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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독이 필요한 시간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왜 우리는 그처럼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토록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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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휴식을 계기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고독한 휴식을 통해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지금부터라도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싶다. 흐르는 대로가 아니라 의도한 대로 살고 싶다. 그러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월든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에 위치한 호수 이름이다. 소로는 그곳에서 손수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간 혼자서 지냈고, 그 기록을 『월든』으로 남겼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1990년대 중반 영문학을 전공하던 학부 시절이었다. 나에게 소로라는 인물은 연구 대상이었다. 당시 나와 내 주변의 친구들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가, 고향 숲속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는 사실이 꽤나 놀랍고 신선했다. 독특한 생각을 가진 인물, 아니 어쩌면 요즘 말로 까칠한 인물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월든』은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꽤 감동적이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월든』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고, 나는 그것을 내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의 어느 용감한 젊은이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렸다.




우리는 왜 그렇게 성공에 집착할까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1년간 회사를 떠나 미국에 머물면서이다. 다시 읽은 『월든』은 정말 다른 책이었다. 20대의 『월든』이 특별한 한 인물의 회고록이었다면, 마흔을 앞두고 읽는 『월든』은 내 삶의 이야기였다.

미국에 와서 삶을 돌아보니, 나는 너무 바쁜 일상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일상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일,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였다. 우리가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 일이기에, 일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확신에서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목표에 의구심이 들면 질주 본능에 비상등이 켜진다. 이와 같은 고민을 소로는 한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왜 우리는 그처럼 성공하려고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토록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20대에 이 문장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않았다. 그만큼 나의 목표는 확고했다. 성공을 향한 도전은 그야말로 젊은이가 꿈을 이루기 위한 의미있는 도전이었고, 그에 따라 향후 나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20여 년을 살다보니, 그러한 확신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성공의 이면도 보았고, 실패의 이면도 보았다. 한 마디로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칭찬하는 삶은 그저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른 모든 방식의 삶을 짓밟아가며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정말이지 소로의 생각과 고민은 마치 그가 1800년대에 2000년대의 미래를 산 것처럼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단절의 기쁨과 두려움

소로가 월든 호숫가를 찾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60년 전인 1845년이다. 소로는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숲으로 들어갔다. 소로의 월든 생활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종의 실험이자 저항이었다. 물론 나는 소로처럼 삶의 본질과 직면하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회사를 쉬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휴식이 간절했고, 쉬지 않으면 멈출것 같은 위기감 때문이었다. 회사를 당분간 떠나기로 결심하기 전 나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 시시때때로 세상과, 사람과 단절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각성이 찾아왔다. 그저 달리는 속도가 느려질까 봐 뒤로 미뤄두었을 뿐이다.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세상과 단절이 필요하다고 절감한 날은, 서울 한강에서 우스꽝스러운 오리 보트를 탔던 날이었다. 나는 공짜라는 말에 솔깃해 오리 보트에 올라타서 짧은 시간에 최장거리를 다녀오겠다며 전속력으로 페달을 밟았다. 금세 체력이 떨어졌고, 배는 강의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헐떡거리던 숨소리가 잦아들 무렵, 갑자기 주위에 정적이 흘렀다. 차량의 경적도, 길거리의 주정꾼도, 지하철의 안내방송도 없었다. 멈춰선 오리 보트는 참으로 평안했다. 마치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평안이 찾아오자 저 멀리로 아등바등 아우성치는 내가 보였다. 그 이후로 일에 치여 잊고 지내던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시작되었고, 결국 나는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오리 보트는 아주 작은 계기였을 뿐인데, 그 작은 계기에도 흔들릴 정도로 내 삶은 위태로웠던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단절의 기쁨과 두려움을 원없이 누렸다.

단절의 기쁨은 일보다 관계적인 측면이 컸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아니라 변호사, 의사, 공무원 등 그가 가진 직업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되돌아서면 그 사람을 안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았을 뿐이다. 어색한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사람과의 관계가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만큼 철저히 이익과 손해를 계산했다.

