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 중 ‘책장에서 날 기다리는 <빨강머리 앤>’
얼마 전 <빨강머리 앤>이 영화관에서 새롭게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진저리쳤다. ‘왕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런 기분이었다. 애니메이션 주제가에서는 “빨강머리 앤, 귀여운 소녀, 빨강머리 앤, 우리의 친구~” 하고 다정하게 노래 부르지만 아직 한 자리수의 나이일 적에 그 앤이라는 계집애는 귀엽지도 않았고 누구 친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친구는 아니었다. 아, 우리 엄마의 친구였던 듯은 하다. 텔레비전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엄마는 유독 빨강머리 앤이 수다를 떨며 해맑게 숲을 돌아다니는 시각이 되면 조용히 텔레비전을 켜셨는데-예나 지금이나 나는 '눈치’라는 파트가 장착되지 않은 채로 태어났다-설마 어른이 만화를 보고 있을까 싶어 무심코 채널을 돌렸다가 목이 뒤로 꺾일 만큼 얼얼하게 따귀를 얻어맞았다.
그 때부터 앤과 나의 사이는 썩 좋지 못했다. 아마 나는 앤의 친구들 중에서 고르자면 퉁퉁하고 샘이 많은 조시 파이와 닮은 꼴인가 모양이다. 따귀의 기억이 생생해서 빨강머리 앤을 tv나 동화책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라’ 염색약을 써서 초록색으로 변한 머리털이 영원히 그대로이길 바랬고, 주근깨가 더 크게 나서 아예 곰보가 되어 버려라! 하고 빌었다.
그런데 아니, 아니 이게 웬걸, 어렸을 때는 주근깨에 빨간 머리에 빼빼 말랐다고 그렇게 칭얼대더니 어른이 되자 이 모든 게 장점이 되어 버린다. 주근깨는 코끝에만 두세 개 남았고, 몸매는 호리호리해서 살이 잘 찌는 체질인 다이애너가 부러워할 정도에 길버트와 사귄다는 풍만한 미녀를 관찰하고는 ‘저 애는 살이 잘 붙는 체질이군. 중년이 되면 뚱뚱해질 거야. 몸매는 내가 더 낫군’ 하며 의기양양하게 혼자 분석을 마치는 장면을 보자니 아주 살이 잘 붙는 체질인 나는 더더욱 이 여자를 안 좋아하게 된다. 빨갛던 머리? 나중에는 동네 사람들이 다들 금갈색이라고 하는 머리색이 된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몇 년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이었던 걸 몇 년 째 우려먹는군, 흥이다, 하고 인상을 쓸 수밖에.
게다가 마슈 아저씨와 머릴러 아줌마! 이 사람들은 노인이 되어가는 마슈 아저씨의 농사일을 도울 건강한 소년을 원했지만 잘못 배달된 이 소녀가 훌쩍훌쩍 우는 바람에 집에 들여놓게 되고, 그 때부터 이 가문에는 몰락의 기운이 감돈다! 어느새 딸처럼 사랑하게 된 앤의 상급학교의 학비를 대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마슈 아저씨는 죽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머릴러 아줌마는 ‘앤, 너를 공부시키는 것이 마슈 아저씨의 꿈이었다’며 앤의 최고 학부 학비를 대기 위해 집을 줄인다. 수다쟁이 린드 아주머니와 한 집에 살면서 학비를 마련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도 이 놈의 계집애는 투덜투덜하면서 ‘왜 나만 민자 소매옷을 입어야 하나요, 아이들은 전부 다 부푼 소매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하면서 유행하는 옷을 내놓으라고 칭얼칭얼.
아니 거둬 준 것만도 고맙지 웬 부푼 소매 타령? 소매가 달린 옷이 있다는 것만 해도 고맙지 않느냐, 하고 나는 생각했으나 마슈 아저씨는 몰래 이웃에게 부탁해 그 놈의 ‘부푼 소매 드레스’를 앤에게 선물한다. 그리고 불과 몇 년 후 그는 부푼 소매 드레스 비용이나 사립 학교 책값이니 하는 것 때문에 열심히 일하다가 죽고 마는 것이다. 아니 잠깐 잠깐, 이건 정말 한국 막장드라마 대본아 무색할 정도가 아닌가. 장차 미인이 될 소질을 지닌 고아 소녀, 여기저기 맡겨져서 아이를 보면서 눈치 하나는 빠르고, 울새가 어쨌다느니 벚나무가 저쨌다느니 시골 사람에게는 당연한 풍경들을 새롭게 표현해 그들의 일상을 달라지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공부를 하겠다고 양부모들을 하나는 죽기까지 몰아붙이고 하나는 셋방살이 신세로 만든 다음 본인은 우아한 의사 사모님으로 골인! ‘마성의 여인’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엄청난 능력이다.
