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를 마친지 1년이 채 안된 배우라고 보기에는 꽤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윤형렬. 그의 목표는 소박하다. 작년에 ‘감’을 잡았으니 올해는 <두 도시 이야기>를 발판으로 ‘잘’ 하는 배우가 되는 것. 어쩌면 올해 9월,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리게 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그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지도.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그저 그를 능가할 콰지모도가 있을까 싶을 뿐.
윤형렬을 뮤지컬 배우로 대중에게 알리는 것, 어쩌면 단 몇 번의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서가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임팩트 있었던 ‘불후의 명곡’ 출연, 정작 본인에겐 어떤 커리어가 될까?
“우선 대중이 알아봐주시면서 티켓 파워에도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됐을 거고요. 작품 홍보에도 도움이 돼서 좋죠. 개인적으로는 시청률 높은 방송에 나가서 재미도 있었어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저의 이미지나 모습을 각인시켜야 되다 보니 뮤지컬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뮤지컬 시장 발전에도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는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 앨범까지 낸 가수였다. 그런데 지금의 말투는 뮤지컬 배우로서의 각이 탄탄히 잡혀있다.
““저는 크게 경계를 두지 않고 싶어요. 뮤지컬 배우와 가수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데뷔를 가수로 했지만 지금은 뮤지컬 배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둘 다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음반도 낼 생각이고요. 뮤지컬에서 배운 것들을 가요를 통해 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거든요.”
사실 그가 어렸을 땐 하나만 바라보며 걷는 외골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야가 넓어졌다. 언젠가, 하지만 역량을 갖췄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가수든, 연기자든.
윤형렬의 여자친구
윤형렬이라는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제일 먼저 ‘윤형렬 여자친구’가 뜬다. 대중이 윤형렬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게 바로 그것이라는 방증 아닐까.
“저도 봤어요. 연관 검색어에 있더라고요. 궁금하신가 봐요. 그런데 궁금해 해주신다는 게 어떻게 보면 저한텐 단점이거든요. 우선 저한테 관심이 있다는 건 고마운데, 단점은 순수하게 배우로만 봐주시지 않는다는 거죠. 사심이라고 하죠. 그런데 사실 저도 배우나 가수를 동경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알아요. 감사하고 있고요.”
대개의 연예인들이 갖는 고민 중 하나, 사적인 만남을 어떻게 조심스럽게 할 것인가. 이미 윤형렬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잘 생긴 배우의 숙명인 걸로.
“지금은 여자 친구가 있다, 없다 말씀드릴 수 없는 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배우에게 무관심보다는 낫죠.”
시드니: 윤형렬: 제임스
1859년, 찰스 디킨스가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를 무대로 쓴 역사 소설 ‘두 도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지난해 한국에 첫 상륙해 호평을 받으며 올해 재공연에 돌입했다. 덕분에 윤형렬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시드니 칼튼’을 만났다.
“동료 배우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감사한 줄 알라고, 그렇게 좋은 배역이 어디에 있냐고. 시드니 원톱인 작품이고, 여성 관객을 감동시킬 수밖에 없는 캐릭터잖아요. 여자 하나만 바라보는 순애보도 가지고 있으면서 결단력과 추진력도 있으면서 희생도 할 줄 아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잘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공연 기간이 짧아서 막바지에는 한 회, 한 회가 너무 아깝고 소중하더라고요. 그 때 저는 이미 생각했어요. 재공연이 된다면 어떻게든 다시 하고 싶다, 소원대로 다시 하게 됐으니 정말 열심히 해야죠.”
특히 지난해 공연에서 빠졌거나 번역과정에서 퇴색됐거나 왜곡됐던 부분들도 살려보고 싶다는 윤형렬, 기자의 생각과 달리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캐스트로 ‘시드니 칼튼’을 연기한 제임스 바버의 연출을 반겼다.
