 것,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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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