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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한 양식기'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장조 ‘함머클라비어’
‘고고한 양식기’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창작 후기 ‘함머클라비어’는 그 시기의 입구에 놓여 있는 곡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29번의 악보 머리에 ‘Grosse Sonate fur das Hammer-Klavier’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함머클라비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요. 베토벤의 악보에 밝혀 놓은 것처럼 ‘함머클라비어’는 그때까지의 피아노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거대한 소나타’입니다. 베토벤은 4개의 악장에 장대한 스케일과 난해한 테크닉, 심오한 정신세계를 아로새겼습니다. 아마 고금의 피아노 음악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대접받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밀 길렐스(1916~1985)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 글을 씁니다. 우크라이나 오데사 출신의
피아니스트. 모스크바음악원에서 겐리흐 네이가우스(1888~1964)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니, 또 한 명의 러시아 출신 거장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1915~1997)와 동문(同門)입니다. 네이가우스 문하는 그야말로 러시아 피아니즘의 명가(名家)라고 할 만하지요. 피아니스트 스타니슬라프 부닌(1966~)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네이가우스는 뛰어난 연주자들을 숱하게 키워낸 당대 최고의 피아노 선생이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리히테르와 길렐스만한 사람을 꼽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네이가우스 학파의 상징적 존재였던 두 피아니스트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리히테르는 한 살 아래인 길렐스에 대해 “정직한 음악가, 경이로운 피아니스트”라고 호평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격적으로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리히테르는 국내에서도 출간된 「회고담과 음악수첩」에서 이런 말을 남기고 있지요. “우리의 관계는 처음엔 우호적이었지만 나중엔 좀 이상했다. 길렐스는 분명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지만 꽤나 복잡한 인물이었다. 그는 격하기 쉽고 자존심을 잘 다치는 성격이었으며 실쭉한 표정을 짓고 있기 일쑤였다. 병이다 싶을 만큼 시샘도 많았다.”
그런데 길렐스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리히테르가 묘사한 ‘복잡한 성격’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마디로 솔직하고 분명합니다. 맺고 끝냄이 확실하다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적어도 피아노 연주에 한정하지면, 길렐스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게 입 속으로 웅얼거리거나 빙 둘러 말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특히 베토벤 소나타에서 그가 보여주는 확신은 강렬하고 호쾌합니다. 생전의 그를 지칭했던 ‘강철 타건’이라는 별명처럼, 완벽한 기교를 바탕으로 ‘당당한 베토벤’을 들려준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B플랫장조, 이른바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고 부르는 곡에서는 길렐스마저도 생각이 많은 연주를 들려줍니다. 물론 특유의 힘과 기교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1983년 녹음한 음반, 제가 지금 듣고 있는 이 연주에는 무엇인가 인생을 관조하는 분위기가 짙게 담겼습니다. 뜨거운 열정을 안으로 갈무리한 채 좀더 높은 세계로 올라선 듯한, 이른바 ‘만년의 연주’라는 느낌을 풍긴다고나 할까요. 예컨대 지난 회에 게재했던 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열정’, 길렐스가 ‘함머클라비어’보다 10년쯤 전에 녹음했던 그 연주와 비교해 들어보면 연주자의 태도에 무엇인가 변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열정보다는 보다 숭고한 것을 지향하려는 태도가 여실하다는 얘깁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길렐스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이라는, 연주자로서의 목적을 결국 이루지 못하지요. ‘함머클라비어’를 녹음한 것이 1983년이었는데 그로부터 2년 뒤에 급작스럽게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1985년 10월, 소나타 30번과 31번 녹음을 마친 직후였습니다.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는데, 주사를 잘못 맞아 심장이 마비되고 말았다고 하지요. 향년 69세였습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친구를 떠나보낸 리히테르는 의사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집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 29번의 작곡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817년입니다. 그 다음해까지 작곡해 1819년 출판됐습니다. 이른바 ‘고고한 양식기’라고 불리는, 베토벤의 창작 후기입니다. ‘함머클라비어’는 그 시기의 입구에 놓여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무렵의 베토벤은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았고 타인과의 대화는 필담으로야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이때부터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826년까지, 베토벤의 창작 편수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그야말로 서양음악사의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할 만한 곡들이 태어납니다. 뭐가 있을까요? ‘함머클라비어’를 포함한 말년의 피아노 소나타 4곡, 종교음악 <장엄 미사>, 마지막 교향곡인 9번 ‘합창’,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집중했던 다섯 곡의 현악4중주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29번의 악보 머리에 ‘Grosse Sonate fur das Hammer-Klavier’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함머클라비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지요. 베토벤의 악보에 밝혀 놓은 것처럼 ‘함머클라비어’는 그때까지의 피아노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거대한 소나타’입니다. 베토벤은 4개의 악장에 장대한 스케일과 난해한 테크닉, 심오한 정신세계를 아로새겼습니다. 아마 고금의 피아노 음악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대접받는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함머클라비어’는 앞서 게재했던 ‘비창’이나 ‘월광’ ‘열정’ 등에 견주자면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곡은 아닙니다. 감상자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난곡(難曲)으로 손꼽히는 곡입니다. 연주시간이 40분이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큰 데다 테크닉적으로도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체력과 더불어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곡이지요. 일설에는 런던의 피아노 제조업자 브로드우드에게 선물 받은 함머클라비어, 그러니까 망치로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개량된 피아노 덕택에 베토벤이 이 곡을 쓸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베토벤이 작곡에 착수한 것은 함머클라비어를 선물 받은 때보다 1년 앞선 시점이었던 까닭에 그다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진 않습니다.
