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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Eagles) : (왼쪽부터) Glenn Frey, Don Henley, Joe Walsh, and Timothy B. Schmit [출처: 위키피디아] |
음반이 산업적으로 폭발한 1970년대에는 초반의 절대강자 엘튼 존이 있고 후반부 디스코시대의 슈퍼스타 비지스가 있다. 록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음반이 많이 팔린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역사의 철옹성이다. 스웨덴을 하루아침에 음악 강국으로 끌어올린 아바는 ‘비틀스 다음’이라고 불릴 정도로 1970년대의 세계 음악시장을 석권했다. 흑인음악에선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가 영웅적 존재로 기억된다.
대체로 영국세가 강했던 1970년대에 브리티시 빅 스타에 맞선 가장 위대한 미국 밴드를 하나만 뽑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이글스(Eagles)일 것이다. 그룹명 독수리는 미국의 상징이다. 게다가 지극히 미국적이고 백인적인 컨트리 음악을 록과 결합한 ‘컨트리 록’이 그들의 주요 콘텐츠였다. 팝송의 시대이자 백인음악이 라디오와 음악다방을 지배했던 그 시절, 한국의 팝 팬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글스의 음악을 애청했다.
그들의 대표작 「Hotel California」가 나오기 훨씬 전 데뷔 시절의 「Take it easy」, 「Desperado」는, 그리고 1975년의 앨범
<One Of These Nights>의 경우에도 타이틀곡 「One of these nights」와 「Lyin' eyes」, 「Take it to the limit」는 라디오 DJ들이 지속적으로 선곡했다. 어디에서나 그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해외 팝스타의 내한공연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에, 공연 영상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그 시절에, 대다수는 음악만 들었지 이글스의 활동 장면은 보지 못했다. 심지어 사진도 별로 없었다. 하긴 유일한 팝 정보창구였던 잡지 ‘월간 팝송’에서 간간이 아티스트 소식을 챙기는 게 전부였던 때였다.
막 출시된 DVD
<히스토리 오브 더 이글스>는 무엇보다 먼저 그들의 면모와 당시 공연의 라이브를 볼 수 있다는 점에 국내 기성세대 팬들은 하나같이 놀랄 것이다. 그 시절 누가 「Take it easy」와 「Desperado」, 「Take it to the limit」, 「Hotel California」 등을 이글스가 연주하는 광경을 봤단 말인가.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롭다. 솔직히 14년 만에 재결합한 1994년의 MTV 언플러그드 영상
<Hell Freezes Over>가 국내 팬들이 비로소 처음 눈으로 확인한 이글스 아니었던가. 그 무렵 영상이 폭발적 화제를 모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고 모든 클럽과 카페에서 그 재결합 콘서트 영상을 틀어대곤 했다. 특히 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Hotel California」와 「Last resort」의 라이브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저장했다.
이번 DVD는 이글스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글스 뿐 아니라 1970년대 음악계 상황, 당대 미국의 음반 산업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면 자료가 아닌 사료일 것이다. 그룹의 쌍두마차인 글렌 프라이(Glenn Frey, 기타)와 돈 헨리(Don Henley, 드럼)를 비롯해 현재 멤버인 조 월시(Joe Walsh, 기타), 티모시 비 슈미트(Timothy B Schmit, 베이스) 그리고 거쳐 간 멤버들인 버니 리든(Bernie Leado, 기타), 랜디 마이즈너(Randy Meisner, 베이스), 돈 펠더(Don Felder, 기타)의 아주 진솔한 고백과 토로가 총총히 이어진다.
