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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역에 하층민도 함께 한다는 사실

『열네 살에 읽는 사기열전』 전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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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일, 서울 마포구립서강도서관, 『열네 살에 읽는 사기열전』의 저자인 동양철학자 전호근 경희대 교수의 강연회가 열렸다. ‘청소년을 위한 여름방학 인문학 강좌’의 첫 시간, 전 교수는 ‘인간학의 보고 『사기열전』’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 사마천(B.C.145~B.C.86)은 최초의 통사 『사기(史記)』를 집필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적 인물이 사마천을 통해 우리에게 왔다. 그것은 제후나 왕뿐만 아니었다. 여느 장삼이사의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사마천의 공이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왜 『사기(史記)』를 썼으며, 『사기(史記)』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일까.




『사기(史記)』의 의의

『사기(史記)』, 오래된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전해진다는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다. 시간만큼 힘이 센 것이 없다고 했다. 공정한 심판관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뚫고 견디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사라지는 것도 지속되는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기(史記)』도 마찬가지다. 사마천이었기에 가능한 무엇이었으리라.

“『사기(史記)』에는 사마천이 아니었으면 전해지지 않았을 이야기가 많다. 사마천 이전의 기록은 천자, 황제, 영웅호걸의 이야기였다. 사마천의 이야기 속 인물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 인물이 많다. 역사의 주인공은 누굴까. 『삼국지』 같은 걸 보면 영웅호걸이 주인공인데, 사마천은 다양한 인물과 군상을 다뤘다.”

“『사기』를 읽다보면 지배자나 위대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하층민이나 하찮은 사람들까지도 약동하며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역사는 군주나 뛰어난 장수 혹은 권력자 같은 주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대 뒤편의 조연이나 힘없고 천한 자가 같이 어울려 형성하는 것이다.”(p.10)
전 교수는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역사의 사(史)는 가운데 중(中)자를 손으로 붙잡고 있는 모양이다. 중(中)자는 화살 몇 번을 쏴서 몇 번을 명중했다는 점수판이다. 그것은 또한 어떤 사람의 업적, 행실에 대한 평가를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담당한 사람이 사관이다. 왜 우리는 역사라고 말하면서 미래라는 말도 쓰는지 생각해봄직하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인데, 우리는 왜 과거의 기록을 볼까? 사실 재미있으니까 본다. 그렇다면 단순히 재미 때문에만 볼까? 사마천에게 물어보면, 이리 답한다. ‘지나간 일을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생각한다(術往事 思來者)’.”

사마천은 불행한 인물이었다. 본인도 치욕적인 삶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치욕을 견디며 역사를 기록했다. 130권, 약 52만 6,000자에 달하는 방대한 역사의 기록(참고로, 논어는 1만 5,000자). 『사기』는 본디 태사공기(太史公記)인데, ‘사’는 역사(기록)을 담당하는 사람, 태는 직급이 가장 높은 사람, ‘공’은 존칭으로, 태사공은 사마천 자신을 가리키며, ‘기’는 기록을 뜻한다. 태사공기의 약칭이 ‘사기’다.

『사기』는 독창적인 구성과 방대한 정보량을 자랑한다. 구성을 보면, 『본기』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즉 천자나 황제를 시대별로 서술한 것으로 12권이다. 『사기』 이전의 기록은 천자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릴지 다루나 『사기』는 그렇지 않다. 또 지배자의 교체를 표로 나타낸 10권의 『연표』, 제도와 조직 등을 분야별로 기록한 8권의 『서』, 제후 또는 그에 버금가는 인물을 그린 30권의 『세가』, 개별인물과 한나라 주변지역을 그린 70권의 『열전』으로 구성돼 있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은 5천만 자가 넘는다. 『승정원일기』는 2/3정도 보존돼 있는데 2억7천만 자 정도다. 『승정원일기』는 사초(초서)로 기록돼 있어서 100명 정도 읽을 수 있는데, 이것을 번역하면 수천만 명이 읽을 수 있다. 사실 왕은 사관이 자신을 어떻게 기록할지 궁금하다. 사관은 그래서 왕이 아닌 사관이 임명한다. 인사권이 독립돼 있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무시되는 시대는 없었다. 왕에게도 역사의 기록은 보여주지 않았는데, 보고 싶겠지? 세종도 보고 싶어 했다. 가져오라고 했는데, 사관이 가져오지 않자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역시 세종이었다. 연산군은 달랐다. 억지로 그것을 봤고 사관을 죽였다. 넘어서선 안 될 금기라는 것이 있다. 금기를 넘어서는 순간, 문명이 사라진다. 그런 문명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 사회엔 있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금기를 너무 쉽게 허물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치욕을 견디고 통사를 저술하다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한 동기를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은 유리 땅에 갇힌 몸으로 『주역』을 연찬(학문 따위를 깊이 연구함)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의 곤경을 겪으면서도 『춘추』를 편찬했다. 굴원은 쫓겨났으면서도 『이소경』을 지었으며 좌구명은 눈이 먼 상태에서도 『국어』를 저술했다. 손빈은 다리를 잘렸지만 병법을 논했으며, 여불위는 촉나라 땅으로 유배당했으면서도 『여씨춘추』를 편찬했고, 한비자는 진나라에 붙잡힌 신세였으면서도 「세난」과 「고분」 편을 저술했다. 또 『시경』의 시 300편도 성현들이 발분해서 창작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맺힌 한을 풀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함으로써 미래를 생각한 것이다.”
『사기』 역시 사마천의 불행이 동력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 영웅이었던 이능이 흉노의 군대에 포위돼 부하들과 함께 항복했다. 영웅에서 역적으로 몰락한 이능을 사마천만 적극 변호한다. 그렇다고 두 사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이해관계도 없었다. 용감하게 싸운 이능의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변호했으나, 무제는 사마천도 사형에 처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사형 당했다면 『사기』는 지금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사형을 선고 받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돈을 내거나 궁형(거세)을 선택하는 것. 돈을 낼 형편이 되지 않던 사마천, 궁형을 선택했다.

