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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잘난 자녀의 미래를 왜 부모가 결정하나? – 고성국, 남경태

자유? 우정? 너희들도 고민하고 있잖아!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인생론 시리즈 『덤벼라, 인생』 『열려라, 인생』 행복을 외부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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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우리는 무엇에 대해 고민했을까. 단순히 성적, 친구, 가족들에 대한 고민만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60년대 70년대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고박(고성국 박사)과 남쌤(남경태 선생님)이 인생을 조금 일찍 깨달은 선배로서 청소년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한다. 조언, 가르침은 아니다. 단지, ‘너희도 한번 생각해볼래?’하는 권유다.


책이 만들어진 동기가 무척 흥미롭다. 정치평론가 고성국과 인문학자 남경태는 1980년대 초 백산서당 출판사에서 기획의원과 편집부원으로 만났다. 고성국의 말에 의하면 두 사람이 작당해 만든 책 때문에 출판사 사장이 늘 도망 다니거나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고. 지난해, 20년 만에 남경태와 조우한 고성국은 ‘남경태는 같이 일해볼 만한 친구인데, 작업 한번 해볼까?’ 생각했고, 이런 작은 사심이 ‘고박과 남쌤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론 시리즈’ 『덤벼라, 인생』 『열려라, 인생』을 탄생시켰다. 남경태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이게 책으로 나올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선배 고성국과 대화는 치기 어렸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데 불씨를 지폈다. 현재 불교방송 라디오 <고성국의 아침저널>을 진행하고 있는 고성국은 때때로 “제 인생도 좀 열어 주세요”라는 청취자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곤 한다. 10대를 염두에 두고 쓴 책 『열려라, 인생』인데 50대 중년의 청취자도 인생이 좀처럼 열리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림’의 의미에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청소년을 불문하고 우선 『열려라, 인생』을 한번 펴본다면 꽤나 흥미로운 자기 탐색에 들어설 수 있다.

사랑, 권력, 죽음, 정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 『덤벼라, 인생』에 이어 2편인 『열려라, 인생』에서는 우정, 자유, 관용, 직업, 행복에 대해 고박과 남쌤이 대화를 펼쳤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두 사람은 “책은 진지하고 어딘가 고고해야 하며, 가르침과 훈계, 교훈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리고 그저 독자들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너도 우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니? 우리도 그랬는데’라는 단순하고 가벼운 질문을 슬쩍 내민다.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조언은 일찌감치 갖다 버린 지 오래. 인문학자 남경태는 심플하게 말한다. “음악이든 운동이든 그냥 막연히 보면 수십 년을 봐도 초보적인 재미밖에 모르는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보면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어. 행복도 그렇겠지. 관심을 기울일수록 행복의 농도가 진해질 거야.” 『열려라, 인생』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도 다르지 않다. 다섯 가지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인생의 농도가 꽤 진해질 수 있다는 것. 고박과 남쌤이 출간을 기념해 <채널예스>와 마주한 자리에서 나눈 『열려라, 인생』의 후일담을 사설 없이 옮긴다.




가끔씩 자기 성찰을 해보는 건 어때?

남경태 아무래도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 청소년 때 자유에 대해 진진하게 고민했거든. 청소년기에 나는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진보적인 학생도 아니었는데 길에서 장발단속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 정치적 독재에 대해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답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 말라는 것 좀 없었으면 했지. 정치보다 문화적으로 더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어. 지금의 청소년들도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어? 청소년이라는 처지에서의 자유, 현실에서의 부자유, 그런 고민들을 하겠지. 보통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는 현실적인 의미고 철학적 자유는 필연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하는데, 청소년 당시에도 두 가지 측면에서의 부자유를 느꼈지. 『열려라, 인생』을 통해 ‘자유’에 대해 풍요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고성국 내가 10대일 때를 돌이켜보면 우정, 사랑 이런 걸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아. 나는 10대 때 자유, 평등 이런 개념은 잘 안 잡혔어. 성인이 돼서야 자유를 고민했지. 우정, 사랑이라고 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깊은 철학적 사유가 필요하지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잖아. 사실 내 초등학교 성적표를 보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 지금 방송도 진행하고 있는데 설마 고성국이 그랬겠어?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나는 낯선 사람이랑 편하게 이야기를 못 나눠.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는 티가 나는 거지. 그래서 성격 안 좋다는 소리도 종종 들어(웃음). 항상 내가 변명처럼 하는 이야기가 ‘친구 백 명 있으면 뭐하냐, 목숨이랑 바꿔도 좋을 한 명의 친구가 있는 게 낫지’인데,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 아들이 친구에 죽고 못 살자 아버지가 그럼 한번 시험을 해보자면서 살인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꾸며서 아들의 친구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들 친구들은 다 도망갔고 평소에 친구 하나 없어 보였던 아버지의 친구만 발벗고 나서서 도와줬다는. 난 그런 친구를 만들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지. 하여튼 난 ‘우정’에 대해 대화를 나눈 게 가장 기억에 남아.