앤을 이렇게 생각할 만큼 성격이 삐뚤어진 걸 보니 나는 조시 파이 가문의 일원이 맞는 것 같다. 제목을 <마슈와 머리러 남매 수난기>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고아 하나 데려왔다 살림 거덜> <마슈(성을 까먹었다)가의 몰락> 도 괜찮을 듯, 앤 쪽에서는 여성수기 느낌, 혹은 자기계발서로 <이젠 의사 사모님이 되고 싶어요> <확실히 입양되는 방법 best10>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심술궂게 빈정거리던 내가 비로소 앤과 화해하게 된 것은 어른이 되어 읽은 앤 전집의 뒷부분에 나오는 앤이 성인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물론 졸업 후 학교에서 근무하며 늘 부루퉁한 동료 교사에게 세상에 빛나는 것이 많이 있다고 감화시키려는 것 따위는 싫었다. 아마 내가 앤한테 걸렸다가는 제일 먼저 감화의 대상으로 찍힐 것 같아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앤은 어린 시절 친구인 길버트와 결혼하고, 그가 의사 자격을 얻을 때까지 몇 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다 집에 들어앉는다. 여기서도 나는 투덜거렸다. 그 좋은 공부 하겠다고 양부모 신세를 망쳐놓고 집에 편히 들어앉아?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를 네다섯씩 낳아 놓은 것이다. 길버트, 그렇게 안 봤는데 당신, 저격수였나…?
그리고 젊은 주부가 된 앤은 아이를 낳은 후 갓 태어난 딸을 빨리 안아 보고 싶어 ‘환희의 하얀 길’을 보았을 때보다 더 들뜨지만 어미가 제 자식을 보았을 때 천금처럼 귀한 첫 딸은 이미 싸늘했다. 사산이었다. 하필 출산을 지휘하고 아내에게 죽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잔인한 통지를 해야 하는 것은 남편 길버트의 몫이었다. 그렇게 앤과 길버트의 첫 딸은 앤이 신혼생활을 시작한 첫 집 한 켠의 조그만 무덤 속에 영원히 누웠다. 다른 곳으로 부임지가 바뀌면서 앤과 길버트는 그 집을 떠나지만 앤의 마음 한 조각은 언제까지나 그 무덤 속에 함께 있지 않았을까.
여자에서, 또 어머니가 된 고통은 이게 끝이 아니어서, 큰아들 젬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겠다고 마을 청년들과 선발대로 떠나 버린다. 앤의 공상벽과 시인 기질을 물려받은 둘째 아들 월터는 어찌 보면 가장 어머니를 닮은 자식이다. 전쟁을 혐오하던 그는 대학에서 몇 번이나 입대를 거부하는 겁쟁이라고 괴롭힘을 당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할 일이 있다고 확신하며 전쟁터로 떠나고, 그렇게 앤은 울지도 못하고 두 아들을 전송한다. 얼마 후 월터가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다는 통지가 도착한다. 다행히 첫째 아들 젬은 긴 기다림을 가족들이 견딘 후 집에 돌아왔지만, 영원히 한쪽 다리가 불편한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은 돌아와 준 것만을 기뻐한다. 그 동안 머릴러 아주머니의 이름을 땄지만 애칭으로 ‘리러 마이 리러’라고 부르는 막내딸은 부쩍 성장하고, 앤은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래도 계속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끝 권까지 다 읽어간 다음에는 ‘흥, 말라깽이 좋아하네, 어른 되면 날씬하다고 잘난 척 하잖아’, 하고 편협하게 쳇쳇거리던 처음과 달리 ‘어휴 언니, 고생 많이 하셨구려, 언제 순대국에 소주나 한잔 하십시다’, 하는 마음이 되었다. 빨강 머리 앤은 나의 친구는 아니었지만 슬픔과 고통을 차근차근 견뎌 가며 제 앞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훌륭한 여자였다. 멋진 여자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제 몫의 행복도 기쁘게 환영하지만 제 몫의 불행도 고개 돌리지 않고 견뎌내는. 내 나이면 앤은 네 번째 아이쯤 낳았을 텐데, 자꾸만 내 몫의 고생과 불행에서 도망치려 하는 나는 앤에게서 좀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상이라는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까딱하면 망상이 되어 버리니 주의하는 것도 어른 여자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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