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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느와르 소설, <너를 봤어>는 기대해도 좋다

작가 김려령, 그 놀라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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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어떤 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적합할까? 폭력의 희생자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결국 삶이 좌절되는 비극적 서사라고 하면 말이 되려나. 생생한 리얼리즘 소설이 오컬트로 마무리되는 느낌이 살짝 아쉬움을 주지만, 영화 <초록 물고기>나 <달콤한 인생>, <게임의 법칙>,<비열한 거리> 등 한국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한 진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친구끼리 같은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난 후 나누는 흔한 대화.

“너무 기대를 많이 했나? 생각보다 재미없었어.”
“나는 기대를 안하고 봐서 그런지 재미있더라.”

기대라는 것은 뭐길래, 똑같은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난 후에도 누구는 재미있게 하고, 또 누구는 재미없게 하는 걸까? 이 ‘기대’라는 것을 기준으로 봤을 때 김려령의 『너를 봤어』 는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인지 읽은 후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졌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는 기대를 많이 하고 봐서인지, 읽은 후 재미있다고 흔쾌히 말하기가 좀 꺼림직했다. 하지만 두 소설 중 어떤 소설이 더 재미있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라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훨씬 더 잘 짜여있고, 스케일이 더 크니까. 하지만 2013년 여름에 읽은 장편소설 중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너를 봤어』 가 될 것 같으니 이 ‘기대’란 놈은 참으로 요물이라 하겠다.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지갑을 들고 상점으로 가고, 이 기대감을 기준으로 본 것에 대하여 평가한다는 것.


『완득이』 의 작가 김려령. 『너를 봤어』 는 그의 첫 성인소설이다.

그런데 『너를 봤어』 가 재미있으리라고 별로 기대를 안 한 이유는 뭘까? 『너를 봤어』 는 청소년 소설 『완득이』 로 유명한 김려령 씨의 첫 번째 성인소설이다. 『완득이』 는 지금까지 7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인데, 필자는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다.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청소년을 핵심 독자로 삼은 성장 소설이기 때문이다. 『완득이』 가 소설로서의 재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소설이 다루고 있는 소재나 전달하고자 메시지도 필자에게는 중요한 선택 요소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공감을 사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지어진 소설보다는 30대 중,후반이라는 필자 세대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지어진 소설 보기를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따라서 『완득이』 이외에도 다수의 청소년 소설을 쓴 작가의 소설은 왠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성인 소설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지인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그 책 재밌던대?”라고 내뱉은 말을 필자는 용케 기억하고 있었고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이 소설을 사서 읽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에게 소설이라는 장르를 읽는 재미를 다시 느끼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 되었다.

『너를 봤어』 는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수현과 정수현의 어머니와의 식당에서의 식사 장면으로 시작된다. 심사가 배배 꼬인 정수현의 어머니 묘사가 당장 시선을 끈다. 비싼 음식이 영 마딱찮은 어머니는 ”얘, 다음부터는 그냥 돈으로 줘라”라고 일갈하시고. 식당 주인에게 갈 돈이 아쉬었던게지. 돈이 급한 사람은 그런 거다. 작가는 이렇게 사람의 심리와 그 심리에 따른 말과 행동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이 지점에서 소설의 힘이 생긴다.


정수현의 직업은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인정 받은 소설가이자 출판사 편집자. 겉으로는 순탄한 삶을 산 듯해 보이지만 자신을 지독히도 구타한 형과 그 형을 더 지독하게 구타한 아버지로 지긋지긋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 정수현이 후배 소설가 영재를 “처음으로 내 것이었으면”하고 생각한다. 정수현과 영재와의 사랑 묘사가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어른들이 2013년에 하는 사랑의 풍경들을 묘사하는 느낌? 그래서 구태의연하지 않고 유니크하다. 이를 테면 이런 장면들…
영재가 내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나를 꼭 안는다. 왜? 예뻐서요. 나도 영재를 안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냥 이렇게 안고 싶었다. 영재가 내가 아닌 남자와 함께 있어도 괜찮았다. 거기서 음식을 먹어도 좋았고 누군가와 떠들어도 좋았다. 등 뒤에라도 내가 느낄 수 있는 거기에 있으면 되는 거였다.

“앞으로 내가 예쁠 때마다 안겨.”
“아.”
“뭘?”
“혀.” (p.61)

너 그렇게 자랐구나. 영재가 할머니 벽장에 숨은 것처럼 나는 개천 상류 숲에 숨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좋은데 나는 늘 왜 아픈지, 너럭바위에 누워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그곳만큼 나를 잘 숨겨주고 편하게 해주는 데가 없었다. 너럭바위를 돌절구 삼아 벌레와 나비를 찧으며, 오늘은 얼마큼 맞았나, 사람은 몇번을 찧어야 이렇게 가루가 될까, 사람도 송충이처럼 툭 터뜨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으로 나를 다독였다. (p.118)
섬뜩한 장면들도 있다.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일만큼 때리는 폭력의 풍경. 작가는 차분하게 묘사를 해나간다. 이런 묘사를 이렇게나 잘 하는 작가가 청소년 소설이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형이 상자 끝에 놓인 길쭉한 항아리로 다가간다.
“쌀은 좀 남았나.”
하고, 항아리 뚜껑을 연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내게 곧장 달려들었다. 그럴 줄 알았고 피하지 않았다. 항아리 뚜껑에 왼쪽 어깨를 맞아 팔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지만, 그 옛날 팔이 부러져 부목을 대고, 부러진 갈비뼈에 내장을 찔렸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알 텐데. 내가 저한테 맞아서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럴 거였으면 그 옛날에 죽었겠지. 알 거면서 그래도 달려든다. 죽일 수 없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힘을 쏟는 것이다.
“개새끼, 너 오늘 진짜 죽었어…….”
형이 항아리 뚜껑을 모로 세워 내 머리를 갈라낼 듯이 들어올렸다. 니가 그러니까 개천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알아? 나는 파이프를 든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형의 머리를 내리쳤다. (중략) 너는 몇대 패고 뺐으면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병신같이 일하니까, 진짜 병신 같지? 사람들이 너 같은 쓰레기 좋으라고 일하는 게 아니거든. 너 같은 놈이 팁 줘가면서 양주 처먹으라고 일하는 게 아니라고. 껌 짝짝 씹으면서 모텔이나 전전하는 니 여자 명품 속옷 사주라고 일하는게 아니라고. (p.68)
이 소설은 어떤 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적합할까? 폭력의 희생자가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결국 삶이 좌절되는 비극적 서사라고 하면 말이 되려나. 생생한 리얼리즘 소설이 오컬트로 마무리되는 느낌이 살짝 아쉬움을 주지만, 영화 <초록 물고기><달콤한 인생>, <게임의 법칙>, <비열한 거리> 등 한국 느와르 영화를 보는 듯한 진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너를 봤어』 리뷰를 표방하는 이 글의 목표는 유일하다.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주는 것! 그리하여 이 소설을 읽도록 하는 것!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든지, 기대 이하로 재미없다든지 등이 모두 직접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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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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