우리는 너무 빈번하게 만나서 상대에게 새로운 가치를 얻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이런 빈번한 만남을 견디기 위해서, 또 터놓고 싸울 수는 없기 때문에 예의와 범절로 불리는 일정한 규칙들을 따라야만 한다.
『월든』에는 나의 일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규칙들에서 벗어나 미국에 머무는 동안 늘 단절의 기쁨을 맛본 것은 아니었다. 옛것과의 단절은 새것과의 만남을 재촉하듯 또 다른 일상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관계가 이뤄지면서 살던 곳과 다를 바 없는 피곤한 삶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통해 물리적 단절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오히려 어느 가을 날 나무 아래 앉아서 읽은 고전 한 권이 더 큰 단절의 기쁨을 줄 수도 있고 혼자 훌쩍 떠난 짧은 여행에서 얻은 여운이 긴 마음의 안식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혼자 지내는 시간을 통해 잠시만이라도 나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대로가 아니라 의도한 대로 살아야 할 순간

잠시나마 일상과 단절하며 느낀 교훈은 이제까지의 삶이 흐르는 대로였다면 지금부터는 의도한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인생 목표는 비교적 심플하다. 안정된 직장, 화목한 가족, 그들과 함께할 집! 하지만 조금만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안정, 직장, 집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성공은 우리가 기준으로 그어 놓은 선을 넘어서면 부질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우리 사회에서는 대략 마흔 전후인 것 같다. 마흔 이후에도 성공을 향해 몸부림칠 수만은 없다. 그렇게 살기에 우리는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았다. 새로운 삶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지금부터는 사회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마도 소로가 말한 다른 북소리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북소리가 박자에 맞든 종잡을 수 없든 간에 자신의 귀에 들리는 북소리에 맞춰 걷도록 하라.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처럼 빨리 성숙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남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꿔야 하는가?
1년간의 휴식을 계기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고독한 휴식을 통해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었다. 지금부터라도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고 싶다. 흐르는 대로가 아니라 의도한 대로 살고 싶다. 그러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숲에서 경험한 삶을 통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평범한 삶을 살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것들을 잊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이것이 다른 북소리를 듣기 시작한 나에게 소로가 주는 나지막한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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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 이경주,우경임 공저 | 글담
이 책은 저자들이 읽은 고전 중 마흔 즈음 독자들과 함께 읽고 싶은 24권의 고전을 엄선해 24편의 그림과 함께 수록했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젊을 때보다 다시 읽을 때 더 큰 감동을 느꼈던 『데미안』과 『노인과 바다』,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게 도와준 『불확실성의 시대』, 『소유의 종말』 등 동서양의 다양한 고전들을 만날 수 있다. 고전을 읽은 것으로 삶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들처런 삶의 본질과 마주할 용기를 얻고 마흔의 문턱을 조금 낮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흔, 책을 만나다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마흔 즈음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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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주, 우경임

이경주
열심히 살면 행복하다는 신념을 가진 전형적인 워커홀릭. 마흔을 앞두고 열심히 뿐 아니라 잘 살고 싶다며 고전을 들었다. 속독과 다독을 통해 며칠이고 마음을 빼앗길 명문장을 캐내는 것을 즐긴다. 현재 서울신문 경제부 기자. 연세대에서 영문학·심리학을 전공했고, 동국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 석사를 받았다. 2012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UNC) 저널리즘대학에서 방문연구원(visiting scholar)으로 지내고 있다.

우경임
읽기를 놀이 삼아 자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절박한 학습이었다. 딱히 잘못된 것은 없는데 인생의 실타래가 꼬인 것만 같았다. 이리저리 용을 써 봤자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행간에서 답을 찾고자 빨간 줄을 정성껏 그어가며 읽었다. 정독을 즐기는 작가는 현재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심리학을 전공했고, 연세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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