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본 예쁜 여성을 소설 첫 장면에 넣었다” - 은희경 『태연한 인생』
태연함 속에 감춰진 삶의 매혹과 냉정한 현실 따뜻하거나, 차갑도록 무심하거나 작가 은희경이 응시하는 세상, 그리고 인간
은희경 작가가 자신의 열한 번째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소년을 위로해줘』이후 2년만의 장편이다. 삶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은 여전했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깃들어 있는 세련됨의 깊이는 더해졌다.
은희경 작가가 자신의 열한 번째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소년을 위로해줘』이후 2년만의 장편이다. 삶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은 여전했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깃들어 있는 세련됨의 깊이는 더해졌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다양한 작품을 쏟아낸 그녀이기에 이제는 그 치열함이 약간의 수월함으로 바뀔 만도 하건만, 새 작품을 집필하는 과정은 매번 그녀로 하여금 첫 작품의 산고에 버금가는 고통을 일깨우는 작업인 듯 했다. 아니 어쩌면 첫 책이 나왔을 무렵보다 작가에게 다가오는 고민과 두려움의 덩어리는 더 커진 듯하다. 작가는 그런 상황을 “노산이라 그런지 아이가 걱정된다”는 농담으로 웃어넘긴다. 매 작품의 집필이 필연을 동반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게 이번의 경우는 더욱더 우연으로 위장된 운명적 만남처럼 각인된 듯했다.
“이 책은 뭐랄까. 제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책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마음이 쓰였어요. 책을 낼 때면 내 삶에 대해 조금 더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두려웠던 일 한 가지를 충분히 생각해봤다는 느낌이 들어 힘이 좀 나요.”
사랑스러운 미소와 차가운 무표정의 소유자
이 작품의 동력 중 하나는 엿듣기 와 훔쳐보기인 듯 한데요. 특히 카페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목은 작가의 경험이 들어간 것 같은데요.
네 이번소설은 제가 주로 카페에서 쓴 거예요. 사실 전 좀 산만해서 누가 옆에 있다거나 하면 집중을 잘 못하거든요. 책도 잘 못 읽으니 절대 카페에서 글을 쓰는 타입은 못되죠. 그런데 이번에는 글이 너무 안풀려서 일부러 익숙지 않은 상황에 제 작업 환경을 만든 거예요. ‘나를 가혹하게 다루고 다른 방식에 상황에 갖다놔야 감각이 깨어나겠다’ 싶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들의 말이 다 들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모두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지금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을 글로 쓰자고 마음먹을 때 예쁜 여성 한 분이 들어왔어요. 당시에는 소설로 쓰게 될지 안될지를 몰랐지만 일단 메모를 했죠. 그런데 그 장면이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됐어요.
이번 소설을 두고 우연히 쓰인 소설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약간 클래식한 소설을 쓰려고 원주 토지문학관 작가집필실에 들어갔는데 너무 안써지는 거예요. 어떤 건 전에 썼던 이야기고, 어떤 건 누군가 이미 한 이야기고……. 제 머릿속에 이야기가 패턴화 돼 있는 것 같아서 마음만 괴롭고 글은 안써졌어요. 고백하자면 그냥 안써지는 소설가 이야기를 쓰자해서 생겨난 소설이에요. 요셉이 소설이 안써져 고민하는 이야기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진 것도 그 때문이에요(웃음). 그런 식으로 그 상황자체를 소설로 옮겨버린거죠. 이게 우연한 소설이라고 말한 이유에요. 작가들은 다 아는 이야기를 짜서 그대로 옮기는 것은 베끼는 것 같아 재미없거든요. 어떤 포석만 해 놓고 이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이어져 갈지 궁금해 하면서 그때그때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가는 그 과정을 즐긴 거죠. 그래서 항상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소설이 나오죠.
특히 이번이 그랬어요. 작가로서 문장력과 감수성과 문제의식, 인생에 대한 질문 같은 것들을 모두 바짝 가동시켜서 뭔가를 쓰는 거예요. 어떤 문제를 염두에 두거나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쓰다가 보면 맥락이 만들어져서 제가 하고 있던 고민이 이야기로 풀려나오는 거죠. 그래서 전 사실 이야기 자체, 에피소드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에피소드를 내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감수성으로 다루느냐가 중요하죠. 제가 20대에 작가가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뭔가 특이한 경험이나 독창적인 사건 같은 것, 개인적인 불행을 경험해야 스케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일상에 있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를 깨우치고 그게 소설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작품을 쓰게 된 것 같아요.
내용 중에는 이안이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 ‘위기의 작가들’의 스토리도 재미있는데, 선생님께 닥친 위기는 없었나요.
