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면 뜬눈으로 지새워라 -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장석남, 『원더보이』 김연수
봄밤, 바람날 것을 권하는 시인과 소설가를 만나다! “누군가의 슬픔 때문에 내가 운다면, 그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봄비가 내리는 지난 4월2일, 서울 홍대부근의 상상마당은 그래서 충만했다. 시인과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달려와서 공감했기 때문이다. 동생처럼 칭얼대는 소설가와 형처럼 한 박자 쉬고 이야기를 건네는 시인이 봄밤의 정취에 취해 잠들지 말 것을 권했다. 봄밤에는 바람이 나야한다는 것도…
『원더보이』는 지금은 특별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그 ‘공감의 능력’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김연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원더보이’를 통해 우리가 되찾아야 하는 능력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어떻게 되찾아야할 것인지도.
“누군가의 슬픔 때문에 내가 운다면, 그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원더보이』, p.168)
봄비가 내리는 지난 4월2일, 서울 홍대부근의 상상마당은 그래서 충만했다. 시인과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달려와서 공감했기 때문이다. 동생처럼 칭얼대는 소설가와 형처럼 한 박자 쉬고 이야기를 건네는 시인이 봄밤의 정취에 취해 잠들지 말 것을 권했다. 봄밤에는 바람이 나야한다는 것도.
두 사람,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의 장석남 시인과 『원더보이』의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의 오래된 절친 김중혁 작가가 사회를 본 봄밤의 바람난 이야기. 이미 여름이 온 것 마냥 조급한 계절에 휘둘리지 말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바람날 수 있는 봄을 만끽하시라.
“그리고 1987년 여름이 되자,
베드로의 집에서 국영수를 가르치던 형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하려고 든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뭐라도 할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원더보이』, p.319)
장석남과 김연수, 그 만남
두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이다. 첫 만남이 어땠나? 첫 만남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
(김연수, 이하 연) 실험적이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이 실리는 <문학정신>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잡지사가 대학로에 있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여기에 투고를 했는데, 그날도 투고하러 가서 편집부에서 주뼛거리고 있으니까, 한 사람이 왔다. 시를 투고하러 왔다고 하니까 주고 가라고 해서 주고 갔다. 키가 큰 사람이었는데, 반신반의하면서 줬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읽어보고 연락 주겠다고 해서 아주 오래 기다렸는데, 연락이 안 왔다. 왜 그때 연락 안 하고 왜 나중에 했나? (웃음)
(장석남, 이하 석) 그게 첫 만남이라는데, 난 모르지. 공모 기간이었나? 수시 투고였나? (수시였다.) 문제가 있으니 연락을 안 했겠지. (웃음) 만난 지 벌써 20여년이 됐다. 어렸을 때는 5살 차이가 컸는데, 지금은 아무 차이가 아니지. 누가 형인지도 몰라볼 정도로. (웃음) 김연수는 첫 만남보다 108배 정도 훌륭한 작가가 돼서 좋은 글 쓰는 후배가 됐고, 좋다. 같이 오랫동안 서로를 생각하고 씹기도 하면서 지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예전에 장석남 작가가 김연수 작가 집을 종종 놀러갔었다.
(연) 내가 학생이었을 때, 형은 문인 같은 존재였다. 詩도 좋아했고. 만날 때마다 되게 좋았다. 내가 등단할 때도 같이 있었다. 형이 우산을 쓰고 밤 11시쯤 찾아왔는데, 갈 데가 없었나보더라. (웃음) 달동네까지 온 것을 보니 갈 데가 없었던 거지. 다음날 아침, 전화가 왔는데, 형이 받았다. 당시 정은숙 <작가세계> 편집장, 지금은 마음산책 대표의 전화였고, 그날 내가 시인이 됐다. 시인이 된다는 건, 인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경험인데, 잘 몰랐다. 형이 사진을 찍으라고 했고, 형이 사진을 찍어줬다. 그날 저녁, 형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다. 굉장히 좋아하는 표정인데, 내가 시인이 됐다는 것을 느꼈다.
(석) 나도 기억난다.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가 없어서 연수 집으로 갔다. 가난하고 힘든 자취방이었는데, 선배랍시고 대접을 해주더라.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한 시절인데, 스티로폼이 방에 있었고 참 좋았다. 아침에 온 전화를 받으니 아는 사람인 거라. 사진 찍은 것도 기억이 난다. <작가세계> 특집을 보니 함께 찍은 사진이 있더라.
사람들이 술 마시고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놀던 여럿이 있었는데, 김연수 작가는 장석남 작가를 만날 때 가장 기뻐하지 않았나 싶다. 오늘 행사 신청을 받을 때 댓글을 보니, 두 사람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이 많더라. 장석남의 문학에 대해 한 마디 해 준다면?
(연) 석남이 형의 詩에 대해 말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詩를 배울 때, 석남이 형의 詩를 많이 읽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내가 장석남이 되면 그렇게 쓸 수 있겠더라. 석남이 형은 체구도 좋고, 그릇이 되게 크다. 사소한 일에 좌우되거나 그런 게 없다. 그런 시각이나 태도를 보면, 詩도 시원시원하다. 나는 詩를 써놓고 고치다가 소설가가 됐고, 詩를 잘 쓰는 소설가가 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설가 김연수에 대해 말해준다면?
