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요절한다’는 말, 예술계의 불길한 징크스 중 하나입니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으로 대변되는 3J는 물론이고 90년대의 영웅 커트 코베인과 꼭 1년 전 세상을 떠난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그런 징크스로 풀이되고 있지요.
여기, 국내에서는 이들만큼의 인지도를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또 한 명의 요절한 천재가 있습니다. 바로 티-렉스라는 그룹의 중추였던 기타리스트 마크 볼란인데요. 티-렉스는 데이빗 보위와 함께 1970년대 글램 록의 중요한 그룹으로 많은 음악 팬들에게 아직까지도 오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남긴 명반 < Electric Warrior >를 듣다 보면 블루지하면서도 신비한 마크 볼란의 기타 연주가 무척이나 인상적인데요. 신들이 천재의 재주를 시샘해 일찍 데려간다는 말, 그저 꾸미는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티-렉스(T-Rex) < Electric Warrior > (1970)
60년대 말 영국 런던에는 마크 볼란(Mark Bolan)이라는 이름의 기묘한 모습을 한 기타리스트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스티브 툭과 함께 듀엣 티라노사우러스 렉스(Tyrannosaurus Rex)를 결성하여, 그룹명처럼 신화에 나오는 동물 아니면 요정들을 소재로 한 다분히 동양적인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스티브 쿡은 잠시 후 미키 핀으로 교체되었고 그룹 이름도 간단히 티-렉스가 되었다. 그리고 「Ride a white swan」으로 시작된 화려한 히트 퍼레이드를 벌였다. 그들은 곧 10대의 우상으로 부상했다.
록 역사는 흔히 마크 볼란을 관능적인 로큰롤로 일컬어지는 글램 록(Glam rock)의 선구자로 규정한다. 글램 록은 관능적인 만큼 시각적, 극적 요소가 강조되어 글리터(glitter)라는 용어와 혼용되었으며 때로 양성(兩性)적인 분위기를 빚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이 분야의 톱스타로 군림한 데이비드 보위와 동일선상에 위치하며 실제로 두 사람은 초창기에 함께 활동한 적이 있었다.
둘 모두 1960년대 팝 스타들한테서는 볼 수 없었던 여성적 색깔, 화려한 의상과 충격적 분장 등을 내세웠지만 데이비드 보위가 공상과학 소재를 다룬 것에 비해 마크 볼란은 과거 지향성을 드러내 조금은 차이를 보였다.
글램 록 또는 글리터 록은 60년대 격동기를 거쳐 새로이 움트고 있던 ‘나의 세대’(The me decade)라는 의식변화에 발맞춰 출현했다. 개인주의 경향이 과도하게 표출되면서 시각 중시와 양성적 표현으로 강조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70년대 초반 영미사회가 일시적으로 맞은 풍요로운 경제와 그에 따른 만연된 소비풍조라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이 음악계에 스며든 결과였다. 티-렉스가 어필한 것도 그 같은 변화의 영향이 컸다.
무명에서 이미 벗어난 그들의 인기는 71년 10월 이 음반이 발표될 무렵 렉스매니아(Rexmania)란 말까지 낳으며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당시 그들을 향한 어린 록 팬들의 환호는 대단한 것이었다. 73년 아마추어 감독이던 비틀스의 링고 스타는 자신의 영화
< Born to Boogie >에 그 열기를 다큐멘터리로 묘사하기도 했다.
음반 제목에 일렉트릭이란 말이 붙은 것은 당시 볼란이 처음으로 일렉트릭 기타의 ‘믹스’ 사운드를 선보인 데서 비롯되었다. 앨범의 사운드 쪽 매력은 전적으로 그 일렉트릭 기타가 제공하고 있다. 그것이 주조해낸 리듬은 단번에 티-렉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특징적이었고 그들만의 고유상표가 되었다.
그런 일렉트릭 기타의 리듬이 주는 맛을 대표하는 「Get it on」은 이 음반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었다. 미국에서는 선정성을 암시한다하여 「Bang a gong」으로 제목이 조정되어 발표되었고 싱글차트 10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초기 노래들이 보여준 신비성은 다소 퇴색했으나 이 곡을 포함해 「Monolith」, 「Cosmic dancer」, 「Planet queen」같은 곡은 여전히 일반인들에겐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때로 외설스러운 어휘들이 담긴 이 곡들의 노랫말은 ‘내가 중심이 된’ 세대의식을 반영, 당시 젊은이들의 자기본위적 사고와 더러는 병적인 자기집착 증세가 낳은 도취적 애정표현으로 가득 찼다.
“너의 자극은 너무 달콤하고 너의 진동은 내 발을 달아오르게 하지. 난 너의 사랑을 원하는 흡혈귀야.”
-「Jeep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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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일렉트릭 기타의 리듬과 새가 지저귀는 듯한 마크 볼란의 보컬이, 변화와 균형을 갖춘 곡 전개와 멋지게 결합된 걸작이었다.
그러나 티-렉스의 호시절은 결코 길지 않았다. 변덕스런 10대들은 곧 그를 페기처분 해버렸고 끈질기게 두드린 미국 팝계의 문도 끝내 열리지 않았다. 77년 그는 재기를 시도하던 와중에서 애인이 몰고 가던 자동차가 나무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팝계의 귀공자’는 그렇게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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