매번 새 작품을 쓸 때마다 그래요. 내가 전에 섰던 문장을 그대로 쓴다든지 하면 깜짝 놀라서 ‘이제 더 이상 나올게 없나’ 싶기도 하고요.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죠. 작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 경우는 쓰다가 안써지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단지 시작이 어려운 거죠. 시작을 할 때는 십 수 가지로 써보거든요. 그때마다 정말 내가 또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막상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탄력이 붙어요. 쓰기 전의 고통과 쓰면서 탄력이 붙을 때의 편차가 심한 편이에요(웃음).
아주 오래전 어느 봄날 류의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공중전화부스의 유리에 기댄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에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연녹색 원피스와 흰 스웨터 차림이었다. 한 손으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그녀의 얼굴은 희고 투명했다. 옆구리에는 책과 노트를 끼고 있었다. ……(중략) 그녀의 얼굴 가득 그 웃음이 퍼져나가면서 마치 봄 햇살이 비쳐든 듯 갑자기 전화 부스 안이 환해졌을 때, 엄청난 볼티지의 전율이 류의 아버지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녀로부터 흘러나온 그 강력한 빛은 순식간에 류의 아버지가 서 있는 곳까지 뻗어와서 그의 두 발목을 꽉 붙잡았다. 그곳은 대학교 앞의 버스정류장이었다. 류의 아버지는 물론 자기의 집 방향과 상관없이 그녀가 타는 버스에 뒤따라 탔다. 그날이 류의 부모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하략) -『태연한 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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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이 인상적인데요. 이 소설의 성격과 달리 굉장히 낭만적인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왜 시작을 그렇게 한 것인지 궁금하네요.
어떤 사랑의 전형, 낭만의 전형 같은 것이죠. 사실 제가 그것을 깨는데 취미(?)가 있거든요(웃음).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놓고 깨야지 효과가 있어요. 설정한 것일 수도 있는데, 류의 아버지가 나오는 부분은 대부분 달콤해요. 기질적으로 다정하고 열정적이고 무책임하기도 하죠. 그런 것들이 현실에서는 적합하지 않기에 어떤 면에서는 현실부적응자이기도 해요. 하지만 전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낭만성이 다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깨지게 돼 있다는 것 역시 제 생각이죠. 저는 그것이 깨지는 방식을 자주 써요. 그렇게 함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낭만적 자아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태연한 인생』의 등장인물들에게 선생님은 특별한 애착이 있는 것 같네요. 특히 그중에 하나를 꼽자면 누구일까요.
류의 부모 이야기는 사랑의 원형을 만들어서 그것이 변질되고 그래서 결국 사랑의 상실과 고독, 고통이 오지만 결국은 따뜻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제가 담고 있는 생각이니까요. 중간에 류가 ‘내가 살아오는 동안 환멸과 고독을 거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물려준 냉정한 현실감 덕분이지만, 그래도 내가 삶을 견뎌온 것은 아버지가 물려준 삶에 남아있는 매혹 때문이었다’라는 말을 해요. 저는 류의 부모가 냉랭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사랑했었다는 것으로 끝을 맺고 싶었어요. 류의 어머니도 자유롭게 사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결혼생활은 아니었다고 해도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은 거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두 인물, 류의 부모에게 애정이 많이 가요. 제 속에 있는 저를 둘로 나눠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요셉은 참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데요. 한편으로는 왜 요셉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저는 이름이 캐릭터를 규정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는 아무 인상을 남기지 않는 이름이 아니면 진짜 강한 이름을 짓거나 하죠. 첫 단편을 쓸 당시에는 주인공의 이름을 ‘선희’라고 했어요. 아무런 특징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죠. 전 이름에 의미를 많이 두는 편이에요. 그래서 나중에는 좀 담담하게 쓰기위해 이니셜로 쓰기도 했죠. 특히 K는 카프카의 K를 본떠 잘 쓰는 이니셜이고요(웃음).
요셉의 경우는 우락부락한 느낌, 괴팍하고 선이 굵은 이름이 필요했어요. 한국인이면서도 누구도 연상되지 않는 이름이어야했고요. 요셉이 떠올랐을 때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요셉’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는 일종의 억울한 이미지거든요.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 말이에요. 종교적인 의미를 배제하고 동정녀인데 예수를 가졌으니 들러리가 된 남편의 이미지죠. 요셉이란 소설가는 한물간 소설가로서의 자괴감도 심하고 분노가 많거든요. 평론가 욕도 하고, 신문기자, 동료 소설가의 욕도 서슴없이 하죠.
악역으로서 요셉의 부분은 너무 극한으로 몰고 가는 느낌도 들었는데요. 힘들지는 않았나요.