(석) 김연수가 말한 나에 대한 평은 정반대다. 잘 삐치고 소심하다. (웃음) 내가 아는 김연수는 고전적인 사람이다. 고루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번 소설을 보면서도 이 친구, 끊임없이 균형을 갖추려고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늘 큰길이 낯설므로 오솔길을 택하여 가나 어머니는, 내가 가는 길을 염려하실 테지 풀이 무성한 길, 패랭이가 피고 가을이라 나뭇잎이 버스럭대고 독한 뱀의 꼬리도 보이는 맵디매운 뙤약볕 속으로 지워져가는 길 (…) 가을 아침의 자욱한 첫 안개와 바짓단에 젖어오르는 이슬들도 오래전부터 아는 듯 걸어갈 테지 어머니의 염려나 무거워하면서 여전히 걸어갈 테지 안개 속으로 난 아득한 오솔길을” |
||
“여러 나라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삶 귀중 하이 내 이름은 김정훈입니다. 나는 한국 소년입니다. 나는 열일곱 살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이 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나의 엄마는 더 오래 전에 죽었다고 나는 생각했었습니다. (…) 당신의 충실한, 김정훈”(pp.253~254) |
||
“두 뺨을 스치는 바람처럼/ 살며시 귓가에 속삭여줄게/ 당신이 지금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 그 말을/ 악마가 세상을 삼킨대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 가장 듣고 싶은 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 그 귓가에 바람처럼 가벼웁게/ 그 귓가에 깃털처럼 속삭여줄게/ 악마가 세상을 삼킨대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잖아/ 가장 듣고 싶은 말 이제껏 참았던 말을” | ||
“아마도 네가 기뻤다면 다들 기분이 좋다고 껑충껑충 뛰었을 거야. 그건 네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능력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네 마음도 그대로 전해주는 능력, 그러니까 교감과 동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p.135) | ||
장석남 시인, 굉장히 잘 생겼다.
(연) 형이 영화에 출연한 적 있다. 주인공으로. <성철>이라는 영화에. 조계종에서 크게 반대해서 상영취소는 물론 필름도 폐기처분했다. 전설로 남아 있는 영환데, 형이 머리를 깎았을 때, 신문에 해맑은 표정으로 찍힌 사진만 기억난다. 영화는 나도 못 봤다.
(석) 얼마 전에 이 친구가 꽤 오래 영화에 나와서 깜짝 놀랐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걸 보면서 영화 찍을 때의 현장과 마음상태가 그려지는 거다. 저 눈빛은 저게 아닌데, 긴장하고 있군, 해석하면서. (웃음)
이 행사에 대한 댓글에 이런 게 있다. 김연수가 쓴 글 중에 ‘조건부 자살 동의서’라는 말이 나온다는데, 이건 어떤 말인가?
(연) 수필집『청춘의 문장들』서문에 있는 글이다. 그땐 내가 이렇게 오래 글을 쓰게 될지도, 이런 것으로 질문을 받을지도 몰랐다. (웃음) 고등학교 때, 전혜린을 되게 좋아했다. 무척 빠져 있었다. 책을 보면 전혜린이 자살을 꿈꾸고 있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장석남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고등학교를 다녔고, 시를 쓰게 됐나?
(석) 묘한 건, 고등학교 무렵 몇 년의 시간이 가장 선명한 것 같다. 여문 건 아니지만 그때 詩라고 하는 상태를 뭐라고 얘기할 수 없었지만, 詩가 내 마음 속에서 구현해주는 무엇에 매료됐었다. 다른 무엇, 즉 공부 같은 건 한 발짝 뒤로 물렸다. 일종의 방랑 같은 것이기도 할 텐데, 당시를 그렇게 보냈다. 詩를 쓰기도 했지만, 시집을 구하면 아끼면서 읽었다. 카프카의 『성』도 기억에 많이 남고.
작가 자신의 작품에서 선택한 낭독의 시간이 이어진 뒤, 마무리 발언이 이어졌다.
(연) 비오니까, 기분 좋다. 눈 내리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4월에 내리는 눈을 좋아한다. 비 내리는 봄밤, 좋아한다. 봄밤에 비가 내리면 잠자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 내릴 때는, 꼭 깨어있으시고. 나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많이 듣는다. 비 내리는 봄밤에만 듣는데, 몇 년째 듣고 있다. 되게 좋다. 지금 그래서 약간 기대도 된다. 봄밤, 되게 짧고 비도 몇 번 안 내리니까, 후회하지 말고 뜬눈으로 지새워라. (웃음)
(석)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다. 봄에 바람이 불거나, 봄비가 오는 게 쉽지 않다. 자주 오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날, 귀한 날이다. 바람나야 하는 계절이 봄이다. 詩에도 썼는데, 봄밤에는 바람이 나야 한다. 더구나 비도 오는 날, 바람 안 나는 사람은 한참 뭐가 잘못 됐다. (웃음)
“순리대로 사는 게 바로 이 우주의 비밀이지.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안 자면 되는 거야. 꼭 자야 할 필요는 없어. 죽은 사람이 자꾸 눈에 보인다면, 그냥 눈을 감으면 되고. 보고 싶을 때는 눈만 뜨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 좋은 거 아닌가?”(『원더보이』, p.143) | ||
“스스로, 모든 건 스스로! 외부의 힘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래서 저절로 모든 일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p.91) | ||
이젠 중견작가 ‘김연수’가 펴내는 청춘성장소설. 제목도 성장소설 답게 소년 '보이'가 들어간다. 2008년 봄에 청소년문예지 『풋,』에 연재하기 시작해 끝을 비워놓은 상태로 연재를 끝냈던 『원더보이』가 연재를 중단한 지, 꼭 이 년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일까. 『원더보이』는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기로 한 것처럼 스스로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어른들도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관련태그: 김연수 , 장석남, 김중혁, 원더보이,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이아립