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에선 제가 맞는다고 생각하고 가르쳤지만 연기 연출은 저만이 정답이 아니니까요. 제가 더 다가갔죠. 배우들의 얘기를 더 들으려고 했고요. 대신 저는 무대 스탭들과는 0.5초까지도 싸워요. 달이 떴는데 사라지기까지 2초 후에 없어질지, 5초 후에 없어질지를 두고도 논쟁하니까요. 그러면서 많이 늘었죠.”
뮤지컬 배우만 만나왔던 기자의 첫 뮤지컬 감독 인터뷰다. 물론 스타 뮤지컬 감독도 여럿 있다. 그런데 유독 <젊음의 행진> 연출가 강옥순의 이력 대부분은 안무였다. 그게 호기심을 샀다. 것도 실제 공연의 모티브가 된 KBS 젊음의 행진의 마지막 짝꿍이며 쇼안무가 출신. 원래 꿈은 연예인이었을까?
“81년부터 94년까지 젊음의 행진이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젊음의 행진’ 짝꿍이 되는 게 연예인이 되는 지름길이었죠. 그런데 저는 안 그랬어요. 젊음의 행진, 영일레븐을 보면서 저는 뒤에서 춤을 추는 언니, 오빠들이 좋았어요.”
그저 춤이 좋았을 뿐 연예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단다. 고등학교 시절, 그래서 ‘딴따라’라며 반대하는 부모님 몰래 학교까지 빼먹으며 오디션을 보러 인천에서 여의도로 향했다.
“몇 천 명 중에서 열 명을 뽑았어요. 전국에서 끼 있는 사람들 몇 천 명이 왔으니 될 줄 몰랐죠. 그런데 그게 제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은 더 몰랐어요. 지금은 제가 대학 강의를 가면 학생들에게 인생의 꿈이 뭐냐고 묻거든요. 그런데 돌아보면 저는 꿈이 없었어요. 춤이라는 거 하나만 보고 지금까지 달려온 거죠. 지금 연출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온 게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된 거예요. 하지만 남들은 고생을 많이 했다고들 하죠. 짝꿍을 할 때 워커를 신고 춤을 추다 발톱이 두 번이나 빠졌지만 저는 행복했거든요.”
<젊음의 행진> 첫 연출을 맡으며 작년부터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할 정도로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행복이라 여긴다. 하고 싶었던 일의 연장선상이므로.
“송승환 대표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사실 지금 20대는 전혀 몰랐겠지만 'KBS 젊음의 행진'의 초대 MC는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송승환. 마지막 짝꿍이었던 강옥순 역시 한 무대에서 그를 만난 적은 없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 제작자이자 프로덕션 회장인 송승환과는 ‘젊음의 행진’ 프로그램이 폐지된 뒤 배우와 제작자의 만남으로 인연이 시작됐다.
“1996년 ‘고래사냥’이라는 뮤지컬에 조안무로 들어갔는데 배우로 나서보라는 이윤택 감독님의 권유로 무대에 올랐는데 목을 심하게 써서 성대 결절이 왔어요. 그때 배우를 관뒀죠. 그리고 그때 같이 일해보자고 한 사람이 바로 송승환 회장이셨어요.”
그때 그녀가 안무가로 나섰던 작품이 지금의 송승환 회장을 있게 한 ‘난타’. 그렇게 지금까지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송승환 회장님은 제가 인생의 길을 가다 만나는 가시밭길이나 낙엽이나 자갈밭을 치워주시는 분이죠. 제 롤모델이기도 해요. 삼촌과도 같은 분이죠. 얼마 전에는 밥을 사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샀다고 생색을 냈죠. 6천 원짜리 밥이지만 조카가 잘 커서 사주는 밥을 먹었다는 생각을 하실 거예요. 어떤 인터뷰에서 저를 동료라고 하셨는데 저도 동료로서 뒤지지 않는, 창피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고맙단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닭살스러워서. 그래서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로 안무상을 받았을 때 “송승환 대표님께 이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는데 제가 너무 뿌듯하더라고요.”
“무대 스탭들과는 0.5초까지도 싸워요”
안무가일 땐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동작을 만들어 낼 것인가 끊임없이 연구했던 그녀, 이제는 전체적인 블라킹을 생각한다.
“어떤 색을 집어넣느냐가 연출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저는 안무를 짤 때도 동작 하나하나에 연기를 부여했어요. 성격마다 걸음걸이가 다 다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느냐를 생각했죠. 그게 안무가 출신의 연출자들이 나오는 이유기도 해요. 안무할 땐 열 개의 고민이 있었다면 연출을 할 땐 고민이 천 개가 된 거 같아요.”