주인공을 악역으로 쓸 때 소설 쓰기가 더 재미있어요. 평소에는 나쁜 짓을 못하잖아요. 악역을 쓸 때 힘든 것은 모르겠어요. 잔인하다면 또 모를까. 깐죽거리는 정도니까요(웃음).
선생님도 평소에 요셉과 같이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시나요.
네, 작가들은 대부분 그래요. 여러 작가가 같이 있을 때는, 예를 들어 같은 회색 고양이를 보고 잠시 있다가 한 사람이 뜬금없이 ‘그거 회색이었지’하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거든요. 작가들끼리는 뭘 보고 머릿속에 남겨두는 버릇이 비슷해서 그렇게 말이 통해요. 그런데 한번은 동료작가들과 다 함께 여행을 갔는데 다들 본 것들이 제각각이더라고요(웃음).
관찰하고 상상하는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대부분 다 틀리죠. 그런데 사실 그건 중요치 않아요. 수사기관에 있는 사람이라면 맞춰야 하겠지만, 소설가는 어떤 것에서 이야기를 상상해내고 연관성을 발견하는 사람이잖아요. 그건 일종의 소설가에게 부여된 권능이죠. 사실하고 다르다 해도 내가 만드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거든요(웃음). 짐작이 거의 틀리지만, 그래도 짐작해보는 것이, 제가 소설가로서 가지고 있는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양한 방식으로 소설을 풀어나가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해보고 싶은 건 다 했어요. 그래서 형식이 좀 낯설죠. 중간에는 영화시나리오도 있고 희곡형태도 있잖아요. 이게 모두 6일에 걸친 이야기거든요. 요셉이라는 주인공의 일상에서 일어난 일인데, 그 6인안에 일어난 일을 그냥 풀어내면 단조로울 수 있으니까 시공간을 굉장히 넓게 잡아야했어요. 과거 10년 전 류와의 연인이었던 시절, 더 거슬러 올라가 류의 부모가 만난 시점까지도요. 류가 미국에서 태어난 것도 그렇죠.
아무튼 그 세월과 더불어서 모든 인물들이 마지막에 한 장면에서 모두 모여야 되는 거잖아요. 거기서 뭔가 파국이 일어나야하는데 그 장면을 어떻게 쓸까 하다가 뭔가 연극 같은 느낌일 듯 하다는 생각에 희곡형식으로 쓴 거예요. 그런 것이 재미있었어요. 독자들에게는 낯설었을지 몰라도…….
처음과 끝의 몽환적인 느낌이 좋았는데요. 마치 시와 같은 느낌의 문장도 그렇고요. 대학시절 시를 써본 적이 있으신가요.
예, 시 썼죠. 소설가들 대부분이 시를 쓰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저는 대학을 다니면서 친구들끼리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우리끼리 시를 쓰고 낭독을 하고 상을 주곤 했죠. 시를 많이 읽어야지 언어에 탄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시에서 감수성, 말을 축약하고 흩뜨려 놓고, 가끔 비틀어서 도발시키고 긴장을 주는 방법들을 배우죠. 물론 좋은 사물에서도 배우지만, 시는 언어 훈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 같아요.
류의 서사에 비밀스러운 부분이 많아 류와 관련된 이야기를 또 쓰시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사실 처음에는 류와 요셉의 이야기를 아주 멋진 연애장면으로 많이 쓰려고도 했어요. 류의 부모 못지않게……. 그런데 약간 전략적으로 생각해보니 너무 구체적이지 않은 것이 나을 듯 하더라고요. 또 쓰면 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 놓을지 모르기 때문에 여지를 남겨놓은 거죠.
원래 계획했던 소설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후 구상하는 작품은 어떤 것인지요.
맞아요. 전 이를 테면, 어떤 풍경을 보러갔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전혀 다른 풍경을 봐 버린 셈이죠. 이젠 처음 보려고 했던 풍경을 다시 볼 거예요. 처음 쓰려했던 소설을 이젠 다시 쓰고 싶어요. 여자기숙사에서 30여 년 전에 알게 된 친구들의 인생여정같은 이야기를 클래식하게 쓰고 싶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아마 제 마음속에는 더 자유롭고자하는 부분이 있어서 『태연한 인생』이 나온 것 같아요. 이걸로 해소가 됐으니 다시 정돈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 삶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통찰은 늘 우리를 열광하게 해온 은희경의 신작. 등단 16년, 매 작품마다 다양한 변신을 선보여온 그의 작품세계는 이제 더 깊어지고 여유로움마저 갖추었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장편 『태연한 인생』은 그간 집적된 은희경 소설의 성취들이 고스란히 담긴 은희경 소설의 빛나는 정수를 보여준다. 사랑과 상실과 고독에 대한 빛나는 문장들이 다시 한번 우리를 은희경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