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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필요한 건 마음은 중년, 몸은 소년인 남자! -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예찬
여자가 나이 든 남자를 만나면 더 젊어지는 이유 ‘노화는 우리의 미래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던 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의 조금 다른 측면들에 주목해 읽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식의 그 지독한 탐미주의를 넘어, 젊음에 대한 강박이라는 지점에서 말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바질’이라는 화가의 모델인 ‘도리언’이 ‘헨리’라는 탐미주의자와 만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는 이야기다.
간만에 본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 한 여자가 자신을 짝사랑하는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한데,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에요!” 여자의 말에 당황스런 표정을 짓던 남자가 그럼 어떤 취향이냐고 묻자,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똑 부러지게 말한다. “나 연하 사귈 거예요. 보기보다 신여성이에요, 저.” 취향을 묻는데 그저 ‘연하’라고 대답한 여자가 어이없어서 남자가 다시 되묻는다. 그냥 연하? 아무 조건 없이 연하면 되는 거냐고 말이다. 여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연하인데 뭘 더 바래요?”
이 남자의 나이 41살 (참고로 남자는 장동건!). 젊은 날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꽤나 멋진 포즈를 가지게 된 성공한 남자지만 억만금을 준다 해도 생물학적 나이를 줄일 수는 없으니, 이 여자(참고로 여자는 김하늘!)의 고백은 통탄할 만한 것이다.
소설 『스타일』에는 (참고로 작가는 백영옥!)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신의 애인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길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이는 많지만 멋있고 예쁜 여자? 모르는 소리하지 마. 남자들은 자기 여자 어려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물론 이런 대화가 나오게 된 배경은 취재를 통한 것이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젊음에 대한 강박’은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었음을 절감하게 되는 건 자신이 ‘아름답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좋고,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더 좋아하게 되는 순간 불현듯 찾아온다. 어느 작가의 출간 기념회 뒷풀이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누나’ 내지는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도대체 쟤들은 왜 나를 그렇게 부르지?”라고 깨달았다는 B의 이야기는 사실 내 얘기다. 맞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가치명제일 뿐이지만 ‘노화는 우리의 미래다’는 말할 것도 없는 사실명제인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던 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의 조금 다른 측면들에 주목해 읽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식의 그 지독한 탐미주의를 넘어, 젊음에 대한 강박이라는 지점에서 말이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바질’이라는 화가의 모델인 ‘도리언’이 ‘헨리’라는 탐미주의자와 만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는 이야기다.
미모는 천재성의 한 형태라네……아니, 사실상 천재성보다 훨씬 우월하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햇빛처럼, 봄날처럼, 검은 물속에 비친 우리가 달이라고 부르는 저 은빛 조가비의 그림자처럼,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위대한 요소 가운데 하나야. 그건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주권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아름다움은 그것을 간직한 사람들을 일인자로 만든다네. 자네 지금 웃고 있나? 아! 하지만 자네가 미모를 모두 잃었을 땐, 미소 지을 일도 없을 걸세…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하지. 아름다움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피상적인 것은 아니라네. 내게 아름다움은 그 모든 경이로움 가운데에서도 경이로운 것이지. 사물을 외양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은 얕은 사람들뿐이라네. 세상의 진짜 신비는 명명백백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눈으로 봐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래, 그레이군. 신은 자네에게 가장 완전한 모습을 부여해주었어. 하지만 신이 준 것은 신이 냉큼 앗아가 버리고 말지. 자네가 진정으로, 완벽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날도 몇 년 남지 않았다네. | ||
이를테면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오해하며 타인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경험에는 윤리적인 가치가 없다. 경험이란 단지 인간이 자신의 실수에 갖다 붙인 이름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도덕가들은 경험을 경고의 방식으로 간주해왔고, 성격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경험에 어떤 윤리적 효과를 요구했으며, 경험이란 우리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무언가라며 칭송해 왔다. 하지만 경험에는 동기가 되는 힘이 없었다. 양심이 워낙 그렇듯이 경험 역시 거의 적극적인 원인이 될 수 없었다. 사실상 경험이 우리에게 증명해 보인 것은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다를 바 없으며, 우리가 한때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질색하지만 나중엔 기꺼이 수시로 죄악을 저지르게 되리라는 것뿐이었다. | ||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 ||
중년 남자가 좋지 않은 건 말야.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마음만이라도 소년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점이야. 마음은 소년인데, 몸은 아저씨.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건 세상에 없다구! 여자에게 필요한 건 마음은 중년 몸은 소년인 남자라구. | ||
쭈글거리는 노파는 귀여운 아기를 보자 마음이 참 기뻤다 모두가, 좋아하고 뜻을 받아주는 그 귀여운 아기는 노파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 ||
아흔 살이 지나면, 오십대나 육십대와는 다르게 늙는다. 서글픔이나 원망 없이 늙는다. 니니의 주름진 얼굴은 장밋빛이었다. 고귀한 천, 가족 모두 힘을 합해 온갖 정성과 꿈을 엮어 만든 몇 백 년 묵은 비단이 그렇게 늙는다. 일 년 전, 그녀의 한쪽 눈이 백내장에 걸렸다. 그 눈은 이제 슬픈 회색빛으로 보였다. 나머지 눈은 원래 그대로 푸른빛, 8월의 산중 호수처럼 시간을 초월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미소 짓는 눈, 니니는 언제나처럼 짙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다. 짙푸른색의 모직 치마와 수수한 블라우스. 칠십 오 년 동안 새 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 ||
완벽하게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어느 날,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미모에 눈을 뜨게 되고, 이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허황된 소망을 품는다. 그러나 허황된 것이라고만 여겼던 그의 소망이 이루진다. 도리언 그레이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고,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면서 더불어 그가 지은 죄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지고 추하게 변해가는 것이다…
관련태그: 젊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은교, 미래생활사전, 열정, 스타일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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