고성국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공부를 가장 잘했던 나이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야. 내 지적 능력이 최고도로 발달했던 때 같아. 중3 1년 동안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밥 먹는 시간에도 책을 파면서 공부했는데 영어도 그 때 제일 잘했지. 지금은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조하는 거 같아. 인생, 사랑 죽음. 우정 이런 고민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해서 중학생이 되면서 집중적으로 고민했어. 14, 15살 때 가장 강렬하게 나를 성찰적으로 돌아봤던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의 청소년들에게 『열려라, 인생』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을 거야. 수준과 형태가 다를 뿐이지 모두들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잖아. 나이가 들면서 사회의 상투성에 물들어가면서 하루하루 별 고민 없이 사는 어른들에게는 좀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남경태 그렇지. 나이가 들면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진 않으니까. 내가 중1 때, ‘우주소년 아톰’이 나왔는데, 나름 어릴 때도 조숙하고 체면을 차리는 성격이었는데도 친구네 집에 가서 가족들이 밥 먹는 틈 바구니에서 그걸 보고 왔어(웃음). 요즘 애들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다고 문제라고 하는데,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똑같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 조건이 달라져서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얼마 전에 버스를 타는데 여중생이 카톡을 하다가 친구한테 전화를 걸더라고. 뭐 화해하자 이런 내용이었던 거 같아. 참 보기 좋은 결말이긴 한데, 우리 어릴 때를 비교해보면 친구랑 학교에서 싸우면 내일 등교할 때까지는 친구 얼굴을 못 봤잖아. 전화를 할 수도 카톡을 할 수도 없었으니까. 소통 면에서는 굉장히 나쁜 시대였는데 성찰적 측면에서 보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어. 뭐 하루 동안 생각을 하면서 친구랑 더 크게 싸울 수도 화해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성찰의 기회는 생기니까. 하지만 당장 카톡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지금 이런 매체 시대에 갖다 놓으면 누구라도 지금 상황에 적응하게 될 거야.

고성국 나처럼 휴대폰을 열심히 안 하면 성찰하게 돼(웃음).

남경태 소수의 차원이지, 다수한테 그럴 순 없으니까.

고성국 휴대폰 안 쓰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아. 나는 권하고 싶어. 휴대폰을 좀 꺼두자고. 요즘은 핵가족 사회라서 가족들끼리 모여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식당에 가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뿐인지 다들 자기 휴대폰 보기만 바빠.

남경태 맞아. 지하철도 재밌어. 다들 휴대폰만 보고 있으니까 맞은편에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어도 눈 마주칠 일이 없다니까(웃음). 나는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 사람들은 뭐 하러 가는 걸까? 궁금해하기도 하지.

고성국 집에서는 전파를 방해해서 휴대폰이 안 터지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템플 스테이를 많이 권해. 아주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현대 커뮤니케이션을 한번 끊어보는 거지. 현대문명을 근원적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가끔은 끊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남경태 조금 다른 의미일지 모르겠지만, 책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주얼 메시지가 강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 어릴 때 무협지를 보면 늘 절세미녀가 나오는데 영화화가 된 작품을 보면 절세미녀가 아냐. 내 머릿속에 세팅된 그림을 영화감독이 구현할 수는 없는 거지. 영상매체가 확실히 강렬하지만 텍스트라는 매체가 주는 성찰은 상당히 깊고 강력해. 형 말처럼 소통도 중요하지만 강제성을 띠더라도 가끔은 소통을 끊고 자기 성찰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견해를 만들자

