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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패션이 된 한국사회 - 『사회적 우울증』

자존심은 높은데, 자신감은 낮다 심리학 열풍에 더 우울증에 빠지는 한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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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나는 “우울증이 패션이 된 한국사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정말 힘든 사람도 많고, 마음의 고통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은 사회임은 분명하다. 이럴 때 일본에서 나타난 ‘사회적 우울증’이라는 개념은 우리사회에서 마음이 아파 고생하며, 우울하다고 자신을 인식하는 많은 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과거 정신과 교과서는 우울증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가 반응성 우울증이다. 이별이나 실패와 같은 일을 겪고 난 반응으로 우울증이 온 것이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힘들어하는 것은 정상반응이다. 그런데, 일부 사람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균적인 수준보다 훨씬 심하게 힘들어한다. 두 번째는 내인성 우울증이다. 특별히 우울해할 만한 일이 없는데도 그냥 기분이 가라앉고, 식욕이 떨어지고 잠을 못자는 우울증상이다. 이 경우는 생물학적으로 취약성이 있는 사람으로 파악했다. 요새는 이런 분류를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에는 유용한 면이 있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다마키는 『사회적 우울증』에서 고전적 우울증의 이분법이 아닌 새로운 분류법을 제시했다. 일본의 사회변화에 따른 새로운 환자군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전적 우울증은 위에서 설명한 내인성 우울증이다. 생물학적 우울증으로 중증의 증상이 있고 고전적 치료법에 잘 반응한다. 자기 동굴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고 다른 사람 신경 쓸 에너지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가 어지간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마음깊이 뿌리내린 중증 우울증은 증상에 따른 고통이 워낙 커서 환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한다.

사이토 다마키는 우울증이 현대사회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이런 고전적 우울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종 우울증 환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저자는 신종 우울증에 대해 사회적 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사회적 우울증’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원래는 정상적일 수 있는 개인이다. 또, 가족이나 사회 자체도 병리적이라고 할 만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사이의 관계가 병리적이면 개인에게 병이 생긴다. 관계의 어긋남,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해로운 영향을 주는 것이 개인을 우울증이라는 병리적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은 건강한데 가족과 관계가 그에게 우울증을 줄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우울증의 원인은 개인의 생물학적 소인보다 주변에 있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다소 소심한 성격이고, 생존이 치열하고 경쟁적인 환경에서 궁합이 맞지 않는 직장내 인간관계까지 더해지면 증상이 생기고 쉽게 좋아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우울증의 특징은 이렇다. 의사가 보기에 증상은 가벼운데 잘 낫지 않는다. 일을 하지는 못하는데 잘 지켜보면 놀러 다니는 것은 잘 한다. 무단결근, 병가를 내도 미안해하지 않고 직장과 부모의 탓으로 돌린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잘 맞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세상 탓을 한다. 병원도 잘 오지 않고 진단서를 받아야할 때만 찾아온다.

실제로 요새 필자도 병원에서 자주 만나는 유형이다. 중증의 우울증이라고 볼 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기능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힘들어한다. 약물치료에도 잘 반응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

이런 유형이 늘어난 것에는 사회문화적 영향도 크다. 심리학 열풍이 일본에서도 십수 년 전부터 불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성격분석을 하고, 왜 힘들어졌는지 심리적 이유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문제를

“어린 시절 폭력적 아버지 밑에서 자라 외디프스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라는 식의 실존적 고민이 심리학적 지식에 의해 더 강화되고 보강되며 합리화의 자료로 이용되며 고착된다는 것이다. 그런 지적 합리화의 뒤에는 다음의 심리기제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대사회의 젊은이들은 자존심은 높은데, 자신감은 낮다. 자존심은 위에서 잡아당기는 동기부여의 역할을 해주고 목표를 준다. 자신감은 자아를 밑에서 들어올려 목표를 좇아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 고고한 자존심에 걸맞는 자신감을 갖지 못한 겨우 ‘내 능력을 모두에게 보여주겠다’는 과도한 야심을 따라잡지 못하고, 결국 수치심에 사로잡혀 관계 안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드높은 자존심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무능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 거기다 자신감이 없으니 스스로 한발 앞도 못나간다.

이런 자중지란의 상태가 사회적 우울증의 실체다. 사회적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얼핏 보면 멀쩡하나, 자존심과 삶의 지향점이 지나치게 높게 잡힌 상태라 “나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감은 바닥이다. 혼자 무엇을 해본 적이 없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관계에 의존해서 살아온 삶의 패턴은 관계에 쉽게 영향을 받고 흔들린다. 한 관계에서 이쪽으로 흔들리면 저 관계에서는 저쪽으로 가라고 한다. 어찌할 바 몰라 흔들리는 사이에 마음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 여기에 더해 심리학 열풍은 “그래, 나는 우울증일 수밖에 없어”라는 자기진단을 내리게 하며,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덫 안에 자신을 가두어 버린다.

일본이 우리사회보다 대략 20년 정도 앞서 간다는 사회학적 관찰이 있다.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은 두 나라다. 일본의 사회적 변화로 생긴 새로운 병리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차를 두고 관찰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몇 년 사이에 이와 유사한 문제로 진료실을 찾는 젊은이를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해결책으로 저자는 환경의 변화를 제시한다. 환자의 자존심을 존중하고, 병이 지닌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무작정 쉬기보다 적절한 활동을 하고 타인과 관계의 끈을 놓지 말고 유지하기를 권한다. 생활습관과 주변환경, 그리고 대인관계의 패턴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히 이 사회적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사이토 다마키는 조언한다. 이러한 처방은 실제로 저자가 임상경험을 겪은 뒤 얻은 결론이다.

요새 들어 나는 “우울증이 패션이 된 한국사회”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만큼 우울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정말 힘든 사람도 많고, 마음의 고통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은 사회임은 분명하다. 이럴 때 일본에서 나타난 ‘사회적 우울증’이라는 개념은 우리사회에서 마음이 아파 고생하며, 우울하다고 자신을 인식하는 많은 이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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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우울증 사이토 다마키 저/이서연 역 | 한문화
저자는 은둔형 외톨이나 신종 우울증을 ‘개인의 병리’가 아닌 ‘가족과 사회 시스템의 병리’로 보고, 신종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법을 모두 사회적 관계에서 찾기에 신종 우울증을 곧 ‘사회적 우울증’이라 명명하였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적 우울증』에서는 사회 전반적인 환경에서 신종 우울증의 원인을 짚어보고, ‘자기애’가 발달하는 과정에 착안하여 이제까지 쉽게 간과했던 ‘인간관계’와 ‘활동’에 주목하여 약물치료가 아닌 새로운 치료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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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사회적 우울증

<사이토 다마키> 저/<이서연> 역11,700원(10% + 5%)

나도 혹시 신종 우울증? 신종 우울증에 대한 사회, 문화, 심리학적 통찰 성인 6명 중의 한 명은 일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이제 우울증은 감기와도 같은 흔하고 보편적인 질병이 된 것이다. 각종 항우울제나 치료법이 연구, 개발되고 있는데 우울증 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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