1악장은 이 소나타의 교향악적 규모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딴다다단단’ 하는 강력한 화음을 제시하면서 시작하지요. 모두 4마디입니다. 장엄하고 확고한 강주(强奏)입니다. 반면에 이어지는 4마디는 아주 여립니다. 그렇게 강약의 대비를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그 대비는 악장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반복을 거듭하면서 음악이 확장되는 장면들이 광대무변하게 펼쳐지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귀에 착착 감기는 선율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베토벤 음악의 본질은 ‘선율’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면 좋겠습니다. 그보다는 음악의 전체적 구조를 음미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구조를 맛보려면 음악을 여러 번 반복해 들어야 합니다.
Daniel Barenboim plays Beethoven Sonata No. 29 in B 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1st Mov.
2악장은 간주곡 성격의 스케르초입니다.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악장인데 전체 4악장 중에서 가장 리드미컬한 진행을 보여줍니다. 반복적인 리듬으로 주제를 제시하는 장면, 빠르고 매끄럽게 펼쳐지는 음표의 상승과 하강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왠지 씁쓸하고 냉소적인 유머가 자유로운 기풍으로 펼쳐지고 있는 악장입니다.
Daniel Barenboim plays Beethoven Sonata No. 29 in B 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2nd Mov.
3악장은 ‘함머클라비어’에서 가장 길고 심원합니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 ‘느리게, 한 음 한 음을 깊이 눌러서’라는 지시어가 머리에 붙어 있지요. 아주 느릿한 걸음의 명상적 선율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애수와 비탄을 머금은 첫번째 주제가 연주되고 두번째 주제는 그보다 좀더 환한 느낌으로 펼쳐집니다. 아마도 당시의 베토벤이 처해 있던 심경이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찌기 베토벤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약간의 몽환, 그러면서도 청명한 슬픔의 기색이 완연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베토벤답게 음악적 긴장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습니다. 코다(종결)로 들어서기 직전, 음악이 거의 꺼질 듯이 잦아들었다가 다시 상승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코다에 도달하지요. 먼저 두번째 주제를, 이어서 첫번째 주제를 여리게 연주하면서 마치 일종의 체념처럼 악장의 막을 내립니다.
Daniel Barenboim plays Beethoven Sonata No. 29 in B 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3rd Mov.
마지막 4악장은 라르고(Largo)의 느릿한 서주로 시작합니다. 이 역시 몽환적인, 혹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어서 알레그로 템포로 전환되면서 활달한 연주가 펼쳐집니다. 그러다 다시 라르고로 침잠했다가 음량이 차츰 고조되면서 템포가 다시 빨라집니다. 매우 테크니컬한 악상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연주되지요. 이어서 바흐의 푸가(fugue)를 연상케 하는 기법이 종횡무진으로 펼쳐집니다. 푸가란 간단히 말해 하나의 성부를 다른 성부가 대위법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뜻합니다. 베토벤은 후기로 올수록 푸가적 기법을 많이 사용했고, 특히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작곡했던 현악4중주 ‘대푸가’에서 그 정점을 이룹니다. 마치 쫓고 쫓기는 듯한 악상들이 긴박감 있게 펼쳐지다가 포르테시모의 강렬한 연타로 대곡의 마지막 방점을 찍지요. 피아노 한 대로 그려내는 교향악이 그렇게 끝납니다.
Daniel Barenboim plays Beethoven Sonata No. 29 in B 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4th Mov.
관련태그: 베토벤, 함머클라비아, 네이가우스, 에밀 길렐스, 마우리치오 폴리니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