고성국 내가 20대 후반, 박사과정을 밟다가 대학강사를 하던 중에 감옥에 갔어. 나름대로 사회과학적으로 훈련이 된 상태였지. 그런데 감옥에서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게 됐어. 괴테가 소년기 자기 삶을 쓴 건데 아마 나이가 열다섯 정도 된 중학생이었을 거야. 이 친구가 지적 방황을 하고 여러 가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는데, 난 책에 나오는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고 책도 읽은 게 하나도 없는 거야. 나름 대한민국의 괜찮은 정규학교를 나와서 진보적인 사회과학자라도 자부했던 소장학자가 독일의 열다섯 살 소년의 지적 수준에도 못 미치는 거였지. 그 때 굉장히 부끄러웠어. 미학은 20대에 승부를 보고 사회과학은 늦게 숙성된다고 하지만, 독일의 열다섯 소년과 비교할 수 없는 처지였지. 그 때 다시 고전을 읽기 시작했어. 다이제스트로 읽었던 고전을 넘어서는 기회가 됐지. 지금의 10대들에게 그런 걸 심어주고 싶어. 토익점수, 수학경시대회 1,2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글로벌시대로 나가려면 보편적 가치, 교양을 청소년 시기에 습득해야 한다고. 사실 『덤벼라, 인생』 『열려라, 인생』을 쓰게 된 것도 그런 문제의식을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남경태 마찬가지야. 20세기 초 하이젠 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보면, 10대 후반의 소년이 캠핑에 가서 하는 이야기의 수준이라는 게,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 개인적으로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동양과 서양이 학문의 출발점부터 달랐다는 거야. 제자백가시대 동양의 진리는 시험관이 이미 알고 있어. 네가 이걸 알았냐 모르냐가 아니라 이미 시험관이 정한 답을 찾으라는 거지. 하지만 서양은 차이를 발견하고 철학을 구성해 견해를 만들라고 해. 오피니언을 내라는 거지. 우리나라 학생들이 유학에 가면 1학년 때 배우는 팩트 중심의 수업은 잘하는데 2학년이 되면 토론 중심의 수업이 되니까 잘 못 따라간다고 하잖아. 최근에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 외국인 교수가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고 두 번 놀랐다는 거야. 처음엔 영어를 너무 잘해서, 두 번째는 영어밖에 잘하는 게 없어서. 우리 교육 풍토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만 역사를 보면 학문부터가 차이가 있었던 거야. 극복을 해야지.

고성국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런 주제로 고민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던지는 것까지만 하고 싶어. 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이 문제가 중요하니까 고민을 좀 해봐라’는 거지. 10대 어릴 때, 이런 문제에 열병을 앓아보지 않으면 인생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

남경태 책에서 내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뭘 가르쳐주겠다는 생각은 없어. 부담을 지는 것도 싫고. ‘나는 이렇게 고민했는데 너는 어떠냐’ 이렇게 던져주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거지.




우리 시대에도 왈패는 있었지만

고성국 남쌤이랑 작업하면서 느낀 건데, 남경태는 참 솔직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솔직하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의미, 느낀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 정형화된 틀 안에서 숙성시켜서 정제된 표현으로 말하지 않는 건,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느낌과 생각의 진정성이라고 할까. 거칠더라도 적나라하게 그대로 드러내는 게 이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 내가 정치평론을 하면서 느끼는 건데, 정치인은 보통사람들과 비교해보면 겉과 속이 훨씬 달라. 평범한 사람도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지만 그 평범한 수준을 훨씬 넘어서지. 이 이중적인 성격, 생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야. 저런 아주 극한적인 상황을 소화할 만큼 특별한 DNA가 있는 건지, 그것을 넘어설 만큼의 권력의지가 있는 것인지. 정말 선택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할 직업이 아닌가 싶어. 때때로 나한테도 정치를 안 할거냐고 사람들이 묻곤 하는데, 나랑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 같아. 난 정치인의 이면을 보여줌으로 정치의 본질을 국민들이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 그래서 적도 많이 생기지만 반대로 통쾌하다는 말도 종종 들으니까.

남경태 고 선배는 방송을 많이 하니까 시청자나 청취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많이 받잖아. 일일이 다 모니터하는 편이야?

고성국 난 안 봐. 안 듣고 안 보는 거지. 나도 사람인데 악플에 영향을 받을 수 있잖아. 그리고 사실 난 컴맹이야. 아예 할 줄을 몰라.

남경태 그럼 중간에 사람들이 걸려서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건가?

고성국 그렇지. 기사는 보는데 댓글까지 찾아보진 않아. 할 줄도 모르고. 혹시 나를 공격하고 싶어서 악플을 다는 사람이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 어차피 난 안 보니까.

남경태 난 안 보긴 하지만 궁금하긴 하던데(웃음).

고성국 불교방송에서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작가들이 청취자들의 문자나 시청자 게시판 글을 추려서 나한테 보내줘. 그런데 어느 날, 제대로 못 거르고 원고를 준 거지. 어떤 한 청취자가 ‘고성국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쓴 글을 나한테 줬는데 난 그런 글인지도 모르고 읽은 거야. 근데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내일 당장이라도 방송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지. 피디들이랑 작가들은 난리가 났고(웃음). 사실 그 청취자의 글이 심각한 의견도 아니고 거친 것도 아니었어. 하지만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난 진짜 내가 편향적인 사고로 진행을 하고 있다면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건 방송인의 기본 자세가 아니니까. 그래서 그만두겠다고 말한 거고. 그 다음부터 작가가 원고를 잘 안 보여줘(웃음).

남경태 나도 가끔 방송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피디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모니터를 생전 안 하니까.

고성국 이런 의견들에 영향을 받아서 평정심을 잃고 방송하는 게 싫어서 못 보는 거야. 상처받지 않는다면 봐도 되겠지만 인간은 대부분 이런 데 약하잖아. 연예인들은 댓글 보다가 충격을 받아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이 없는 경우에는 안 보는 게 좋다고 봐.