여기에다 그룹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뮤지션과 프로듀서, 레코드 관계자와 매니저 등 모든 주변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총동원했다. 인터뷰를 담아낸 주요 관련인물은 잭슨 브라운, J D 사우더, 밥 시거, 케니 로저스, 린다 론스태드, 프로듀서 글린 존스와 빌 심직, 데이비드 게펜 사장, 매니저 어빙 애조프 등. 당연히 본인과 주변인들보다 이글스의 위상과 역사적 의미를 더 압축해서 풀어줄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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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았다. 이글스는 오랫동안 사랑받고 들려진 위대한 곡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들은 장수한다. 그들의 노래는 장수한다!”(잭슨 브라운)
“누군가 수년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았다면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글스가 그것을 가졌다. 캘리포니아라는 꿈의 도시와 무한한 가능성의 시기에 그들은 특정한 시대의 무대를 잘 표현했다.”(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제리 브라운)
“그들은 미국밴드로 1970년대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시대를 고스란히 다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1970년대를 겪었든 그렇지 않든 이글스를 통해 1970년대를 추억한다.”(J D 사우더)
“이글스로 활동한 시간의 90%는 최고로 신나는 시간이었다. 매일 꿈같은 현실을 살았다.”(글렌 프라이)
“우리는 당시 예술적으로 창의적인 에너지가 풍부했던 1970년대의 남부 캘리포니아를 대변할 수 있었다.”(조 월시)
“이글스는 내 삶의 일부다”(티모시 B 슈미트)
“우리는 장수를 누리는 밴드가 되길 원했다. 우리에게 이것은 취미도 게임도 아니었고 그저 즐거운 기분전환도 아니었다. 삶이자 소명이었고 커리어였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작년에는 중국에 갔다. 4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신기원을 열어가고 있다.”(돈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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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넷 다섯이 모였는데 어찌 좋은 일만 있었을까. 먼저 동료들 간의 묵은 갈등이 폭발해 멤버가 탈퇴한 일들에 시선이 쏠린다. 초기 멤버인 ‘순수 컨트리 맨’ 버니 리든이 그룹이 갈수록 록 밴드 성향으로 흐르자 반발해 떠나버린 일, 공연에서 팬들이 앙코르로 요구한 「Take it to the limit」의 고음을 부담스러워 한 나머지 랜디 마이즈너가 노래하기를 거부하다 글렌 프라이와 다퉈 그날로 팀에서 탈퇴한 사건, 그룹 상황에 대한 배려와 현실감각 부족으로 돈 펠더가 사사건건 글렌과 충돌해 어느 날 기타를 부수고 사라져버린 일 등은 처절하고 쓰디쓴 일화들이다. DVD의 솔직성은 글렌 프라이가 돈 펠더를 두고 ‘은혜를 모르는 개자식(Ungrateful son of bitch)’라는 극언을 사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Hotel California」와 「New kid in town」 등 이글스 명곡들이 나오게 된 실제 사연과 배경은 귀한 정보들이다. 그중 돈 펠더가 부르기로 되어있던 「Victim of love」가 기대치에 못 미치자 매니저가 살짝 꼼수를 부려 결국 돈 헨리가 취입한 에피소드는 압권.
“내 임무는 펠더를 데리고 나가 점심인가 저녁을 먹이는 것이었고 그 사이 스튜디오에서 돈의 목소리로 재녹음하도록 하는 것이었다.”(어빙 애조프)
본인들도 감당할 수 없는
<Hotel California>의 대성공으로 인해 멤버들의 심적 부담과 피로감이 심화되어 마지막 앨범
<The Long Run>을 “쓰고 녹음하는 동안 그리고 투어 기간 내내 멤버 전원이 모두 코카인에 빠져 있었던” 일, 1994년 재결합 당시 돈과 글렌이 마약과 술에 찌들어있던 조 월시의 재활을 활동할 수 있는 조건으로 내세운 것, 동지애가 부족한 돈 펠더가 28년 만의 신보인 2007년
<Long Road Out Of Eden>을 앞두고 끝내 결별한 일 등은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다.
이글스는 전대의 비틀스처럼 드물게 멤버들 거의 전원이 보컬에 참여한 그룹이다. 돈 헨리(Deperado, one of these nights, Hotel California, Sad cafe)와 글렌 프라이(Take it easy, Lyin' eyes, New kid in town, Heartache tonight)는 말할 것도 없고 랜디 마이즈너(Take it to the limit), 티모시 B 슈미트(I can tell you why) 조 월시(In the city) 버니 리든(Twenty one) 등도 리드 보컬 트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미국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무수한 충돌, 갈등과 화해가 반복된 것은 단지 여럿이 모인 까닭보다는 예술성 추구에 따른 멤버 각자의 자의식이 불거진 결과 아니겠는가.
영상자료는 전편에 걸쳐 내내 밴드야말로 즐거운 나날과 이 고통의 시간이 공유하는 이중적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1980년 해산 후 14년 만에 결합해 2막, 제2의 찬스를 맞고 또 신보를 내고 내한공연 등 지속적인 월드 투어를 펼치며 그들 말대로 지금도 신기원을 열어가는 것은 부럽다. 진부하지만 인생은 유한하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1970년대 백인음악의 최강 레전드가 이글스다.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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