“시드니 칼튼을 맡았던 사람이 연출한다는 게 같은 시드니로서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캐릭터에 대한 생각에 공감이 많이 되거든요. 지난해 공연했을 때 완전하지 않았던 부분이나 해결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얘기했더니 제임스 바버도 그 부분이 힘들었다면서 같이 한 번 잘 만들어보자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굉장히 흥분되어 있는 상태예요.”
같은 역할을 했던 외국인 연출에 대한 부담이나 압박도 처음엔 없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본질에 접근했다.
“우리는 <두 도시 이야기>라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최상의 상태로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지 ‘내가 잘 하네, 네가 잘 하네’를 따져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경력으로도 대단한 선배시고요. 그렇다고 저도 무작정 따라가는 건 아닌데요. 굉장히 놀랐어요. 제가 배역에 대한 어떤 고민을 얘기했을 때 제임스 바버가 놀라더라고요. 자신도 ‘초연 때부터 생각했던 문제인데 네가 그런 것까지 생각했다니 너무 좋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느낌이에요.”
윤형렬의 시드니에 대한 고찰
지난해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 기자뿐 아니라 많은 여성 관객이 훌쩍였다. (왠지 스포일러…이미 됐다 싶지만) 시드니의 마지막 선택이 한없이 슬펐지만 이해는 가지 않았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원하는 행복을 얻지 않았을까?
“그런데 저는 이해가 돼요. 그런 삶을 살았다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 날 생각해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내 장례식 때 가족 말고 누가 울어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누구나 몇 명은 손에 꼽히잖아요. 그런데 한 명도 없는 사람이 있죠. 시드니 칼튼의 정서는 어떠냐 하면 ‘나를 신경 쓸 필요 없다, 나도 신경 쓰지 않으니.’ 상대에게 무관심하고 개인주의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 신경 쓰이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이는 척 하려는 사람이거든요. 실제로 그렇게 고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루시가 친절이 가식이 아니라는 걸 안 순간 사랑하게 되고 헌신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루시뿐 아니라 연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그녀의 남편 찰스 다네이와 그들의 아이 리틀 루시 모두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윤형렬과의 인터뷰 중 가장 진지한 열변을 토하던 대답이었다. 마치 시드니로 분한 것처럼.
“시드니는 그림자를 억지로 감춘 행복을 누리고 살 바엔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자면서 선택하는 것이거든요. 억지로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 시드니에게는 행복이니까요.”
“내 무대라고 생각하면 떨리지 않아요”
기자가 샅샅이 조사해본 바, TV에서도 대형 뮤지컬에서도, 보이는 라디오 출연에서도 윤형렬이 긴장하거나 떨고 있다는 느낌을 별로 받은 적이 없다. 정말 안 떨릴까?
“생각의 문제인 것 같아요. 3천 명 앞에서 노래를 불러도 내 무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이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단 3명 앞에서 불러도 떨릴 때가 있거든요. 불후의 명곡을 할 때는 일단은 해야 할 것이 많아서 잡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뭘 해야 하고, 가사도 입에 붙지 않아 정신 차려야 하고, 이성이 깨인 상태로 노래를 해야 하니 다른 생각이 들 여유가 없어서 떨리진 않더라고요. 공연을 할 때도 초반엔 안 떨려요. 지켜야 할 게 많으니까 공연에만 집중하기도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후반으로 가면서 모든 게 몸에 익기 시작했을 때는 감성적으로 더 빠져야 하는데 가끔씩 집중이 안 되면 불안감이 찾아와요. 이미 많이 해서 알던 건데도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하고요. 그럴 땐 떨리죠.”
이미 시드니에게 깊이 밀착된 윤형렬의 <두 도시 이야기>, 자신의 무대라 생각해서 떨리지 않을까, 몸에 익어 깜박 떨리는 순간이 찾아올까? 그리고 당신은 과연 시드니 칼튼을 좋아하게 될까, 윤형렬을 좋아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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