남경태 비판과 비난은 한 끗 차이인 거 같아. 애정이 있는 비판은 감정이 안 상해. 하지만 말은 정중해도 아주 비난 같은 느낌이 들면 정말 기분이 나쁘지.

고성국 한 달 전에 어떤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어. 내가 인터넷을 잘 안 한다는 걸 아는 독자라서 우편으로 직접 라디오국에 보내준 거지. 예전에 내가 쓴 책을 읽었는데 오타가 있다고 무려 15군데를 발견해서 어떻게 고쳐야 맞는지를 몇 페이지에 걸쳐서 편지를 썼더라고. 정말 고마웠어. 한 달 가까이 주머니에 그 편지를 가지고 다니다가 오늘 마침 그 출판사 대표를 만나게 돼서 전해줬지. 이런 애정 어린 비판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 같아.

남경태 애정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그런 거지. 정치기조가 다르더라도 바탕에 애정이 있으면 수용할 수 있는 거 같아. 어떻게 보면 침소봉대일 수도 있지만 우리 때도 왈패는 있었잖아. 돈 뜯는 동네 형들도 수두룩했고. 그런데 뭐랄까 돈을 뜯지만 휴머니즘 정신이 아주 없진 않았어. 상대방이 죽을 정도의 고통은 주지 않았지. 그런데 요즘은 정말 야비한 폭력을 가하잖아. 사람들의 폐부를 찌르니까 죽으라는 이야기로밖에 안 들리는 거야.

고성국 나는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고 믿어. 추상적인 이야기 아니라 구체적인 이야기야. 아버지 세대보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 우선 내가 아는 게 더 많아. 그러면 나보다는 자식세대가 백 번 더 잘났어. 그러니 당연히 못난 나보다 백 번이나 잘난 게 분명한 자식의 미래를 왜 내가 결정해? 사회가 매우 잘못됐어. 인류가 진보한다고 믿으면 내 자식세대가 나보다 낫다는 것, 구체적으로 믿어야 해. 하지만 나보다 나은 자가 왜 깨어있지 않냐? 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않냐? 그렇게 야단치고 격려할 부분은 있어. 맨날 잠만 자고, 먹고 자고만 하는 그런 애들 야단쳐야지. 다만 일단 얘가 깨어서 뭔가 하고 있다면 나보다 나은 짓이니까 원하는 방향대로 도와줘야 해. 그건 내가 살아봐서가 아니라. 무한히 믿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야. 그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거니까.

남경태 실제로 나도 그랬고 가급적 자기 마음대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스스로 만든 구속도 있었던 거 같아. 집이 어려우니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사실 학교를 다닐 때 왜 개근을 했을까, 후회가 돼. 땡땡이를 쳐본 적이 없다니(웃음). 본인이 선택해서 그런 거라면 이해하지만 난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스스로 제약을 가했던 거지.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가급적 주어진 조건에서 자유롭게 살고 자유롭게 누린 삶이 후회되지 않는 것 같아.

고성국 망하는 회사는 신입사원의 말을 안 들어서야. 임원이 자기가 가진 생각을 절대시하니까 망하는 거야.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밑에 있는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하면 덜 망할 거야. 난 실천하고 있어. 불교방송 클로징 곡을 선택하는 권한이 있는데, 난 20대 AD의 말을 믿어. 30대 메인 작가, 50대인 내가 원하는 곡을 틀면 안 되거든. 무조건 20대가 원하는 걸 선곡해야 청취율이 올라(웃음). 그렇게 살아야 해.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중요시했던 삶의 태도 중의 하나로 ‘안분지족(安分知足)’ 이라는 게 있어. 자기 분수를 지키고 거기에 만족한다. 굉장히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아. 권력이나 부처럼 바깥에서 주어지는 무언가로부터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자기 됨됨이를 스스로 평가하고 그 됨됨이에 맞는 정도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와 부를 누리겠다는 거거든. 검소한 가치관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을 외부의 시선이 아닌 자기 내면의 시선으로 본다는 거야. 더 많은 권력과 부를 향해 치닫는 오늘날에 비추어 의미 있는 가치관이라고 생각해. -『열려라, 인생』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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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인생 철수와영희
청소년들이 인생을 살면서 절실히 고민하는 우정, 자유, 관용, 직업, 행복 이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대담집이다. 사랑, 죽음, 공부, 정의, 권력을 다룬 『덤벼라, 인생』에 이은 ‘고박과 남쌤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론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기도 하다. 동성과 이성간의 우정, 사랑과 우정의 차이와 같은 가벼운 주제로부터 시작하여 ‘자유’의 근원 철학과 ‘관용’에서의 민주주의, 새로운 ‘직업’과 직업의 위기, ‘행복’의 정의에 대한 담론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청소년들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시야를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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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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