그리고 사마천, 임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커다란 수치를 당하고도 죽지 못한 졸장부라고 비웃는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살아 있는 것은 마음속에 맹세한 것을 완성하지 못함이 원통해서이고, 이대로 죽으면 내 문장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게 될 것을 애석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맹세한 것이 무엇이기에? 아버지 사마담은 사마천에게 통사(通史)를 기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과 함께 자신의 문장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즉, 『사기』는 발분(發憤)의 소산이었다.

“사마천의 삶의 첫째 원칙은 선조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몸이 이어져야 하는데 궁형을 받아서 선조를 욕되게 하는 삶이어서 치욕이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우리 후손에겐 다행이다. 사마천이 이런 선택을 해서 『사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만약 사마천이 환관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사기』는 없었을 것이다. 편안한 상태에서는 글을 쓸 이유가 없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지금이야 상황이 다르지만, 공자나 맹자도 한 일은 별로 없다. 글을 남겼을 뿐이다. 글의 힘이다.”




역사의 주역은 누구인가

『사기』 이전의 역사서는 연대기였다. 즉, 아무나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그런 식으로 쓰지 않았다. 한 사람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기록했다. 한두 개의 열전을 읽어선 불가능한 것이었다. 기록뿐 아니라 엄청난 통찰력과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사마천은 그것이 가능한 인물이었다. 『사기』의 진짜 의의는 앞서 언급한 장삼이사의 삶을 기록한데 있다.

“『사기』에는 소수의 지배자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생동하는 개개인의 삶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하찮은 것까지. 근대 이전에는 거창한 이야기를 했다. 근대 이후 작은 일상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부각했었는데, 사마천은 이미 그런 것을 기록했었다. 사마천은 역사를 움직여가는 주체가 개개의 인간임을 파악하고 그것을 부각시켰다. 다른 모든 편을 합친 것보다 많은 분량이 할애된 「열전」에는 사상가와 웅변가, 위인, 호걸을 비롯해 문인이 있는가 하면 장군과 병법가가 있다. 유학자가 있는가 하면 자객이나 협객이 있고, 절의를 숭상했던 애국지사가 있다. 또 간신이나 돈을 벌어 치부한 부자가 있다.”

“사마천은 하고 싶은 말은 꼭 하는 사람인지라, 비천한 신분이었던 진섭의 입을 빌려 “왕과 제후, 장군과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애초에 운명적으로 결정된 역사의 주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며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p.10)
사마천은 역사에 운명적으로 결정된 주역은 없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지배자들과 더불어 하층민들도 약동하며 역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역사는 권력자 같은 주역만으로 형성하는 것이 아닌 막후의 조연이나 힘없고 천한 자가 같이 어울린다고 본 것이다.

전 교수가 이날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이런 개개의 인간을 발굴하고 기록한 사람의 중요성이었다. 사마천이 아니었다면 숱하게 많은 이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우리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를 비춰 주고 같은 무리가 서로 어울리는 것은 마치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따르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성인이 나타나면 만물이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백이와 숙제는 현인이었지만 공자의 붓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이름이 밝게 드러났고, 안연도 학문에 충실했지만 공자의 꼬리에 붙음으로써 그 품행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허유나 무광과 같은 사람은 뛰어난 인품을 지니고 있었는데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슬픈 일이다. 제 아무리 품행을 닦아서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한들 자신을 알아줄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이름을 후세에 전할 수 있겠는가. 사마천이나 공자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마천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었지만 공자가 알아주었기에 이름이 더욱 밝게 드러났고, 안연이 배움을 성실히 했지만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있었기에 행실이 더욱 빛났다. 그러나 산림에 숨어 사는 훌륭한 선비 가운데는 그 이름이 묻혀 칭송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슬픈 일이다! 촌구석에 묻혀 사는 사람이 행실을 곧게 닦아 이름을 떨치려 해도, 뛰어난 선비가 그를 알아주지 아니하면 어찌 후세에 이름을 전할 수 있겠는가.”(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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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에 읽는 사기열전 전호근 저 |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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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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