특히 배금택 원작 ‘영심이’를 모티브로 한 뮤지컬 <젊음의 행진>에서 강옥순이 배우들에게 요구한 건 과장되지 않은 몸짓과 힘을 뺀 연기다. 그래서 끼 많은 배우들의 수위 조절이 가장 어려웠다.
“어떤 배우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노래하면서 계속 연기를 해요. 그래서 다 빼라고 했죠. 연기는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빼는 게 더 오래 걸려요. 양희은 선배도 노래를 할 때 힘을 빼는데 35년이 걸렸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렇다고 안무만 맡았을 때처럼 찬바람 쌩쌩 불게 배우들을 지도하진 않는다.
“춤에선 제가 맞는다고 생각하고 가르쳤지만 연기 연출은 저만이 정답이 아니니까요. 제가 더 다가갔죠. 배우들의 얘기를 더 들으려고 했고요. 대신 저는 무대 스탭들과는 0.5초까지도 싸워요. 달이 떴는데 사라지기까지 2초 후에 없어질지, 5초 후에 없어질지를 두고도 논쟁하니까요. 그러면서 많이 늘었죠.”
2013 <젊음의 행진>, 소울과 펑키로 붐업!
2007년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주크박스 뮤지컬 <젊음의 행진>, 벌써 500회 공연, 25만 관객이 보고 갔다. 2011년 첫 연출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연출을 맡은 강옥순의 각오도 남다르다.
“기본적인 시놉은 달라진 게 없는데요. 곡 선정을 올드해지지 않게 조금씩 바꾸고, 특히 노래도 노래지만 영심이와 경태의 사랑이 잘 보이도록 드라마를 보강했다는 게 달라졌죠. 전체적으로는 소울이나 펑키스타일이라 요즘 젊은이들도 좋아해요. 그래서 붐업되는 분위기가 연출되죠.”
사실 왕년에 인기 있던 대중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줄거리를 입힌 주크박스라는 뮤지컬 장르는 이제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강옥순 연출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점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젊음의 행진>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건 진화하는 뮤지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본을 살리면서 세련되게 바꾸는 거죠. 주크박스 뮤지컬의 장점은 알려진 노래가 나온다는 거예요. 관객들이 쉽게 흥에 겨워서 즐기니까요. 반대로 단점은 노래가 주가 되어서 드라마가 단순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거죠. 오래 가려면 드라마가 주가 되고 노래가 설명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모든 관객이 따라 부를 정도의 익숙한 노래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배우들이 색깔을 잘 잡아서 관객을 압도할 만큼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관객들이 실망할 수 있거든요.”
“이제야 꿈이 생겼어요”
딱히 뚜렷한 꿈이 있었다기보다 춤이 좋아 시작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출가라는 네임카드까지 달게 됐다는 강옥순은 그래도 아직 무작정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잠시 멈춰선 일이 있었는데…
“2010년에 미스코리아 대회 안무를 했을 때 차를 타고 가다 평창 동계 올림픽 현수막을 보면서 ‘아, 저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어요. 그런데 연이 닿을 길이 없었죠. 그래서 생각만 하다 말았는데 2011년에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젊은 감각으로 개막식과 폐막식을 준비하자고 해보다가 저를 눈여겨보셨다고 하더라고요. 프레젠테이션을 통과해서 결국 제가 맡게 됐죠.”
무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의 개막식과 폐막식 안무를 맡게 된 강옥순. 준비만 3년째다. 이제 좀 윤곽이 잡히는 듯도 싶다. 그리고 막연했던 꿈에 한 발 다가섰음도 느낀다.
“꿈이 없던 아이가 춤 하나로 여기까지 온 거죠. 최근 생긴 제 꿈을 이루려면 평창까지 아직 남아있어요.”
기사 한 줄로 시작된 작은 호기심이 거대한 그녀의 인생을 엿보게 했다. 꿈을 이루는 법, 기도만 할 일은 분명 아니라는 것.
참, 잊지 말아 달랬다. <젊음의 행진>이 10년, 20년 계속 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 뒤에 나와 있는 무대, 조명, 음향, 홍보팀 등 제작진의 작은 이름과 사진을 기억해주길 말이다. “그들의 땀방울이 젊음의 행진을 만드는 거니까요.” 강옥순 감독님, 연출 데뷔 2년차…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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