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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내 안의 욕망 때문이다

그들은 왜 얼굴을 가리고 키스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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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그림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육체적 욕망에 이끌려 서로의 입술에 탐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얼굴에 얇은 천이 둘러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일까?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하는 블라인드 데이트에서의 키스? 아니, 어쩌면 상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랑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르네 마그리트, 〈연인〉, 1928


얼굴을 가린 채 키스하는 연인

이상한 그림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육체적 욕망에 이끌려 서로의 입술에 탐닉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얼굴에 얇은 천이 둘러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의미일까?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하는 블라인드 데이트에서의 키스? 아니, 어쩌면 상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랑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외모로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주제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들은 서로를 알면 안 되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연인〉이다. 제목을 보니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에는 틀림없는데, 신화 속 에로스와 프시케도 아니고 얼굴을 감추면서까지 키스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수수께끼 같은 이 그림으로 인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첫눈에 반했다”거나 “그가 들어서는데 후광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상대의 외적인 모습에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곤 한다. 하지만 또 그와 동시에 “그가 내 외모에 반한 것뿐이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

내 찰랑이는 긴 생머리가 사라지면, 그가 그토록 사랑한다던 나의 맑게 빛나는 눈동자가 실은 서클렌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보다 살짝 큰 키가 실은 5센티가 넘는 깔창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5년 전에 코를 높였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날씬하던 몸매가 흐트러져 점점 배가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혹은 그녀는 나를 사랑할까, 하는 불안감.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는 믿음 또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랑을 얻기 위해 그토록 외면에 신경 쓰면서도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서로 다른 극단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이 모순된 마음. 대체 사랑은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은 상대가 아닌 내 안의 욕망에서 나온다

좀 건방지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오래전부터 사랑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10대 중반부터.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말은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은 사랑에 빠졌고 한번 사랑에 빠지면 열정적이 되었다. 그때만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이 없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다.

하지만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그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사랑의 이타적인 성격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심지어 모든 사람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모성애도 지독한 이기심의 발로라는 걸 ‘보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어쩌면 상대방의 어떤 점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본인의 열망이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잘생기거나 그녀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는 내 안의 욕망이 그를 사랑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만약에 누군가가 “괜찮은 사람이 없어서 사랑할 수가 없어요”라고 한다면 그 말이 틀리지는 않더라도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건 사랑하고자 하는 내 안의 욕망이지 상대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매우 냉정한 진단일 수 있다. 흔히 ‘내 모습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바라지만 그것은 현실에는 존재하기 힘든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상상력이 우리를 사랑하게 한다

박민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라 말한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무릎을 친다. 그렇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상대에 대한 오해, 나 자신에 대한 오해, 자기 안의 욕망에 대한 오해. ‘있는 그대로’라거나 ‘순수한 존재 그 자체’라는 건 알 수 없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 너무 절망적인가? 하지만 박민규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 다니는 고린도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여기서 우리는 ‘오해’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사랑의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사랑은 오해이지만 동시에 상상력이다.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완전한 존재가 못 되지만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갖고 있으므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람 빠진 풍선 같던 마음이 다시금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다.

그렇게 본다면 마그리트의 〈연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불완전한 상대를 앞에 두고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슬프지만 아름다운 통찰력이지 않은가!


『그림, 눈물을 닦다』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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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조이한 저 | 추수밭
심리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미술평론가 조이한의 그림 심리 에세이. 고전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우리의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작품들을 담았다. 사랑, 결혼, 관계, 슬픔, 상처, 자살, 삶의 비극성, 외모 콤플렉스, 늙음과 죽음 등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들을 그림을 통해 성찰한다. 모딜리아니의〈모자를 쓴 여인〉을 통해 우리는 결코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는 관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카라바조의〈나르시스〉와 마그리트의〈연인〉을 통해 자기애와 상상력이 사랑의 본질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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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이한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노동자 문화운동연합에서 가수로 활동하다 199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원래는 심리학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었으나 그림의 매력에 빠져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했다. 현재 서강대 평생교육원, 인하대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상상마당 등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사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해석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림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오기로 버티던 유학 시절, 에곤 실레의 〈해바라기〉 앞에서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알 리 없는 오스트리아 화가가 100년 전에 그린 그림이었지만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준 것처럼 위안을 받았다. 이 책에서 그녀는 단지 그림 보는 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랑 때문에 아픈 마음, 삶의 고달픔에 지친 마음,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마음을, 덮어놓고 괜찮다고 하는 위로가 아닌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다독인다.
지은 책으로는 《천천히 그림 읽기》(공저),《그림에 갇힌 남자》,《위험한 미술관》,《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뉴욕에서 예술 찾기》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이 그림은 왜 비쌀까》,《예술가란 무엇인가》(이상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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